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⑧] 복지도 양극화,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커버스토리⑧] 복지도 양극화,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02.08 10:43
  • 수정 2022.02.08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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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를 위해 성장 모델을 바꿔보자는 상상력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를 해보자는 상상력

대한민국의 5년, K자형 회복

코로나19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노동 취약계층을 집중 타격했고, 대면 서비스업 등은 침체기에 빠졌다. 전 세계 경제가 K자형 회복을 보일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G20 노동고용장관회의는 “사회정의 확대와 양질의 노동을 실현하게 할 사람 중심의 일관된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불평등‧양극화는 다음 정부가 맞닥뜨릴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다.

사람들은 일자리에 관심이 많다. 일자리가 밥이고 가족을 지켜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의 계절이 찾아오면 그 숫자를 의심하면서도(몇 백만 개를 어떻게 만들어?) 몇 개의 어떤 일자리를 만들지에 시민의 관심은 쏠린다. 정치인들도 이런 시민의 관심에 부응해 혹은 이용해 일자리 공약에 심혈을 기울인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이 괜히 떠도는 말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일자리가 곧 경제이고, 일자리가 곧 복지”라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국민행복시대는 일자리로부터 시작된다. 일자리야말로 최고의 복지”라고 했다. 20대 대선 유력 주자 두 사람 모두 일자리를 강조한 셈이다.

그런데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주어진 일자리에서 열심히 일해도 삶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임금 격차, 소득 격차, 워킹푸어, 노인빈곤, 자살률 등이 문제라고 계속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것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대 대선 복지공약,
정의당과 국힘은 대척점... 민주당은 가운데

앞서 대선 후보 공약 비교③에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국민의당 네 정당이 후보들을 통해 20대 대선에 내놓은 복지 공약을 비교해봤다. 비슷한 듯 다르다. 다른 지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비슷한 듯 다른 까닭은 각 정당이 복지를 바라보는 관점 때문이었다.

윤홍식 교수는 “복지가 여전히 성장과 대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게 정의당을 제외하고 나머지 후보들의 공약들에서 나타나는 일관적인 프레임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복지가 여전히 성장과 대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은 한국의 역사와 연관돼 있다는 게 윤홍식 교수의 설명이다. “60년대 본격적인 경제 개발을 시작으로 빈곤과 불평등을 줄여나간 것이다. 국가가 복지를 확대한 것이 아니라 성장이 일자리를 만들고 그 일자리가 장시간 저임금 노동과 결합하면서 빈곤에서 벗어난 역사를 수십 년 동안 가지고 있다”며 “이러한 개발 국가에 대한 신화가 계속 존재해서 복지를 이야기하지만 그 복지가 성장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 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윤홍식 교수는 “상대적으로 정의당의 경우 보편적 정책을 많이 내놨다. 특징 중 하나는 취약계층 소득보장을 위해 최소소득보장제도와 함께 전국민 사회보험을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보편적인 사회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다. 사민주의식, 북유럽식 보편주의 정책들을 정의당에서는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 반대편에 국민의힘이 있다. 복지를 늘리겠다고 이야기는 하고 있다. 어떻게 늘릴 거냐의 문제는 정의당 혹은 민주당과 색깔이 다르다. 공공부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의 수준을 조금만 높이는 방식으로 하겠다고 한다. 정의당과 민주당의 경우 공공의료 확대하겠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국민의힘 경우 민간과 공공이 연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국가 책임은 취약계층에 선별적으로 집중하고 나머지 부분은 민간과 국가가 협력해 현재 직면한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런 지형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당과 국민의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는 게 윤홍식 교수의 생각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복지 프레임도 성장 우선의 방향으로 가 있지만 복지 공약의 세부 내용에서는 보편 복지 확대와 공공성 강화 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복지의 양극화,
기존 일자리-복지 모델 때문

김유선, 이슈페이퍼 2021-18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슈페이퍼 2021-18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사회보험 및 노동조건 적용률은 격차가 뚜렷하다. 위 그림을 보자. 2001년부터 2021년까지 20년 동안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적용 및 노동조건 적용이 소폭 개선은 되고 있으나 여전히 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정규직과의 격차는 한눈에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다. 마치 투명한 장벽이 있는 듯 정규직 수준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장과 일자리에 의존한 기존의 복지 체제로는 진정한 의미의 복지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인 일자리, 즉 괜찮은 사회보장과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일자리가 상당히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안정적인 일자리는 상당히 적다. OECD에서 펴낸 ‘한 눈에 보는 기업가정신 보고서(Entrepreneurship at a Glance) 2017’에 따르면 대기업(250명 이상 고용) 고용 비율 순위에서 한국은 12.8%로 그리스(11.6%) 다음으로 최하위권이다. 미국은 58.7%, 일본은 47.2%에 달한다.

