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⑦] 노동법에 뚫린 구멍 메워야 할 5년
[커버스토리⑦] 노동법에 뚫린 구멍 메워야 할 5년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2.08 10:38
  • 수정 2022.02.08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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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 모두 노동법 적용·초기업교섭 등 과제 산적
새 정부에서 노동관계법 개정 주요의제로 띄워야

대한민국의 5년, K자형 회복

코로나19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노동 취약계층을 집중 타격했고, 대면 서비스업 등은 침체기에 빠졌다. 전 세계 경제가 K자형 회복을 보일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G20 노동고용장관회의는 “사회정의 확대와 양질의 노동을 실현하게 할 사람 중심의 일관된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불평등‧양극화는 다음 정부가 맞닥뜨릴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도 70년이 다 돼 간다. 70년 동안 근로기준법은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기준이 돼 왔다. 대표적인 예외가 5인 미만 사업장이다. 1999년 헌법재판소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에 대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아울러 고려하면서 근로기준법의 법규범성을 실질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입법정책적 결정으로서 합리적 이유가 있다(헌재 1999.9.16. 선고 98헌마310)”는 판단이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에는 전제가 있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는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주52시간제와 대체공휴일법,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됐다. 단적으로 고용노동부의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에서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중 35.4%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였고, 작은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이 있음에도 국회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법 적용을 제외했다.

노동법에서 배제된 건 작은 사업장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늘어가는 특수고용노동자도 노동법상 근로자 개념에 포섭되는지 여부를 다퉈야 한다. 사용자와 전통적인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재택·원격으로 노동을 하거나, 임금이 노동시간에 비례하지 않는 노동자들 등이다.

또한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지난해 기준 14.2% 수준이다. 미조직 노동자가 훨씬 많은 상황에서는 조직된 노동의 단체협약이 다른 사업장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의 노동조건은 교섭을 통해 나아지는데,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은 그대로라면 둘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때문에 노동계는 기업별 교섭을 넘어서는 초기업교섭을 법제화하고, 단체협약의 효력을 확장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교섭 테두리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주장은 향후 5년 실현될 수 있을까.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19일 <‘위기의 시대, ‘의료 불평등 해소’, ‘정의로운 건강 대전환을 위한’을 위한 D-50 대선쟁점 토론회>에서 “노동 없는 대선만이 아니라 ‘집단적 노사관계개혁 논의가 없는 대선’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노동자를 위해 무엇을 해주겠다는 시혜성 공약을 넘쳐나는데, 조직 노동과 함께 집단적 노사관계 개혁을 통해 전체 노동문제를 풀어가겠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근로기준법에
모든 노동자 포함하기

다시 되짚어보자. 우리나라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이 대부분 적용되지 않는다. 정당한 이유 없이도 해고될 수 있고, 부당해고라는 개념이 없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이 불가능하다. 장시간 노동해도 연장근로수당이 미지급되고, 휴일에 일해도 휴일수당이 나오지 않는다. 연차수당도 지급되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다고 해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노동부장관에게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노동법에서의 차별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열악한 삶으로 몰아넣었다. 이현우 권리찾기유니온 부위원장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일부만 적용하도록 만든 법 때문에 부당하게 해고를 당해도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노동자성을 국가로부터 철저히 부정당하는 경험이었다”면서 “국가는 노동자의 노동권을 무시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을 거냐는 질문에 정치인들은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현우 부위원장은 권리찾기유니온을 만나기 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4번의 해고를 당했다.

