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에티스지회, 이번 추석에도 '파업중'
한국조에티스지회, 이번 추석에도 '파업중'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10.01 00:00
  • 수정 2020.09.30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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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봄-여름-가을, 회사의 부당노동행위 맞서 315일 째 부분 파업 중
“이 땅에서 부당노동행위를 하면 반드시 처벌 받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한국조에티스에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한국조에티스지회를 향한 부당노동행위를 멈추라는 피켓을 뒀다. ⓒ 참여와혁신DB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죠. 사실 11월에 시작했을 때 더 추워지기 전에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겨울 지나고 나서는 봄이 됐으니까 끝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거의 1년이 다 돼가요. 그런데도 회사는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아요. 너희는 그냥 짖어라, 우리는 상관 안 한다, 이렇게 나오니까요. 앞으로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조에티스지회 조합원 A씨

2019년 11월 20일 미국계 동물의약품 회사인 한국조에티스에서 부분파업이 시작됐다. 지회장과 3명의 본사 사무직 조합원들이 회사 앞에서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한겨울 추운 날씨에도 매일 같이 회사 앞을 지켰다. 겨울은 어느새 봄을 지나 여름이 됐지만 회사의 태도는 그대로 완강했다. 그들은 올여름을 주중에는 회사 앞에서, 주말에는 한국조에티스 대표이사의 집 앞에서 보냈다. 하지만 회사는 한결 같이 조합원 징계위원회 개최 소식이을 알렸다.

한여름은 다시 완연한 가을로 바뀌었다. 그리고 추석을 맞게 됐다. 날짜로 따지면 315일(30일 기준) 째다. 그러나 그들도 회사 못지않게 끈질기고 굳건하다. 그들은 ‘회사의 부당노동행위가 잘못됐고, 자신들의 싸움이 옳기 때문’에 긴 투쟁도 지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일 화섬식품노조 한국조에티스지회 지회장과 세 명의 조합원(A씨, B씨, C씨)을 함께 만났다.

*인터뷰는 9월 24일 오후 1시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카페에서 진행했다.

일하기 좋은 회사, 조에티스?
한국에서는 ‘옛날 일’

한국조에티스는 미국계 동물의약품 회사다. 한국조에티스의 본사, 글로벌 조에티스는 미국에서도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손꼽힌다. 특히 글로벌 조에티스는 6년 연속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회사’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조에티스도 미국의 명성과 궤를 같이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일일 뿐이다.이날 자리에 모인 이들은 2018년 10월 신임 대표이사와 2019년 6월 신임 인사부장이 발령되고 나서부터 회사의 문화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변화 속에는 노조를 파괴하려는 회사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합원 B씨는 “수평적인 조직이었어요. 직급이 높다고 해서 하대하거나 강요하는 것도 없었고요. 의견이 있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이야기하고, 문제가 생겨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식이었어요”라면서, “어느 순간 비정상이 됐어요. 그냥 팀장이 시키는 대로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말아야 하고요.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조합원 잘못이고요”라고 말했다.

‘직원이 아니라 조합원 잘못’이라고 한 게 맞냐고 되묻는 기자의 질문에 자리에 모인 이들은 분명하게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멀게는 대표이사가 새로 부임한 이후, 짧게는 인사부장이 새로 온 이후에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차별행위가 공공연해졌다는 것이다.

자리에 함께한 한국조에티스지회 조합원들. 위부터 조합원 A씨, 조합원 B씨, 조합원 C씨. ⓒ 참여와혁신DB

“내일부터 각오 단단히 하고 오세요”
그 날 이후 직장은 지옥이 됐다

2018년 12월 한국조에티스 노사는 단체협약 교섭을 진행했다. 그러나 기존 단협에 미치지 못하는 요구안을 회사가 제시하면서 교섭은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노사관계가 ‘불편’에서 ‘대립’으로 치달은 것은 2019년 6월 14일 김용일 지회장을 상대로 징계를 내리면서다. 징계 이후 지회는 교섭 성실 이행을 주장하며 이틀 동안 부분파업을 감행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초강수’ 직장폐쇄 일주일이었다.

조합원 B씨는 “낌새를 알아차릴 새도 없이 너무 황당했어요”라고 당시 직장폐쇄 상황을 전했다. 조합원 A씨도 “절대 영업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으로 부분파업을 진행했는데 직장폐쇄를 때린 거죠. 벼르고 있었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김용일 지회장은 “노동부 중재로 직장폐쇄 해제하는 합의서를 쓴 다음날 오후에 조합원들이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런데 그때 인사부장이 ‘내일부터 각오 단단히 하고 와라’라고 했다. 황당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조합원 A씨에게도 그 날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오후에 복귀했으면 저희가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인사부장은 ‘너희 잠깐 들어온 거니까. 챙길 거 있으면 짐 챙겨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 여기 직원이다. 근무하러 왔고 알아서 할 거다’고 말했는데, 저희 책상이 있으면 둘레로 임원들이 다 서있는 거예요. 동물원처럼요. 저희가 앉는 자리 주위에 서서 임원들이 구경을 하면서. ‘빨리 짐 챙겨서 나가라’ 이러는데. ‘빨리 짐 챙겨서 나가고 내일부터 각오 단단히 하고 오세요.’ 이게 인사문제를 푸는 인사부장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요.”

직장폐쇄 종결 다음날부터 직장은 '지옥'이 됐다. 주간 업무일정, 일간업무 일지, 출근보고, 퇴근보고, 일대일 업무 미팅 등 각종 업무보고가 줄줄이 생겼다. 전에는 없는 일이었다. 또한 업무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사용하던 점심시간이 고정적으로 바뀌었다. 조합원 C씨는 “점심시간 옮기려면 매니저한테 승인을 받고 나가야 해요”라고 토로했다. 조합원 B씨는 ‘일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오는 업무메일’을 가장 힘들어했다.

