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③] 산업전환, 노동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커버스토리③] 산업전환, 노동은 무엇을 할 수 있나
  • 정다솜 기자,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1.12 00:00
  • 수정 2022.01.12 0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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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피할 수 없는 산업전환 준비···
“경험과 역량 쌓아가는 수밖에”

산업전환에 더해야 할 것

<참여와혁신>은 지난 12월호에서 노동이 바라보는 산업전환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이번 1월호에서는 정부의 산업전환 대응 정책이 어디까지 왔고, 관련 거버넌스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정리했다. 이를 통해 산업전환 대응 과정의 빈 곳을 찾고 이를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모색해봤다. 노동이 산업전환 과정에 개입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과제와 형식적 수준을 넘어 더 적극적으로 정책 결정과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했다.

커버스토리③ 노동의 대응과 과제

지난해 11월 서비스연맹이 ‘20대 대선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서비스연맹
지난해 11월 서비스연맹이 ‘20대 대선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서비스연맹

노조에게 산업전환 대응은 ‘생존’

인천시와 노동정책협의회를 진행 중인 민주노총 인천본부는 앞으로 산업전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 인천은 2030년 폐쇄를 앞둔 영흥화력발전소, 전기차 전환이 불투명한 한국지엠이 위치한 지역이다. 인천지역본부는 지난해 노동정책협의회에서 충청남도가 운영하고 있는 정의로운 전환기금 설치를 요구했고, 자동차 산업 전환지도를 그려보자고 제안했다.

노동정책협의회가 순탄치는 않다. 이인화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본부장은 “지역본부의 욕심만큼 (논의) 속도가 안 난다”고 말했다. 처음 지역본부가 산업전환을 노동정책협의회 의제로 내밀었을 때만해도 인천시는 “당장 닥친 일은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의 생각은 달랐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는 산업전환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지금의 대응이 오히려 늦었다고 본다. 2~3년 전만 해도 영흥화력발전소 폐쇄는 누구도 꺼내지 못하는 말이었다. 그는 노동조합이 산업전환을 고민하는 건 “생존의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뿐만이 아니다. 노동계는 산업전환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사업으로 꼽아 행동에 나섰다. 이를 크게 대정부를 겨냥한 거버넌스 투쟁과 법·제도개선 요구, 사용자와의 교섭으로 나눠봤다.

노조의 대응① 거버넌스 참여와 법·제도 요구

앞선 기사에서 보았듯 노동계는 산업전환 거버넌스에 노동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동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정의로운 전환’은 산업전환을 대하는 노동계의 공통된 기조다.

탄소중립위원회에 참여하는 한국노총은 “노동계의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지 않은 기울어진 운동장 탄소중립위원회”를 바꾸려 시도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탄소중립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에게 탄소중립위원회 거버넌스 개선을 요구해왔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총괄기획위원회 산하에 총 8개 위원회를 둔다. 한국노총의 요구는 이중 취약산업·노동자·지역 보호방안을 논하는 공정전환위원회를 특별위원회로 재편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노동계 참여 인원을 현행 1명에서 3명으로 확대하고, 노동계와의 협의체를 매월 1회 정례화하자는 주장이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이 요구안을 가지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기후정의를 전면에 내걸고 지난해부터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중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는 시민사회단체와 ‘탄중위해체공대위’에 결합했다. 사용자 단체나 재벌, 친정부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탄소중립위원회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정부와 노정교섭으로 산업전환을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총괄 거버넌스는 이제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대통령 직속 ‘서비스산업 전환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요구한다. 서비스산업 전환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법·제도를 보완하고 부처별 역할도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은 “산업변화가 빠르고 고용감소가 가장 큰 산업이 서비스업이다. 정부는 공정한 산업전환을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공정한 전환을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 그 실천 중 하나는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노정교섭 틀 마련”이라고 말했다.

또한 노동계는 산업전환기 보완돼야 할 법·제도개선안을 국회와 정부에 전달하고 있다. 산업전환 실태조사를 진행해 구체적인 일자리 변동을 확인하고, 사회안전망을 대폭 강화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는 등의 요구들이 각 노동조합 단위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정부의 산업전환 정책은 계속 보완돼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의견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 기본법안’을 지난달 27일 발의했다. 산업전환 과정에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고, 고용노동정책을 수립해 고용안정과 양질의 일자리 전환을 이루자는 것이 법안의 기본 취지다.

