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④] 미래를 향한 ‘한 발’, 지역본부는 어떤 시도를?
[커버스토리④] 미래를 향한 ‘한 발’, 지역본부는 어떤 시도를?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1.06.08 10:04
  • 수정 2021.06.08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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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현안을 포괄하는 다층적 연대 구축에 ‘시동’
조직의 연속성을 위한 내부 소통 강화와 청년사업까지

지역은 희망을 싣고

천 하나를 짜기 위해 무수한 씨줄과 날줄이 베틀 위에서 쉼 없이 교차한다. 가로 줄과 세로 줄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씨줄과 날줄은 흔히 상호 보완하는 관계를 비유할 때 쓰이곤 한다.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씨줄이 산별조직이라면 날줄은 지역본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지역본부는 산별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노동 현안을 ‘지역’이라는 공간을 토대로 현장 노동자와 밀착하며 포용해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 산업구조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노동의 측면에서도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울타리 밖 노동자가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과제에 당면한 지역본부를 조명해본다.

커버스토리 ➍ 지역본부의 활로를 찾아라

아스팔트에도 꽃은 핀다. 지역본부 활동에 많은 현실적 제약이 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중소영세사업장·플랫폼·이주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한 조직화 사업을 꾸리는 건 물론이고, 지역 내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위해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예다. 고민을 거듭한 지역본부가 추진하는 활동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해왔나

과거 지역본부의 활동은 사업장 간 교류와 연대를 기반으로 투쟁사업장을 전면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산별조직 차원에서도 사업장의 현안을 해결하기 어려울 때, 지역본부 차원에서 해결을 위한 동력을 만들어줬다.

2007년 7월, 이랜드 그룹 계열사인 뉴코아와 홈에버가 1,000여 명에 가까운 비정규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벌어진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전국에 흩어진 매장에서 동시다발적인 투쟁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민주노총 지역본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다.

2016년 말, 성과연봉제와 공공부문 민영화에 반대하고자 벌였던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도 좋은 예다. 당시 철도노조의 파업은 지역을 관통하는 노선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해당 노선의 경로에 위치한 강원·경북·충북 지역의 지역본부가 철도노조의 파업에 합류해 힘을 실었다.

한국노총 금속노련(위원장 김만재)과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 부천지역노조 오비맥주경인직매장분회가 2월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오비맥주 본사 앞에서 불법파견 문제 해결과 고용승계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한국노총 금속노련(위원장 김만재)과 한국노총 부천김포지역지부, 부천지역노조 오비맥주경인직매장분회가 2월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오비맥주 본사 앞에서 불법파견 문제 해결과 고용승계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한국노총 경기본부의 경우 지난 2월 오비맥주 경인직매장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과 고용승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단식농성, 불매운동 등의 연대로 힘을 보탰다.

또 지역본부 활동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복지 활동이다. 지자체와의 교섭이 비교적 원활한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의 경우 ‘복지노총’을 운영 기조로 내걸며, 비정규·저소득 노동자 자녀를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거나, 모범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특정 지역 문화시찰, 사업장 조직별 노동 교육 지원 등을 이행해왔다.

이외에도 지역본부는 활동 반경을 넓혀 지역 전체 노동자를 위한 노동상담소를 운영하거나 일자리 소개 사업, 산업재해 등을 방지하기 위한 사업장 안전 캠페인, 지역민과 함께하는 노동문화제 개최 등 다양한 사업을 이어오는 중이다.

김영태 한국노총 대구지역본부 사무처장은 “(지역본부가) 인적 자원 양성과 퇴직자 재취업 등 지역 내 노동 및 고용 조건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먼저 ‘소통’합시다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인쇄물이 읽히지 않는 시대가 찾아왔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은 출판·언론업계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조합원들에게 소식지를 배포하며 선전·홍보 활동을 해온 지역본부에도 큰 고민거리다. 지역본부 홈페이지를 통해 카드뉴스나 웹 포스터를 게재하긴 하지만, 조합원의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이끄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온라인 매체가 4월 2일 창간한 ‘대구 노동히어로’다. ‘대구 노동히어로’는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가 4개월의 노력 끝에 창간한 기관지로, 현장 조합원의 목소리와 지역 노동 의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4월 2일 창간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기관지 ‘대구 노동히어로’ ⓒ 대구 노동히어로 홈페이지 갈무리
4월 2일 창간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기관지 ‘대구 노동히어로’ ⓒ 대구 노동히어로 홈페이지 갈무리

