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참여는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다
노동의 참여는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다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4.05 00:00
  • 수정 2020.04.0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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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돈 막으려면…”, 참여하면 막을 수 있나요?
노동이 참여하면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할까?

커버스토리 ① 노동의 참여, 그게 뭔데?

노동, 참여를 돌아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의 사회적 위치는 어디쯤일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만 하거나 일터를 벗어나야만 비로소 시민권을 보장받는 존재는 아닐까? 자신이 일하는 현장을 가장 잘 알지만 일터에서 이뤄지는 온갖 의사결정에서는 배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의사결정은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고, 신속한 의사결정, 경영의 효율성 같은 논리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현장의 목소리, 노동이 배제된 의사결정의 결과는 그리 신속하지도 않고 효율성은 더더욱 떨어진다. 다수가 배제된 의사결정은 사회적 갈등을 잉태하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갈등이 폭발해 해결되지 못한 채 막대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후적인 대응에만 머물렀던 노동자가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고 나아가 일터를 개선하는 데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노동의 참여’의 의미를 짚어본다.

11년 전 한국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2009년, 한국석유공사는 캐나다 정유회사 하베스트를 4조 5,500억 원에 인수했다. 4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정유회사를 인수했지만, 석유 대신 물이 솟아났다. 이로 인해 부채비율 64%에 당기순이익 2,000억 원의 건실한 공기업은 한순간에 부실 공기업으로 추락했다. 한국석유공사뿐만 아니다. 한국광물자원공사 역시 자원외교를 통해 2007년 기준, 부채비율 103%에서 2015년 6,905%까지 폭증했다. 심지어 2016년에는 완전자본잠식으로 부채비율을 산정할 수 없게 됐다.

통상 이사회 사전승인 후 계약해야 하지만 한국석유공사는 사후승인을 받는 방법을 택했다. 상당히 오랫동안 평가해야 하는 경제성 평가는 5일에 그쳤다. 노동조합은 “당시 노동이 참여했었다면…” 하고 아쉬움을 표한다. 노동이 참여했다면, 줄줄 새 나가는 회삿돈을 막을 수 있었던 걸까?

“그런데 노동의 참여가 뭐에요?”

노동의 참여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지만, 기업경영의 측면에서 보자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자본참여, 이익참여, 의사결정참여가 그것이다. 자본참여는 노동자가 자본의 출자자가 돼서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말하고, 이익참여는 경영성과를 높이는 데 노동자나 노조가 참여해 이익의 일부를 임금이 아닌 형태로 배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두 방식보다 더 직접적인 방식은 바로 의사결정참여다. 의사결정참여는 기업 내 노동자 전체의 의사를 결집해 경영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의 제정으로 노사협의회를 통해 경영상 의사결정 과정에 제한적으로 참여해왔다.

선진적으로 노동의 참여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를 꼽자면 독일과 스웨덴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 1951년 공동결정법 제정, 석탄 및 철강 산업에서의 도입을 시작으로 1976년에 전 산업으로 확장했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감독이사회와 사업장평의회라는 두 기둥을 기반으로 한다.

사업장평의회는 5인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는 기업에서 복지, 사고 예방, 작업 규칙 등 사업장 전반에 걸친 결정을 하는 단위로, 상당히 많은 결정권을 갖고 있다. 더불어 감독이사회에 참여하는 노동이사를 선출한다.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에서 경영진을 견제하고 예산이나 정책 위주의 큰 사안을 결정한다.

노동의 참여는 자본을 공급하는 자본가와 노동을 공급하는 노동자가 서로 기울지 않는, 즉 자본과 노동의 평등을 추구하는 방안이자 산업 민주주의의 디딤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방적 정책 저지? 산업 민주주의?
노동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노동계는 노동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도둑질 근절”로 요약한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노동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거칠게 표현하자면 ‘도둑질 근절’ 딱 하나”라며 “국가 공공기관의 경우, 경영진을 정부에서 임명한다. 정부가 경영진을 임명하고 정부에서 원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경영진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를 막기 위해서 노동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노사협의회가 노사 동수로 구성돼 운영 중이지만, 노사협의회에서 다룰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고 그나마도 노조가 없거나 노조의 힘이 약하다면 ‘들러리’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이 관계자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정을 잘 아는 노동자가 참여함으로써 경영진만의 뜻대로 사업계획을 결정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노동의 참여를 통해 전부는 아니지만, 굳이 비율로 나타내자면 10% 정도의 방어막을 구축할 수 있고 또 정부 정책 결의의 감시자 소임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을 산업 민주주의로 해석한다. 서울시 노동이사제 모델을 설계한 박태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의 참여는 노동자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민주주의”라며 이를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이어 “민주주의의 기본은 절차인데, 노동의 참여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실질적 민주주의를 확보하는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역시 “노동자의 참여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동자의 영향력 행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산업 민주주의의 영역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노광표 소장은 “노동자의 참여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 민주주의를 공장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라며 “정치적 약자가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정치적 민주주의라면 경제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약자가 경제적 의사결정과정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노동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회사가 혼자 경영 전반을 결정하는데 그러면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며 “갈등요소가 많으면 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갈등 비용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데, 조직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당시 국정과제의 하나로 노동이사제가 포함됐다. 2019년 11월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위원장 이병훈)에서는 노동이사제 도입이 국정과제였다는 점과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사회갈등 해소, 경제적 성과 창출 등을 이유로 노동이사제를 ‘참여형 공공기관 운영방안 마련’이라는 주제의 주요 논의사항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노동의 참여는 이제 시대적 과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