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다른 ‘요즘 애들’ 목소리
확실히 다른 ‘요즘 애들’ 목소리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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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노동의제들 노조와의 간격 확 줄여야

커버스토리 ④ 밀레니얼 세대의 긍정적인 가능성

일터 × 밀레니얼 세대


각 기업들은 정기적·비정기적 채용을 통해 부족한 인력을 채우고 기업의 인재를 키워낸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는 큰 고민에 빠졌다. 신입사원들의 모습이 이전에 보았던 직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질 않나, 분위기 쇄신을 위해 회식이라도 한 번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이뿐인가? 그 어렵다는 취업문을 뚫었음에도 사직서를 던지고 퇴사한다고 한다.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90년대 초중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말 ‘밀레니얼 세대’는 문제가 많은 걸까? <참여와혁신>은 그 고민을 가지고 ‘밀레니얼 세대’에 접근해 봤다.

노동계에서 ‘밀레니얼 세대’나 ‘청년세대’는 흔히 ‘조직화해야 하는 대상’, ‘참여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이해된다. 그나마 발 빠른 노조 몇 군데만이 청년 조합원들을 따로 모아서 이야기를 듣거나 소통 또는 홍보의 방식을 더욱 젊게 바꿔서 소통 창구를 활성화한다. 이에 반해서 노조가 밀레니얼 세대만의 노동의제를 새롭게 발굴하거나 단체협약 사항으로 반영한 사례는 보기가 드물다. 물론, 조합원 중에는 밀레니얼 세대만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전체 조합원 중에서 20~30대 조합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노조가 기성세대와는 다른 밀레니얼 세대 조합원의 요구를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는 데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참여와혁신>은 지난 한 달 동안 제조와 금융, 보건, 공공 등 4개 분야 노조 관계자들을 만나 물었다. 밀레니얼 세대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노동의제는 기존 세대의 것과 다른가?

제조를 제외한 세 개 분야 노조는 20~30대 조합원이 전체 조합원의 절반을 크게 웃돈다.

금속노조는 10월 18일과 19일 1박 2일간 2030 청년조합원을 대상으로 청년캠프 ‘노조로 만난 사이’를 진행했다. 이번 캠프에서 ‘청년’을 주제로 금속노조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금속노조는 10월 18일과 19일 1박 2일간 2030 청년조합원을 대상으로 청년캠프 ‘노조로 만난 사이’를 진행했다. 이번 캠프에서 ‘청년’을 주제로 금속노조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회식 횟수 제한부터 자기 돌봄 휴가까지
‘요즘 애들’의 다른 목소리

밀레니얼 세대가 노조에 요구하는 의제들은 분명히 기존과 달라지고 있었다. 밀레니얼 세대 조합원에게 주목하는 노조일수록 변화의 양상은 뚜렷하게 확인됐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나 ‘자기개발’, ‘상호 존중’ 등 밀레니얼 세대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들은 단체협약 사항에도 녹아든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IBK 기업은행지부(위원장 김형선, 이하 기업은행지부)다. 기업은행지부는 올 한 해 동안 워라밸을 중시하면서도 자기개발 욕구가 높은 밀레니얼 세대의 맞춤형 노동의제를 발굴한 뒤 단협에 반영해왔다. 의무 사용 연차 일수 확대(연8회→10회)나 남성 출산 휴가제도 의무사용제 전환, 대학원 학비 지원 전공 제한 삭제, 자격증 수당 확대,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 횟수 확대 등이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노조가 추진하고 있는 과제 중에는 자녀 돌봄 제도가 아닌 ‘자기 돌봄 휴가’나 미혼 직원을 위한 전·월세 지원 등도 눈에 띈다. 이태용 기업은행지부 정책국장은 “자녀 돌봄 제도나 전·월세 지원, 자녀 학자금 대출 제도 등 기업 복지 대부분은 가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에게 더 이상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미혼 직원들은 도리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다. 미혼 직원의 복지를 확대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회식 횟수를 제한해주세요”, “왜 미혼 남성 직원들만 벽지 근무를 해야 하나요?” 등 노조가 모바일 앱이나 유튜브 채널 등의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하면서 밀레니얼 세대 조합원들의 요구도 격 없이 나왔다.

노조가 임금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 일반적인 노동 의제의 문턱을 넘어선 것은 올해 초 집행부가 바뀌면서다. 최근 10년간 기업은행지부의 20~30대 청년 조합원의 비율은 80% 안팎으로 꾸준히 높았다. 노조 내부에서 “오히려 그동안 노조가 젊은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잘 반영하지 못한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태용 정책국장은 “향후에도 젊은 조합원들의 수요에 맞는 정책들을 추진해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곧 노조의 의지나 노력에 따라 노조가 청년 조합원들의 실질적인 수요와 가까워질 수도, 동떨어질 수도 있다는 방증이 된다.

