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④] 떠오르는 스마트홈 산업, 스마트하지 않은 노동 변화
[커버스토리④] 떠오르는 스마트홈 산업, 스마트하지 않은 노동 변화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3.22 13:00
  • 수정 2022.03.2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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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홈, 융·복합 산업으로 성장 잠재력 커”
노동자 요구받는 숙련 수준 높아졌지만, 보상 연계는 안 돼

숙련의 변화, 노동의 전략

“일은 인생이죠. 이제 와서 발을 뺀다는 건 인생을 망가뜨리는 거랑 다름없어요.”

칼 가는 장인. 지난해 1월 ‘일과나’ 커버스토리 취재로 한칼 전종렬 대표를 만났다. 칼 가는 일은 그에게 인생과도 같았다. 일과 나는 분리할 수 없다. 노동자의 몸에 깃들어 있는 숙련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일이 변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여파다. 이제와 발을 뺄 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발을 빼야만 하는 상황이 예측되고 있다. 노동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커버스토리④ 숙련의 변화 : 스마트홈 산업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유망한 스마트홈 산업
25년 31조 원 규모 예상

“작은 방 불 켜줘”, “에어컨 제습 모드로 바꿔줘”, “로봇청소기 충전해줘.” 조명, 에어컨, 로봇청소기가 자동으로 움직인다. 집 안에 각종 전자기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말 한마디에 반응할 수 있는 똑똑한 집, ‘스마트홈’ 산업은 이른바 유망한 산업이다.

백승렬 어고노믹스 대표는 “글로벌 스마트홈 서비스 플랫폼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은 스타트업을 인수 합병해 핵심 기술을 확보해 나감과 동시에 글로벌 산업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대기업이 급속도로 스마트홈 산업에 진출하고 있고, 디지털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기술적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도 “스마트홈은 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융·복합적 산업으로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며 “2017~2024년까지 글로벌 시장은 연간 22% 이상의 성장률이 예상된다”고 했다.

한국스마트홈산업협회의 ‘국내 스마트홈 산업 동향조사 결과’(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마트홈 시장 규모는 연평균 9.5%의 성장률로 2017년 약 15조 원에서 2025년 약 31조 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스마트홈 이용 가구는 2016년 135만 가구에서 연평균 35.5% 증가해 2021년 617만 가구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하지 않은
노동의 변화

기술 변화에 따라 노동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설치·수리기사의 노동이 대표적이다. LG유플러스의 경우 2016년부터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제유곤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사무국장은 “SKT, KT 등 통신 대기업들은 통신비로 충분히 먹거리가 발생할 수 있지만 만년 3위인 LG유플러스는 유선사업 부문에서 더 이상 사업적 확장성을 찾지 못했다”며 “(LG유플러스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사물인터넷(IoT)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제품들은 쏟아졌다. 제유곤 사무처장은 “LG유플러스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수많은 IoT 상품들을 실험적으로 내놨다”며 “현장에선 거의 3개월 간격으로 신상품을 접하며 교육을 계속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와 자신감 없이 제품을 설치·수리하는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스마트홈은 연결이 핵심이기에 연결 작업으로 인한 변수가 많아졌다. 제유곤 사무처장은 “LG유플러스는 IoT 사업 시행 초반에 인터넷·방송을 설치·수리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전기작업이 필요한 IoT 상품을 설치하도록 했다”며 “노동자들은 두꺼비집을 열어 가전용 전기 사용량 측정기(에너지 미터기)를 설치해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천정을 뜯어 전기가 흐르고 있는 형광등에 안정기를 달고, 스위치를 바꿔줘야 했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서비스센터(2014년 69개)를 위탁 운영해왔으나, 2020년부터 자회사(유플러스 홈서비스)를 설립해 설치·수리기사들을 단계적으로 직접고용하고 있다.

SK매직의 설치마스터, 박민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가전통신노조 SK매직서비스지부 부지부장도 “스마트홈에 맞춰 생산된 제품들은 고객의 휴대폰이나 가정 내 기기 등과 연결이 필요하며, 이는 대부분 설치마스터의 제품 설치 시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연결은 단순하게 버튼 하나로 되는 게 아니”라며 “제품에 IoT 등록 및 고객의 회원가입 문제, 기기 종류별 연동 문제, 도입 초기 오류 문제, 연결 이상으로 인한 재방문 증가 등 여러 변수가 많아진다. 설치 시간도 늘어나 하루에 설치 가능한 제품 수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다만 SK매직은 아직 설치마스터들이 큰 부담을 느낄 정도로 스마트홈 관련 제품이 많은 상황은 아니라고 박민재 부지부장은 덧붙였다.

인지적 숙련뿐 아니라 육체적 숙련의 요구 기준도 높아졌다. 김민재 부지부장은 “최근 들어 출시되는 복합적인 기능이 담긴 제품의 체적이나 무게 증가로 제품을 들고 이동하거나 차량에 상·하차하는 데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다”며 “제품이 무거울 뿐 아니라 예민해져서 이동 시 높은 체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안마의자의 경우 휴대폰 연동, 블루투스 음악 듣기 등 추가 기능으로 인해 제품의 무게가 1.5배 정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더 높은 숙련 요구되지만
보상은 연계되지 않아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 숙련 요구 증가는 인력 충원의 어려움을 낳는다. 김민재 부지부장은 “설치마스터들은 숙지해야 할 제품들의 종류, 종류별 세분화된 기능, 설치 방법, 사용 설명 등 엄청난 양을 학습하고 있다”며 “설치·수리기사들의 산업재해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입사 전 건강 이상도 없는지 회사는 필수적으로 체크한다. 인성검사 통과, 나이제한도 생겼다”고 전했다.

김민재 부지부장은 “앞으로 가전기기의 기술 발전으로 인해 교육받고 숙지해야 할 일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고객의 만족을 얻기 위해 회사는 설치마스터의 문턱을 높게 설정할 것”이라며 “하지만 회사는 설치마스터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대우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수명의 단축도 우려하고 있다. 김민재 부지부장은 “기술 변화에 젊은 분들은 어느 정도 따라오는데, 현장에서 오래 일한 나이드신 분들은 버거워하는 상황”이라며 “고객들도 젊은 사람들이 와서 일하는 모습을 원한다. 스마트홈 관련 설치수리기사 수는 줄지 않겠지만, 노동수명은 단축될 거라고 예상한다”고 이야기했다.

유망한 스마트홈 산업 아래 스마트하지 않은 노동의 변화를 겪고 있는 노동자들은 더 높은 전문성을 요구받으면서도, 더 빨리 일자리를 잃을 거란 걱정을 하고 있다. .

* 기사는 2021년 12월 15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주최한 〈스마트홈 산업과 노동의 변화〉 토론회를 바탕으로 재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