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은 [새로운 시작일 수 있어야 한]다
실업은 [새로운 시작일 수 있어야 한]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8.17 00:00
  • 수정 2020.08.17 0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약에] 실업이 ‘공포’나 ‘고통’ 아닌 세상이라면 어떨까?
촘촘한 사회안전망 통해 만드는 ‘노동의 미래’를 꿈꾸며

커버스토리 ➎ 에필로그

각자 저마다의 절벽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

고용절벽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장기화 속 가팔라지는 고용절벽을 막기란 쉽지 않다. 8월호 커버스토리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각자 저마다의 절벽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실업을 다루지만, 실업에만 국한하지는 않았다. 계약해지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청년, 코로나19로 인해 일감이 줄어든 노동자, 정부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계 문제로 눈앞이 캄캄한 노동자가 서 있는 절벽을 마주 보았다.

※ 이 기사는 가상의 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근미래에 ‘실업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 온다는 가정하에 쓰인 것입니다. 실업이 더 이상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기를 바라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를 담았습니다.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여보, 나 일 그만둘까?”

일요일 오후,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던 소현 씨는 거실에 있는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소파에 누워 휴대전화를 만지던 남편은 또 시작이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두라니까. 당신 벌써 한 달째 그 얘기야. 그냥 내일 출근하면 바로 사표 내.”

남편 말이 맞다. 소현 씨는 한 달 전부터 생각날 때마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꺼내고 있다. 처음에는 성의 있게 대답해주던 남편도 이제는 지겨운지 가볍게 핀잔을 줬다. “그만둔다고 돈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것도 남편 말이 맞다. 소현 씨가 퇴사를 망설이는 이유에 돈 문제는 없다. 이미 퇴사를 마음먹었고 사직서까지 작성해놨지만, 막상 10년이나 다녔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헛헛했다.

남편은 소현 씨가 뭐 때문에 망설이는지 안다는 듯 덧붙였다. “이참에 긴 휴가 보낸다고 생각해. 놀 만큼 놀고 정 안 되겠으면 그때 다시 새로운 일 시작하면 되지.” 소현 씨는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이 더 길어지면 남편의 잔소리도 같이 길어질 것 같았다. ‘그래, 누가 그만두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내가 결정한 일인데….’ 소현 씨는 내일은 꼭 사직서를 제출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커피를 마셨다.

24살에 들어간 첫 직장

소현 씨는 24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들 다 하는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다 졸업 전에 취업이 결정됐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대형 광고대행사는 서류에서부터 떨어졌다. 최종합격한 회사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회사는 아니었지만, 정부, 국회, 공공기관 등의 정책홍보에 발군의 실력을 보이며 국내 PR업계에서 인지도를 쌓은 나름 탄탄한 홍보대행사였다.

무조건 졸업 전에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졸업 후 놀고 있으면 초조할 것 같았다. ‘다녀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둬야지.’ 가벼운 마음으로 첫 직장에 발을 들였다. 첫 출근을 하루 앞두고, 소현 씨 부모님은 취업 축하한다며 노란색 프리지아 꽃다발을 선물했다. 프리지아는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라는 꽃말을 지녔다.

그때가 벌써 10년 전이다. 처음 먹었던 ‘가벼운 마음’과는 달리 소현 씨는 이곳에 10년을 다녔다. 지난 10년의 세월은 소현 씨의 많은 걸 바꿔놓았다. 회사는 조금씩 규모를 키워나갔고,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던 막내 사원은 팀장 승진 제안까지 받았다. 밤낮없이 온갖 고생을 했던 신입 시절에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팀장 승진 제안을 받고 나서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다니. 소현 씨 스스로 생각해도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5년 전에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3년 전 결혼했다. 결혼 무렵, 회사는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전을 앞두고 있었다.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결정은 진즉에 났지만, 정치적 논란으로 시끄럽던 끝에 그즈음에야 청와대, 국회가 세종에 완공되고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당시 소현 씨는 신혼집을 서울에 마련할 것인가, 세종에 마련할 것인가를 두고 남편과 끙끙댔던 기억이 있다.

