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화학관 폭발사고, 치료비지급·대학원생 산재인정 ‘절실’
경북대 화학관 폭발사고, 치료비지급·대학원생 산재인정 ‘절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10.27 10:11
  • 수정 2020.10.2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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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가족, “대학원생도 급여 받아 생활하고, 직접적 업무지시 있었다”
경북대 총장실 점거에서 국회증언까지··· 산재법 개정으로 응답해야

작년 12월 경북대 화학관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 시료폐기물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학생 5명이 부상을 입었고, 그중 한 대학원생은 80%가 넘는 전신중증화상을 입고 현재도 치료중이다. 그러나 경북대는 치료비 지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했고, 피해 학생들과 가족들은 2차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한다.

프로젝트를 수주 받아 결과물을 내기 위한 작업을 대학원생이 하면 노동이 아니게 된다. 특히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화학물질을 다루면서도, 사고가 나면 학교 자체 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피해 학생의 가족은 결국 국회 국정감사 증언에 섰다. 안전한 연구실에서 대학원생이 ‘노동’하기 위한 산재보험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경북대 국정감사가 있던 10월 19일, 경북대를 찾아가 이들을 만났다.

 

경북대 화학관 폭발사고 피해 학생의 가족들을 10월 19일 경북대에서 만났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경북대, 사과·대책 없는 미진한 대응

“제 딸은 반복적인 화상 수술 외에도, 기도 협착으로 흉부외과 수술을 받았습니다. 근육구축으로 인한 장애를 막기 위해 성형외과 수술을 받고 있고, 이 수술 역시 수차례 반복될 예정입니다. 화상이라는 게 피부가 나가면 근육이 터져버립니다. 팔이나 이런 게 구축이 와서 결국은 아무것도 못 움직이게 되니까 수술이 필요합니다. 눈을 못 뜨고 그럴 땐 자기를 못 보니까 괜찮았는데 지금은 볼 수가 있잖습니까. ‘불’에 대한 이야기를 티비, 뉴스, 또는 누군가가 이야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런데 학교는 무책임하게 규정 타령을 하며 치료비 지급 중단을 통보했고, 가족들의 항의로 총장이 치료비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후에도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_경북대 화학관 폭발사고 피해 학생 아버지 인터뷰 중에서.

경북대 화학관 신관은 2004년 만들어졌다. 피해학생 가족 증언에 따르면 화학관 안 여러 랩실이 있고, 대학원생들은 연구실과 실험실이 분리돼 있지 않은 공간에서 연구를 수행했다. 책상이나 기자재가 연구실에 쌓여있어 통로는 좁았다. 사고가 났을 때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책임지겠다’던 경북대는 지난 4월 치료비 지급 중단을 통보했다. 피해 학생의 가족들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경북대분회는 총장실을 점거했고, 경북대는 5월 6일 다시 치료비 지급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피해 학생들에게 청구된 약 9억 원 중 4억 원 가량이 아직 미납 상태다. 경북대는 총장과의 합의가 있은 후 3개월이 지난 8월 11일, ‘경북대학교 화학관 사고수습 및 위원회 설치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다. 규정에 따르면, ‘피해 학생의 요양비가 보험사 급여를 초과하거나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초과(예상)금액을 대학회계에서 지급할 수 있다’(제6조 2항). 그러나 이 규정에는 ‘총장이 피해 학생의 요양비를 지급한 경우, 피해 학생의 책임에 귀속하는 요양비 지급액은 이를 해당 학생에게 구상할 수 있다’(제6조 3항)는 조항이 덧붙여져 있었다. 피해 학생과 가족의 입장에서는 독소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경북대는 해당 규정을 만든 뒤에도 2개월이 지난 10월에야 재정위원회를 열어 치료비 지급을 통과시켰다. 5월 총장과의 합의 후 약속된 치료비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5개월이 흘렀다. 무책임한 ‘시간끌기’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김상동 경북대 총장은 화학관 사고에 대한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10월 20일 임기를 마쳤다. 학생들을 우선하겠다는 말과는 다른 행보였다.

오래된 시료폐기물에서 화학 반응이 일어났지만, 정작 학생들은 어떤 약품인지 모르고 있었다. 피해 학생들이 정확히 알 수 없는 시료를 폐기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국과수도 알아내지 못한 원인불명의 사고로 처리됐다. 만약 화학사고 판정을 받는다면 총장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화학물질관리법 제2조는 화학사고를 ‘시설의 교체 등 작업 시 작업자의 과실, 시설 결함·노후화, 자연재해, 운송사고 등으로 인하여 화학물질이 사람이나 환경에 유출·누출되어 발생하는 일체의 상황’으로 정리한다. 2017년 이화여대 실험실에서 발생한 원인 미상의 폭발사고도 화학사고로 판정됐다. 이화여대의 경우 화학실험을 끝내고 시료를 폐기 박스에 담으면서 사고가 일어났다. 경북대와 같은 상황이다.

 

10월 19일 경북대에서 고관홍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노무사가 경북대 화학관 폭발사고 피해자 가족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기본적으로 경북대학교와 전임 총장은 학교로서, 그리고 스승으로서 취하면 안 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 왔습니다. 학생들의 치료와 회복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행정적 절차의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피해학생의 생명과 인생이 걸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규정만을 이야기 하면서 무책임과 비겁함의 틀 속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전임 총장은 끊임없이 말을 바꾸고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일관되게 전임 총장은 이 사안을 천천히 처리해도 되는 업무 중 하나로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자신의 임기 내에 이 골치 아픈 문제를 처리하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피해 학생의 가족들은 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 일은 시간을 끈 것 밖에는 없습니다. 참 슬프고도 잔인한 스승의 모습입니다.”

