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⑥] ‘양질’의 일자리 규정하는 건 ‘노동’
[커버스토리⑥] ‘양질’의 일자리 규정하는 건 ‘노동’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2.02.08 10:35
  • 수정 2022.02.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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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자형 경제회복...“양질의 노동 실현할 사람 중심 정책 필요”
“불평등 불러온 한국 성장 방식 바꿔야”

대한민국의 5년, K자형 회복

코로나19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노동 취약계층을 집중 타격했고, 대면 서비스업 등은 침체기에 빠졌다. 전 세계 경제가 K자형 회복을 보일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G20 노동고용장관회의는 “사회정의 확대와 양질의 노동을 실현하게 할 사람 중심의 일관된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불평등‧양극화는 다음 정부가 맞닥뜨릴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다.

양극화는 한국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0 보고서’를 보자. 2019년 우리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6.0점(1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OECD 37개국 중 34위에 불과하다. 주목할 부분은 소득 수준에 따른 차이다. 가구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저소득층은 5.3점인데 비해, 600만 원 이상인 고소득층은 6.2점을 기록했다. 400~600만 원 미만 집단에서 점수는 소폭(0.1) 감소했지만, 삶의 만족도는 소득이 증가할수록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출처: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
출처: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

양극화의 폐해를 알리는 보다 단적인 지표가 있다. 자살률이다. 작년 한국금융연구원(KIF)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경제 문제와 자살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확인됐다. 건강보험료 기준으로 소득을 20분위로 나눴을 때, 가장 낮은 집단에 속하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자살사망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38.2명이다. 소득 중상위층으로 구분되는 11~20분위보다 2.5배 높다. 경제 문제는 21~60세 남성에게 1순위 자살 동기이기도 하다. 같은 연령대의 여성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1위는 정신적 문제).

ⓒ 한국금융연구원(KIF), 경제위기 대응정책과 자살사망

특히 소득감소 충격이 자살률의 급상승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감소로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된 경우에 자살률은 124명으로 급증했다. 송민기 KIF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자살 문제가 또 한 번 악화되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현재 국가 위상에 부합하는 성공적인 경제위기 대응 정책으로 평가될 수 있도록 정책 목표 순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IMF 외환위기 등) 경제위기를 겪을 때마다 현저하게 상승한 결과 주요국 대비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을 장기간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2019년 기준 OECD 국가 중 2위다. 같은 해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만 3,799명이다. 전체 인구의 0.026% 수준이지만, 심각성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수치보다 크다. 2011년 조사에 의하면, 18~74세 기준 자살사망자 수 자체는 인구 대비 0.04%에 불과했지만, 자살사망자의 6.9배에 해당하는 인구가 1년 이내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사망자가의 77배에 해당하는 인구가 살면서 자살을 시도해본 자살 고위험군이며, 360배에 해당하는 인구가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것으로 파악됐다. 모두 합하면 약 680만 명이다. 송민기 연구위원은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가족 및 지인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자살사망은 광범위한 국민의 후생과 직결되는 거대한 문제”라고 했다.

‘K자형 회복’ 맞닥뜨릴 차기 정부
“더디고 불균등한 일자리 회복, 빈곤 확대 위험”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소득 감소 충격을 완화하고, 취약 계층의 소득을 끌어올릴 때 국민 삶의 만족도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의 59번째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20년 9월. 당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K자형 회복’을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전체적으로 경제가 회복하겠지만 기업‧산업‧계층 간 경제 양극화는 심화될 거란 주장이다.

‘K자형 회복’은 한국사회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근로소득 불평등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악화했다. 2010년부터 꾸준히 개선되던 근로소득 10분위 배율과 지니계수는 2020년부터 다시 나빠졌다. 코로나19 이후 상위계층의 근로소득 증가율은 높아졌지만, 하위계층의 증가율은 하락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생산‧고용 위축은 재택근무가 용이한 사무직보다 대면서비스업에 집중됐다. 디지털전환 역량이 높은 업종과 그렇지 못한 업종 간 피해가 극명하게 나뉜 셈이다. 특히 고용은 전반적으로 평균임금이 낮은 산업‧직업 등에서 더 많이 감소했다.

주요 20개국 노동조합협의체(L20)는 지난해 “더디고 불균등한 일자리 회복은 상처를 오래 지속시키고 빈곤을 확대할 위험이 있으며, UN 지속가능목표와 파리협정 약속의 이행에서 더욱 멀어지게 한다”면서 “불균등하고 취약한 회복은 국내와 국가 간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기후위기와 디지털전환이라는 긴급한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게 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우 포퓰리즘의 등장을 가속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G20 노동고용장관회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을 악화시켜 왔음을 인지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정의 확대와 양질의 노동을 실현할 사람 중심의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K자형 회복’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는 차기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임금격차 불러온 한국의 성장 방식

임금격차 해소는 양극화 문제의 주요 과제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의 70%가 ‘임금노동자’로, 노동을 통해서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소득을 불린다. 사회 초년생이나 부동산 등 별도의 소득 수단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임금은 특히 중요하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중요한 이유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향후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쪽에서 더 많은 일자리 창출 기회가 생긴다”며 “중소기업이 살아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중소기업은 한국에서 일자리의 보고로 거론된다. 2019년 국내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9%에 달한다. 중소기업 종사자는 전체 기업 종사자의 82.7%(약 1,744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늘어난 일자리 수도 중소기업은 45만개에 달했지만, 대기업은 6만 개에 그쳤다.

