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①] 실례합니다, 지역은 좀 어떻습니까?
[커버스토리①] 실례합니다, 지역은 좀 어떻습니까?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1.06.08 10:02
  • 수정 2021.06.08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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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연맹이 ‘씨줄’이라면 지역본부는 ‘날줄’
점점 다양해지는 현장의 목소리, 떠오르는 지역본부의 역할

지역은 희망을 싣고

천 하나를 짜기 위해 무수한 씨줄과 날줄이 베틀 위에서 쉼 없이 교차한다. 가로 줄과 세로 줄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씨줄과 날줄은 흔히 상호 보완하는 관계를 비유할 때 쓰이곤 한다.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씨줄이 산별조직이라면 날줄은 지역본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지역본부는 산별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노동 현안을 ‘지역’이라는 공간을 토대로 현장 노동자와 밀착하며 포용해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 산업구조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노동의 측면에서도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울타리 밖 노동자가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과제에 당면한 지역본부를 조명해본다.

커버스토리 ➊ 지역의 변화, 떠오르는 지역본부의 과제

ⓒ 참여와혁신DB
ⓒ 참여와혁신DB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의 흐름 속에서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산업의 변화는 고용형태의 변화와도 이어져 사회안전망 바깥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이들의 삶과 밀착해 활동해온 지역본부의 역할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이 시각, 지역은?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건 1995년이다.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를 완화하고, 지역주민에게 주권을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지방분권’이 거론됐다. 역대 정부들이 지방분권을 정책 목표로 두고 공공기관 이전 등을 포함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지역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8년 전국 지역내총생산(GDRP) 1,903조 원 중 서울·경기가 차지하는 비중만 48.5%(924조 원)로 절반에 육박했다. 1년이 지난 2019년은 어떨까. 전국 지역내총생산(GDRP) 1,924조 원 중 서울·경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47.3%(911조 원)로 전년과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는 수도권과 이외 지역 간 불평등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고용안전망이 확충되지 않은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비정규직은 615만 6,000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비정규직은 742만 6,000명으로, 5년 전보다 127만 명이 증가했다. 반면, 동일 기간 동안의 정규직은 5만 7,000명이 줄었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 경우 정주할 이유를 찾지 못한 지역민은 수도권 이주를 고민하고, 이와 맞물려 지역경제는 쇠퇴한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역본부, 어떤 역할을 하는데요?

그렇다면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활동하기도 할까? 정답은 ‘YES(예스)’다. 양대 노총(민주노총·한국노총) 산하에는 각각 16개 지역본부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을 생각할 때 기업별 노동조합 내지는 산업별 노동조합을 떠올리지만, 지역본부는 산별노조·연맹이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하며 노동운동을 이끌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산별노조·연맹과 지역본부는 그물을 짤 때 가로와 세로로 놓인 ‘씨줄’과 ‘날줄’에 비유된다.

소규모 영세 중소기업이 많은 지역의 경우 지역본부가 컨트롤 타워로 역할을 하며 산별조직을 한데로 모으는 구심점이 돼 문제해결의 활로를 열어주고 있는 건 물론이고, 지역 내 소속된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대상으로 복지를 제공하거나 지역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교육 및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또 지역본부는 지역이라는 공간 내에서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지역 기반 정치 참여나 지역민을 위한 복지 향상 사업 등 보편적 가치를 위한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본부장은 “꼭 노동 의제가 아니라도 보편적 가치나 권리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연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본부는 사회대전환을 위해 지역 내에서 일상적으로 연대하고 교류하는 하나의 주체 조직이자 사회운동센터”라고 말했다.

변화의 시대, 지역본부가 당면한 새로운 과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기업은 미래먹거리를 위해 디지털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기업의 디지털 전환은 고용 구조 변화와도 이어지는데, 정규직 위주의 고용이 줄고 거래비용이 낮은 임시·일용직 고용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다변화된 노동 환경 속에서 노동조합 울타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불안정 노동자가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지역민의 삶에 밀착한 지역본부는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빠르게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각 지역본부가 처한 상황도 각기 다르고, 재정과 인력의 부족이라는 난관에 봉착하면서, 지역본부의 새로운 대응전략 구축은 여전한 숙제다. 이 숙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연대의 힘으로 동력을 얻는 노동조합의 미래와도 연결될 것이다.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본부장은 “미조직 노동자,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방도를 찾는 것은 지역본부뿐만 아니라 총연맹 차원의 미래라고도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