이를 위해 정부는 5년마다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정의로운 일자리 위원회를 설치해 기후위기와 디지털 전환에 대한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정의로운 일자리 위원회에는 노동자를 비롯해 사용자, 자영업자, 시민사회단체 등도 참여한다. 만약 사용자가 사업과 관련한 중요한 계획을 세우는 경우 노동조합과 공동결정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노조의 대응 ② 교섭

지난달 21일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판매서비스노동조합 샤넬코리아지부가 무기한 파업을 중단하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샤넬코리아노사가 마련한 임단협 합의 내용에는 ‘오프라인 사업을 회사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로 하고, 이를 지원 및 조율하기 위한 노사간 대화를 분기별 진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은 그간 디지털 전환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화장품의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자 판매 노동자들의 임금은 줄어들었다. 이들이 판매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화장품 온라인 매출은 전시, 홍보, 상담, 샘플시연, AS, 컴플레인 처리 등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노동자들의 노동에 기반한다. 그래서 샤넬코리아지부는 온라인 판매 기여노동 인정을 중요한 의제로 두고 총파업을 진행했다.

샤넬코리아노사의 합의는 단위노동조합이 회사의 사업의 방향을 바꾼 사례다. 하지만 산업전환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업장이 이런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위에 산별노조와 총연맹은 개별 사업장이 교섭으로 산업전환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는 신기술 도입으로 노동조건이나 고용에 변화가 생길 때 사용자가 노동자와 협의를 해야 한다는 규정을 교섭공동지침으로 명문화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비율이 높아지며 발생하는 기업의 이익을 고용안정기금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에 대한 단체교섭과 단체교섭요구안은 향후 다양한 노동조합에서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산별중앙교섭에서 보건의료산업 노사는 공동으로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하기로 합의했다. 노사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연 1회 이상 기후위기 대응 교육을 하고, 저탄소 의료기관 실현을 위해 의료기관별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단위사업장에서는 전 직원이 기후위기 대응 세부방안을 사업장별로 마련해 실천한다.

금속노조도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와 지난해 10월 한국 산별노조 최초로 산별전환협약을 맺었다. 금속 노사는 산별전환협약을 통해 정부에 ▲사업재편·인력양성 등에 대한 지원 확대 ▲산업전환 대응 관련 정부 지원 정책·제도 개선 ▲정부·지방자치단체 참여 산업전환 대응 중층 협의체 마련 등을 공동요구하기로 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올해 단체교섭요구안에 기후위기와 관련한 내용을 넣을 예정이다. 사업장의 탄소지도, 탄소중립을 위한 사용자의 책임, 사업장의 탄소배출감소 계획 등이 요구안으로 고려되고 있다.

한국노총도 공동 임단투 지침에 산업전환 대응을 포함시킬 생각이다. 나병호 한국노총 금속노련 정책국장은 “산업전환의 내용을 단위 사업장과 공유하고, 실제로 산업전환이 닥친 사업장의 경우 구조조정을 막아낼 수 있도록 하는 단협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금속노조가 ‘희생과 파괴가 없는 노동참여 산업전환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금속노조
지난해 6월 금속노조가 ‘희생과 파괴가 없는 노동참여 산업전환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금속노조

조합원의 인식 수준 높이기 위해선
노동조합의 ‘주체적 혁신’ 필요

이처럼 노동조합은 산업전환에 나름 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현장의 인식 수준은 이에 발맞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민주노동연구원이 민주노총 조합원 84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100명 중 75명(75.4%)이 “(현재) 직접 피해는 없지만 (미래에) 피해가 우려된다”고 답했다.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조합원들 중 기후위기가 아직 나의 삶과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위험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아직 낮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나병호 정책국장은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사 현장에선 세대 간 산업전환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대부분 4050은 퇴직할 때까진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내 일이 아닌 것”이라며 “연맹 입장에선 이런 차이를 어떻게 하나로 묶어서 조직화할지 고민”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창근 연구위원은 “결국 구체적으로 위기를 인식해야 행동으로 나서기에 산업전환에 대한 인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 “그런데 이 부분은 뚜렷한 해결책이 있다기보다 노동조합 내·외부에서 계기를 계속 만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창근 연구위원은 노동조합의 ‘주체적 혁신’을 말했다. 그는 “사회 구조적인 측면의 투쟁도 해야겠지만 당장 강조하고 싶은 건 노동조합의 기본 단위인 사업장부터 기후위기에 대응해 나가는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우선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이 집단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이 절실하다는 교육을 해야 한다”며 “이외에도 노사가 협의해서 작업장의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거나 노동조합이 함께 대중교통 출근을 독려하는 등 작업장 수준의 기후위기 대응 실천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은 다양할 것”이라고 이창근 연구위원은 이야기했다.

