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④] 산업전환, 일하는 사람에게 ‘비전’ 줄 수 있어야
[커버스토리④] 산업전환, 일하는 사람에게 ‘비전’ 줄 수 있어야
  • 박완순 기자,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1.12 00:01
  • 수정 2022.01.13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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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산업전환의 비전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올라가는 것”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참여… 노동이 원하는 대안 준비는 지금부터

산업전환에 더해야 할 것

<참여와혁신>은 지난 12월호에서 노동이 바라보는 산업전환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이번 1월호에서는 정부의 산업전환 대응 정책이 어디까지 왔고, 관련 거버넌스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정리했다. 이를 통해 산업전환 대응 과정의 빈 곳을 찾고 이를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모색해봤다. 노동이 산업전환 과정에 개입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과제와 형식적 수준을 넘어 더 적극적으로 정책 결정과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했다.

커버스토리④ 비전 있는 산업전환은 가능할까

ⓒ 클립아트코리아

산업전환에서 나의 비전은?

노동은 왜 산업전환에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 취재에 응한 많은 이들은 “산업전환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말한다. 산업전환으로 원치 않은 탈락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해당사자로서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노동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해당사자의 범위를 ‘당장 눈앞에 전환이 닥친 곳’으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산업전환의 여파가 수년 내로 가시화되는 발전, 자동차 부품 등에서는 관심도가 비교적 높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산업전환으로 형편이 나아진 곳과 그렇지 못한 곳, 연령대에 따라서도 산업전환을 바라보는 온도차는 극과 극이다.

그러나 전 산업의 영역에서 진행되며, 산업의 발전이 고용의 크기 증가와 질 개선과 비례하지 않는 디지털 전환의 특징을 고려한다면, 산업전환은 위기에 닥친 한 업종이나 한 사업장의 문제만은 아니다. 여기서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노동자들에게 산업전환 이후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문호 소장은 그 비전을 구체적으로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위로 올라가는 것.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탈락하는 노동자들이 다른 일자리로 이동할 때 현재 영위하는 삶의 수준보다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희망이다.

이문호 소장은 “내 삶의 질이 떨어지고, 내 일자리가 열악해진다면 지구가 망하건 망하지 않건 간에 상관없이 산업전환에 저항하려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참여한다. 내 삶의 질이 떨어진다면 누가 참여를 할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이를 위해 이문호 소장은 산업전환 과정에서 고용의 양과 질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용의 양이 개선되려면 일자리가 유지돼야 한다. 일자리 유지를 위한 많은 대안이 필요하다. 또한 없어지는 일자리에서 생겨나는 일자리로 이동시키는 수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고용의 질 개선은 지금의 수준보다 상승하는 것이다. 가능한 층이 있고 가능하지 않은 층이 있는데, 가능하지 않은 층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그래서 이문호 소장은 ‘비전을 제시할 능력’이 산업전환 시기에 중요하다고 봤다. 문용민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본부장도 “지역민과 노동자에게 줄 수 있는 비전의 핵심은 일자리라고 본다”며 “일자리 국가보장도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다만 이걸 어떻게 실현할 거냐는 고민을 해야 한다. 대안을 노동조합이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는 당연하면서도 쉽지 않다”

노동자에게 비전을 주는 산업전환을 위해서는 정책 형성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참여는 당연하면서도 쉽지 않다. 나병호 한국노총 금속노련 정책국장이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는’ 들어야 한다”는 말 이면에는 관행이 돼버린 노동배제적인 외부환경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현재 산업전환 관련 대부분의 정부 위원회에 노동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각종 정부 위원회에 사업자 단체의 참여가 활발한 것과는 대비된다. 이창근 민주노총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정거래법상 사업주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하는 단체를 사업자단체라고 한다. 사업자 단체들은 굉장히 많은 정부 위원회나 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며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다양한 사회적 대화기구와 정부 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사업자 단체만 부르거나 노동조합에게는 형식적으로 자리 하나 주는 식으로 명분 쌓기용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앞서 기사에서 지적했듯, 사회적 대화 기구에 노사의 대등한 참여가 비전 있는 산업전환을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결국 현재의 산업전환 정책은 현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정책 효능감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들은 산업전환에 호응하기보다 일자리를 잃을 불안감을 호소하게 된다. 저항감도 커진다. “현장에서는 나중에 정말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한계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병호 정책국장이 느낀 현장의 정서다.

조합원의 불안감 앞에서 노동조합의 선택지도 줄어든다. 산업전환에 노동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노동자들의 내부 동기가 사라졌으니 조합원과 단위 사업장을 움직이기에도 힘들다.

