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대선 후보 인터뷰] “땀의 가치 지키는 정치를 보여주마”
[진보정당 대선 후보 인터뷰] “땀의 가치 지키는 정치를 보여주마”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2.02 14:55
  • 수정 2022.02.10 0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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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재연 진보당 20대 대선 후보
​​​​“적정하고 평등한 노동이 가져올 행복한 삶을 지향한다”

20대 대통령 선거일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진보정당에 관한 관심은 낮다. 역전의 한 방을 노리기는 어려운 현실, 김재연 진보당 20대 대선후보는 이번 선거를 ‘노동자 정당’으로서 외연을 확장할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당 밖에 있는 노동자들로부터 인정받는 게 이번 선거의 목표 중 하나다.”

김재연 후보는 노동자라는 단어조차 어색해하는 사람들에게 진보정치, 노동자 정치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한다. 임금보다 불로소득이 삶을 지탱해줄 유일한 출구처럼 보이는 현실을 바꾸는 정치를 펼치겠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엔 “정치가 땀의 가치를 지켜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 인터뷰는 1월 24일 진보당 당사에서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노동중심 산업전환이 과제,
기업별 교섭 넘어설 노동조합 필요”

- 김재연 후보가 중장기적으로 중요하게 보는 노동 키워드를 꼽자면?

노동중심 산업전환이다. 이미 자본은 전환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유럽의 자동차 판매 기준 등 이른바 글로벌스탠다드에 맞추기 위한 변화를 꾀하고 있는데, 노동자는 배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산업전환이 누구를 위한 전환인지 묻게 된다. 자본은 몸집을 키우고 살아남을지라도,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더 많은 노동에 시달린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너무나 동떨어진다. 정부와 정치의 영역에서 노동중심의 산업전환을 만들어 가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던져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노동중심 산업전환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새로운 단어는 아니지만, 노동조합이 중요하다. 기업별 교섭을 중시하는 지금의 노동조합체제를 바꿔야 한다. 또한 계속해서 늘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 이를테면 지난 몇 년간 업체별로 형성된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이 하나의 테두리로 모여서 전국 조직인 ‘배달플랫폼노동조합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마찬가지로 돌봄 영역에서도 하나로 묶기 힘든 여러 직군의 돌봄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노동조합의 형태를 갖추고, 강화하고, 조직률을 높여나가야 노동 중심의 산업 전환이 가능해진다.

노동과 복지에서 강조할 공약은 ‘돌봄’
“주체들의 조직화와 노정교섭 도입이 핵심”

- 노동과 복지 공약 중 유권자에게 가장 알리고 싶은 공약을 하나씩 꼽아서 설명해 달라.

‘돌봄’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어서 말씀드리겠다. 먼저 소개할 공약은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돌봄정책기본법’이다. 다른 하나는 돌봄노동자의 노정교섭을 법제화하는 ‘돌봄노동자기본법’이다. 돌봄노동의 중요성은 더 강조하지 않아도 될 정도지만, 돌봄노동을 아무나 하는 허드렛일로 치부하는 생각, 그리고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돌봄정책기본법’을 제정해서 돌봄을 모든 국민의 기본권으로 헌법에 명시하고,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민간에 떠넘기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진보당이 생각하는 기본 골격이다.

이러한 돌봄의 국가책임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돌봄노동자의 처우개선이 필수적이다. 노정교섭을 보장해서 돌봄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직접 전달하도록 해야 한다. ‘돌봄노동자기본법’에 이러한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돌봄노동의 경력 인정과 최소 근로시간 보장, 최저임금의 130%를 돌봄임금으로 규정했다. 말씀드린 두 법은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성사되기도 했다.

- 돌봄노동은 다른 후보들도 얘기했지만, 김재연 후보는 특히 노정교섭을 강조하는 것 같다.

진보당은 오랜 기간 여러 돌봄노동조합과 함께 공약을 만들었다. 그동안 하찮은 대우를 받았던 비용으로 환산한 돌봄 노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높게 책정돼야 전체 돌봄노동자의 가치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정교섭이 중요하다. 이 문제로 가장 고통받던 돌봄노동자나 부불노동(unpaid labor) 여성들이 돌봄의 국가책임을 요구하는 공동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 ‘국가고용책임제’를 공약했다. 그 중 ‘일자리은행’과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 제공”을 명시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 달라.

일자리은행은 일자리를 취합하고 제공해주는 곳이다. 현재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같은 곳에서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그 영역을 확대해서 국가와 지자체가 돌봄·가사·생태환경 등 지역사회에 필요한 공공서비스 부분의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설명에 덧붙여, 제가 처음 출마할 때부터 주4일제 얘기를 해왔다. 진보당이 말하는 주4일제는 정부가 지원해서라도 대기업과 중소사업장 모두 노동시간 단축을 평등하게 이루는 것이다. 그렇게 노동시간 단축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진다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100만 개 정도다. 그 또한 일자리은행에 적립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나 청년들에게 반드시 질 좋은 일자리를 담보하도록 국가책임을 명시해야한다. 지금은 1년짜리 청년인턴이나 공공기관의 허드렛일 등 일종의 용돈벌이를 일자리라 말하고 계량화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걸 넘어서 국가고용책임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일자리를 국가가 확보하자는 거다.

