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⑤] 이중구조 심화되는 IT 노동시장
[커버스토리⑤] 이중구조 심화되는 IT 노동시장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3.22 13:05
  • 수정 2022.03.22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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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 개발자 수요 급증, 개발자 몸값 올랐다? ‘일부’의 현상
못 버티고 떠나는 초보 개발자, 이직 쉽지 않은 중소기업 개발자

숙련의 변화, 노동의 전략

“일은 인생이죠. 이제 와서 발을 뺀다는 건 인생을 망가뜨리는 거랑 다름없어요.”

칼 가는 장인. 지난해 1월 ‘일과나’ 커버스토리 취재로 한칼 전종렬 대표를 만났다. 칼 가는 일은 그에게 인생과도 같았다. 일과 나는 분리할 수 없다. 노동자의 몸에 깃들어 있는 숙련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일이 변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여파다. 이제와 발을 뺄 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발을 빼야만 하는 상황이 예측되고 있다. 노동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커버스토리⑤ 숙련의 변화 : IT 산업

‘개발자 몸값 1억 원 시대’, ‘개발자 품귀 현상’

최근 뉴스 헤드라인에서 이 같은 문구를 한 번쯤 접했을 것이다.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라는 취업 신조어도 나왔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IT기업이 점점 기업 규모가 커지고, 산업 전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전환에 따라 노동 수요가 늘어나자 개발자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IT업계는 지난 수년간 다단계 하도급의 끝판왕이기도 했다. 한 프로젝트를 하청에 재하청, 마지막에는 1인 프리랜서까지 내려가는 업계 구조와 악명 높은 포괄임금제 속에서 IT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야근에 시달렸다. 과연 디지털 전환으로 이들의 처지가 나아졌을까?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디지털 전환,
개발자가 부족한 이유

“개발자는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IT업계 7년차 노동자 A씨가 말했다. 시스템 유지·보수(System Engineer, SE) 일을 하는 그는 중소기업에서 3년을 일하다 대기업 이직에 성공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나타나고 있는 개발자 인력난을 ‘시스템 구축과 연동화’로 설명했다.

“요새 개발자 수요가 많은 이유는 시스템 구축과 연동화 때문이죠. 시스템에는 하드웨어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것 뿐만 아니라 보안이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문제도 없게끔 해야 해요. 단적으로 토스나 카카오뱅크는 금융업이니까 규제가 상당하잖아요? 그에 맞춰서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개발 수요가 엄청나게 모자라죠. 또 회사에 결제나 생산관리 같은 기존 시스템이 있을 건데, 최소 두 개 이상의 시스템을 연계해야 해요. 그 작업이 단순히 개발자 한두 명 가지고 되는 게 아니죠. 단순히 웹 화면 만들고 그리고 앱 개발 하고 이런 수요가 모자란 건 아니라고 봐요. 회사 전체 관점에서 각 시스템 개발, 연동 등을 총괄하려면 개발 경력은 기본이고, 사람 관리도 할 수 있어야죠. 진짜 전문 인력이 많이 필요하죠.”

그동안 기업들은 내부 인트라넷, 자체 결제·생산·고객관리 시스템 구축 등 업무 전산화를 진행해왔다. 이를 ‘시스템 통합(System Integration, SI)’이라고 부른다. 대기업 계열사별로 삼성SDS, LGCNS, SKC&C 등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자회사다. 아직까지 전산화되지 않은 업무의 전산화와 더불어 구축된 업무 시스템의 연동에 상당히 많은 개발자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디지털 전환’이라고 부르는 말의 실체이기도 하다.

SI업계는 다단계 하청구조로 이뤄져 있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이 특정 업무에 필요한 시스템을 발주하면, 삼성SDS, LGCNS, SKC&C 등이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각 기능별로 영역을 나눠 1차 하청업체에 도급을 준다. 1차 하청업체는 다시 2차, 2차 하청업체에서는 3차, 그렇게 1인 프리랜서 개발자까지 일이 내려간다.

“많은 곳은 10차도 있어요. 정함이 없어요. 하청업체에서 맡아서 봤더니 ‘아 우리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러고 또 내리죠. 내려가다 보면 1인 개발자가 개발을 하고 올라가는 케이스도 많아요.” 10여 년 경력의 SI 개발자 B씨가 말했다.

B 씨는 몇 년 전 다니던 중소기업에서 나와 뜻이 맞는 동료와 회사를 공동으로 차린 적 있다. “SI회사에서 일하는 게 너무 싫어서”가 이유였다. 그는 발주 기업의 입맛에 맞춰서 개발해야 하는 SI가 아니라 자신만의 개발이 하고 싶었다. 구글, 애플,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민족 등과 같이 스타트업,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유니콘’이 되는 것을 꿈꿨지만 현재는 다시 SI에 돌아왔다.