“9시 반에 팀장이 출근을 해서 바로 제 업무계획에 태클을 걸어요. ‘이 업무 말고 다른 두 개의 업무를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까지 해라’. 제가 반박을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못하냐’고 태클이 와요. 그냥 받아들이고 한다고 해도 20~30분 후에 메일이 또 와요. ‘이거 안 했는데 오전까지 한 시간 안으로 해라’는 식이죠. 하루 종일 그런 내용이 수십 통씩 왔다 갔다 해요. 업무계획 짜는 데만 하루 종일 걸려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업무보고가 지나치다고 항의하면 ‘그런 말 하지마라. 이런 메일 쓸 시간에 일이나 해라’고 하니까. 너무 심하죠.”

김용일 화섬식품노조 한국조에티스지회 지회장. ⓒ 참여와혁신DB

부분파업 재개에도
노동조합 무시로 일관하는 조에티스

이러한 조합원을 향한 괴롭힘은 비단 한 부서의 일이 아니었다. 김용일 지회장은 “전사적인 역량을 다 동원한다”면서, “부서장은 부서장대로 그 밑의 팀장을 동원해서 조직적으로 조합원들을 업무상으로 괴롭히고 못 견디게 만든다. 조합원의 흠집, 실수 사소한 모든 일을 다 감시하고 그걸 통해서 사유서 제출, 징계로 이어지게 만든다”고 밝혔다.

11월 20일 한국조에티스지회가 부분파업을 재개하기 전까지 총 조합원 25명 중 16명이 징계를 받았다. 김용일 지회장도 10월 말 회사로부터 갑작스럽게 ‘대기발령’ 통보를 받고 노트북과 장비를 회수 당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김용일 지회장은 “대기발령, 정직 당하는 과정에서 사실 대화로 풀기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인사부장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있는 게 아니라 노조를 와해하고자 있다는 판단이 섰다”면서 “11월 초 국회 기자회견 이후 20일부터 투쟁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조에티스 노사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지회는 어떠한 회사의 말도 ‘믿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지회의 판단에는 회사의 양면적인 태도가 있었다는 게 김 지회장의 설명이다. 김용일 지회장이 대표이사와 만나 ‘외부 이슈화 하지 말자’고 이야기 한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노조를 비방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또한 4월 20일은 2019년 10월 1일을 마지막으로 끝났던 교섭이 재개된 날이지만 동시에 지회장이 해고 통보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 조합원 C씨는 지난 여름 대표이사 집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진짜 저희는 대표가 진짜 한 번쯤은 나와 볼 줄 알았어요. 나와서 뭐 시끄럽다든지, 방해된다든지, 나중에 이야기 하자든지. 그럴 줄 알았는데. 용역 경비업체 사람이 대놓고 사진을 찍기가 그러니까, 차 안에서 핸드폰으로 저를 찍으면서 지나가는 거예요. 시위를 하면서 멍하니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다가 그런 모습을 보면 더 화가 나죠. 이 사람들은 우리랑 대화할 생각도 없고, 우리를 무시하는 거구나. 인정도 하지도 않고.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지연된 법의 판단
노동조합에 시간은 별로 없다

이러한 한국조에티스 사태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판단은 비교적 명확하다. 과도한 직장폐쇄와 조합원을 향한 징계도 노동조합 활동을 막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2020년 1월 10일 부당노동행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9개월이 지난 현재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조합원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지회는 부분파업에 나서는 4명의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전 조합원이 월급의 20%를 파업기금으로 내고 있다. 생활고에 못 이겨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는 인원이 발생한 것이다.

더불어 김용일 지회장은 회사의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 단협상에서 노동조합 가입대상이 아닌 팀장급 직원과 계약직 직원이 전보다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팀장이나 계약직은 조합 가입 범위에서 단협상 제한돼 있거든요? 지금 회사를 보면 팀장과 계약직이 많아요. 영업은 고객이랑 친해질 때부터 매출이 오르니까 계약직으로 채용할 수가 없거든요? 영업직에 한 번도 계약직을 둔 적이 없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영업직 내에서도 계약직이 4명 정도 돼요. 신규채용을 계약직으로 한 거죠. 2018년에 임원 포함해서 전 직원 중에 노동조합 가입 대상이 아닌 비율은 10%대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 직원의 40% 넘는 인원이 노동조합 가입 자체를 못해요. 일부러 계약직과 팀장을 늘려서 노동조합 가입 대상 자체를 줄였다고 생각해요.”

검찰의 수사가 지연되면서 노조의 '체력'은 계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노동조합이 깨지고 난 이후에 수사는 의미가 없다. 이는 비단 한국조에티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측으로부터의 부당노동행위를 호소하는 노동조합의 일반적인 모습에 가깝다.

김용일 지회장은 “조에티스에서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람은 범죄자다. 범죄자와는 같이 일할 수 없다”면서, “부당노동행위를 해서 이 회사 직원들과 그 가족을 아프게 한 사람은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한다. 이 땅에서 부당노동행위를 하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참여와혁신 DB
ⓒ 참여와혁신 DB

망가진 회사는 사실 의미가 없죠

한국조에티스지회 조합원들은 서로서로를 의지하며 버티고 있다. 또한 이들은 정말 일하기 좋았던 예전의 조에티스을 되찾고 싶어한다. 조합원 B씨는 그 마음을 이렇게 말했다.

“정말 좋았던 우리 회사인데 그걸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빨리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 사실 더 욕심내는 것도 없어요. 무리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좋았던 조직문화를 되찾겠다. 그런 거니까. 망가진 회사는 사실 의미가 없거든요. 돌아갈 일도 없고요. 괜찮아질 때까지는 계속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