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실업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나에게 실업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8.17 00:00
  • 수정 2020.08.17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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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보다 줄이고 또 줄여 생활하고 있어요"
"고통분담, 정리해고 아닌 고용보장이 전제돼야"

커버스토리 코로나19 생계 면역을 떨어뜨렸다

각자 저마다의 절벽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

고용절벽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장기화 속 가팔라지는 고용절벽을 막기란 쉽지 않다. 8월호 커버스토리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각자 저마다의 절벽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실업을 다루지만, 실업에만 국한하지는 않았다. 계약해지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청년, 코로나19로 인해 일감이 줄어든 노동자, 정부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계 문제로 눈앞이 캄캄한 노동자가 서 있는 절벽을 마주 보았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밀레니엄힐튼서울노동조합(위원장 최대근)은 7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밀레티엄힐튼 서울 호텔 앞에서 ‘경영실패를 코로나19 재난시기 구조조정으로 악용’하는 사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밀레니엄힐튼서울노동조합(위원장 최대근)은 7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밀레티엄힐튼 서울 호텔 앞에서 '경영실패를 코로나19 재난시기 구조조정으로 악용'하는 사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평소보다 술과 담배가 늘었다. 잠이 안 온다며 한 잔 두 잔 마시기 시작했다. 푹푹 한숨이라도 쉬고 싶어서인지 담배를 더 태웠다. 밀레니엄힐튼서울호텔의 18년차 중식 요리사, 올해 나이 마흔둘, 두 자녀의 아빠, 자신을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한종민 씨 이야기이다.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종민 씨 이야기

종민 씨는 왜 잠이 오지 않았고, 한숨이라도 푹푹 쉬고 싶었을까. 18년차 호텔 요리사의 평범했던 일상에 코로나19가 불쑥 찾아들어왔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이라고 해서 코로나19가 피해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는 관광숙박산업에 가장 먼저 타격을 줬다. 밀레니엄힐튼서울호텔의 6월 평균 객심점유율은 10% 이하 수준이었다. 700개 객실 중 630개 객실은 빈 방이었다. 빈 방 개수가 알려주듯 호텔 이용객이 너무 줄었다. 이용객이 줄다보니 호텔 내 편의 시설, 레스토랑, 유흥 시설 등의 운영을 최소화하거나 폐점으로 운영을 중지했다. 운영하고 있어도 사실상 개점휴업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200일이 넘어가고 언제 잠잠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개점휴업 기간은 길어지기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민 씨가 일하던 중식당은 3월 21일부로 문을 닫았다. 종민 씨는 그 때부터 만 4개월이 넘어가도록 유급휴직이다. 종민 씨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18년 동안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메르스 겪어봤으니까, 그래서 유급휴직 통지 받았을 때 동료들과 그랬거든요. 한두 달이면 끝나고 복귀할 거라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근데 시간이 하염없이 4월, 5월, 6월, 7월이 넘어가고. 아예 돌아올 데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들 정신적으로 충격이 커졌죠. 솔직히 많이 힘들죠."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상의 변화는 종민 씨의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종민 씨의 월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종민 씨는 유급휴직으로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을 받아 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의 70%인 200만 원(기본급 기준) 정도를 3월 이후부터 받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종민 씨의 월급은 310만 원 정도였다. 110만 원 정도가 줄어든 셈이다(종민 씨는 유급휴직으로 받는 임금과 월급 이야기를 꺼내길 꺼려했다. 코로나19로 무급휴직, 정리해고 등 자신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200만 원을 가지고 종민 씨 포함 4인 가족(아내, 7살과 5살의 자녀)이 생활을 해야 했다. 종민 씨는 '멘붕(멘탈붕괴)'이라고 했다. 110만 원이 증발한 만큼 이전보다 줄이고 또 줄여 생활해야 했다.

"저희 가족 경우에는 먹고, 입고 의식주를 가장 많이 줄였어요."

