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대학원생 실험실 사고, 산재인정은 어떻게?
반복되는 대학원생 실험실 사고, 산재인정은 어떻게?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11.26 15:37
  • 수정 2020.11.2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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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구실 사고 피해구제 및 안전성 보장 과제’ 토론회
산재보험 ‘특례적용’보다 노동자성 인정이 관건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2019년 12월 발생한 경북대학교 화학관 폭발사고 부상자 5명에 대한 치료비가 5억 원이 넘었다. 치료비를 지급하겠다던 경북대학교는 되레 구상권 청구 조항을 학내 규정에 넣었다. 경북대학교 총장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11월 26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대학 연구실 사고 피해구제 및 안전성 보장 과제’ 토론회가 진행됐다. 대학원생이 연구실안전법 제14조에 의거해 가입하는 민간 보험은 배상 범위가 최대 5,000만 원으로, 특히 중상을 입었을 때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연구실에서 재해를 입은 대학원생의 사회안전망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북대학교 이전에도 수많은 대학 연구실 사고가 있었다. 1999년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연구실 사고에서는 박사과정생 3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3년 KAIST 풍동실에서는 박사과정생 1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중대재해를 입었다.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가 발표한 ‘2019 연구실 안전관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연구소는 총 4,075개이며, 140개 기관에서 379건의 연구실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308건이 대학에서 일어났다.

김래영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사무국장은 발제에서 “아무리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연구 활동에는 늘 사고의 위험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연구활동종사자는 귀중한 연구개발자원이며, 그보다 앞서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국민이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이다. 연구 활동 중 재해를 입었더라도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을 통해 다시 연구현장으로, 그리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가 설계돼야 한다”며 “경북대학교 폭발사고의 경우 만약 피해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해 산재보험으로 처리됐다면 산재보험에서 인정되는 요양급여로 지급됐을 것이다. 산재보험으로 치료비를 지출한다면 손해배상책임자와 사고피해자 양쪽 모두 유리하다. (학생연구원의) 안전과 재해보상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21대 국회에는 대학원생과 관련한 산재보험법이 발의돼 있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기존의 산재보험법에 ‘학생연구원 특례’ 조항을 추가하는 방법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용주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 서기관도 “산재보험 제도는 임금근로자의 노동조건을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의 배상책임에서 시작돼 임금근로자에 한해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산재보험제도는 근로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 산재보험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별도 특례규정을 두고 있다”며 “학생연구원도 업무상 재해로부터 보호 필요성이 있다는 데 공감하며 이들을 산재보험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특례적용 방식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산재보험법에 학생연구원 특례 조항을 넣는 일은 노동자성 인정보다 간편한 해결법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이지는 않다. 조영훈 노무사는 “학생연구원에 대한 산재보험법 등의 적용 문제는 결국 학생연구원에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될 것인지 여부로 귀결된다”며 “학생연구원과 사실상 같은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정부출연연구소 소속 학생연구원 역시 근로자로 인정받는다. 이들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4대 보험에 의무 가입하는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대우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출연연구소 소속 학생연구원은 대학원생과 마찬가지로 학위 과정 중 연구를 수행한다. 과기부는 이들을 2017년 노동자로 공식 인정한 바 있다.

조 노무사는 ▲학생연구원의 연구내용이 통상 연구책임자가 수주한 프로젝트에 의해 결정되는 점 ▲대학마다 학생연구원 인건비 관리규정을 두고 있는 점 ▲학생연구원의 연구 장소가 특정 실험실로 고정되는 등 근무시간과 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되는 점 ▲연구수행과정에서 연구책임자에 의해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고 이들에게 수시로 보고해야 하는 점 등을 이유로 노동자성 인정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한혜정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도 “연구실에서 대학원생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근로자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마땅히 근로자로 인정되어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지도교수보다도 상시로 위험에 노출된 채 강도 높은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대학원생이 많다”며 “대학과 지도교수를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가의 법과 제도다. 국가 차원의 안전 대책 없이는 더 이상의 국가 과학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과기부 과학기술안전기반팀에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이미 연구실 사고 이후 대학원생 중 일부는 산재 인정을 받았다. 최근 5년간 대학교 실험실 재해발생 이후 30건의 산재보험 신청이 있었고, 14건이 승인을 받았다. 경북대 화학관 폭발사고 피해학생들은 산재보험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같은 선례가 있는 만큼 산재 승인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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