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고용보험 “한 걸음에 기대를, 두 걸음에 개선을”
예술인 고용보험 “한 걸음에 기대를, 두 걸음에 개선을”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3.12 00:15
  • 수정 2021.03.1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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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 확대 첫발 뗀 예술인… 적용대상 둘러싼 ‘시시비비’
“앞으로의 제도 개선에 예술인 당사자가 주체로 나서야”

커버스토리 ③ 첫발 뗀 예술인 고용보험

예술 = 노동

많은 예술인이 ‘투잡’을 뛰며 예술 활동을 이어간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창작을 포기하는 예술인도 적지 않다. 단지 개인의 재능이 부족해서일까? 예술계에선 부당계약이 만연하다. 교육이란 명목으로 공공연히 착취가 일어난다. 여기 예술은 노동이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창작을 위한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예술인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삶을 요구한다.

지난해 12월 10일 예술인 고용보험이 첫발을 뗐다. 기대의 목소리도,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후의 과제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예술인 당사자가 제도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한 논의 속 코로나19로 새 국면

정부가 예술인 고용보험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그 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가 함께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 유관기관 특별협의회(TF)’를 구성해 논의를 이어갔으나 곧바로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청산이라는 1호 과제를 안고 있었다. 정부는 문화예술인의 자유 보장, 생활 안정, 창작 지원, 복지 보장 등을 약속하고 예술인 고용보험 논의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논의 과정에는 여러 걸림돌이 존재했다. 담당 주무부처인 문체부는 고용보험에 대한 이해가 낮았고, 반대로 고용노동부는 예술인에 대한 이해가 낮았다. 이런 상황 속 정부에게서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에 대한 적극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게 당시 예술인 고용보험 연구·논의에 참여했던 이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예술인 당사자도 걸림돌 중 하나였다. 노동자로 불리며 사회보장제도 안에 들어가기보다는 예술인으로 남길 원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 따랐다. 박성혜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공동위원은 “예술 창작활동을 노동으로 전환하거나 값을 매기는 등 정량화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예술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2014년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던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사회 시스템 제도 안에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을 해도 노동자라는 말을 싫어하는 예술인이 많다”고 설명했다.

예술인 노동이 정량화,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점도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다. 예를 들어 공연예술인은 하루 공연을 위해 수개월의 연습 시간을 갖지만, 계약서에는 공연 당일만 노동시간으로 적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공연이 취소되면 오랜 시간 연습했음에도 지난 수개월 동안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연습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명시하는 건 아직 공연 현장에서 풀지 못한 문제다. 또, 최근 젊은 예술인을 중심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구두계약이나 무계약 관행이 통용되고 있다. 문체부의 ‘2018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 활동을 하며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있는 예술인은 42%에 불과하다.

지난한 논의가 이어지던 중 대통령이 전국민고용보험 도입을 선언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일하는 모든 국민을 실업급여(구직급여)로 보호할 수 있는 전국민고용보험을 추진하겠다는 발표였다. 이어 고용보험 적용 확대의 첫걸음으로 예술인을 꼽았다. 2020년 12월 10일부터 예술인 고용보험을 도입하고, 고용보험 가입대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 현장에 서면계약 관행을 정착시키며, 집중신고기간 운영 등을 통해 조기가입을 독려하겠다는 실행계획도 밝혔다. 안명희 문화예술노동연대 대표는 “코로나19 전에는 예술인 고용보험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했어야 했다면, 코로나19 상황이 터지고 난 뒤에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재난 상황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고용보험이 필요하다는 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인 모두가 대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는 누구인가. ①예술인 복지법상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체결하고 ②예술인 본인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③임금근로자가 아니면 된다. 또, 1개월 미만의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체결한 단기예술인도 고용보험 대상자다. 예술 활동에 따른 소득이 발생할 수 있는 경력단절 예술인과 신진 예술인 등도 가입대상에 들어간다.