"7살, 5살 애들 원래 다니던 학원은 다니게 해야죠. 교육비는 줄이지 못하고요. 그리고 전세자금대출 갚아야 하고. 그나마 조금 했던 저축은 아예 생각도 못하죠."

"마통(마이너스 통장) 쓰는 동료들도 있어요."

한국노총이 지난 5월에 발표한 2019년 9월 물가 기준으로 조사분석한 '2020년 한국노총 표준생계비' 자료에 따르면 종민 씨 가족과 가장 비슷한 구성원 유형은 '4인가구(Ⅰ) : 가구주 42세, 배우자 39세, 자녀 11세, 자녀 8세'로 월 504만 원 정도가 생계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여기에 조세 및 공과금 지출까지 포함한다면 월 601만 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 종민 씨가 유급휴직 이전에 받았던 월급 310만 원조차도 꽤 많이 모자란 액수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와 비교했을 때도 종민 씨 가족에게 월 310만 원은 빠듯해 보인다. 통계청이 지난 5월 발표한 2020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발표(전국 2인 이상 비농림어가구 대상)에 따르면 대한민국 평균 월 가계지출은 394만 5천 원이다. 평균 월 소득은 535만 8천 원이다.

원래 씀씀이를 줄여도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렇다고 휴직 기간에 다른 일을 해서 원래 버는 만큼을 메울 수도 없다. 고용유지지원금 부정수급이기 때문이다. 고용유지지원금 부정수급이 탄로 나면 지금까지 받은 유급휴직 금액을 뱉어내야 한다. 때로는 추가로 징벌적 징수를 하기도 한다. 그나마 유급휴직으로 지원금을 받았던 200만 원이 날아갈 수도 있다.

'N잡러'가 된 A씨 이야기
불투명해서 불안한 미래

그러나 현실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종민 씨와 다르게 몰래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흔히 말하는 'N잡러'가 됐다. A씨의 이야기를 옮긴다.

"일당직 여러 개를 하죠. 건설 현장이나 화물 상하차나. 급구 많잖아요. 뭐 제 주변에서도 그러는데요. 일당직 하는 이유는 그날 일해서 그날 현금으로 받을 수 있으니까. 4대 보험 이런 것도 안 떼니까 부정수급 피할 수 있죠."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생활이 안 되니까요. 그리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눈 뜨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잖아요. 집에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게 한 달 정도 지나니까 너무 불안한 거죠. 내 자신이. 그리고 언제 또 회사가 무급으로 전환할지 몰라요. 잘릴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바짝이라고 해야 하나, 미리 대비하는 것도 있죠."

어쩌면 A씨는 코로나19 휴직이 해고로, 그래서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규칙적이었던 자신의 직장생활을 하지 못해 불안하다고 표면적으로 표현했을 수 있다. 생활이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이 일해오던 일터를 상실한 순간을 직감적으로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A씨의 직감은 개인적 직감만이 아닌 사회적 직감일수도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경제 위기 → 회사 경영 위기 → 휴직(유급·무급) 통보 → 정리해고' 알고리즘을 역사적으로 익혀왔기 때문이다. A씨는 인터뷰 다음 날도 부정수급을 피해 택배 상하차 현장을 찾았다.

힐튼서울 호텔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에 사용한 손팻말로 비행기를 접어 회사에 날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힐튼서울 호텔 노동자들이 기자회견에 사용한 손팻말로 비행기를 접어 회사에 날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정리해고의 그림자,
절대 드리워서는 안 될 그림자

종민 씨도 정리해고를 직감하고 있다. 기정사실에 가까울 수 있는 직감이다. 밀레니엄힐튼서울호텔이 노동조합에 9월 정리해고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사측이 보낸 '인력감축 시행[안]'을 보면 정규직 전 직원을 대상으로 2020년 여유인력으로 산정한 인원 약 90명이 정리해고 대상이다.