나이에 비해 사회생활을 오래 한 소현 씨는 모아둔 돈이 적지 않았다. 소현 씨보다 한 살 많은 남편은 소현 씨보다 사회생활 경력은 짧았지만, 대기업에 다니면서 나름대로 결혼 자금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모은 돈은 서울 집값 앞에서 턱없이 작아졌다. 다른 정책들은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지만, ‘그놈의 부동산’만큼은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은 더 이상 신혼부부의 보금자리가 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떡하든 서울에 신혼집을 구하고 소현 씨가 서울에서 세종으로 출퇴근할까도 생각했지만, 남편이 만류했다. 남편은 세종에 신혼집을 구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행정수도 이전이 결정되면서 세종도 집값이 많이 올랐다지만, 서울 집값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게 남편의 생각이었다. 같은 전세라도 더 넓은 집에서 살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소현 씨도 동의했다. 당시 서울에 신혼집을 알아보면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받았던 탓이다.

문제는 남편의 직장이었다. 세종에 신혼집을 구하면 남편이 세종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게 된다. 이때 남편은 소현 씨에게 생각지 못한 해결방법을 제시했는데, 바로 사무직에서 생산직으로 전환 신청을 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생산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남편의 회사에서는 그간 불가능했던 사무직과 생산직 간의 전직이 가능하게 됐다.

남편은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자동차 기업 본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100층이 넘는, 강남의 랜드마크 빌딩이 남편의 일터였다. 그런 남편이 아산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세종에서 가까운 자동차 생산공장이 충남 아산에 있으니 생산직으로 전환해 자가용으로 세종과 아산을 오가면 된다고 소현 씨를 안심시켰다.

“본사에 있다고 해도 때맞춰 승진할 거라는 보장도 없고. 사실 대우는 생산직이 더 좋아.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전환하는 게 나한테도 좋을 것 같아.” 결국, 두 사람은 신혼집을 세종에 구하기로 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소현 씨는 남편이 생산직으로 전환한 걸 후회하면 어떡하지, 사무직 출신이라고 사람들하고 못 어울리면 어떡하지 하고 내심 걱정했었다. 다행히 남편은 사무직으로 일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만족해하며 일을 다니고 있다.

1시간 남짓의 출근 시간이 크게 부담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소현 씨 남편 회사의 자율주행 기능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운전 중에는 집중하라는 경고를 계속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운전석에 앉아 게임을 하거나 업무를 보기도 했다. 운행 중인 차량에서의 연인들의 애정행각도 툭하면 인터넷을 달궜다.

“이번 달까지만 다니겠습니다”

이제 소현 씨 차례였다. 남편이 그랬듯이 소현 씨도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야 했다. 소현 씨는 어제 다짐했던 대로 출근 후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부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번 달까지만 다니겠습니다. 앞서 제안해 주신 팀장 자리는 감사하지만, 제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미리 연습했던 문장을 꺼냈다.

“아침부터 이게 뭔 소리야!” 예상대로 곱지 않은 반응이 돌아 왔다. 이유가 뭐냐는 부장의 말에 지난 10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와 많이 지쳤다, 휴식기가 필요하다고 둘러댔다. ‘휴식기가 필요하면 휴직을 하면 되지 왜 퇴사를 하냐’, ‘팀장 승진을 앞두고 그만둔다는 게 말이 되나?’, ‘다시 생각해봐라’ 등등의 말이 이어졌지만, 신입 시절의 필살기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불편한 자리를 마쳤다.

사실 소현 씨가 말하지 못한 퇴사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에 대한 회의(懷疑) 때문이었다. 남들이 볼 땐 홍보대행하면서 회의를 느낄 일이 뭐가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소현 씨에게는 퇴사를 결심할 만큼 중요한 이유였다.

