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은 어깨 빠진 구원투수?!
'한국판 뉴딜'은 어깨 빠진 구원투수?!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8.17 00:00
  • 수정 2020.08.17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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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빠진' 과거 성장 정책과 다를 바 없어
'Deal' 당사자들의 참석 아닌 참여가 보장돼야

커버스토리 ➏ '한국판 뉴딜', 노동이 필요해!

각자 저마다의 절벽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

고용절벽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장기화 속 가팔라지는 고용절벽을 막기란 쉽지 않다. 8월호 커버스토리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각자 저마다의 절벽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실업을 다루지만, 실업에만 국한하지는 않았다. 계약해지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청년, 코로나19로 인해 일감이 줄어든 노동자, 정부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계 문제로 눈앞이 캄캄한 노동자가 서 있는 절벽을 마주 보았다.

7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청와대
7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지난 7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19 위기가 덮친 지금의 적극적 실업 정책이 될 수 있을까? 나아가 '저성장·양극화 위기'와 '코로나19 위기'라는 이중적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에게 구원투수가 될까? 문재인 대통령의 기조연설과 정부의 발표를 보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한민국 경제 패러다임 전환과 향후 일자리 정책의 나침반이 될 것만 같다. 그러나 청사진으로만 보기에는 사회경제 주체의 한 축인 노동계의 비판이 날카롭다. 한국판 뉴딜이 패러다임의 전환인지 근본적 문제 제기였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고용사회안전망
2025년까지 160조 원 투입, 190만 개 일자리 창출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판 뉴딜'은 두터운 '고용사회안전망' 위에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추진해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를 부양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수치로 보자면 2025년까지 정부 직접 투자 114조 원에 민간 및 지방정부의 투자를 합한 총 160조 원 규모의 대규모 경제 부양 및 경제 체질 개선 정책이다. 창출 일자리 규모는 190만 개로 예상하고 있다. 당장 올해에는 국비 4.8조 원을 포함한 총 6.3조 원을 3차 추경 예산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이어 2022년까지는 누적 국비 49조 원을 포함한 총 누적사업비 67.7조 원을 투자해 89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로드맵이다.

한국판 뉴딜은 10대 시그니처 사업을 포함한 9개 역점분야 28개 프로젝트로 이뤄졌다. 10대 시그니처 사업은 ▲데이터 댐 ▲인공지능 정부 ▲스마트 의료 인프라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그린 스마트 스쿨 ▲디지털 트윈 ▲SOC 디지털화 ▲스마트 그린산단 등이다.

'한국판 뉴딜'은 1930년대 미국의 뉴딜정책을 벤치마킹했다. 당시 미국은 3R(Relief·Recovery·Reform)이라는 경로를 통해 경기를 회복하고 경제 체질을 바꿨다. 한국판 뉴딜도 3R 경로와 상응하는 3가지 경로가 있다. '버티기'→'일어서기'→'개혁'이다. 7월 14일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버티기와 일어서기에 이어 신속한 개혁을 통한 달려 나가기'이다. 위기 극복과 코로나 이후 글로벌 경제 선도를 위한 국가발전전략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버티기'→'일어서기'→'개혁'이라는 경로에 '고용사회안전망',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은 구체적인 기조와 방법인 셈이다.

뉴딜이 필요한 지금
'한국판 뉴딜' 내용은 글쎄?

한편 노동계는 한국판 뉴딜로 대한민국이 버티고 일어서서 개혁하고 달려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한국판 뉴딜의 한 주체인 노동계도 현재가 대한민국 경제의 체질을 바꿀만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인정했다. 박용석 민주노총 민주노동연구원 원장은 "내용의 적정성은 차치하고 코로나19로 한국사회의 새로운 경제 구조, 새로운 산업 구조, 새로운 사회 체계에 대한 열망과 요구가 존재하고 커졌기 때문에 시의적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사회구조적 전환과 고용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미에서 한국판 뉴딜은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며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제 ① 괜찮은 일자리인가?

문제는 '한국판 뉴딜'로 창출될 일자리의 수준 문제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세부 발제를 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재정 투자 규모와 창출 일자리 수를 강조했다. 160조 원 규모, 190만 개 일자리. 물론 일자리의 절대적인 숫자를 통한 고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자리인지, 그 일자리의 고용형태는 어떠한지, 일자리의 처우 및 환경은 어떠한지도 중요하다. 창출될 일자리의 질적 수준에 대한 언급은 대략적인 수준으로도 없었다. 박용석 원장은 "지금까지 나온 자료로 봐서는 일자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더 큰 문제는 고용만 이야기하고 있지 한국 사회에서 계속 제기됐던 일자리 문제(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등)를 개선할 방향성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가 '한국판 뉴딜'로 창출될 일자리의 질적 수준에 대한 고민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일자리 수준에 대한 노동계의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일할 사람들에게 믿음을 줘 정책의 현장 조응도를 높일 필요성도 있다. 또한 디지털 뉴딜을 통해 플랫폼 노동 유형이 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강구하는 것은 '한국판 뉴딜'로 창출될 일자리의 질적 수준과도 연관돼 있다.