물론 기존의 복지 체제에서 폭넓은 복지 정책을 펼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일자리에 있지 않은 계층과 취약계층에게 복지를 집중하면 된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소득 격차는 계속 줄어들며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개선된 모습이 나타났다. 이를 윤홍식 교수는 “저소득계층이나 취약계층에게 지원과 복지급여를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시장소득 기준, 2017~2020년간 소득 분배 정도는 개선되지 않거나 소폭 상승했지만,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봤을 때는 격차가 완화됐다.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지니계수는 2016년 0.355에서 2020년 0.331로 꾸준히 떨어졌다(지니계수가 0에 가까울수록 평등). 소득5분위배율은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2016년 6.98배에서 2020년 5.85배로 줄었다. 하위 20%(1분위)보다 상위 20%(5분위)가 가처분소득을 2016년에는 6.98배 더 많이 가졌는데, 2020년에는 5.85배 더 많이 가졌다는 뜻이다. 전체 인구 중 빈곤 위험에 처한 인구 비율인 상대적 빈곤율도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2016년 17.6%에서 2020년 15.3%로 꾸준히 낮아졌다.

그러나 취약계층에게만 복지를 집중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지속가능성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조세 저항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서 복지 재원을 늘려가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윤홍식 교수는 “취약계층에게 적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괜찮은 수준의 지원이나 복지급여를 줘야 하는데 재원은 중산층에서 나온다”며 “그렇게 되면 세금을 내는 사람과 혜택을 받는 사람이 달라지면서 취약계층에 집중한다고 하지만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중심이 아닌,
그리고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복지

그렇다면 우선 한국 사회의 DNA에 각인된 성장 방식을 바꿔야 한다. 대기업이 자동화 중심으로 핵심 인력만 남긴 채 핵심 소재, 부품, 장비를 수입해서 생산품을 만들고 수출해 성장하는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국내에서 핵심 소재, 부품, 장비를 소화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비율을 늘리는 것이 구조 변화의 핵심이다. 독일과 일본의 경우 해외 부품의존도가 10% 정도이고 한국의 경우 40%에 달한다. 구조를 변화 시키면 중소기업의 가치가 높아져 중소기업에도 괜찮은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다.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은 괜찮은 사회보호망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고 앞서 봤던 그래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사회보험 적용률 격차가 줄어들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다.

더불어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일자리가 아닌 사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소 원장은 “헌법에 일자리 가진 사람만 보호하라는 이야기는 없다”며 “노동자가 아니면 사회보험을 왜 적용받지 못할까. 나머지 사람들은 안 아픈가”라고 반문했다. 이를 확장해서 생각해본다면 비정규직이어서 사회보험 적용률이 현저히 낮을 이유가 없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디지털 전환기에 늘어나는 플랫폼노동자, 긱(Gig)노동자 등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보호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다. 최근 논의 되고 있는 전국민 고용보험이나 전국민 사회보험이 그 예다.

ⓒ 참여연대
ⓒ 참여연대

불평등을 완화하는 복지,
복지를 위해 다른 성장을 상상하자

불평등과 격차는 문제다. 많은 연구들이 좁혀지지 않는 격차가 소득 하위 계층을 정치 참여에서 배제시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지운다고 한다. 정치 참여뿐 아니라 사회 참여에서도 그렇다. 격차는 사회적 신뢰와 사회자본을 감소시켜 자살률, 범죄율, 살인율을 높인다고 한다. 사회 구성원들 사잉의 과도한 경쟁도 부추긴다고 한다. 정신질환 유발률도 높인다. 불안, 우울, 스트레스, 자살, 비만 같은 건강 문제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불평등과 격차가 증가하면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사회 통합을 방해하고, 사회적인 병리 현상과 사회 해체 현상을 낳는다는 것이다.

복지는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복지 정책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방안이다. 그러니 복지 정책에는 불평등과 격차를 완화하는 방안들이 담겨야 한다. 불평등과 격차로 빚어지는 문제는 행복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복지 정책은 불평등과 격차를 완화하는 데 그다지 효과가 뛰어나지 않았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있다. ‘복지를 위해 성장모델을 바꾸자, 복지를 위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바꿔보자,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행복할 수 있도록 바꿔보자’는 정치적 상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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