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 돌입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 돌입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10.06 14:23
  • 수정 2020.10.06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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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연구원 산재보험 적용·대학 성폭력 근절 위한 입법 촉구
"핵심적 대안은 대학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법적 권리 확고히 하는 것"
대학원생노조가 10월 6일 오전 10시 30분 국회 앞에서 ‘안전한 대학 조성과 대학 공공성 확대를 위한 입법활동 촉구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지부장 신정욱, 이하 대학원생노조)가 국회 앞 농성에 돌입한다. 대학원생노조는 10월 6일 오전 10시 30분 국회 앞에서 ‘안전한 대학 조성과 대학 공공성 확대를 위한 입법활동 촉구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돌입 기자회견’을 가지고 “우리의 대학과 대학원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시기”라고 선언했다.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생의 노동기본권 보장·대학 공공성 확대를 목표로 ▲학생조교의 법적지위를 명시하는 고등교육법 개정 ▲국가연구개발과제 참여하는 연구원의 근로계약 의무화를 명시하는 R&D혁신법 개정 ▲국가연구개발과제 참여 연구원의 산재보험 적용을 명시하는 산재보험법 개정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근절을 위한 고등교육법 등 각종 관계법 개정 ▲교육비 부담 완화, 연구환경 개선, 대학 구성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등을 제21대 국회에 촉구했다.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생은 연구원으로서 과제를 따내기 위한 제안서를 쓰고, 과제를 수주하면 연구를 수행하는 노동자다. 많은 산업현장에 위험이 존재하는 것처럼, 대학원생들이 위험물질을 다루는 연구실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우리는 산재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라며 “산업현장에서의 위험과 우리의 위험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번 국회 앞 농성은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가결됐다.

10월 6일 오전 10시 30분 국회 앞에서 열린 ‘안전한 대학 조성과 대학 공공성 확대를 위한 입법활동 촉구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돌입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대학원생노조 조합원.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경북대 화학관 실험실 폭발사고·전남대 로스쿨 성폭력 사건 등 안전하지 못한 대학원의 사례도 지적됐다. 대학원생노조는 관련 대학에 대한 엄밀한 국정감사도 촉구했다. 경북대 화학관 실험실 폭발사고는 지난 2019년 12월 발생했다. 시료폐기 작업 중에 일어난 사고였다. 5명의 학생이 다쳤고, 중상자였던 1명은 현재까지도 치료 중이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학생에게 청구된 치료비만 약 6억 원이지만, 대학원생이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의 요양치료비 한도는 5,000만 원이다.

대학원생은 산재보험법이 아닌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북대학교는 지난 2020년 4월 치료비 지급 중단을 가족들에게 통보했다. 총장실 점거 이후인 지난 5월 다시 입장을 번복했지만, 아직 완납하지 않은 상태다. 대학원생까지 포괄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대학 내 성폭력 문제도 제기됐다. 이들은 “특히 교수와 학생 사이에 발생하는 권력형 성폭력은 대학 내 교수의 권위와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대학 자율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입법을 통한 제도적 규제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실제로 전남대 로스쿨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 이후 교수가 2차 가해를 했다는 의혹이 붉어졌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9월 28일 “피해자 보호조치가 미흡했으며, 교수들에게 성인지교육을 강화해 실시할 것”을 결정한 바 있다.

10월 6일 오전 10시 30분 국회 앞에서 열린 ‘안전한 대학 조성과 대학 공공성 확대를 위한 입법활동 촉구 대학원생노조 국회 앞 농성돌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신정욱 대학원생노조 지부장.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신정욱 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은 “대학원생의 권리가 보장될 때, 대학원의 음지에 있던 많은 폐단이 바로잡힐 수 있다. 대안은 선명하다”며 “국회는 대학원생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하며, 열악한 구조 속에 방치돼 있는 대학원생의 존재가 국회에 각인되고 우리의 목소리가 입법으로 외화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원생노조는 우선 이달 말까지 국회 앞에서 농성을 전개할 예정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경북대 화학관 폭발사고 피해학생의 아버지가 대학원생노조에게 보낸 편지를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배태섭 대외협력실장이 대독하며 마무리됐다. 아래는 편지 전문이다.