문제 ② 사라질 일자리

다른 우려 지점은 디지털 뉴딜로 발생할 문제의 대책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디지털 뉴딜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일자리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선 디지털 전환으로 사라지는 일자리가 존재한다. 디지털 뉴딜 추진은 디지털 전환 속도를 높인다는 것으로, 소위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한다는 의미다. 기술의 진보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기술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다.

두 번째로는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뉴딜로 창출될 일자리가 간접일자리라는 것이다. 정문주 본부장은 "디지털 뉴딜을 통해 정부가 58조 2천억 원을 투입하고 90만 3천여 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일자리 대부분은 이행 과정에서 필요한 간접일자리"라고 비판했다. 1930년대 미국의 뉴딜에서 댐을 완성한 뒤 현장의 건설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처럼, 정부가 역점에 두고 있는 디지털 기반을 조성하고 나면 조성에 노동력을 제공했던 사람들은 노동시장 밖에 놓이게 된다. 사라지는 일자리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직을 위한 직업교육훈련 및 취업 알선 정책에도 구체성이 요구된다.

문제 ③ 선명하지 않은 안전망 정책

그렇다면 정부가 발표한 고용사회안전망 강화와 직업교육훈련 강화 등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전국민고용보험제도와 상병수당 추진 계획 등은 오래된 시민사회의 요구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구체적이지 않고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7월 20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누구를 위한 한국판 뉴딜인가?' 기자설명회에서 "고용보험 가입자 수를 2019년 1,367만 명에서 2025년 2,100만 명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제시했으나, 2019년 현재 취업자 규모가 2,740만 명 수준인 것을 고려했을 때 600만 명 정도가 여전히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28개 한국판 뉴딜 정책 과제 가운데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10대 대표과제에 안전망 강화와 관련한 과제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7월 20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누구를 위한 한국판 뉴딜인가?’ 기자설명회 ⓒ 참여와혁신 손광모기자 gmson@laborplus.co.kr
7월 20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누구를 위한 한국판 뉴딜인가?’ 기자설명회 ⓒ 참여와혁신 손광모기자 gmson@laborplus.co.kr

'노동 빠진' 뉴딜
어깨 빠진 구원투수

이러한 우려 지점들은 한국판 뉴딜에 '노동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정부가 한국판 뉴딜 발표를 통해 경제 체질을 바꾸겠다고 선언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한국 사회의 산업경제 정책 기조를 지배해온 '노동 배제'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러다임 전환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윤홍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은 '누구를 위한 한국판 뉴딜인가?' 기자설명회에서 "한국판 뉴딜은 개발국가의 산업정책이라는 한국의 오랜 전통에 기초한 또 하나의 성장정책, 다시 말하면 박정희 정권 이후 지속된 개발정책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개발국가의 산업정책은 노동을 사회경제의 한 주체로 바라보기보다는 수혜자로 인식한다. 개발과 경제 부양의 주체는 정부와 기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동의 배제'가 나타나고, 노동자는 기업과 정부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조건이 형성된다. 결국 노동자의 노동 처우나 노동 조건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노동의 참석이 아닌 참여가 필요하다

그런 점 때문에 '딜(Deal)'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 ‘딜’은 정책 결정과 사회 전환 과정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비슷한 힘의 크기를 가지고 참여해 민주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돌파하고자 펼쳤던 미국의 ‘뉴딜’ 정책 역시 그러했다. 당시 이해당사자들의 조정으로 새로운 산업과 관련 사업이 발전했고,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가 바뀌었으며, 새로운 노동 정책, 복지 정책이 나왔다.

박용석 원장은 "지금까지 노동 배제 성장 정책의 문제가 코로나19로 극명하게 드러났는데, 한국판 뉴딜이 그 문제에 대한 개선 지점을 담고 있지 않아 문제"라며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복지와 노동을 같이 검토했다는 불변의 진리는 유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의 배제'가 아닌 '주체로서의 노동'을 위해 90여 년 전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뉴딜에서 노동조합의 교섭권 제도화, 최저임금제도 도입, 주40시간 노동 도입 등을 핵심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추가 조금이나마 이동했다.

이번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는 이해당사자인 노·사·민·정·당이 참석했다. 참석이 참여로 바뀔지는 앞으로의 과정에 달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월 1~2회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기로 했다. 그 공간에 얼마나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 지점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의 제안은 흥미롭다.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 1부를 마치고 2부에서는 노·사·민·정·당이 모여 비공개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 자리에서 김동명 위원장은 "향후 정례화 될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와 다양한 지원체계의 운영에 있어, 한국노총을 비롯한 각 경제주체들이 폭넓게 참여하고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길 바란다"며 "산별노조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모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고 소통하며 위기극복을 위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대통령과 한국노총의 정례적 대화' 자리 마련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제안했다.

김동명 위원장이 제안한 정례적 대화 자리가 마련되고, 이를 통해 지금까지의 노동 배제적 정책과는 달리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될 수 있을까?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이제 정부가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