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영업·공짜노동’ 지친 화장품 판매노동자, 총파업 돌입
‘연장영업·공짜노동’ 지친 화장품 판매노동자, 총파업 돌입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9.16 17:20
  • 수정 2021.09.24 2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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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로레알-샤넬-시세이도지부 추석 총파업 선포
사측에 연장영업 결정 협의, 온라인 매출 기여 노동 인정 등 요구
“백화점과 브랜드 본사가 응답할 때까지 투쟁 계속될 것”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16일 오후, 백화점면세점노조가 ‘백화점·면제점·쇼핑몰 화장품 판매노동자 추석 총파업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코로나19 장기화로 ‘임계점’에 달한 화장품 판매노동자들이 추석 총파업에 돌입한다. 이들은 감당해야 할 노동강도가 늘었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사측의 일방적인 영업연장이 반복되는 상황을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비대위원장 하인주, 이하 백화점면세점노조)은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5일 저녁 조합원들에게 백화점의 협의 없는 연장영업을 거부하고, 추석연휴 중 전면파업을 진행하는 쟁의지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날부터 백화점 판매노동자들은 추석 연휴 전까지 백화점 30분 연장영업을 거부하고 저녁 8시 정시에 퇴근하기로 했다. 이번주 주말을 포함한 추석연휴(18~22일) 중에는 이틀간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면세점 등 정기휴점이 없는 점포를 제외하곤 판매노동자 대부분이 추석 연휴 내내 일손을 놓게 된다.

이번 파업에는 백화점면세점노조 산하 로레알코리아지부, 샤넬코리아지부, 한국시세이도지부 조합원 1,600여 명이 함께한다. 

세 지부는 각각 ▲로레알(임금교섭) 96.19% ▲샤넬(임금·단체교섭) 97.3% ▲시세이도(임금·단체교섭) 87.65%의 찬성률로 조합원들이 지난 11일 쟁의행위에 찬성했다고 전했다. 중앙노동위원회도 지난 13일 노동쟁의조정 중지 결정을 내려 세 지부는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화장품 판매노동자들의 첫 파업, 배경은?

화장품 판매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전면파업을 결정한 배경엔 “코로나를 이유로 노동자들만 참고 감내하라는 상황”이 있다.

김소연 샤넬코리아지부 지부장은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때라 직원들도 이해하고 감내하는 것이 많았다. 매출이 감소했다는 이유로 인원이 줄고 노동자 한 명이 감당해야 할 매출 목표와 노동강도는 늘어났다”며 “감염병 안전 대책도 미흡해 위험한 조건에서 더 일하면서도 오히려 임금은 줄었다”고 설명했다. 

각 화장품 브랜드가 온라인 유통 채널 강화 전략에 속도를 높인 점도 판매노동자들을 어려움에 빠지게 했다. 

하인주 백화점면세점노조 비대위원장은 “화장품 온라인 매출은 전시, 홍보, 상담, 샘플시연, AS, 포장 등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노동자들의 노동에 기반하고 있다”면서 “각 브랜드 업체는 노동자의 온라인 매출 기여를 인정해 임금에 반영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매장 매출이 줄었다는 핑계를 대며 ‘공짜노동’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화장품 판매노동자들의 임금 구성은 낮은 기본급에 판매 수당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코로나19로 노동강도는 높아졌더라도, 노동이 정작 오프라인 판매로 연결되지 않으니 임금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백화점면세점노조는 장기적으로 사측의 온라인 판매 강화에 따른 고용불안도 우려하고 있다. 하인주 비대위원장은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온라인 마케팅 전환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며 “자연 퇴사도 많은데 회사는 인력을 채우지 않는다. 빠진 자리는 남은 노동자들이 감수하는 것이다. 정리해고가 보이면 노동조합이 싸우기라도 할 텐데, 현장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정리해고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반복되는 불시 연장영업도
노동자들 화 키워

이런 상황에서 백화점의 일방적인 연장영업 결정이 반복되자 노동자들은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단체행동에 나섰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세상은 주5일제로 돌아가는데 백화점, 면세점, 쇼핑몰은 그렇지 않다. 입점 브랜드 직원들은 주5일 쉬는 것이 매우 어렵고 백화점의 불시 연장영업 등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면세점노조는 문제를 풀기 위해 ‘백화점-입점업체-노동조합’ 3자가 참여해 연장영업의 날짜와 시간 등을 결정하는 합의기구 구성, 온라인 매출 기여분 보상 등을 요구하며 지난 14일 1차 쟁의행위에 돌입했다. 1차 쟁의행위는 등자보 부착, 매장 오픈 시간 피케팅 등으로 진행됐다. 

한국시세이도 소속 판매노동자들이 매장에서 1차 쟁의행위를 진행하고 있다. ⓒ 백화점면세점노조

1차 쟁의행위에도 사측이 대책을 내놓지 않자 백화점면세점노조는 결국 15일 저녁 총파업을 결정했다. 김소연 샤넬코리아지부 지부장은 “다음 투쟁 방식이 결정되기도 전에 샤넬은 매장으로 팝업 안내문(고객에게 온라인 구매를 권유하는 내용)과 차단봉을 미리 보내겠다는 메일을 보냈다”며 “노동자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는 회사의 태도에 조합원들은 ‘회사가 파업하라고 부추긴다’, ‘직원은 안중에도 없는 회사의 실체를 보게 된 거 같다’며 더 열심히 파업에 임하겠다는 이야길 한다”고 전했다.

하인주 비대위원장도 “분노한 조합원들 사이에서 먼저 파업 이야기가 나와서 오히려 현장을 걱정했던 간부들이 신속하게 파업을 결정할 수 있었다”며 “이번 파업으로 화장품 판매노동자들은 동료들과 처음으로 같이 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보통 월1회 휴점하는 백화점과 연중무휴 면세점에서 일하는 화장품 판매노동자들은 남들이 쉴 때, 가족과 같이 쉬는 ‘공동휴식권’을 요구해왔다.

백화점면세점노조는 “우리의 투쟁은 백화점과 브랜드 본사가 응답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백화점은 협의 없는 연장영업을 중단하고, 브랜드 본사는 노동자의 온라인 매출 기여 노동을 인정하라”고 강조했다.

한편, 백화점면세점노조에 따르면 록시땅코리아지부는 교섭 과정에서 사측이 노동자들의 온라인 매출 기여분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쟁의행위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래는 백화점면세점노조가 조사한 조합원들의 온라인 판매 기여 사례

■ 매장 판매노동자 온라인 판매 기여 사례

- SNS로 선물받고 매장에서 테스트 후, 호수와 제품명 적어달라고 해서 색상 선택

- 구매 후 공식몰 광고 노출로 온라인 할인율이 커서 환불 발생 多

-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은품 증정 차이 큼 

- 온라인몰 구매 후 제품 들고와 매장에서 선물포장 요청

- 온라인몰에서 주는 샘플 보여주며 매장에서 동일하게 증정 가능한지 문의
→ 안 된다고 하니 테스트만 받고 온라인으로 구매

- 향수 온라인 구매 후 매장 방문해 7~10개 향수 시향 후 매장에서 제품 교환 

- 회사에서 자체 앱을 고객에게 권유하도록 함
→ 앱에서 15% 할인해줘서 매장 결제 취소 후 앱 결제

- 온라인과 행사 비교, 색상 상담 등 전화 문의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