사직서를 제출하기 세 달 전의 일이었다. 세종의 한 건설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진화까지 5시간 걸린 대형 화재는 32명의 사망자를 낳으면서 한동안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화재 원인은 용접 중 불티로 밝혀졌고, 미로 같은 현장에 출구는 하나밖에 없었다. 공기에 쫓겨 동시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화마(火魔)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현장 화재 참사는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건설현장에서 용접을 하는 소현 씨는 건설현장 화재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부는 건설현장 화재안전수칙을 내놓았다. 매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내놓는 화재안전수칙에서 문구 한두 마디 정도가 바뀐 것이었다. 적정공사기간 산정을 의무화하고 마감재 화재안전기준을 확대하고 신설하겠다, 안전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현장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 안 봐도 줄줄 외는 화재안전수칙 홍보대행은 이번에도 소현 씨에게 돌아왔다. ‘매년 하는 사람이 하라’, ‘했던 사람이 또 하는 게 낫지 않냐’는 회사의 배려 아닌 배려였다. 인재(人災)는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회의감에 젖어있을 무렵 소현 씨의 팀장 승진 이야기가 돌았다. 이민으로 퇴사를 앞둔 팀장의 빈자리에 팀장 다음으로 연차가 높은 소현 씨를 앉힌다는 얘기였다. 상부에서도 소현 씨를 조용히 불러 빠르면 한 달 안에 공식적인 승진 발표가 있을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귀띔했다. 소현 씨는 그때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처음 했다. 회의감에 빠진 채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팀장 직책을 달면 앞으로 그만둘 기회가 영영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0년을 부대끼며 다닌 회사지만, 이런 이야기까지 솔직히 할 순 없었다. 소현 씨는 아무 말 않고 나가는 걸 택했다.

소현 씨가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은 회사 전체로 퍼져 나갔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대표도 소식을 들었는지 퇴사 이유가 뭔지 채근했지만 별 소득이 없자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로 넘기며 이죽거렸다. “하여간 요즘 사람들은 회사 그만두는 거 너무 쉽게 생각해. 나 때만 해도 회사에서 잘릴까 봐 아등바등했는데 말이야. 이러니까 애사심이 없지, 애사심이! 세상 참 좋아졌네, 좋아졌어.”

‘자발적 실업’도 실업급여 받는 세상

소현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바빴다. 우선, 집 근처 고용센터에 방문해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실업급여 신청 사유에는 ‘자발적 실업’이라고 체크했다. 센터 직원은 자발적 실업의 경우 최대 1년까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업급여가 기본소득 받는 데 영향을 미치는지를 물었더니 “실업급여는 기본소득과 관계없이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재취업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마치고, 전직교육 신청서도 작성했다.

마지막으로, 4개월 뒤 아산으로 이사 갈 예정인데, 여기서 받은 교육을 아산에서 이어서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센터 직원은 아산에 위치한 전직지원센터에서 교육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주겠다고 말했다. 볼일을 모두 마치고 센터에서 나가려는데 센터 벽 낯익은 포스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아직도 모르시나요?’라는 제목의 포스터였다. 소현 씨가 기획하고 만든 포스터였다. 소현 씨는 휴대전화를 들어 포스터를 카메라에 담았다. 센터를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당분간은 머리를 비우고 남편 말대로 ‘놀 만큼 놀’ 생각이지만, 이제 곧 본격적인 이사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일을 그만두면서 세종에 더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으니 아산으로 이사해 남편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할 생각이다. 남편은 이사 생각에 벌써부터 싱글벙글이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3년간 세종과 아산을 오가는 게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소현 씨도 아산에서라면 그동안 모은 돈으로 대출을 끼고 집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지금 집 전세 계약은 4개월 남짓 남았다.

어떤 전직교육을 받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전직교육 신청서를 작성하긴 했지만, 어떤 전직교육을 받을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관련 상담을 위해 다음 주에 한 번 더 센터에 방문하기로 했다.

소현 씨는 경력을 살릴지, 아예 새로운 일을 할지는 남편과도 좀 더 상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단골 꽃집에 들어섰다. “프리지아 두 단, 아니 세 단 주세요. 포장 없이 그냥 신문지에 싸서 가져갈게요.”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소현 씨는 프리지아 꽃말을 되새기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