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하청 파업 끝··· “조선하청 공론화 기구 제안”
대우조선 하청 파업 끝··· “조선하청 공론화 기구 제안”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7.23 20:46
  • 수정 2022.07.23 2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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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하청 노사 간 합의안 22일 타결
조선하청지회 51일차 파업도 종료
금속노조, ‘범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제안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앞에서 조선하청지회 파업투쟁 보고 기자회견이 열렸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 간 협상이 22일 타결됐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조선하청지회)의 50여 일간 파업 투쟁도 마무리됐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을 투쟁으로 여론화한 금속노조는 이들의 일터를 실질적으로 바꾸기 위한 공론장, ‘범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조선하청지회 교섭단과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협의회는 22일 오후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안전교육관에서 협상 타결 소식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늦었지만 다행히 노사 간 원만하게 잠정 합의했다”며 “다시는 목숨을 건, 절박한 투쟁에 노동자들을 내보내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와 하청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줄기차게 이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권수오 사내협력사협의회장은 “파업이 진행된 51일이 51개월로 느껴질 만큼 굉장히 긴 기간이었다”면서 “노사 상생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앞으론 이러한 분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사 상생발전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해 조선산업의 발전을 위해 대우조선해양 협력사가 앞장서서 일하겠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회사는 지금부터 지연된 생산 공정 만회를 위해 모든 역량을 투입할 예정”이라며 “또한 원하청 상생협력을 위해서도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 협상 대표단이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23일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 협상 대표단이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임금인상 4.5%
폐업 조합원 고용보장 노력 합의
‘민·형사상 면책’은 추후 협상에서

조선하청지회의 찬반투표 결과 투표자(118명)의 92%(109명)가 찬성한 이번 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 임금인상 4.5% △ 폐업 업체 조합원 고용보장 노력 등이다. 

애초 조선하청지회는 조선업 불황기에 줄어든 실질임금 30% 인상을 요구했지만, 이번 협상에선 올해 하청업체들의 평균 임금 인상률인 4.5% 선에서 마무리됐다. 다만 노사는 하청노동자 저임금 구조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별도 TF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폐업한 하청업체 조합원들의 고용보장 관련해서 홍지욱 부위원장은 “가능한 배제 없이 다른 업체에서 고용승계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용보장이 돼야 하는 조합원 수는 “35명 정도 된다”고 덧붙였다.

협상 마지막까지 쟁점이 된 조선하청지회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은 추후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홍지욱 부위원장은 “조선하청지회는 민·형사상 책임을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도부 5명(지회장·부지회장 3명·사무장)이 지겠다. 다만 조합원에겐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는 원칙으로 이후 노사 간 성실한 협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 구체적인 합의문은 노사가 비공개 하기로 했다. 

ⓒ 금속노조
22일 유최안 부지회장이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건조 중인 선박 안 철구조물에 자신을 가둔 지 31일 만에 나오고 있다. ⓒ 금속노조

“초라하고 걸레 같은 합의서지만···
노조 이름 합의서에 넣기 위해 6년 싸워”

김형수 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은 “금속노조 이 이름 하나 합의서에 넣기 위해 6년을 싸웠다”며 “지난해 노조조끼를 입고 교섭장에 들어갔다고 회사는 교섭을 거부했다. 그때 한발 물러서면서 이 꽉 깨물고 다짐했다. 꼭 합의서에 노동자들 이름을 새기겠다고. 오늘 드디어 초라하고 걸레 같은 합의서지만 금속노조 이름을 넣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형수 지회장은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잠정 합의안에 90% 넘는 조합원이 찬성해줬다”며 “이는 51일간 투쟁을 이어온 조합원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앞을 보고 우리가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한 그 힘찬 결의에 존경의 말씀 드린다. 오늘을 시작으로 또 내일을 준비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잠정 합의안을 합의안으로 만든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약 120명은 오후 5시 40분경 옥포조선소 1도크 앞으로 모였다. 이들은 준비한 현수막을 위·아래 두 줄로 들고 철 구조물 안에 있는 유최안 부지회장을 취재진 등이 볼 수 없도록 가렸다. 

투쟁 결과 보고 기자회견 이후 31일간 스스로 가둔 철 구조물 안에 있던 유최안 부지회장이 나왔다. 그는 0.3평 공간에 몸을 구긴 채, 기저귀를 차고 생리현상을 해결해왔다. 마이크를 든 강인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현수막을 든 조합원들을 향해 “우리가 유최안 동지의 존엄을 지키자”고 외쳤다. 이내 ‘쿵’, ‘쿵’ 철 구조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유최안 부지회장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조합원 6명(이학수·박광수·이보길·조남희·진성현·한승철)도 땅을 밟고, 손을 흔드는 조합원들을 향해 절했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9일째 단식해온 강봉재·계수정·최민 조합원, 이들과 함께 농성했던 이광훈 조합원도 투쟁을 마무리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23일 유최안 부지회장이 철구조물 안에서 나오는 동안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취재진 등이 유최안 부지회장을 볼 수 없도록 막았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금속노조, 범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제안

김형수 지회장이 “초라한 합의문”이라고 표현했듯 이번 조선하청지회의 투쟁 결과는 승리, 혹은 패배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조선하청지회의 투쟁에 대한 한 가지 분명한 평가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을 크게 알렸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선 조선산업의 구조 변화 등 장기적인 과제가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합의문 발표장에서 무거운 얼굴로 서 있던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런 문제가 다시는 우리사회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조선소 하청노동자 저임금 해소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윤장혁 위원장이 말한 사회적 책임은 금속노조가 제안하는 ‘범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으로 이어진다. 

금속노조는 “이 힘을 조선하청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다시 모으려 한다”며 “정부를 포함한 조선산업 원·하청 노사, 노동시민사회단체, 정당, 종교계 등에 범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선하청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대우조선 원하청 노사관계에서만 해결되지 않는다”며 “전국 모든 조선하청노동자의 저임금 구조를 개선하고, 이들의 고용과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해야 조선산업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더 이상 조선하청노동자들이 그림자 노동자로 살아가지 않도록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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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조선소 서문 앞 조선하청지회의 투쟁 천막 ⓒ 참여와혁신 정다솜 dsjeong@laborplus.co.kr

정규직노조 탈퇴 건,
부결 가능성 높아 

한편, 이날 오후 정규직 노조인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지회장 정상헌)는 금속노조를 탈퇴하는 ‘조직 형태 변경 건’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를 개표했다. 1차 개표 결과 찬성 674표, 반대 689표가 나왔다. 하지만 반대표가 뭉텅이로 발견됐다는 이유로 개표가 중단돼 개표 과정 영상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번 찬반투표는 일부 정규직들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잘못돼 일터까지 잃을까 걱정”하는데, 금속노조는 조선하청지회의 투쟁 지지에 더 힘을 쏟으며 중재 역할을 못 한다는 불만에서 비롯됐다. 

1차 개표 결과만 봤을 땐 가결 조건인 조합원 2/3 이상 찬성표가 안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관계자는 “무엇보다 정상헌 지회장이 금속노조 탈퇴가 답이 아니라는 중심을 잡고 있었던 점이 컸다”며 “또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이 새벽마다 출근길에 정규직에게 연대를 호소했던 점도 정규직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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