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실업은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실업은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8.17 00:00
  • 수정 2020.08.17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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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사는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코로나19로 마주한 해고
6월 ‘청년실업률 10.7%’… 21년 만에 최고치 기록

커버스토리 ➋ 코로나19로 마주한 해고

각자 저마다의 절벽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

고용절벽을 막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장기화 속 가팔라지는 고용절벽을 막기란 쉽지 않다. 8월호 커버스토리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각자 저마다의 절벽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실업을 다루지만, 실업에만 국한하지는 않았다. 계약해지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청년, 코로나19로 인해 일감이 줄어든 노동자, 정부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계 문제로 눈앞이 캄캄한 노동자가 서 있는 절벽을 마주 보았다.

김하영(29·가명) 씨는 해고당한 지난 4월 이후 경기도 안산에 있는 본가에서 지내고 있다. 해고 통보를 받자마자 부모님께 해고 소식을 알렸다. 자기 잘못으로 일어난 일도 아닌데 괜히 죄스러워 우물거렸지만, “집에 가서 쉬자”며 인천까지 데리러 온 부모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하영 씨에게도 코로나19는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공항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 변수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하영 씨가 일했던 곳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위치한 라운지엘(LOUNGE L). 롯데그룹의 글로벌 외식 기업 롯데GRS에서 공항 이용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식음료 및 휴게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하영 씨는 고객을 응대하고, 고객의 편안한 식사 및 휴식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 그렇게 2년여를 몸담았던 일터는 코로나19가 터진 후 갑작스럽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인천국제공항. ⓒ 클립아트코리아
인천국제공항. ⓒ 클립아트코리아

“이제 너는 정규직이니까”

하영 씨는 2년제 대학에서 항공서비스학을 전공했다. ‘눈치가 빠르다’는 강점을 살려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원하는 걸 즉각 알아차리고 해줬을 때 듣는 기분 좋은 한 마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다 2015년 ‘취뽀’(‘취업 뽀개기’의 줄임말. 취업의 관문을 깨부순다는 뜻으로, 취업난으로 생긴 신조어)에 성공했다. 제조 대기업 서울 본사에서 2년간 계약직 비서로 일했다. 재계약은 없었다. 재계약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재계약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를 처음부터 알고 들어갔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다. 다만, 경력을 위해서라도 다음 일자리는 계약직이 아니었으면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2018년 초,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라운지에서 근무할 사람을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발견한다. 하영 씨는 롯데GRS에서 운영하는 라운지엘에 인력을 파견 보내는 ‘이브릿지’에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고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렇게 라운지엘은 하영 씨의 두 번째 일터가 됐다.

애초 회사에서는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지만, 하영 씨는 2개월 만에 수습 기간을 마치고 중간관리자급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이전 경력과 항공서비스학을 전공했다는 게 하영 씨에게 이점으로 작용했다. “근로계약서를 재작성할 때 회사에서 ‘매년 연봉 협상을 할 거고, 끝에 날짜는 없어. 왜냐면 이제 너는 정규직이니까’라고 말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규직이라기보다는 무기계약직 개념이었던 것 같아요.”

하영 씨의 직책은 캡틴. 라운지를 책임지는 매니저와 부매니저 다음 직책이었다. 라운지 업무와 더불어 사원 관리, 서비스 개선을 위한 CS(Customer Satisfaction, 고객 만족)교육도 하영 씨의 몫이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웃으며 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일한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공항은 고객들이 출장 또는 여행을 위해 거치는 곳이잖아요. 그 목적이 무엇이든 공항에서의 시간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피로가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어려운 상황인 거 알지 않냐”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곳 중 하나는 항공업계다. 공항에서 일하는 하영 씨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낀 건 설 연휴가 끝나고 2월부터였다. ‘에이, 설마 무슨 일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오가는 공항에서 일하는지라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회사에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마스크 쓰는 일상이 당연하지만, 그때만 해도 서비스직 종사자에게 마스크를 쓰고 근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말을 고르고 골라 어렵게 마스크 착용이 가능한지를 물었더니 회사에서는 즉각 ‘마스크를 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빠른 답변이 돌아오자 도리어 더 불안했다. 항공업계에 불어 닥친 코로나19 확산의 시작이었다.

