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노사민정협의회 성공의 Key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성공의 Key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10.02 00:07
  • 수정 2019.10.03 0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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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사회적 대화’의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한다

커버스토리 ④ ‘지역’과 ‘사회적 대화’ 두 단어의 힘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행방


지역에도 사회적 대화가 있다. 지역의 사회적 대화는 지역 노사민정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경제 및 노동 현안을 논의하는 기구인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서 이루어진다.

대화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꺼내는 해결 수단이지만 그 과정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은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대화를 통해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지역민이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밑에서 위로 끌어올리는 대화, 지역의 사회적 대화는 낯설지만 우리 가까이에 있다.

왜 지역에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가로 시작한 기획이었다. 현재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를 하고 있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봐야 했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어떤 필요성에서 의해서 운영되는지 알아봐야 했다. 필요성이 마땅하다면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운영할 때 느끼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취재 결과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잘 굴러가기 위해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예산도, 의제를 개발할 사람도, 협의회를 운영할 사람도, 그것들을 총괄할 역량도 말이다. 또한 지역에 지속가능한 경제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지역 노사민정 주체들이 강하게 내재화하고 있어야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제대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것들은 지역단위 사회적 대화기구든, 중앙단위 사회적 대화기구든 모두 필요한 조건들과도 같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일반론적인 사회적 대화 필요성 외에 지역에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강력한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이유를 ‘지역’이라는 단어에서 찾아봤다.

ⓒ 수원지역노사민정협의회
ⓒ 수원지역노사민정협의회

공동체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거창한가?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지역경제발전을 위한 회의체다. 고용노동부가 낸 ‘지역노사민정 협력활성화 사업 설명회’ 책자에 따르면 협의회는 지자체가 지역의 노사 및 주민대표, 지방고용노동관서 등과 협력하여 지역경제발전을 위해 일자리 창출 및 인적자원 개발, 노사관계 안정 등 지역 고용·노동정책과 관련한 사항을 발굴하고 협의·심의하는 회의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다.

그렇다면 두 가지를 물을 수 있다. 왜 지역경제발전을 위해야 하는지, 그 왜를 논의하는 주체가 왜 지역 노사민정인지. 후자에 대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 노사민정 각각이 지역공동체 경제발전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전자에 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가 침체되면 안 되니까. 단순히 경제 수준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이유에서일까? 앤드루 양은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서 몇몇 전문가의 말을 빌려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문화적 응집력이 와해된다는 점에서 영스타운의 이야기는 미국의 이야기와 같다. 경제가 무너지는 것보다 문화가 무너지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 존 루소 영스타운 주립대학 노동학 교수

“(제조업 쇠퇴 때문에) 출생률과 결혼율은 감소하고 있지만 불리한 조건을 안고 태어나는 아이의 비율은 늘고 있다. 그 결과 이 아이들은 아주 힘든 환경에서 살아간다.”

- 데이비드 오터 교수

결국, 지역경제의 붕괴는 경제적 가치 창출 중단을 넘어서 지역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붕괴시킨다. 산업과 경제 상황은 시시각각 변한다. 앤드루 양은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서 “시장은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한테 가장 좋은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산업과 경제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역공동체가 지속가능하려면 지역경제 주체들이 만나서 무언가 대안을 그려야 한다.

대안 참 그리기 어렵네!

거칠게 이야기하면 돈, 사람, 역량이 없었다. 협의회를 운영할 예산이 부족했다. 예산의 부족은 100%는 아니지만 협의회를 운영할 사람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운영할 사람이 부족하다 보면 당연히 개인의 부담이 커진다. 지역에 존재하는 노사민정 관련 인물들을 만나며 네트워킹을 촘촘히 할 수 없어진다. 협의회는 지역경제 주체들이 모여 만들어낸 시너지가 핵심인데 말이다. 결정적으로 시너지를 분출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역량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협의회 역량으로 거론되는 것은 전문성, 대표성, 의제 발굴 능력, 노사민정이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파트너십 등이다.