이승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실장은 “기후위기가 우리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노동조합 안에서 계속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연장선상에서 민주노총이 ‘기후 총파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후위기가 노동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나 강도로 봤을 때 그 압력은 굉장히 클 것이다. 그래서 노정교섭, 고용보장 등 노동의 요구안을 묶어 총파업을 해보자는 이야길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전환에 노동이 참여한다는 것
= 노동의 요구가 실효성 있게 반영되는 것

게다가 노동 앞엔 ‘노동배제’라는 구조적인 벽도 놓여 있다. 민주노동연구원은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노동배제 체제는 ‘정의로운 전환’ 실현의 또 다른 구조적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배제는 중앙의 사회적대화기구 운영에서부터 기업 단위까지 매우 뿌리 깊게 내면화돼 있다”며 “사회적 협의를 한다면 당연히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한국 정부가 이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기후위기와 노동〉, 이창근·김선철·류승민·탁선호, 민주노동연구원, 2021)(이하 민주노동연구원 보고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이성희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저탄소화 속도는 자연적인 산업의 흐름이 아니라 정부 정책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 관련해서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여러 지원책을 내놨다”며 “산업전환이 정책 결정으로 이뤄지는 방식인 데다, 이 과정에서 고용 인원이 줄어든다. 당연히 노동조합이 참여하고 우리 몫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출발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노총이 2021년 발간한 <사람 중심 디지털 전환을 위한 정책과제> (이문호, 임운택, 이호창)에서는 “정부의 산업정책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정되고 있으므로 산업정책을 넘어 전반적인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이해와 개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고용 문제 해결을 염두에 둔 사회적 대화보다는 전반적인 사회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 일례로 코로나 19 이후 고용의제보다는 정부의 비상경제회의에 참석을 요구했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당위로서 참여에서 한 발 더 뻗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성찰해 봐야 할 문제는 산업전환에 노동이 참여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다. 이는 막연한 노동의 참여가 아니라 노동의 요구가 전환 과정에서 실효성 있게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유럽에선 노동계가 탈탄소 관련 정책기구 등에 참여해 활발한 논의와 수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고용을 지켜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탈탄소화를 하지 말라고 할 건가? 노동의 요구와 산업전환 사이에서 정밀하게 대안이 설계돼야 한다. 지금은 이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말했다.

노동이 산업전환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 노동조합도 공감한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실장은 “금융 다루는 전문가들이 대부분 외국 유학파들이다. 신자유주의 관념을 가지고 있고 전문적인 용어를 쏟아내는데, 노동조합이 대응할 담론이 형성되지 않으면 깰 수가 없다”며 “노동조합에 훌륭한 인재가 들어오기 위해선 어떻게 보면 진보운동의 자원을 축적하고 관리할 역량을 키워야 된다고 본다. 현재는 노조에 연구소도 없다. 산별 차원에서 있긴 하지만 약한 수준이다. 산업정책 담론을 바꿀 수 있을 만한 산별노조는 그리 많다고 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좀 잘해!’ 이상을 말하려면

노동은 부족하다. 준비도 늦었지만 묘수는 마땅치 않다. 지금이라도 경험과 역량을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 “정의로운 전환의 실현은 하나의 ‘장기적인 과정’, 즉 숱한 모순과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민주노동연구원 보고서) 이성희 정책국장은 “정부나 기업이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노동조합도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좀 잘해!’ 이러고만 있어서 안타깝다”며 “‘좀 잘해’ 이상이 되기 위해선 고민과 경험이 더 쌓여야 한다. 노동조합이 산업에 개입한 경험이 없기에 아직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못하지만 그래도 생각을 자주 하니까 발전하더라. 여러 고민을 자꾸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런 경험을 계속 쌓아가려 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키워가는 방법의 기본”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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