코로나19가 고용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친 건 3월부터지만, 2월에도 그 낌새는 확실히 있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월 전체 취업자 2,683만 8,000명 중 2월 일시휴직자는 61만 8,000명으로 확인됐다. 이는 2011년 9월 일시휴직자 32만 4,000명 이후 전년 동월 대비 일시휴직자 수 증가 폭으로는 8년 4개월 만에 최대 인원을 기록했다. 또한, 전년 동월 대비 일시휴직자 수가 10만 명을 넘은 건 2016년 2월 2월 11만 6,000명 이후 3년 11개월 만의 일이었다.

2월 중반이 넘어가면서 우리나라 코로나19 확진자는 급격히 늘어났다(2월 19일 31번째 확진자의 등장과 함께 우리나라는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숫자 그래프가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 다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은 나라가 되었다. 항공업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2월 말부터 라운지를 찾는 고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이전 하루에 평균 250명, 많으면 300명까지도 라운지를 찾았던 고객들이 하루에 10명 미만으로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회사에서는 기존 휴무와 별개로 매월 2~3개의 무급휴가를 추가로 시행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롯데GRS에서는 매출이 줄어드니까 사람을 자르려고 할 텐데, 우리 중에 누구 한 명이 잘리는 것보다 회사에서 2~3일씩 자발적으로 무급휴가를 시행해서 어필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무급휴가 동의서를 작성할 것인가. 하영 씨의 고민은 커졌다. “저는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해봤기 때문에 사인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걸 알고 있었죠. 그래서 사인을 하기 전에 의견을 많이 냈어요. 우리가 무급휴가 동의서에 사인하고 무급휴가에 들어가면 우리에게 어떤 지원을 해줄 수 있느냐, 나라에서는 무급휴직자에게 70%까지 임금을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회사에서 그거 해줄 수 있냐, 당장 깎이는 임금은 어떻게 해줄 거냐를 물었죠.” 회사에서는 “이해해 달라”, “어려운 상황인 거 알지 않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월 2~3개면 될 줄 알았던 무급휴가는 10개로 늘어나게 된다. 2교대였던 근무 형태도 1교대로 변경됐다. 3월이 되자 하루 단위로 스케줄이 바뀌는 상황이 벌어졌다. “스케줄이 유동적으로 변하면서 당장 내일 스케줄을 알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거죠. 내일 출근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대기를 해야 했어요.” 무급휴가 일수가 늘어나면서 임금이 줄어들었다. “세후 약 220만 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았는데 무급휴가를 11개 쓰니까 130만 원으로 확 떨어졌어요.”

당시 하영 씨는 노무사를 만나고 노동상담센터를 이용하는 등 무급휴가와 관련해 여러 차례 상담을 받았다. “일을 계속할 거라면 지금 회사랑 싸워봤자 좋을 게 없다, 지금 싸우면 오히려 저에게 피해가 올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일을 계속해야 하니 무급휴가 동의서에 사인을 안 할 수는 없고. 회사가 많이 미웠죠. 그래도 상황이 어려운 건 알았으니까 받아들이고 계속 일을 하자고 생각했는데, 그때 딱 해고가 됐어요.”

하영(가명) 씨가 받은 해고 통보 문자. 이브릿지는 롯데GRS와의 계약해지로 직원들과의 계약도 해지됐다고 통보했다. ⓒ 취재원
하영(가명) 씨가 받은 해고 통보 문자.
이브릿지는 롯데GRS와의 계약해지로
직원들과의 계약도 해지됐다고 통보했다.
ⓒ 취재원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하영 씨가 해고 통보를 받은 날짜는 4월 9일. 하영 씨는 해고 통보를 받은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했다. 다음날부터 15일 연속으로 이어지는 휴일이 있었기 때문에 하영 씨 표현으로는 휴일을 앞두고 ‘하얗게 불태운 날’이었다. 퇴근길 지하철, 라운지 근무자들이 모두 함께 있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러분 모두의 협조 덕분에 지금까지는 잘 버티어 왔는데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로 시작하는 해고 통보가 날아왔다. 롯데GRS와의 계약해지로 직원들과의 계약도 해지됐다는 내용이었다.