사업부문 중 인건비 비중이 높은 곳, 적자 비중이 높은 곳, 재정적 압박을 가중시키는 인력중심 부서, 기타 여유인력으로 간주되는 자가 정리해고 우선순위에 오른다고 나와 있다. 종민 씨는 회사가 연 타운홀미팅에서 "9월에 90명을 정리해고 해야 3년 뒤 45억 원 흑자가 난다"는 이야기와 함께 '인력감축 시행[안]' 설명을 들었다. 현재 상황에서 종민 씨의 바람은 '고용보장'과 '고용유지지원금 기간 연장'이다.

"고용보장만 전제되면 일정 기간 무급휴직도 할 수 있고, 임금 동결도 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사측이 지금 힘드니까 무급휴직 기간을 가령 2개월 하자고 하면 대출을 받든 해서 버티죠. 돌아갈 데가 있는 것이고, 결국 어렵더라도 갚으면 되는 거니까. 근데 9월에 해고 통보받고 길거리로 나가면 땡이거든요. 그게 가장 두렵죠."

"그리고 정부에서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기간을 늘렸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6개월인데,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생계비 측면에서 부족하지만 그나마 고용유지지원금이 나오니까, 그 돈이 있으니까 버티는 거거든요."

그럼에도 '고용보장'이 어려울 수도 있다. 산업이나 개별기업 자체가 내리막길에 놓여 있는 경우다. 그럴 때마다 많은 이들이 대책으로 내놓는 것이 직업교육훈련을 통한 이직이다. 종민 씨의 직업교육훈련에 대한 생각을 통해 몇 가지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직업교육훈련 깊게 생각해보지는 못했어요. 하기도 싫고. 아마 저 포함 많은 분들이 그럴 거예요. 이유라고 하면 제가 한 직장에 18년 동안 몸담고 있었고, 여기서 제 퀄리티, 기술을 쌓았어요. 인맥도 여기서 쌓았어요. 그리고 제가 받았던 임금 수준이나 회사 복지 수준이 있겠죠. 이직이나 전직에서 현실적으로 고민되는 부분들이죠."

"직업교육훈련, 전직프로그램이 잘 돼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저희 선배들 중에 그런 혜택 받으신 분들도 없고. 직업교육훈련이 고용보험에서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고용보험 혜택이라고는 실업급여 정도라고밖에 생각이 안 드네요."

기존의 노동시장에서 노동시장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경우 노동시장 상향이동보다는 하향이동 확률이 높은 것이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주요 특성이다. 특히 실업 후 생계유지를 위해 급하고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일자리의 유혹이 심한데 일반적으로 나쁜 일자리이다. 게다가 노동시장 이중구조화가 심해 나쁜 일자리에서 좋은 일자리로 이동도 어렵다. 때문에 종민 씨의 우려 지점은 괜한 걱정이 아니다.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 이행 과정(노동시장 내 이동, 노동시장 내 → 외 → 내 이동 등)에서 하향이동을 막기 위해 자신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직업교육훈련이 필요하다. 노동시장 외에서 존재할 때 버틸 수 있는 사회안전망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당장은 최대한 고용보장을 고려해야 한다. 고용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앞서 종민 씨가 말했듯이 모자라지만 고용보험을 통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 사회안전망 안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없지 않다. 순환 유급휴직 중인 대한항공 사례도 있다. 고용만 전제된다면 고통분담을 할 종민 씨의 의지도 있었다.

종민 씨는 밀레니엄힐튼서울호텔에서의 실업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종민 씨는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삶의 마침표 같은 고통'이라고 했다. 그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9월의 정리해고로, 종민 씨에게 삶의 마침표 같은 고통으로 나타나길 원치 않는다며 과거 이야기를 전했다.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IMF가 터져서 당시 남들 그랬듯이 가계에 부담이 되지 않으려 1학년 마치고 군대에 갔어요. 졸업할 시즌이 되니 일자리가 없었는데, 어렵게 들어온 곳이 밀레니엄힐튼서울호텔이에요. 그래서 더 정이 갔고 더 계속 다니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