한편으로 돈, 사람, 역량이 있어도 잘 안 된다고 토로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공통적으로 지적했던 것이 ‘경제와 노동이 우리 삶에 중요하다’는 문제의식 공유의 부재다. 노사민정 주체들이 문제의식을 강하게 내재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협의회 안에서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문제의식을 공유하지 못하면 각 주체들이 시간과 자원을 쏟을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고 대화를 시작할 수 없다. 결국 돈, 사람, 역량의 부족과 문제의식 공유의 부재는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앙단위 사회적 대화기구에도 제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 수원지역노사민정협의회
ⓒ 수원지역노사민정협의회

핵심은 왜 지역이냐

지역공동체가 지속가능하려면 지역경제 주체들이 만나서 무언가 대안을 그려야 한다. 돈, 사람, 역량의 부족과 문제의식 공유의 부재는 어찌 보면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 대화기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갖춰져도 지역이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과했던 것은 ‘지역’이라는 단어다. 지역에서 주체들 스스로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앙단위에서 이야기되는 것보다 좋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만이 가진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① 기민한 대응

중앙 집중화된 시스템은 기민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위기 감지 – 위기 분석 – 대응 전략 수립 – 대응 전략에 맞는 계획 수립 – 이행 – 점검 – 보완’의 기본적 대응 프로세스는 이행 전 단계까지 여러 번 보고해야 한다. 중앙 집중된 시스템에서는 기초자치단체에 일어난 일이 광역자치단체 급으로 올라가고, 다시 중앙단위로 올라갈 때마다 세워진 대응 프로세스(이행 전 단계까지)에 대한 보고와 요약이 이뤄진다는 말이다. 최종적으로 중앙에서 결정이 나고 이행 단계로 가기까지는 비효율적이다. 반면 지역에서 판단하고 수행한다면 행정적 단계는 줄어들 것이다. 중앙집권주의체제가 능률성의 한계를 가지고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초래해 지방분권이라는 개념이 나타난 것과 같은 맥락이다.

② 지역 사정에 대한 세세한 파악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인터뷰를 하던 중 흥미로운 역질문이 들어왔다. 장홍근 선임연구위원은 “부산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서 뭐가 논의되고 있는지, 뭐가 현안인지 알아요?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서 뭐가 지금 핫이슈인지 알아요?” 다른 지역에 대한 이슈를 의무적으로 찾아보지 않는다면 알지 못한다. 반대로 지역에 관한 이슈는 해당 지역의 당사자들이 잘 알기 마련이다. 지역이 처한 문제와 현안에 대해서만 파악이 쉬운 것이 아니다.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경제 환경적 특성, 지역의 문제를 논할 수 있는 지역 전문가 그룹과 인적 네트워크 등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③ 아주 직접적인 이해당사자

지역 노사민정은 아주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다. 지역공동체 경제발전을 위해 대안을 그리는 것은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위기를 맞는 최전선에 있는 만큼 위기에 대한 해결 방법도 가장 먼저 찾아내야 할 주체들이 지역 노사민정이라는 뜻이다. 좋은 예로 협의회의 모범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있다. IMF 이후 부천지역 중소기업의 도산 위험 앞에서 지역 노사민정이 머리와 마음을 맞댄 협약을 맺는다. 부천지역의 고용불안을 지역 차원에서 극복하고 현실적 대안을 찾기 위해서다. IMF 이후 경제 침체로 전국이, 지역이 홍역을 앓을 때 업종별 협의회 및 주제별 포럼, 직업훈련 네트워크를 구성해 일자리 창출 등 실질적인 대안과 실행을 통해 부천지역 노사상생 및 노동시장의 발전을 도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④ 회복탄력성

지역공동체의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대안적인 실험이 필요하기도 하다. 실험이라고 말하기에는 거창할지는 몰라도 조그마한 부분에서라도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 정책적 실험과 변화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실현 과정에서 생기는 허점들을 발견하고 수정·보완해야 한다. 이를 중앙 정부에서 맡을 경우에는 시간뿐만 아니라 예산도 많이 든다. 하지만 그 단위가 작아질수록 중앙 정부에 비해 효과적이다. 즉, 회복탄력성은 커진다.