일자리의 중축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이지만, 같은 해 매출액은 전체 기업의 48.7%에 그쳤다. 달리 말하면 0.1%에 불과한 대기업이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가는 셈이다. 이는 중소기업의 낮은 생산성과 그로 인한 대-중소기업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이유로 중소기업은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를 향후 5년간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꼽았다.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구조는 대기업이 제조업 중심으로 ‘신경영전략’을 채택한 1990년대 이후 고착됐다. 신경영전략의 핵심은 생산의 자동화다. 신기술 도입으로 노동력 절감 효과에 기초해 생산에 투여되는 노동력을 유연화하는 것이다. 즉 생산에 필요한 최소한의 노동량만을 고용하고 경기변동에 따라서 요구되는 노동량의 증가는 주변부 노동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노동력 활용의 경직성을 탈피하려는 전략이다. 그 때문에 자본 측에서는 수량적 유연성을 달성하기 위해 임시직, 파견근로, 파트타임 근무제 등 다양한 고용형태를 개발함으로써 노동자의 고용문제를 유발시킨다(‘신경영전략과 기업문화’, 민주노총, 1999).

대기업의 외주화가 확대되고 원‧하청 구조가 고착화된 것도 이 시기부터다. 원청인 대기업은 하청인 중소기업에 제품 단가를 낮게 정하는 등 불공정 거래로 수익을 극대화했다. 반면 하청기업은 경영악화를 막고 이윤을 늘리기 위해서 자사의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책정하게 됐다.

이문호 소장은 “중소기업이 혁신하려면 인력확보, 연구개발 등에 많은 재정과 투자가 필요한데, 지금처럼 중소기업을 쥐어짜면 혁신을 위한 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산업전환 시기, 원‧하청이 함께 혁신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산업생태계가 붕괴되기 쉽다. 산업 생태계에서 대기업이 해야 할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질’의 일자리 규정하는 건 ‘노동기본권’”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그렇다면 대‧중소기업 간의 불공정을 해소하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보장할 수 있을까? 노동을 배제하는 신경영전략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라면 단언하기 어렵다.

먼저 한국의 자동화율을 보자. 노동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 도입 대수를 나타내는 로봇밀도에서 한국은 세계 1위를 차지한다. 한국의 로봇밀도는 가파르게 증가하며 2018~2019년을 제외하면 2010년부터 줄곧 1위를 차지해왔다. 노동자를 자동화 기계로 대체하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의미다. 2021년 한국의 로봇밀도는 932대로 세계 평균(126대)의 7.4배에 달한다. 국제로봇연맹(IFR)은 한국의 로봇밀도가 연평균 8%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산업 전반으로 자동화가 번지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노동자보다 로봇 도입에 집중하는 기존의 성장 방식을 따라간다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요원해진다.

“자동화를 급격히 늘린 결과 제조업에서 나온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90년대 들어서서 ‘나쁜 일자리’가 늘어났다. IMF 외환위기에 결정적으로 파견법 제정 등 노동시장 유연화에 합의하면서 (비정규직은) 더 많아졌다.” 윤홍식 교수의 말이다. “이와 같은 성장 방식으로 한국은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양극화는 심화됐다. 지금 상태라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노동력과 자동화가 균형을 맞추는 성장”을 강조한 윤홍식 교수는 숙련 노동에 기초한 성장 방식을 채택한 독일 모델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독일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서 새로운 산업정책인 ‘인더스트리 4.0’을 수립했다. 핵심은 높은 기술력으로 고품질의 상품을 만들어낼 인력 양성에 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 새로운 직무역량을 습득하지 못한 노동자는 도태될 수 있다. 독일 중소기업은 이를 대비해 직업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제조업 노동자에게 변함없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재숙련 노동자를 중심으로 산업 경쟁력 강화를 꾀한다. 숙련 노동을 기반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설계다.

20대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디지털과 탈탄소로 대표되는 신산업을 육성해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공약했지만, 과연 양질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디지털과 녹색 분야에서 일자리가 생길지라도, 몇몇 엔지니어를 제외하면 저숙련‧단순작업일 확률이 높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데이터 댐’을 발표하면서 대학생들을 채용했는데, 대다수가 허드렛일을 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데이터 댐은 데이터 수집·가공·거래·활용기반을 강화하여 데이터 경제를 가속화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양질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실제 업무는 ‘데이터 레이블링’ 등 지능형 알고리즘 분석을 돕는 단순 보조업무에 그쳤다는 지적이 있다.

박용철 소장은 “일자리의 내용을 속속들이 규정하는 건 노동이다. 양질의 일자리에서 ‘양질’은 노동기본권이 얼마나 작동하느냐에 달려있다. 산업안전, 임금보장, 고용안정 등이 핵심 척도다. 양질의 일자리를 공약하려면 노동기본권에 관한 정책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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