‘대구 노동히어로’라는 매체 이름은 대구지역 노동을 위한 히어로(hero)가 되겠다는 의미와 대구지역 노동 관련 소식은 여기(히어-here)로 모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양은영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교선국장은 “대구지역 내 민주노총 소식이 대구 노동히어로에 다 있다 보니 시민사회단체에서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본부장은 “매체를 통해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하다. 조합원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인 문제나 여성 문제 등 지역시민단체가 가진 의제를 대구 노동히어로를 통해 알릴 수도 있다”며 “각 단체의 사안을 서로 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윈-윈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는 매체를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속보와 기획 기사, 칼럼 등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세대 간의 소통도 중요한 과제다. 지난 2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보고된 조직현황에 따르면, 민주노총 조합원 평균연령은 45.6세다. 노동조합 고령화로 인해 조직의 연속성에 대한 고민이 맞물리면서, 양대 노총 등 노동계 내부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본부들도 청년사업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지역본부가 청년사업에서 가장 주요하게 생각하는 건 수직적 소통이 아닌 수평적 소통이다.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에서는 2030세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청년을 위한 활동을 모색하고자 청년특별위원회 구성을 추진 중이다.

최정명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 본부장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와의 정서 차이가 크게 난다. 청년특별위원회가 구성되면 간섭하지 않고 지원하며 청년들의 정서에 맞게 사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에서도 청년사업국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 청년 조합원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격려하고 있다.

전주연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사무처장은 “지역본부 사무실 정비를 준비 중인데, 지금처럼 40~50대 간부들이 사무실에 있으면 청년 조합원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노동조합 분위기를 탈피한 청년사업실을 따로 마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나, 너, 우리’를 위한 연대

‘사업장 담벼락을 넘어!’는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의 2021년 사업 슬로건이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는 사업장 내 임단협에 국한되는 노동운동을 넘어 지역사회와 함께 사회대전환을 이끄는 주체로 거듭나자는 차원에서 슬로건을 정했다.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조직된 21만 노동자의 서울본부가 아닌 조직 바깥의 노동자를 포괄하는, 더 나아가 지역시민사회와 함께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일구고자 하는 핵심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의 담벼락 넘기 사업 중 하나는 ‘서울실천단’ 준비 사업이다. 서울실천단 준비 사업이란 민주노총 내 각 산별사업장 조합원 및 간부들을 모집해, 사업장을 뛰어넘는 서울지역 차원의 의제에 대해 논의하고 실천하자는 차원에서 출발한 사업이다. 서울본부는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에 걸쳐 1차 서울실천단 준비모임을 가졌는데, 당시 60여 명이 참여했다. 자발적 참여 모임이기 때문인지 분위기도 좋았다는 평이다.

김하늬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차장은 “지난 1차 준비모임을 통해 참여자들과 그동안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부터 시작해, 다양한 사회적 의제 운동과의 결합, 노동자 사이에 교류와 연대, 노동조합 활동에서의 고민 등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활동을 만들어가기 위한 공감대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서울실천단 출범은 한 달에 한 번씩 갖는 준비모임을 통해 충분한 공감과 논의를 토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는 ‘을(乙), 불평등 서울을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행진하는 ‘차별 없는 서울대행진’ 캠페인도 이끌고 있다. 이는 자영업자 및 노점상, 영세 제조업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과 갑질에 노출된 아파트 노동자 연대 활동 등을 통해 시민사회 현안에 결합하는 사업이다.

김진억 본부장은 “서울지역의 진보 역량을 집결해, 을들의 연대를 통한 평등한 서울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차별 없는 서울대행진에 나서고 있다”며 “지역본부의 과제는 서울시민의 대중운동을 어떻게 진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있다”고 말했다.

직무 역량 강화 교육이나 재취업 기회 마련 등을 통해 지역민과의 교류를 늘리려는 움직임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노총 대구지역본부는 인적자원전문학교를 운영해 직무역량 강화 수업을 무료로 제공하는 건 물론이고, 지역민의 취업을 위한 다리를 놔주고 있다.

2020년 12월 1일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가 주최한 이주 노동자 합동결혼식 ⓒ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2020년 12월 1일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가 주최한 이주 노동자 합동결혼식 ⓒ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생활 문화 지원을 통한 지역민과의 교류 확대도 확장되는 추세다.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의나 이주 노동자를 위한 합동결혼식 등을 지원하며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김연풍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의장은 “한국에 정착한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합동결혼식 호응도가 높다”고 말했다.

조직이 정체되다 보면 사업이 관성적으로 변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기란 점점 더 어렵다. 그럼에도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다양한 의제를 포용하고 한 발씩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지역본부들이 있다. 이러한 지역본부의 고민과 실천이 노동조합의 미래를 위한 활로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