⑤ 과잉정치화 가능성 축소

장홍근 선임연구위원은 “중앙 정부 단위(National Level) 사회적 대화와 합의 과정에서 노사정 이해당사자 모두가 지나지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양보를 하면 각 진영의 내부에서 비판받게 될 경우를 우려하고 두려워한다”며 중앙단위 사회적 대화에서 일어나는 과잉정치화에 대해서 비판했다. 반면 “중위 수준의 지역, 산업, 업종 차원에서의 사회적 대화는 소리 소문 없이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중앙의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들렸던 잡음에 비해 각 지역에서는 노사민정 협의 사례들이 많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에 선정한 지자체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우수사례만 보더라도 광역 단위 4개 사례, 기초 단위 11개 사례가 있다. 2016년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즉, 과잉정치화가 축소되고 실질적이 변화가 조금씩이라도 쌓여나갈 수 있는 공간이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꼭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여야 하나?

지역 경제발전을 상상하고 실현하기 위해 ‘지역’의 장점을 살린 사회적 대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틀이 꼭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일 필요가 있을까? 고용노동부가 설명한 협의회의 개념에 ‘지역경제발전을 위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기 때문일까? 그 물음에 김주일 한국과학기술대학교 교수(충남 노동정책협의회 위원장)는 흥미로운 대답을 들려줬다.

“아니요. 충남 노동정책협의회도 사회적 대화 테이블 중 하나인 거고요. 현재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틀은 정책협의회 틀에서 소화하고 있어요. 꼭 이름에 국한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중략) 이런 데(전남, 강원의 기초지자체)는 농촌이 많잖아요? 그래서 지역노사민정협의회 하면 우린 해당사항 없다는 지자체도 꽤 있습니다. 농촌에 가도 외국인노동자 많잖아요. 거기도 꼭 노-사 덧붙일 필요 없이 일자리 위원회, 일자리 문제로 가면 되는 거고요. 지역에 맞게 틀은 여러 가지로 만들어서 해나가는 게 당연한 거죠.”

김주일 한국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이처럼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수만 있다면 그 틀이 꼭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아니어도 된다는 이야기는 협의회 전문가 및 관계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왔다. 고현주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도 “꼭 협의회가 아니어도 된다”고 밝혔지만 “기초 단위까지 포함하고 있는 곳은 협의회밖에 없고 아무래도 협의회가 가장 오래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역에서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 협의회라는 틀을 당위적으로 활용할 필요는 없다.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틀로 기초 단위 지자체에서는 협의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논제로섬 게임인 ‘지역’과 ‘사회적 대화’의 만남

노사민정 주체 중 한 쪽의 힘에 의한 정리된 결정이 아닌 논의 과정을 거친 합의는 힘이 강하다. 장홍근 선임연구위원은 “현실 정치에서는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권력(Political Power)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제로섬 게임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사회적 대화는 내가 하나 더 얻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걸 잃어버리는 제로섬 게임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나와 상대방이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논제로섬(Non-zerosum) 게임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제까지 현실정치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하나의 정치형태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사회적 대화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어쩌면 미래가 있는 삶,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제로섬이 아닌 시너지가 필요한데 그것을 구축하는 방안으로 제로섬의 현실 정치가 아닌 논제로섬의 사회적 대화가 맞는 형태일 수 있다.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대안으로 지역의 이름을 딴 ‘○○형 일자리’가 등장하고 있다. 지역의 경제 사정의 악화와 제조업의 붕괴에 따라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형 일자리 모델이 만들어지기까지 ‘지역’과 ‘사회적 대화’가 만났다. 지역경제와 노동이 무너지면 지역공동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공유한 지역 주체들이 모인 결과다. 모여서 중앙단위의 요구가 아닌 자신들이 지역의 위기를 가장 먼저 체감했고, 대응했고, 실험을 했다. 아직 초기 단계이기에 ○○형 일자리가 성공적인 모델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시너지가 유지되기 위해 사회적 대화가 계속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장기적 관점과 지역의 장점을 유지할 긴 안목이 필요한 것도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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