빈틈투성이 지역노사민정협의회, 각 주체 의지 필요
빈틈투성이 지역노사민정협의회, 각 주체 의지 필요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9.10.02 00:06
  • 수정 2019.10.02 0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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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역할 주어져야 제대로 된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 가능해
[인터뷰] 전왕표 한국노총 전국지역지부의장협의회 회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에는 업종별 노동자들로 구성된 산별노동조합도 있지만, 지역노동자들이 모인 지역지부들이 있다. 한국노총 소속 전국 54개 지역지부는 지역의 노동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또한, 성남지역지부를 중심으로 전국지역지부의장협의회를 구성하고 각 지역지부 의장들이 함께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현안을 논의하고 해결점을 찾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구성하는 주체 중 하나는 노동계다. 각 지역의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는 한국노총 소속 지역지부들이 참여하고 있다. 노동계가 바라보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현재와 보완점은 무엇인지 전왕표 한국노총 전국지역지부의장협의회 회장(성남지역지부 의장)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눠봤다.

Q. 한국노총 전국지역지부협의회는 어떤 곳인가?

과거 한국 노동운동은 산별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또한, 정부가 중앙행정부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해왔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임명제였기 때문에 그에 따라 노동운동도 업종별·산별교섭 중심의 운동방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신독재와 군부독재 시절, 산별노조 해산 등 노동탄압으로 인해 산별노동운동의 힘이 크게 약화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산별노동운동의 한계점을 감지하고 지역노동운동 활성화에 관심을 가졌다.

1998년 성남지역지부를 중심으로 한국노총 산하 지역지부 의장들이 모이게 됐고 그 결과 한국노총 전국지역지부의장협의회가 탄생하게 됐다. 이전의 한국노총 규정에는 없는 조직이었지만, 지역에서는 전국지역지부의장협의회의 필요성을 계속해서 주장해 왔다. 각 지역 간 노사민정 활동 등을 서로 공유하고 있으며, 지역 현안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다.

20년 넘게 활동해오고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위상이나 역할에 대해 한국노총 내부에서 크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에서는 지역지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노총 구조는 산별 중심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현실이다.

Q. 여러 지역지부 의장들을 만나면서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가 가장 잘 진행되고 있는 곳을 뽑자면 어디이며,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곳과 비교했을 때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전국에 54개의 지역지부가 존재하지만,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뽑을 수 있는 지역은 부천이나 수원 정도이다. 지방의 경우 여러 가지 한계가 존재하다 보니 사회적 대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사회적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짜임새’라고 생각한다.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를 구성하는 노사민정 중 한 부분이 참여하지 못하면 짜임새를 갖추지 못한다. 지방에서는 이런 부분 때문에 사회적 대화 조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Q. 현재 운영되고 있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제는 정말 많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이하 협의회)를 꾸리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많다. 사람이 있어야 하고, 예산이 있어야 하고,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각 지역을 들여다보면 이런 것들이 다 부족하다. 조례에 따라 협의회 사무국을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사무국을 담당할만한 인원이 없고 사무국 담당 인원이나 활동가가 있어야 협의회를 집중적으로 꾸려가며 내부의 내용을 만들 수 있는데 예산도 없다.

실제로 성남지역노사민정협의회만 봐도 사무국 직원이 무급이라 어쩔 수 없이 성남지역지부 직원을 겸직하며 운영하고 있어 활성화를 바라기 어려운 상황이다. 예산과 충분한 인력풀 확보의 문제에 있다고 본다.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에 영향을 주는 것 중 특이한 점을 뽑아보자면 정치도 있다. 각 지역의 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이 특정 정당에 장악돼 있는 경우가 많다. 노동계와 정치권의 사이가 좋으면 예산 문제나 지역 현안에 대한 논의를 굉장히 쉽고 원활하게 진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계와 사이가 좋지 않은 정치권이 지역을 잡고 있으면 시의회에서 예산을 통과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생각이 굉장히 많이 반영된다. 예를 들면 성남시장이 성남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노사민정이 모여서 회의를 진행하지만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서 회의를 진행하고 형식적인 동의만 받아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안타깝다. 각 지역에 맞는 여러 가지 데이터를 통해 지방정치 내에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인근 지역이 했던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는 식으로만 돼버린다.

중앙단위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나 노사발전재단에서는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도 있다. 바로 현장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장의 소리들을 제대로 모아내지 못하고 전문성만 가지고 있으니 지역에 가지고 있는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회적 대화의 기본 틀은 ‘사회성’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성이란 시민들이 참여하고 시민들을 일깨우는 것인데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를 보면 시민들의 인지도가 현저히 낮다. 시민들이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잘 굴러갈 수 있다.

Q. 협의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중앙정부에서 여러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역 발전을 위해 자문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문에는 비용 문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전문성에 대한 부분이 포함될 수 있다. 중앙에서 각 지역을 감시·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조언이나 첨언을 해준다면 지역은 이를 굉장히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것이고 지방정부에도 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지방재정의 자립도가 필요하다. 지방재정의 자립도는 자본이 유입되면서 가능할 것이다. 지방정부가 훌륭하고 우량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자리가 없으면 지방의 경제가 활성화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을 계속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논의는 협의회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주요 성과 중 하나다.

협의회에 참여하는 기업들 같은 경우도 생활임금을 올리자는 얘기를 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지만 지역에 기업과 자본을 유치해서 우수한 노동력을 확보하자고 하면 환영한다. 이를 기반으로 지역의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조례를 통해 협의회를 설치하고 독립 사무국을 설치했으면 직원을 채용하고 급여를 줘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사무국장은 부단하게 움직이며 노사민정 주체들을 연결시켜야 한다. 그렇게 유기적으로 협의회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역할을 해 줄 수 있도록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협의회에 참여하는 각 주체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노사는 그 동안 현장에서 늘 겪어오던 것들이기 때문에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 다만, 지방정부는 협의회에 들어왔지만 권한이나 행동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협의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 지방정부는 주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올바른 정책과 지원 요청을 위한 적극적 검토와 지원이 필요하다.

노동계의 변화도 필요하다. 현재는 산별대표자 중심으로 구성돼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지역의 역할과 기능은 제한적이다. 산별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지역에서 받아 안는다면 씨줄과 날줄처럼 결합해 한국노총 전체적으로도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협의회에 대한 필요성과 절박함을 느껴야 한다고 본다. 주체들이 협의회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활성화될 수가 있을까. 주체들이 공감대를 가지고 움직여야만 어떤 정치권이 들어서더라도 휘둘리지 않고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지역에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이유를 강조한다면?

지금은 풀뿌리 민주주의다. 지역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에서 협의회가 활성화되고 협력하고 상생하는 다수의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내 협의회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중앙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더 큰 힘을 받아 지금보다도 더 잘 운영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탑다운 방식과 중앙집권형 정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수없이 학습해 왔다. 이 방식의 문제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지방자치로 바꾼 것이다. 시민들을 주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지방자치가 가지고 있는 핵심 가치다. 시민 중심의 지방정부가 만들어지고 지방의 정책들과 의제가 만들어져서 협의회에서 논의하고, 이런 것들이 중앙으로 올라가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

협의회는 지역별로 현안을 찾아내고, 중앙단위 사회적 대화기구에 지역 공통의 문제와 해결방안 등을 전달하는 네트워크 활성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많은 지역단위와 산업별,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는 대화를 수시로 진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