청년세대 요구로 문제 제기 본격화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지난해 3월 2030특별위원회(위원장 김수진, 이하 2030특별위)를 만들고 나서야 밀레니얼 세대 조합원들의 갈증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악성민원’은 공무원들에게 괴롭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숙명의 영역으로 이해돼왔다. “공직 사회 내부에서도 민원인인 국민에게 ‘갑질을 하지 말라’고 당당히 이의제기를 못했었다. 그런데 여기에 청년 공무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김수진 2030특별위원장은 설명했다. 지난 7월 20~30대 조합원 5,507명을 대상으로 한 ‘청년 조합원 인식 및 요구’ 조사에서 청년 조합원들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점으로 ‘악성 민원(41.0%)’을 지목했다.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 중 20~30대 조합원은 절반이 넘는다. 하지만 노조가 20~30대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후 노조는 ‘악성민원 문화 개선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악성민원은 노조에서 전면화 된 적이 없던 사업 의제다. 김수진 2030특별위원장은 특별히 “청년세대의 요구를 짐작이나 추측이 아닌 객관적인 자료에 기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수진 위원장은 “문제를 도출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도 크든 작든 청년 조합원들에게 역할을 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위원장이나 부위원장, 지부장 등 노조 대표자나 임원 중에서 20~30대가 없거나 드문 가운데 청년 사업의 주체를 독립된 기구로 신설하는 것은 언로를 제도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김규백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 이하 금속노조) 기획부장은 “밀레니얼 세대 조합원이 기존 세대 조합원과 다르게 새롭게 요구한 노동 의제가 있느냐?”는 <참여와혁신>의 질문에 “일터의 안전이나 근무 환경이 향상되는 데 관심이 큰 것 같다”면서도 “아직 청년세대만의 노동의제를 발굴하는 덴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김규백 기획부장은 “금속노조에서 20~30대 조합원 비율은 약 30%다. 이중에서 대의원들은 더 적다. 금속노조는 정기대의원대회 때마다 사업 의제 등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한다. 그런데 그 (선호도) 비율이 바뀌지 않는다. 대의원을 하시는 분들이 계속 대의원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거구 제도가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처럼 노조에서도 비슷한 왜곡이 있다. 청년세대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노조까지 닿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규백 기획부장은 “청년 사업을 전략적으로 하려면 여성 사업에 담당 부위원장을 두는 것처럼 청년 사업 담당 부위원장을 두거나 독립된 의결 기구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노조의 의결 과정에 청년세대 조합원들의 의사를 구조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본부장 최희선, 이하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에선 20~30대 간부들이 청년 사업의 초동 주체로 자발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중 20~30대 조합원 비율은 전체 조합원의 약 70~80%다. 하지만 청년 간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9월 다녀온 2030역사기행 때가 처음이었다. 2030역사기행을 기획한 이준태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 교육부장은 “청년 조합원들이 무얼 원하느냐? 지금은 그것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은 한 발을 내딛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번 2030역사기행으로 청년 사업의 초동 주체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40~50대 지부장님이 청년 사업을 주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래가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
노조가 들어야 하는 것은

이처럼 아직 노동계에선 청년세대 조합원만의 노동의제를 구체화하거나 사업 전면에 반영하는 단계는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를 일터를 바꾸는 계기로 활용하기에도 이는 앞서 지적된 것처럼 청년세대 조합원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못하는 등 노조가 여전히 청년세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장 노조의 ‘투쟁’ 방식만을 두고도 밀레니얼 세대와 기성세대는 차이가 있다.

김규백 금속노조 기획부장은 20~30대 조합원이 다수인 두산인프라코어 군산 공장에 다녀온 일을 회상하면서 “젊은 조합원들이 ‘자기네들도 흡연과 음주를 하지만 집회를 할 때는 (시민들의 눈을) 신경 썼으면 좋겠다’, ‘불편하다’는 얘기를 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돼왔다. 기성세대들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년세대들을 그런 부분들을 더 신경을 쓰더라”고 말했다. 당시 간담회에서 조합원들은 김규백 기획부장에게 노조의 현안을 쉽게 설명해주는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을 요청하기도 했다. “‘국회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라느니, 본회의라느니, 내가 납득이 안 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설득하느냐’, ‘노조에서 집회에 나와라 하는 게 다가 아니다’는 것”이라고 김규백 기획부장은 덧붙여 설명했다. 이태용 기업은행지부 정책국장은 “노조가 젊은 조합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시도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그나마 조합원들이 노조를 가까이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으로 기업이나 기관들이 권위적인 조직 문화를 되돌아보거나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노조 역시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경춘 한국능률협회 지식연구소 교수(경영학 박사)는 “노조도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조직이다. 노조 대표자나 임원들 역시 완장을 차고 (청년 조합원들을) 자꾸 통제하고 부리려 한다. 그럴수록 밀레니얼 세대들은 노조에서 활동하기 꺼린다”면서 “‘들어줄 테니까 얘기를 해봐라’식의 수직적 마인드를 가지고 베풀고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보다 수평적이어야 한다. 권력을 놓아야 얘기가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도 “일터 내에서 조직 문화나 운영구조를 보다 더 민주적으로 바꾸기 위해선 노조가 좀 더 개입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그전에 노조가 먼저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세대 갈등은 노조 안에서도 나타난다. 조금 더 많은 얘기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인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의 의견으로 세상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청년세대들이 새롭게 던진 의제로 공직사회는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수진 2030특별위원장의 말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일반적으로 기성세대보다 인권의식이 높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달라진 사회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거나 이미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밀레니얼 세대를 단순히 조직화해야 하는 대상을 넘어서 새로운 노동의제를 발굴할 주체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