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페르노리카코리아도 외투기업 문제
결국 페르노리카코리아도 외투기업 문제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6.01 16:34
  • 수정 2021.06.01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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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투자하기 편리한 나라로 만들겠다” 외투기업의 민낯
정부, 조세감면 등 폐지했지만… “노동자 보호하는 법제도는 아직”

리포트_결국 여기도 외투기업 문제②

그렇다면 페르노리카코리아 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개별 사업장 차원의 노사갈등 내지는 흔히 발생하는 노조탄압 의혹으로 바라봐야 할까.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기업(외투기업)의 특성을 살펴보면 페르노리카코리아에서 발생한 문제를 단순 노사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 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화혁신 포토DB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 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화혁신 포토DB

외투기업의 손쉬운 현지화 선택지는 ‘로펌’

외투기업이란 외국인이 총 주식이나 출자총액의 10% 이상을 보유한 기업을 말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페르노리카코리아는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앱솔루트 등의 브랜드를 판매하는 프랑스 주류기업 페르노리카그룹의 한국 법인이다. 페르노리카코리아의 경우 글로벌 본사는 프랑스에, 아시아·태평양 본사는 홍콩에 있다.

외투기업이 우리나라에 진출할 때 노사관계 측면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본사가 있는 본국과의 문화적·제도적 차이다. 본국에서 쌓은 노무관리 경험과 노하우가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이를 우리나라에 똑같이 적용하면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언어 장벽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문제 중 하나인데, 실제 외투기업에서는 노사 교섭 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외투기업은 문화적·제도적 차이 극복을 위한 ‘현지화’가 필수적이며,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이라면 지불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외투기업이 현지화 비용을 ‘어디에’ 지불하고 있느냐다. 노조탄압 의혹으로 5년 가까이 회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전국식품산업노동조합연맹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회사가 문화적·제도적 차이를 극복함에 있어 제삼자인 법률회사를 끌어들였다고 주장했다. 노사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노조는 회사의 법률 자문 비용을 파헤쳤다. 노조는 회사가 국내 4대 로펌에 해당하는 두 곳의 로펌으로부터 자문을 받아왔으며, 2014년부터 2020년 5월까지 자문 비용으로 약 100억 원을 지출한 것을 확인했다. 이강호 노조 위원장은 “지금 노조가 회사와 싸우는 건지, 로펌과 싸우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외투기업 노사관계에 로펌이 끼어있는 건 비단 페르노리카코리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외투기업이 노조와 대화하기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로펌을 선택한다. <참여와혁신>은 지난해 좌담회를 열고 식품노련 산하 외투기업 노조 위원장들과 함께 외투기업 노사관계의 문제점을 짚어본 바 있는데, 당시 외투기업 노조들은 외투기업이 로펌에 의존해 노사 간 소통을 차단하고, 소통 부재는 노사 간 불신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당시 좌담회에 참석한 한 노조 위원장은 “외국인 대표이사들이 일종의 커리어를 쌓기 위한 경유지로 한국법인을 생각하기 때문에 노사관계를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며 “그러니까 노조와 대화를 하는 대신 로펌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철수 위협에 취약

외투기업 노조가 회사와의 대화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회사의 ‘철수 위협’으로 인한 고용 불안이다. 회사가 “우리는 언제든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순간 노조는 상대적으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철수 위협은 노조 측으로는 교섭력의 약화를, 사용자 측에는 교섭력의 강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힘의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며, 분규로 인해 생산을 못할 때에는 해외 공장을 통하여 대체 공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파업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외국인투자기업의 노사관계에 관한 연구, 노용진·김동우)