하지만 여기서 가입대상을 ‘예술인 복지법’에 따른 예술인 및 문화예술 분야,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으로 한정했다는 비판에 부딪히게 된다. 예술인 복지법상 문화예술 분야는 문학, 미술(일반, 디자인공예, 전통미술), 사진, 건축, 음악(일반, 대중음악), 국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방송, 공연), 만화 등 총 11개이며, 분야별 예술 활동은 창작, 실연, 기술지원 및 기획을 포함하고 있다. 안명희 대표는 “예술인 복지법상 문화예술 분야에 출판이 빠져 있는데, 이렇게 되면 출판 관련 문화예술용역 계약을 체결한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예술인은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판의 경우 「문화예술진흥법」 상 문화예술 분야에 포함돼 있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적용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예술인 고용보험에서 말하는 문화예술용역에 교육이 들어가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박성혜 공동위원은 상당수의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으로만 생계유지가 어려워 예술 강사로 일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박성혜 공동위원은 “예를 들어 예술 무용가가 문화센터에서 살풀이춤을 가르쳤을 때 교육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문화예술용역으로 보지 않는다”며 “예술인들이 교육 활동을 해서 얻는 페이가 적지 않은 만큼 교육 활동이 고용보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면 큰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인복지법 제2조 제3호에 규정된 문화예술 창작·실연·기술지원 등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예술 강사는 일반근로자 대상 고용보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만 예술 강사가 예술인으로서 사업주와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맺으면 피보험자격의 이중취득이 가능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지점은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의 월평균 소득이 50만 원 미만인 경우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다. 다만 예술인이 같은 기간 내에 둘 이상의 계약을 체결한 뒤 소득합산을 신청하고 합산한 금액이 50만 원 이상인 경우에는 고용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단기예술인은 소득과 상관없이 노무제공 건별로 모두 적용가능하다.

안주엽 선임연구위원은 “(소득과 상관없이) 고용보험을 무조건 가입시킨 뒤 일정한 소득에 못 미치는 예술인의 경우 보험료를 내지 않게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며 소득으로 가입 대상자를 제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월평균 소득 50만 원 이상 220만 원 미만인 예술인에게 고용보험료의 80%를 최장 36개월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50만 원 미만을 버는 가장 열악한 예술인은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에서 제외되도록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실업급여(구직급여) 지급 조건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반근로자 대상 고용보험에서 실업급여를 지급받기 위해서는 퇴직 전 18개월 중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180일 이상(약 6개월)이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인의 경우 이직 전 24개월 중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9개월 이상이어야 한다고 정했다. 안주엽 선임연구위원은 “예술인들이 일반근로자보다 훨씬 더 간헐적으로 일하는데 실업급여 지급 조건은 훨씬 더 엄격하게 적용했다”며 “일반근로자보다 예술인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가능성이 더 높은 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예술인 고용보험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문화예술노동연대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예술인 고용보험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문화예술노동연대

“예술인, 자기 문제 해결 주체돼야”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을 둘러싼 시비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술인 고용보험을 시행하는 측과 이 제도에 적용되는 측 모두가 이 제도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김상철 예술인소셜유니온 운영위원이 말했다. “여러 사례가 쌓이기 전까지는 제도 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예술인 복지를 오랫동안 고민을 해온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그나마 상황이 나을 텐데 훈련이 부족한 지역문화재단, 지자체 등에서 예술인 피보험자격을 판단하기까지 일정 기간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때문에 예술인 고용보험 효과가 더디게 나타날 수 있고, 계약 관계가 불명확한 예술인의 경우 제도의 수혜를 입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게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정부도 제도 운용상의 혼란을 어느 정도 예상하지만 모든 양태를 사전에 규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분야별 용역의 양태가 다양하여 모든 양태를 사전에 규정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형태의 노무제공 방식이 나오면 문화예술용역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사후 결정할 수 있는 보완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또, 피보험자격 유무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문체부,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 예술인복지재단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에서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의 내용을 개별 검토 후 고용보험 적용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번 예술인 고용보험이 중요한 첫발을 뗐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특히 이번 제도 시행을 통해 서면계약 안착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안주엽 선임연구위원은 “일자리가 없을 때 고용보험이 도움이 된다는 걸 확인하면 더 많은 예술인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서면계약서가 필요하니 서면계약을 요구하는 예술인이 늘어날 거다”라고 말했다.

문화예술노동연대와 예술인소셜유니온은 예술인 고용보험을 시작으로 권리 찾기에 소극적이었던 예술인 당사자가 제도의 주체로 나서길 바란다. 김상철 운영위원은 “그동안 예술인에 대한 정부 정책이 시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예술인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며 “이후의 과제는 예술인들 스스로 자기가 정책 내에서의 중요한 행위자이고 권리의 주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명희 대표는 “예술인 고용보험이 만들어졌다고 끝이 아니라 제도는 계속해서 변할 것”이라며 “변화 과정 속에서 예술인 당사자는 의견 수렴 대상이 아닌 논의 참여 대상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