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③] 대면 서비스노동자의 숙련 대체하는 디지털 전환
[커버스토리③] 대면 서비스노동자의 숙련 대체하는 디지털 전환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3.21 08:31
  • 수정 2022.03.31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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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본격적인 디지털 전환으로 입지 좁아져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맨날 생각한다”

숙련의 변화, 노동의 전략

“일은 인생이죠. 이제 와서 발을 뺀다는 건 인생을 망가뜨리는 거랑 다름없어요.”

칼 가는 장인. 지난해 1월 ‘일과나’ 커버스토리 취재로 한칼 전종렬 대표를 만났다. 칼 가는 일은 그에게 인생과도 같았다. 일과 나는 분리할 수 없다. 노동자의 몸에 깃들어 있는 숙련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일이 변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여파다. 이제와 발을 뺄 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발을 빼야만 하는 상황이 예측되고 있다. 노동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커버스토리③ 숙련의 변화 : 서비스업

그간 디지털 기술 발전은 주로 반복노동 수요를 감소하게 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대면노동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대면을 기본으로 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제약회사 영업노동자, 방문 학습지교사, 생활가전제품 점검·판매 노동자들을 만나 노동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들어봤다.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① 제약회사 영업사원

이현우(가명·43) 씨는 외국계 제약회사 영업노동자다. 29살에 입사해 올해 15년차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처음 영업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환자가 아닌 영업사원으로 병원에 들어가서, 처음 보는 의사와 대면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데 두려움이 컸다”고 이야기했다.

언젠가부터 부담 없이 의사들과 ‘메디컬 톡’을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된다고 느낀 건 3년이 지나서다. 이현우 씨는 “A지역에서 3년 정도 일하다가 B지역으로 발령났다. 담당 제품도 바뀌었다. 주로 비뇨기과 의사들을 담당하다가, 내과 쪽으로 넘어갔다”면서 “새로운 환경이었는데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서 신기했다. 사람이 이렇게 적응해서 다 사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현우 씨는 대화 내내 베테랑 영업사원다웠다. 기자가 던지는 질문의 핵심을 금새 파악하고, 대답에 막힘이 없었다. 그에게 ‘나만의 강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회사에선 긴 시간을 기다려주진 않는데, 의사들을 만나 봐야 5분도 못 본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관심사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데 특화된 것 같다. 영업사원은 기질에 따라 자기 스타일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난 사실 내향적이라 활발하게 술자리를 갖거나 이런 건 못한다. 대신 의사들이 필요한 것들을 바로바로 캐치한다. 의사가 원하는 특정 정보를 더 많이 말해준다거나, 따로 공부 시간을 내기 어려워하는 의사에게 곧 열리는 심포지엄을 추천해주는 식이다. 그래서 ‘뭐가 필요할 때 나한테 연락하면 해결이 되더라’라는 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언젠가 영업사원의 할 일이 점점 없어질 것”이라고 느끼기 시작한 건 2013년부터 여러 회사가 대면 영업을 보완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내놓으면서다. 화상채널을 통해 온라인 담당자가 의료진에게 제품 정보, 질환 관리 자료, 학술·세미나 정보 등을 언제 어디서나 제공할 수 있게 된 거다. 이현우 씨는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비대면 영업을 도입하는 회사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빠르게 늘어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현우 씨는 “의사들이 굳이 영업 담당자를 만나지 않아도 필요한 자료를 온라인으로 받을 수 있고, 질문도 바로 처리된다. 온라인 담당자들은 상담을 집중적으로 하다 보니까 전문성도 높다”며 “예전처럼 밥 먹고 술 마시는 영업은 제약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이지 않나. 우리 회사도 영업 담당자가 줄고 있다. 장기적으론 영업사원이 온라인으로 대부분 대체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영업 환경 자체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현우 씨는 “회사가 오리지널 제품을 갖고 있단 장점으로 세일즈를 해왔는데, 특허가 끝나고 요즘 워낙 제네릭(복제약)이 많이 나와서 우리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의사들이 제품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며 “또한 요즘엔 병원이 새로 생기면 CSO라고 하는 총판이 이뤄진다. 의사들이 제약회사 직원을 만나지 않더라도 질환별 약이 패키지로 세팅돼서 들어가는 것이다. 점점 영업사원의 공간이 좁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현우 씨는 “정규직이고, 노동조합도 잘 조직돼 있지만 마음의 준비는 항상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꼭 디지털 전환으로 입지가 좁아지는 것 외에도 외국인 투자회사다 보니 한국지엠처럼 하루아침에 통으로 날라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한 20년차 정도 되면 진지하게 회사를 나가게 되면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한다”고 이야기했다.