- 생태환경 쪽에서 만들어질 일은 뭐가 있을까? 여러 곳에서 녹색 일자리를 말하지만, 아직 불분명하다.

이를테면 자원 재활용에 관한 영역이라든지 지역사회의 에너지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영역 등이 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영역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현 정부가 그린뉴딜을 표방했지만, 아직은 생태환경 영역에 구체적 기조를 세우지 못한 듯하다.

녹색 산업이라는 얘기를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도 녹색 산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보당이 생각하는 생태환경, 그리고 새로운 기후위기 대응 기조는 그것과 전혀 다르다. 이명박·문재인 정부가 녹색성장이라고 얘기했는데, 성장 정책으로 기후위기를 막겠다는 건 상당한 모순이다. 성장을 멈춰야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보편복지의 실현 속도,
진보정당에 대한 국민 지지도에 달려있어“

- “모든 생애주기에 질 높은 삶을 위한 보편복지 실현”을 공약했다. ‘장제비 지원과 공공상조회 설립’처럼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국가의 책임을 명시했다. 한국 사회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일까?

진보정치가 보편복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벌써 20년이다. 처음에 무상교육으로 대변되는 보편복지의 상을 우리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보편복지가 과연 실현 가능하냐는 이른바 색깔론에 시달렸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정치권 안에서도 그러한 공방의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보편복지는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 되었다. 진보정치가 만들어낸 하나의 소중한 성과다. 국가는 사각지대 없는 구체적이고 꼼꼼한 보편복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독사 소식이 보도될 때, 온라인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구청은 뭘 했느냐’는 지적이 있다. 보편복지 실현을 위한 공공의 역할 확대가 강하게 주문되는 것이라고 본다. 더 이상 개인의 경제 여건이나 가족의 역할 등으로 삶의 질이 규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복지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제 공약을 국민도 상당히 공감할 거라고 본다.

- 높은 수준의 복지 정책을 실현할 계획을 들려 달라.

현재 여러 복지서비스가 다양한 부처로 흩어져서,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만들고 있다. 돌봄부 신설과 돌봄부 장관 임명 등 복지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컨트롤타워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그래야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봄, 의료, 교육 등 각 영역에서 다양한 복지정책을 펼칠 수 있다.

또 하나, 이른바 ‘정상가족’이라고 인지됐던 가족 형태를 취하지 않는, 취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1인가구나 비혼가구 등도 꼼꼼히 챙길 법과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 꼼꼼한 복지 정책에는 항상 재정과 조세의 문제가 뒤따른다.

재정에 관한 걱정을 많이들 한다. 우리가 제시하는 해법은 크게 두 가지다. 부유세와 국방예산삭감이다. 진보정당이 오랫동안 얘기해왔던 일종의 모범답안지인데,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기 때문에 정말로 이행될 경우 어떤 변화가 있을지 국민에게 꼭 좀 보여드리고 싶다.

부유세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진보당은 순 자산 100억 원 이상의 슈퍼리치에 대한 과세를 말하고 있다. 국방비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에 대해 정치권 내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게 참으로 의문이다.

진보당은 향후 국방개혁 과정에서 모병제를 전면 실시하고, 그 과정에서 장교 수를 대대적으로 줄이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국방비를 중장기적으로 GDP 대비 1.3%, 정부 재정 대비 7%로 단계적으로 감축해서 복지예산으로 확충해야 한다.

물론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과 합의가 당연히 필요하다. 진보정당이 국민에게 얼마나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보편복지 실현의 속도가 정해지지 않을까 한다.

“일의 기쁨과 노동자의 성장 깨뜨리는 노동은 의미 없어”

- 한국 사회에선 노동을 힘들고 고된 것, 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노동을 표방하는 정당의 대선 후보로서, 과연 노동을 통해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보는가?

노동은 지금까지 생계 유지수단으로써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측면이 강하다. 노동이란 게 고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히 기쁨을 느끼고, 노동자끼리 연대와 협력을 통해 함께 성장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공식을 깨뜨리는 노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1~2년 전에 기본소득 논쟁이 있었는데, 노동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기본소득 지급은 반대한다. 일하지 않아도, 일할 수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픈 일을 적당한 양만큼 하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다. 그래야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하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도 바람직하게 정립될 수 있다.

적당히 일해도 되는, 적게 일해도 되는, 그러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주4일제를 공약에 넣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과로사회를 벗어나려면 반드시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노동자들은 요구한다. 평등하고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를 진보당이 말하는 이유다.

- 적당한 노동 시간과 강도에 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겠다.

일단 이상향은 아닐지라도, 먼저 그런 사회를 구현한 노동선진국이 있는 건 사실이다. 북유럽의 경우 오후 4시에 퇴근한 아빠들이 아이를 돌본다. 그런 나라를 보면 성평등 지수나 노동자의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훨씬 높다. 물론 한국사회의 지형에 맞게 자리 잡도록 보완해야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적은 노동시간과 남녀 간 평등한 노동이 어떤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상상은 해봐야 한다. 부와 재정이 일방과 극소수의 기득권에 쏠려 있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게 문제 해결의 열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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