이 같은 문제는 근로기준법 제11조를 개정하면 풀린다는 게 노동계의 의견이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적용 범위인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는 문장을 삭제하면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빠지자 권리찾기유니온이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 처벌, 5인미만 제외?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확산법’ 거부한다!”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빠지자 권리찾기유니온이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 처벌, 5인미만 제외?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확산법’ 거부한다!”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근로기준법의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이 협소하다는 점도 꾸준히 지적돼 왔다. 다양한 고용형태를 가진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이 포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하는 사람을 기존 노동법 체계로 포섭하는 것은 전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EU는 2019년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근로조건에 관한 지침’을 내리고 유럽연합 내 플랫폼 노동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고용형태에 ▲서면으로 된 근로조건 등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의무적 훈련을 무료로 받을 권리 ▲단체협약 체결권 등을 보장하도록 했다. 모든 EU회원국은 올해 8월 1일까지 이 지침을 수행할 의무를 가진다. OECD도 2019년 “고용 상 지위와 상관없이 노동법상 권리와 각종 보호기제가 회색지대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확대”하고 “노동관계법상 근로자 범주를 확장해 회색지대 노동자가 포섭될 수 있도록 할 것” 등을 권고하기도 했다.

기존 노동법에서 비정형 노동자들을 포괄하려면 근로기준법 제2조 1호인 근로자의 정의와 2호 사용자의 정의를 확장하면 된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2조 1항 1호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으로는 사업장에 종속되지 않은 자, 고용관계와 유사한 계약으로 수입이 발생하는 일하는 사람을 포괄할 수 없다. 그래서 제2조 1호에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문장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더불어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등 해당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와 “그밖에 노무수령자로서 이 법에 의하여 사용자 지위를 인정할 필요가 있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가 사용자가 되면 된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는 “전통적인 노동법 체계에서 이야기하는 노동자 개념에서 확대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 장치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가 화두다. 노동자 범주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들을 어떻게 공식부문으로 끌어올릴지 우리 사회와 다음 정부가 정리해야 할 문제다. 지금 여론에서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다음 정부에서 핵심 이슈로 부각이 될 것”이라며 “다음 정부에서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 같은 법제정을 통해 조금 낮은 수준의 사회적 최저기준을 정하는 방식을 먼저 시도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4년 특수고용노동자를 229만 6,775명이라고 추산했다. 이는 당시 전체 취업자의 8.9% 비중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2019년 통계청 사업체조사 기준 587만 7,000명이다. 전체 사업체 종사자의 26.5%에 해당하는 숫자다. 새로운 법을 제정해 테두리 밖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공약이 20대 대선에서 나온다. 그러나 새로운 법은 기존의 노동법보다 낮은 수준의 권리보장으로 제정될 수도 있다. 이는 또 다른 차별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일 수 있다. 노동법을 손보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판을 뒤집자! 세상을 바꾸자! 동네방네 공공성 구석구석 노동권 공공운수노조 총궐기’를 진행했다. 이날 총궐기 요구사항에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초기업교섭·노정교섭 제도화 등이 포함됐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판을 뒤집자! 세상을 바꾸자! 동네방네 공공성 구석구석 노동권 공공운수노조 총궐기’를 진행했다. 이날 총궐기 요구사항에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초기업교섭·노정교섭 제도화 등이 포함됐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키워드
초기업교섭·단체협약 효력확장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장기적으로는 고용형태가 계속 다변화돼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보호받지 못할 것이고, 향후 쟁점이 될 것”이라면서도, “그 와중에 우리나라 이중노동시장 해소 문제도 있다. 격차 해소는 우리나라의 여전한 지상과제인데, 그걸 어떻게 할지 현 상황에서 요원하다”고 말했다.

2021년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가장 높은’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조직률은 14.2%다.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과 기업별교섭체제로는 노동조합 있는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와의 격차도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안으로 기업별 교섭을 넘은 초기업교섭을 정부 차원에서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OECD도 2019년 산별교섭에 대해 “임금불평등을 줄이고 기업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플랫폼 노동의 등장 등 급변하는 노동환경에 노사 모두가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노동조합법 제30조 3항을 개정해 정부의 초기업 교섭에 대한 노력을 명시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을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에 따른 단체교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신설 2021년 1월 5일, 시행일 2021년 7월 6일)”는 내용이다.