오수영 서비스연맹 학습지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오수영 서비스연맹 학습지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② 학습지교사

오수영(49)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습지노조 위원장은 2001년부터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로 일했다. 그는 “당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학습지가 좀 잘 나갈 때였다. 주변에 학습지교사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잘 정착하고 돈도 잘 벌었다. 그때 재능교육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한 노동조합도 있다 하고, 괜찮겠다 싶어서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수영 위원장도 “보통 교사들이 3년쯤 지나면 일이 익숙해진다”고 했다. 베테랑 학습지교사로 인정받기 위해선 진도 잡기와 상담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그는 “학습지는 진도 잡는 게 중요하다. 학생을 가르쳐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교재 세팅을 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학부모 상담이 필요하다. 교사 입장에선 학생이 손을 세면서 ‘다섯’을 알면 모르는 거다. 한눈에 다섯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학부모는 아이가 다섯을 셀 줄 아니까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달라고 한다. 그래서 학부모를 설득하는 상담이 처음엔 힘들다”고 설명했다.

학습지교사가 하는 상담은 교육 상담만 있는 게 아니다. 오수영 위원장은 “학습지교사들이 대부분 40대 후반, 50대 초반이다 보니 학부모들이 육아, 입시 등 다양한 상담을 한다”며 “교사들은 늘 낮은 자세에서 남의 마음을 읽어야 하니 대부분 상담을 잘한다”고 전했다.

‘잘 나가던’ 학습지교사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학생이 줄고, 사교육 시장 경쟁이 심해지면서 수입이 줄었다. 오수영 위원장은 “단체협약에서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학습지교사 평균임금을 가끔 산출한다. 2000년대 초반 전임자 임금이 300만 원 정도 됐다. 2010년경엔 250만 원, 2014년엔 200만 원”이라며 “학습지교사들이 20년 전보다 요즘 더 못 번다는 이야길 많이 한다. 수업할 수 있는 회원이 1/3, 많게는 1/2까지 줄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와중에 코로나19로 인해 학습지산업에도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졌다. 오수영 위원장은 “2020년 3월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학습지교사들이 자기 수업의 절반 이상을 못하는 공백기를 가졌다. 그리고 그 다음달에 각 회사에서 언택트 수업이 가능한 방식을 다 만들었다”고 했다. 요즘은 인공지능(AI)이 학생의 홍채 반응을 인식해 찍어서 문제를 푼 건지 아닌지도 파악해 진도를 잡아주는 수준까지 기술이 도입됐다고 오수영 위원장은 전했다.

대면 학습지교사가 아닌 온라인교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오수영 위원장은 “학습지교사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온라인 학습지교사들의 문의가 많이 올라온다. 전체 질문의 80% 정도 된다”며 “주로 이 일이 어떤지 물어본다. 학습지교사들의 산재보험, 고용보험 글에는 우리도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도 달린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교사들은 학습지교사와 같은 위탁계약직이지만 고용보험 등에 적용되는 직군분류표에 포함이 안 돼서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사회 보호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라고 했다.