고맙습니다.

오늘부터 농성에 돌입하는 대학원생노동조합에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우선 전합니다.

저는 경북대 화학관 화재폭발사고로 중증전신화상을 당한 피해학생의 아버지로서, 대학원생노동조합이 그간 보여주신 희생적인 연대의 노력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12월 27일, 경북대 화학관에서는 시료폐기 작업 중 불행히도 화재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4명의 피해 학생 중 경상자 2명은 단기입원 후 퇴원. 중상자 중 1명은 지난 7월 퇴원. 그리고 또 다른 중상자 한명은 퇴원일을 기약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여전히 반복되는 수술 속에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저는 ‘82~89% 전신3도 중증화상’이라는 진단을 받은 임00 학생의 아버지입니다. 현재 사랑하는 저의 딸은 경북대병원으로 이송되어 조직의 고착으로 인한 장애 교정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며, 3주 뒤 다시 사고 후 계속 입원 중인 화상전문병원으로 재입원할 예정입니다.

이번 사고를 겪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학생 연구자들이 처한 일상적인 위험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사고 처리 과정에서, 무책임한 ‘대학’ 측의 태도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면서 차곡차곡 쌓여 갔습니다. 지시된 업무를 수행하다가 학내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학교는 ‘치료비 지급 중단’이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피해 학생들과 가족들에게 전했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거의 기적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던 피해 학생들과 그 가족들은 대학 측이 이런 말을 일방적으로 던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국립대학인 경북대는 학내 사고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치료비 지급을 중단하겠다는 말을 통해 스스로 학교임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지시하고 전달한 총장과 보직교수들은 또한 스스로 ‘스승’임을 포기하였습니다. 국립대학이 국가 기관임을 생각하면, 이 상황은 국가가 국민을 버리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여론이 악화되고 가족들의 항의가 공식화되자, 피해 학생 가족들에게 ‘밀린 치료비를 바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던 경북대 총장은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던 총장은 어떤 구체적인 노력도 보이지 않다가 가족과 합의한 지 무려 3개월이 지나서야 ‘규정 개정’을 교수회에 넘겼고, 그 개정된 규정조차도 아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고 발생부터 지금까지 경북대 총장과 본부 측은 일관되게 ‘규정’을 방패삼아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그들에게는 학내 실험실에서 지시된 업무를 하다가 27세 여학생이 중증전신화상을 당했다는 사실이 특별한 일도 아니었고, 피해학생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 사력을 다해 지원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그 사고와 수습과정은 단지 규정에 따라 처리하면 될 행정업무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경북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립대학조차도 이런 상황이라면, 대한민국의 학생 연구자들이 처한 상황은 선명하게 짐작되어집니다. 이런 대학의 상황이라면 학생 연구자들은 목숨을 답보로 매일 학교 실험실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책임지는 자가 없는 학교에서, 그리고 사고 발생 시 탈출조차 불가능한 열악한 구조의 실험실에서, 오늘도 학생 연구자들은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누가 젊은이들을 이런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을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제 또 다시 경북대와 같은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수습을 위해 학교가 필사의 노력을 다하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라도 온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갖추어져야 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딸이 자신의 무너진 몸을 보며 절망하는 모습을 매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몸과 함께 딸의 마음마저 무너져 버릴까 더 무섭습니다. 학교가 자신을 버린다는 사실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이 사랑하는 딸의 재활 의지를 무너뜨릴까 저는 매일같이 외줄을 타는 심정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대학원생노동조합원들을 만나며 희망을 가져 봅니다. 안전한 실험실 환경을 확보하기 위한 대학원생노동조합의 진지하고도 구체적인 노력을 보며, 저의 딸이 겪은 고통이 재발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져 봅니다. 더 안전한 실험실, 목숨을 담보로 거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창의적 연구에 젊음을 거는 학생 연구자들의 공간.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요구하는 오늘의 농성에 지지와 연대 그리고 감사를 전합니다. 어쩌면 이 농성이 저의 사랑하는 딸이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버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저는 이 편지를 씁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2020년 10월 6일

경북대 화학과 화재폭발사고 피해 학생 임00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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