이 조항에서 그치지 않고, 산별노조가 요구할 시 사용자가 교섭에 응할 의무를 부여하자는 게 노동계의 요구다. 실제로 교원노조법 제6조 1항에서는 “사립학교 설립·경영자는 전국 또는 시·도 단위로 연합해 (노동조합과의) 교섭의 응해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노동조합법에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정부 입장에서 초기업교섭을 활성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최영기 교수는 “초기업교섭은 노동조합 내부의 합의가 먼저라고 본다. 대기업들은 산별교섭으로 묶이면 임금이 앞서있기 때문에 항상 하후상박으로 갈 수밖에 없다. 대기업노조의 동의가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초기업교섭을 법으로 강제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업교섭 활성화에는 노동조합과 정부의 역할이 함께 강조된다. 차기 정부는 초기업교섭에 대한 미조직 노동자들의 관심을 법 개정을 통해 유도할 수 있다. 현행 노동조합법 제35조와 제36조에서는 단체협약에 대한 일반적 구속력과 지역적 구속력을 규정한다. 일반적 구속력 조항은 사업장 내에서 노동자 절반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을 때 다른 노동자에 대해서도 해당 단체협약을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지역적 구속력은 한 지역에서 종업하는 노동자 3분의 2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을 때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같은 지역에서 종업하는 노동자와 사용자에게 해당 단체협약을 적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일반적 구속력과 지역적 구속력 조항을 개정해 더 많은 노동자가 조직된 노동자의 단체협약을 적용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의견이다. ▲기업의 노동자 절반 이상에게 적용되는 단체협약 내용 중 근로대가성 임금을 제외한 가족수당, 복지수당, 휴일휴가, 복리후생, 안전보건 등을 간접고용 노동자와 자회사 노동자에게도 확대 적용 ▲산업·업종·지역단위에서 체결된 단체협약(초기업협약)에 대해서도 노동위원회 의결을 통해 당해 산업·업종·지역의 모든 노동자에게 확대 적용하도록 개정하는 것 등이다.

민주노동연구원은 “단체협약 적용률을 제고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 구속력 제도 및 효력 확장제도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체결 성과로 협약 체결 사용자의 모든 노동자에게 효력이 미치게 되므로 노동조합 교섭활동에 대한 미조직 노동자의 관심과 참여를 높일 수 있다”며 “특히 단체협약 효력확장이 활성화되면 기업 수준 단체교섭에서도 효력확장을 전제로 한 단체교섭 의제 확장이나 원청사용자 공동교섭, 지역 집단교섭과 같은 초기업 교섭전략도 용이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업교섭을 촉진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초기업교섭과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 재조명>, 이창근·권혜원·김미영·박주영·정경은·정흥준, 민주노동연구원, 2021).

노동관계법 제·개정을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처럼 준비 없이 선언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최영기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정책을 발표할 때 상당한 준비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유세하듯이 정책의 대상을 직접 앞에 놓고 선언을 해 버렸다. 그렇게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푸느라 정책적 에너지를 쏟고, 막상 민간부문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많이 못 했다”며 “다음 대통령에게는 찬 이성과 더운 가슴이 필요하다. 지금은 수면 아래 있지만, 노동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굉장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전략적이고 냉정하게 정치를 설계해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조언했다.

과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20대 대선에서 노동관계법·노사관계 정책은 적극적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상황이다. 노동법을 개정하겠다는 공약은 없고, 새로운 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법 테두리 안으로 넣겠다는 공약만이 나왔다. 초기업교섭과 단체협약 효력확장도 ‘약속’에서 더 구체화되지 못했다. 5년 전과 같이 선언만 반복된다면 향후 전망도 어둡다. 작은 사업장·비정형 노동자가 노동법에서 배제된 현실, 노동관계법 제·개정을 언젠가 하겠다는 대선 후보들의 다짐, 그 다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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