학습지교사들도 언젠가 쌓아온 숙련이 필요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오수영 위원장은 “학습지교사들은 자연 감소하고 있다”며 “주변 학습지교사들을 보면 여성 고령 노동자들의 일로 권하는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등 자격증을 따거나 학점은행을 수강한다. 전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순옥 서비스연맹 가전통신노조 코웨이 코디코닥지부 수석부지부장 Ⓒ 노동과세계
김순옥 서비스연맹 가전통신노조 코웨이 코디코닥지부 수석부지부장 Ⓒ 노동과세계

③ 방문 점검판매노동자

“모든 상황이 엉망진창으로 꼬였다.” 김순옥(52)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가전통신노조 코디코닥지부 수석부지부장은 2014년을 이렇게 기억한다. 인생에 큰 고비를 맞았던 당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집에 있을 때였다. 일할 땐 몰랐던 코웨이 코디(방문판매 점검원)를 만나게 됐다. “그 일 할 만하세요?” 관심을 조금 보였더니 코디는 적극적으로 일을 권유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고민 끝에 2015년 1월 교육을 받으러 가봤다. 처음엔 교육에 10분도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한 달 뒤 1시간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교육을 마친 김순옥 수석부지부장은 그래도 다른 일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남의 집을 다니면서 제품을 점검하고 영업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교육비를 받기 위한 계정 점검 최소 건수를 채워야했다. 그러면서 멘토 코디와 함께 다녔고, 그와 끈끈한 관계가 형성됐다. 지국 사람들과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동료애가 생겼다. 이제 8년차 코디가 된 김순옥 씨는 “한 건도 영업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일이 재밌고 괜찮았다”며 “내가 몰랐던 영업력이 나한테 있더라”고 이야기했다.

김순옥 수석부지부장이 스스로 전문가가 됐다고 느낀 시기도 3년차가 됐을 때다. 그는 “처음엔 점검하고 나오면 고객에게 다시 전화 와서 정수기에 물이 샌다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3년쯤 일하니 노련해지고 고객 클레임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며 “복잡한 제품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지니 고객에게 설명도 막힘없이 하면서 ‘아 내가 전문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수입도 따라 올랐다. 김순옥 수석부지부장은 “노련해지고 고객과 신뢰가 쌓이면서 영업도 더 잘 됐다”며 “일이 좀 익숙해지면 매뉴얼을 건너 뛰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완벽하게 매뉴얼대로 일하려고 노력했다. 그 뒤에 제품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혼자 계시는 어머님들에게 말벗도 되어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이야기했다.

김순옥 수석부지부장을 비롯해 코웨이 코디코닥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 건 코로나19 이후다. 박선의 코디코닥지부 부지부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코웨이의 주요 사업인 렌털사업과 방문케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에 근본적인 대응을 위한 비대면 디지털화 전략을 세워 자가형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코웨이는 2020년부터 아이콘 정수기, 노블 정수기 등 자가관리 기능이 가능한 제품을 늘려가고 있다. 고객이 방문관리 유형을 선택하더라도 점검 주기가 길어졌다. 박선의 부지부장은 “점검주기가 기존 2개월에서 4개월, 6개월로 변경됐다. 온라인 마케팅, 홈쇼핑 판매도 강화하고 있다”며 “코디코닥은 영업손실, 업무축소, 고용불안 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순옥 수석부지부장은 “강원도 원주엔 지국이 3개였는데 하나로 합쳐졌다”고 이야기했다. 고객과 접점인 점검이 줄어들고, 온라인 판매도 늘면서 코디코닥의 영업 수입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요즘 김순옥 수석부지부장은 “이 일을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맨날 생각한다.” 그는 상담하는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상담과 서비스에 최적화되어 있잖아요. 무척 쓸쓸하고 외로운 고객이 많아요. 자기 얘길 끊임없이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제가 남의 얘기 정말 잘 듣거든요. 노인, 주부, 청소년 등 상담사 역할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구체적인 경로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막힌다. 김순옥 수석부지부장은 “어디서 자격증을 딸 수 있고, 어디 가서 일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며 “이런 고민을 하는 노동자들이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연결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우린 특수고용직이라 정부의 직업훈련 정책 혜택을 받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김순옥 수석부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데 그게 어떤 일자리인지도, 어떻게 그쪽으로 옮겨가면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나이라도 젊다면 새롭게 시작하기 수월할 텐데, 용기내기도 쉽지 않고 찾아서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이건 노동조합의 역할이기도 하단 생각이 드는데, 모든 게 쉽지 않아요. 정부가 산업전환 관련해서 좀 더 책임감 있게 체계를 세워서 세심하게 들여다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놀면서 지원받겠다는 게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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