“SI 회사에서 일하는 게 너무 싫어서 나와서 회사를 차렸죠. 그런데 나와서 혼자 할 수는 없으니까 직원들 돈을 줘야 하잖아요? 한 3개월이면 돈이 다 떨어지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급해지게 되고, 결국 용역일 하게 되고요. 학교에서는 교수님이 ‘너 나가서 프리랜서 하게 될 거야.’ ‘너 나가서 SI하게 될 거야’ 이렇게 말하지는 않잖아요? ‘나가서 스티븐 잡스가 될 거야’라고 하죠. 기대를 품고 있지만 잘 안되죠.”

인생은 실전?
못 버티고 떠나는 초보 개발자

올해로 28살인 C 씨는 대학에서 사회계열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 전공을 살리기 보다는 IT 개발자로 장래를 정했다. 그의 목표는 단연 ‘네카라쿠배당토’다.

현재 그는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시행하는 ‘42 Seoul’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서울시가 지원하는 교육훈련 기관이다. 지방에서 살던 C 씨는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경기도에 숙소를 구했다. 집 근처에 있는 국비지원 학원이 아니라 멀리 찾아온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발자 쪽 준비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가는 곳은 지방마다 있는 국비지원 학원이거든요? 등록비를 지원해 주는 그런 시스템이 있고요. 그런데 실효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피상적인 스킬만 가르쳐주고요. 삼성에서 하는 싸피(삼성청년SW아카데미, Samsung Software Academy For Youth, SSAFY)나 배민에서 하는 우아한 테크 코스 같은 부트캠프(Boot Camp)*를 알아보다가 42서울을 알게 됐어요.”

*부트캠프 : 코딩 부트캠프의 준말. 3개월 남짓의 단기간, 하루 10시간 정도의 고밀도로 코딩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 형태 혹은 교육 기관

유검우 민주노총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유니온) 위원장은 최근 퇴사 관련 상담 건수가 늘었다고 전했다. 개발자가 유망하다는 전망에 짧은 교육을 받고 이직했지만, 채 한 달이 안 돼서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이유에는 ‘경력 속이기’라는 업계 관행에 있다.

“부트 캠프 같은 곳도 있지만, 보통 국비지원 교육을 많이 받죠. 일자리가 급하다 보니까 국비지원 교육 받고 바로 취업하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이분들을 회사에서 파견을 보낼 때 경력을 속여서 보내요. 경력 따라서 돈이 달라지거든요. 이제 막 신입을 3년차 대리라고 속여서 보내는 거죠. 첫 프로젝트에서 자기가 알아서 숙련도를 올려가지고 살아남으면 계속하는 거고, 그게 안 되면 솔직히 2개월도 안 돼서 그만두죠. 주로 20대에서 30대 초반 분들이 조기 퇴사를 많이 문의하더라고요. 원래도 경력 속이고 투입되고 현장에서 알아서 해라는 구조인 건데, 이런 기형적인 구조가 더 심해지고 있죠. 단순히 개발자들 연봉 올랐다고 마냥 좋아할 게 아닌 것 같아요.”

이중화되는 IT업계

유검우 위원장은 최근의 개발자 인력난과 연봉 인상이 IT업계 전반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소위 말하는 네카라쿠배당토나 직방이나 이런 준유니콘 기업의 개발자 임금이 굉장히 고액으로 형성이 되고 있어요. 그런데 그밖에 프리랜서라든지 아니면 중소기업의 개발자들은 사실 그렇게 많이는 못 올리고 있어요. 임금을 올릴 수 있는 처지가 안 되니까요. 여전히 원래 주던 임금 그러니까 저임금에 가깝게 주는 경우가 많죠. 개발자들 간의 계층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중소기업 개발자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이직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유검우 위원장은 가장 발목을 잡는 건 ‘코딩테스트’라고 말한다. IT 대기업의 채용 절차는 크게 코딩테스트-기술면접-인성면접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코딩테스트는 컴퓨터 사이언스적인 지식이 잘 갖춰져 있는지, 문제해결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절차다. 코딩테스트에 나오는 문제는 수능 수학 문제 같이 문제해결에 필요한 정해진 공식이 있는 편이다. 실제 업무와 관련성은 적은데, 코딩 프로그램 내에 기능이 구현돼 있기 때문이다.

유검우 위원장은 “개발자라는 직업 자체가 어느 정도 적성을 보이면 실력 상승이 굉장히 빠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서 채용할 때 코딩테스트로 1차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코딩테스트가 몇 년째 시행되다 보니, 부트캠프 같은 단기 교육 과정이 성행하면서 일종의 고시 공부처럼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개발자는 업무와 공부를 병행하기가 힘드니까 잠깐 퇴사하고 도전을 한다든지 아니면 진짜 자기 시간을 갈아서 준비를 하죠. 그런데 이직 도전도 30대 중반까지나 가능해요. 경력이 쌓이면서 중소기업이라도 임금이 다소 올라간 이유도 있지만, (나이로 인한) 채용 자체가 쉬운 편은 아니에요. 코딩테스트가 개발자 시장을 이중화시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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