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택시기사님은 하이로드를 달릴 수 있을까요?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택시기사님은 하이로드를 달릴 수 있을까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3.21 08:26
  • 수정 2022.03.21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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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익산산업단지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익산역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 버릇처럼 카카오티를 켰습니다. 그 순간 “어디까지 가시나?” 머리 희끗한 택시기사님이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엉겁결에 하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택시에 올라탔습니다.

초행길은 사람을 불안하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님은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으셨지요. 영업수완이 보통이 아닌 택시기사님을 상대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지도앱에 손가락이 닿았습니다. 역시나 지도앱에서 알려주는 길과는 다르게 화살표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내비랑 다른 길로 가는데, 혹시 잘 가고 있는 거 맞나요?”

“옛날 한일내장, 거기 가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익산 시내가 원형이에요. 내비 찍으면 저기 골목길로 돌아가라고 가르쳐줘요, 그 말대로 갈 필요가 없거든. 그냥 여기서 직진해도 돼요.”

익산 출장을 마치고 자정을 넘겨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집까지는 차로 40분 거리. 버스 정류장 앞에서 택시를 잡았습니다. 서울의 택시기사님은 두 개의 휴대폰으로 카카오티와 티맵을 함께 켜두고 있었습니다. 카카오티에 목적지를 입력하자 화면에 파란색으로 경로가 표시됐습니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습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앱을 두 개나 쓰는 이유가 있어요?”

“그게요. 새벽에 운전하다가 잘못하면 카메라에 다 걸려버려요. (전방에 이동식 과속카메라 단속구간입니다) 여기 카메라 있잖아요? 안 썼으면 그냥 지나가버릴 뻔한 거죠. 요즘은 내비에 의존하게 돼요. 하다 보니 그게 가장 빠른 길이더라고요.”

플랫폼 기술의 도입은 택시기사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손님들은 익산을 손금 보듯 훤히 꿰뚫고 있는 택시기사님보다 앱을 더 믿게 됐습니다. 교통이 복잡한 서울에서는 택시기사님조차도 자신의 경험칙보다 알고리즘을 더 신뢰합니다. 사람보다 앱을 더 신뢰하는 세상에서 택시기사님들은 종종 ‘무례함’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요. 택시를 콜해놓고 담배 한 대 피우고 가자고 해요. 담배 안 피우고 타면 안 되냐고 하면 막 뭐라고 그래요. 가끔 택시기사를 자기 종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기사는 종이 아니거든요. 똑같이 인격이 있는 사람인데.”

무인 택시도 돌아다니고 있다는데. 기술 발전 앞에서 택시기사님들은 그저 퇴장해야 하는 걸까요? 여러 생각이 드는 차에 이번엔 거제 출장이 생겼습니다. 거제의 택시기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제에 택시가 650대인데 그중에 카카오티 쓰는 사람이 50명밖에 안 돼요. 50대 가지고는 배차가 안 되잖습니까? 그러니까 손님들도 안 쓰는 거죠. 택시는 체력 싸움이에요. 카카오티로 하루에 돈 4~5만 원 더 벌겠다고 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대도시에서는 버는 돈이 다르긴 다르다던데. 거제는 섬이니까.”

상황과 조건은 다르지만, 그래도 기술이 가리키는 방향과는 다른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의 경제성장 전략을 ‘하이로드’라고 말합니다. 노동자의 숙련을 더욱 향상시켜(고숙련), 높은 품질과 서비스를 지향하고(고부가가치), 성장의 몫을 다시 노동자와 나누는(고임금) 형태입니다. ‘하이로드’를 달리는 노동자는 신기술 도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술 자체는 그저 가치중립적인 도구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이로드’는 자연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 노동자들의 기술, 숙련을 주목한 이유입니다. 하이로드를 달리다 보면 택시기사님은 택시기사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숙련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는 적어도 택시기사님들이 무례함을 느끼는 상황이 적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