피해 학생의 이모부 이야기처럼, 경북대의 반응은 피해 학생의 가족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이마저도 치료비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입장은 여러 번 바꿨다. 피해 학생의 이모부는 “학교에서 누군가 자기 개인 실험을 한 것도 아니고, 공적인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난 건데 기본적으로는 학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총장은 진두지휘해서 수습하고 학생들의 치료와 사회적 복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해야 했다. 그것이 스승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다. 그러나 총장은 스승으로서의 어떤 상식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오늘도 학생연구자들은 일상적인 위험 속에 처해 있다. 그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들의 가족들과 함께 경북대의 치료비 지급을 촉구해왔던 이시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경북대분회 분회장은 “경북대는 책임져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생들의 교육과 연구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있다”며 “국회의원들은 학생연구자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고, 힘없는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고관홍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노무사는 “일하다가 다친 거면 그 노동이 무슨 노동이든 간에 산재보험이 보장해 줘야 하는 게 맞다”며 “(대학원생들은) 명칭은 다를 수 있어도 돈을 받고 프로젝트 연구를 한다. 교수 지시를 받아서 연구에 대한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면 노동자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10월 19일 오전 9시 경북대 앞에서 "'실험실 폭발사고 치료비 미지급' 경북대학교에 대한 엄중한 국정감사 촉구! 학생연구원 산재보험 적용 촉구! 대학구성원 공동기자회견'이 진행됐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이공계 대학원생 중대재해 시 산재보험 적용받을 수 있어야

화학관에서 대학원생들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각자 맡은 업무를 나누고, 학과 조교나 교수로부터 일거리를 지시받는다. 금전적인 대가도 받는다. 학생연구원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없으면 대학의 연구는 돌아가지 않는다. 한 피해학생의 가족은 “랩의 실험 과제는 상당 부분 지시를 통해 이루어진다. 몇 월 며칠까지 어떤 데이터를 뽑으라고 한다. 그 데이터를 위해 무슨 실험을 할지도 특정을 해 준다”고 증언했다.

“수업은 수업시간에 받는 거고 연구를 하면서 각각의 프로젝트가 있어요. 각각의 사람들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떼서 주죠. 프로젝트에 책정된 예산으로 학생연구자들의 급여도 나오는 것 같아요. 급여는 정기적인 개념이 훨씬 많거든요. 그리고 프로젝트의 유형에 따라 학생연구자들에게 4대 보험이 적용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요.”

경북대 화학과의 학생연구자들은 학업과 동시에 프로젝트 연구를 수행했지만, 사고 이후에는 ‘학생’ 신분만 남았다. 화상 치료에 필요한 금액은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요양치료 보험금인 5,000만 원 한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10월 22일 국회에서 진행된 경북대 화학실험실 사고당사자 간담회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제도적 안전망을 갖추는 문제에서는 국회가 제대로 일을 못했다는 자책을 피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행 제도상 연구자 보험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 가지고는 해결과 거리가 너무 멀다”며 “그것으로 충분할지를 포함해 송옥주 위원장과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선의를 가지고 검토하고 추진해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학의 연구활동에 종사하는 학생연구원이 산재보장을 받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전 의원은 10월 22일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연구실에서 당한 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고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갔던 학생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면 책임회피다. 산재는 과실 여부와 상관이 없다. 만약 학생들이 산재보험에 들었다면 이런 논란이 없었을 것”이라며 “근로계약 체결이 안 되면 산재보험 가입만이라도 반드시 올 해 안에 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 의원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앞장서 줄 수 있나?”고 질문했고, 최 장관은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국정감사에서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의 경북대 폭발사고 소급적용 논의도 이뤄졌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은 “초중고는 산재법이 적용되고 대학에서는 적용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현재 피해학생은, 법을 만들더라도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게 조금 불투명할 수가 있는데, 소급도 하고 경과조치를 부칙에 넣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고 했다.

대학원생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국회 앞 농성 중인 신정욱 대학원생노조 지부장도 “대학 학생연구원은 실제로 구체적인 학업과 노동을 하는 노동자지만, 제도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서 사회보장혜택을 못 받고 있다”며 “후속처리에 관한 경북대의 무책임한 만행을 속속들이 밝히고, 대학원생이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정기국회에서 산재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북대 화학관 입구.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사고로 경상을 입은 대학원생 2명은 올 봄, 그리고 24%의 화상을 입은 학부생 1명은 최근 다시 화학관으로 돌아왔다. 가장 중상을 입은 학생은 사고 후 계속 입원 중이던 화상전문병원에서 경북대병원으로 이송돼 현재 피부와 근육의 고착 장애 제거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다. 퇴원 후에도 곧장 화상전문병원으로 재입원해 기약 없는 화상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가족들이 바라는 건 피해 학생들의 원활한 치료와 대학원생의 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안이었다.

“가족 입장에서는 많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피해 학생이 치료를 아무 걱정 없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학생이 계속 연구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실험실에서 학생연구자들은 실질적인 종속관계의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노동자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말이 안 되는 구조입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구조입니다.”

“사고는 났습니다. 어쩌면 피해 학생들은 평생 멍에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가 좀 사람답고 솔직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학생연구자들은 대학이 마음대로 용도 폐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피해 학생의 가족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경북대에서 국회까지 올라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섰던 이유는 ‘실험실 안전’이라는 목표로 귀결된다. 이들이 더 이상 기다리는 일이 없도록 국회와 경북대가 번복 없는 대책을 마련할 차례다. 조속한 치료비 지급과 함께 대학원생이 적용받을 수 있는 산재보험법 개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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