하영 씨는 곧바로 울면서 매니저에게 전화했다. 상황 설명과 함께 울지 말고 일단 집에 돌아가라, 내일 회사에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는 매니저 말에 더욱 눈물이 터졌다. 하영 씨는 해고 통보를 받은 다음 날 회사로 출근해 사직서를 작성했다. 롯데GRS와 이브릿지와의 계약은 그로부터 열흘 후 종료됐다.

4월은 3월부터 끓어오르던 고용 대란이 급속도로 확산되던 시기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4월 취업자는 2,656만 2,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47만 6,000명 줄어든 수치였다. 2월 49만 2,000명 늘었던 취업자는 3월 19만 5,000명 감소로 나타났고, 4월에는 감소폭이 더욱 커져 47만 6,000명을 기록했다(전년 대비). 이는 IMF 외환위기 여파로 65만 8,000명이 감소했던 1999년 2월 이후 가장 많이 줄어든 수치다.

특히, 청년과 임시·일용직 노동자의 타격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4월 15~29세 취업자는 24만 5,000명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9년 1월 26만 2,000명을 기록한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임시·일용직 노동자 감소폭은 78만 2,000명에 이르러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2년 이후 최대였다. 일도 안 하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도 83만 1,000명으로 급증했다. 통계청에서 비경제활동인구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6월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었다.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무슨 마음으로 뭐부터 해야 하는지. 다시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짜 해고된 건가?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는 질문이어서 혼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해고됐다는 게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부모님께도 죄송하더라고요.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으면 너무 우울하고 그런 막막한 기분이 계속 이어졌어요.”

“다음 회사는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실업은 20~30대 청년에게 특히 가혹했다. 통계청 2020년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실업률은 10.7%로, 전년 동월 대비 0.3%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IMF 외환위기였던 1999년 6월(11.4%) 이후 최고치다. 20대 고용률은 55.4%를 기록해 전년 동월 대비 2.5%P 하락했다. 코로나19로 기업들이 너도나도 채용하지 않거나 채용 규모를 줄이면서 첫 직장을 구하는 25~29세 청년들의 고용률 하락 폭이 컸다.

30대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30대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만 5,000명 감소한 538만 명으로 집계됐다. 18만 명이 줄어든 40대와 14만 6,000명이 줄어든 50대에 비해 감소폭이 훨씬 컸다.

하영 씨는 이제 막 첫 직장에 들어가는 20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고의 충격이 덜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누군가는 아직 젊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하는 나이지만, 이른 나이에 해고를 경험한 만큼 “또다시 용기를 내서 취업의 관문을 두드리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내가 또 취업한다고 해도 다음 회사는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정부는 청년을 채용하는 중소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하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청년 고용난을 완화하기 위한 고용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일부터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과 ‘청년 일 경험 지원 사업’에 참여할 기업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는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에게 정부가 최장 6개월 동안 인건비 등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정부는 올해 최대 11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정부 부처에서도 고용노동부와 협력에 나선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고용정책에도 불구하고 하영 씨는 여전히 고민이 깊다. 현재 정부에게서 받는 실업급여는 오는 10월이면 끝난다. 이후 일자리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에서 일자리와 고용을 늘리겠다고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저한테 실질적으로 와 닿는 일자리 정책은 아직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고 이후 채용 공고를 찾아봤지만, 기존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서비스직은 ‘계약직’을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영 씨는 “또 계약직으로 일하는 게 좋은 선택일지,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인지 고민스럽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재난 시기인 만큼 특정 산업에만 국한하지 않고 보다 많은 청년이 포함될 수 있는 고용정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하영 씨에게 ‘안정적인 일자리’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전에는 계약직으로 일했고, 다시 구한 일자리에서는 정규직이라고 했지만 결국 해고가 됐잖아요. 어떤 상황이 와도 해고당하지 않는 정규직 일자리가 가장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