노동이 원하는 사회안전망은?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이 제대로 참여할 수 있는 테이블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성희 민주노총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내부적으로는 교섭 테이블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된다. 교섭 테이블에 누가 앉을지, 우리는 어떤 요구를 해야 할지 지금부터 점검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노동이 원하는 산업전환 정책은 아직 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많이 준비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냉정하게 노동조합이 산업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라는 게 취재에서 만난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다만 취재에 따르면 산업전환에 관해 가장 처음으로 논의될 주제는 ‘사회안전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급하지만 여태까지 논의가 미진했던 영역이다. 노동계는 전 국민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체계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 목소리가 모아졌다. 이창근 연구위원은 “고용형태가 표준적이냐 비표준적이냐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사회보험체계로 전환이 필요하다”며 “4대 보험 중심의 우리나라 사회보장체계의 약점은 사업장에 기반 한다는 것이다. 현재 고용보험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12개 직종을 예외적으로 포함하지만 그 대상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송명진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사무국장은 노동권을 노동관계법상 ‘근로자’에게 한정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권리로 확대 보장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송명진 사무국장은 “노동조합은 여전히 가장 실효성 있는 사회안전망”이라면서 “특히 일의 조건과 방식에 대해 사용자와 협의하고 교섭할 수 있는 실질적 구조를 갖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안전망 확대에 대해서 경영계 역시 일정부분 동의를 하고 있다.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관계법제팀 팀장은 “사회보장 확대에 대해 경영계는 반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존 인력 활용 및 신규 인력 확보, 일하는 사람들의 보호에 대해서 크게 이견이 있는 건 아니”라면서 “다만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법률의 경우 일하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무한하게 넓어지기 때문에 사회안전망체계가 사회보험 방식으로 운영되는 게 아닌 공적 부조 시스템이 더 맞지 않나 생각한다. 경영계에서 근로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성희 정책국장은 ‘전환기 기본 일자리’를 말한다. 급격한 산업전환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일자리를 잃을 수 있고, 이들을 끌어안을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인정하고 원치 않게 실직한 노동자에게 일정 기간 정부가 공익적 일자리를 제공해 생계를 보장해주는 사회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구체적인 교육훈련 방향과 새롭게 등장한 산업에 대한 질서를 정비할 수 있다.

이성희 정책국장은 “언젠가 실업 상태에 빠질 수 있는 노동자를 실업 상태에 가지 않게 하는 방향보다는 이미 실업 상태에서 놓인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만들어진 공공 일자리가 산업전환기에서 실직상태에 놓일 수 있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나눠가질 수 있도록 설계될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유사한 ‘기후 일자리’도 있다. 기후 대응에 필수적인 일자리로 공익적 일자리를 채우자는 것이다.

이러한 대안들은 실직이 즉각적인 생계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도록 하는 방편이다. 연장선상으로 기본소득이라는 키워드도 눈에 띈다. 이문호 소장은 “기본소득은 ‘일하지 못하면 먹고 살지 못한다’는 점을 완화시키려는 맥락에서 나왔다. 기본적인 소득이 갖춰지면 스스로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 그러면서 창의성과 의욕,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게 기본소득의 원리”라고 말한다.

일하는 사람의 비전을
함께 고민하는 산업전환 공동체

이제 일하는 사람의 비전을 고민하는 산업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 우리가 일자리에 대해 접근하는 문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일자리 정책의 성과로 몇 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그 평가는 박하다. 단순히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 일자리의 질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 수준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고용 보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선호하는 건 자연스럽다. 이를 지키고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에 대해서, 노동자들이 양질에 일자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목소리가 작았다.

산업전환의 흐름에서 점점 더 고용 없는 성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 중에서 불안정하고, 열악한 일자리의 비중이 늘고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이문호 소장은 “우리에게 일자리가 생존 수단이 아닌 세계를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 일자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일자리’는 노동자의 삶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정부에서는 일자리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만들어냈는지 수량적으로 접근했고, 노동계는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시선을 돌려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중심에 놓고 접근한다면 노동자의 비전을 고민하는 산업전환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문호 소장은 “스스로 일에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하고 싶은 열정이 있을 때, 자신에게 일이 중요하고 비전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느낀다”며 “그런데 지금의 일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측면이 크다. 현재 한국사회 구조 속에서는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이러한 구조를 없앨 수 있는 잠재력을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만 생각하면 산업전환에서도 일자리의 개수만 바라보면 된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개인의 비전을 함께 고민해주는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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