대표적으로 국내 완성차 외투기업인 한국지엠의 글로벌 본사 GM은 지난 2018년 군산공장 폐쇄 당시 한국지엠 국내공장을 볼모로 잡고 정부 지원과 노사 합의를 요구했다. 이 일은 정부가 8,100억 원의 혈세를 지원하고 노조가 양보안에 도장을 찍으며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GM은 매년 교섭 때마다 언론을 통해 “장기적 미래는 의심스럽다”, “아시아에 다른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등 철수 가능성을 내포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페르노리카코리아도 지금까지 철수 카드를 여러 번 꺼냈다. 회사는 지난 2019년 1월 임페리얼 브랜드 위탁 판매 발표에 따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노조의 반대로 구조조정이 무산될 경우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겠다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노조는 교섭 때마다 반복되는 회사의 철수 위협에 “이제는 내성이 생겼다”고 자조했다. “한국만큼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이 전 세계에 몇 없고, 황금알을 낳는 시장에서 철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강호 위원장 생각이지만(실제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지난 5년 동안 1,000억 원에 가까운 배당금을 프랑스에 송금했다), 회사가 철수를 언급했을 때 직원들이 체감하는 고용불안은 훨씬 크다. 노조는 이 같은 철수 위협이 노조 무력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철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내부 구성원으로부터 ‘회사가 철수한다는데 노조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싸워야 해? 노조가 계속 싸우면 우리 고용이 위태롭잖아. 이제 그만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철수 위협은 노노 갈등을 일으키는 포인트다.”

실질적인 결정은 글로벌 본사가

지난 시간 이강호 위원장이 회사를 상대하면서 느낀 외투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페르노리카코리아가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 외투기업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로 손꼽히는데, 국내에 진출한 외투기업(한국 법인)의 존망이 글로벌 본사의 경영 전략에 달려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즉, 노조가 대면하는 건 한국 법인 사용자지만, 실질적인 의사 결정은 본사가 내린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 문제가 생기면 원만한 해결이 가능할까. 이강호 위원장은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외투기업에서는 노조법에 명시된 노사대등의 원칙을 바랄 수 없다. 노조가 실질적인 교섭권자, 체결권자와 만날 수 없는 상황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다.”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내 진출 외투기업 특성 및 노사관계 영향요인 연구(2015)’에서 “노사관계의 사용자가 명확한 국내기업과 달리 외투기업의 경우 실질적 사용자는 외국 본사이기 때문에 단체교섭이나 노동쟁의의 해결이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며 “외국 본사의 경영진은 현지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으며, 현지 경영자는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리인과 노동조합 사이의 교섭 또는 문제해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쟁의의 장기화 또는 만성화라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책임 다하지 않는’ 외투기업 막으려면

우리나라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을 추진했는데, 외투기업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골자였다. 정부는 2019년 조세감면 등의 혜택이 폐지되기 전까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법인세, 소득세, 취득세 등 각종 조세를 감면해주고, 국·공유 토지와 공장을 저렴한 임대료로 빌려줬다. 이후 외투기업의 비중이 증가했고, 우리나라 국민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철수 위협, 구조조정, 고용불안, 노조탄압, 기술 유출 등 외투기업 문제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혜택은 누리면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외투기업을 제재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과거만큼 외국인 투자유치가 절실하지 않아졌고, 외투기업 부작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정부는 2019년부터 외투기업에 대한 조세감면 등 혜택을 과감하게 폐지했다. 하지만 외투기업이 합당하지 않은 이유나 방법으로 철수, 구조조정을 진행할 시 기업에 책임을 묻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21대 국회에서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외국인투자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 계류 중이다. 발의안에는 “경제질서 및 고용안정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외국인 투자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강호 위원장은 혜택은 누리면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외투기업을 규제하는 법제도 마련을 강조하는 한편, 현재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외투기업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신속하게 수사하고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4일 열린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사태의 엄중함을 확인했음에도 추가적인 근로감독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과 장 투불 페르노리카코리아 대표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지 않은 점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외투기업이 한국 노동법과 노동자 보호 허점을 뻔히 알고 이용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 정치권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외투기업 노사가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페르노리카코리아 사태가 외투기업 노사관계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 외투기업 노동자 보호 제도를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