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은 해줄 수 없고, 원청은 개입할 수 없어··· 우린 어디에 기대나?”
“하청은 해줄 수 없고, 원청은 개입할 수 없어··· 우린 어디에 기대나?”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7.17 19:24
  • 수정 2022.07.19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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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 파업 45일째···
“대화가 잘 이뤄져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인터뷰] 이광훈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50일을 앞두고 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조선하청지회)는 임금인상,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며 지난 6월 2일 파업에 들어갔다. 6월 22일엔 건조 중인 선박 안에 노동자 7명이 들어가 끝장 농성에 돌입했고, 7월 14일부터 노동자 3명은 산업은행 앞 무기한 단식농성 중이다. 

단식농성을 예고한 14일 오전 국무총리, 고용노동부 장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나서서 “국가의 경제 손실이 우려된다”며 “파업을 중단하면 적극적으로 교섭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청노동자들은 ‘노사문제’로 돌리며 사태를 사실상 방관하던 정부를 그나마 움직였다. 15일 오후 원청 노-사, 하청 노-사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도 열렸다.

“대화의 장이 열려서 다행”이라면서도 “아직 크게 기대는 안 하고 있다”며 덤덤하게 단식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이광훈 씨(43)를 15일 저녁에 만났다. 4년 전 노동조합에 가입했지만 “다른 하청노동자들처럼 눈치를 많이 봤다”던 이광훈 씨는 이제 파업을 끝까지 지키는 조합원 120명 중 한 사람이 됐다. 단식농성장의 막내로 단식단을 챙기고 있는 이광훈 씨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이광훈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1도크 ‘끝장 농성’ 돌입 후
“앞만 보고 간다”

- 파업 돌입 50일을 앞두고 있다. 파업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예상했나? 

한 달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지난 6월 초 파업 대오가 400~450명 정도 됐다. 그런데 파업이 길어지면서 생활고로 더는 버티기 어려운 분들이 많이 빠졌다. 지금은 120명이 파업을 유지하고 있다. 120명 이하로는 줄지 않고 있다.

- 120명 유지는 언제부터 그런 건가? 

유최안 부지회장이 지난 6월 22일 선박 안 철 구조물 안에 들어간 뒤부터다. 그전까진 솔직히 사람들끼리 파업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 유최안 부지회장이 들어가고 딱 결정이 났다. 지금부터 승리까지 간다. 유최안 부지회장을 뒤로하고 현장으로 복귀할 수는 없다. 그 뒤로 120명에서 한 명도 나가지 않고 계속 가고 있다. 단식하는 분들도 같은 마음으로 결정했다. 유최안 부지회장 때문에 앞만 보고 간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가로·세로·높이 1m 철 구조물에 자신을 가둔 유최안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 금속노조
가로·세로·높이 1m 철 구조물에 자신을 가둔 유최안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 금속노조

- 노동조합엔 언제 가입했나? 

2019년 5월이었다. 당시 회사에서 성과급을 원청 직영노동자만 준다고 했다. 힘든 일은 우리가 하는데, 왜 우린 안 주냐면서 하청노동자들의 분노가 커졌다. 그때 옥포조선소 광장에 하청노동자 약 2,000명이 모였다. 그 힘으로 지원센터까지 들어가서 항의했다. 그랬더니 바로 다음 날 성과급이 지급됐다. 이렇게 싸워야 내 권리를 챙길 수 있구나.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구나 싶어서 그때 나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그 뒤로 하청노동자 총궐기에 계속 참석했는데 사람이 계속 줄더라. 1차엔 2,000여 명이 모였지만, 2차엔 100명 정도 모였다. 돈 딱 받고 나니 안 모이는 거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러나? 했지만, 결국 나도 똑같아졌다. 나도 다른 하청노동자들처럼 눈치를 많이 봤다. 그렇게 다시 일상을 살다가 지난해 3월 파워공들이 파업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기에 참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생각했다. 

- 그러다 이번 파업을 결심한 계기는 뭐였나? 

사실 계속 반신반의했다. 지난해 12월 노동조합에서 단체교섭 요구안을 만들기 위해 설문조사도 하고 투쟁을 준비할 때였다. 그 시기에 집에서 애들이랑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꼬꼬무)를 보고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몸에 불을 지른 그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큰 애는 중학교 2학년 딸, 작은 애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인데 펑펑 울더라. 뭘 알고 우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때 결심을 굳혔다. 아이들도 우리처럼 언젠가 크면 힘 있는 자, 힘 없는 자로 나뉠 거 아닌가. 내 자식이 하청노동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내가 지금 싸워서 이런 불합리한 노동현장을 바꾸지 못한다면, 아이들 역시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올해 43살인데 우리 때 부모님들은 다 그랬다. ‘불만 갖지 마라’, ‘그냥 참고 하는 거다.’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 꾹 참고 다니면 집 사고, 자동차 사고 다 한다.’ 그건 옛날 말이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나도 가만히 있으면서 우리 애들한테까지 그런 말을 해줄 수는 없다. 그런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다른 이야기인데, 단식농성장을 설치하는 첫날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 오셨더라. 땀을 뻘뻘 흘리며 현장 상황을 일일이 촬영해주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감격했다. 

ⓒ 조선하청지회
선박 안에서 발판 공정 중인 노동자들. ⓒ 조선하청지회

조선소 위험노동 감수하고,
보상은 시급 9,200원 

- 최근 조선업 불황기에 임금이 얼마나 줄었나? 

2011년 9월부터 조선소에서 일했는데, 2012년 기준 연봉이 4,600만 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올해는 3,400만 원이다. 약 27% 줄었다. 최저시급은 2012년(4,320원)보다 2배 가까이 올랐는데 연봉은 이렇게 감소한 것이다. 올해는 그래도 잔업과 특근을 했다. 지난해, 지지난해는 더 심했다. 그 2년간은 세금 떼고 월급으로 207만 원 정도 받았다.  

- 물론 조선소가 수주호황이지만, 올해 자금 사정이 바로 나아지는 건 아니다. 왜 지금 투쟁인가?

꼭 올해여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건은 우리도 예상을 못 했다. 그래서 선박건조 계약이 취소된 경우가 있는데, 예정대로라면 이 시기에 조선소가 굉장히 바빴을 거다. 그래서 인력난을 계속 우려했던 거다. 수주가 늘어나면, 일할 사람이 더 필요하니까. 현장엔 일할 사람이 없다. 여기 산업은행 앞에서 깜짝 놀란 게 대부분 20~30대가 다닌다. 43살인 나는 이번 파업 대오에서 세 번째로 어리다. 조선소 인력이 노령화되고 있고 사람이 안 들어온다. 위험한데다가 보상도 제대로 못 받으니까. 

-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2015년에 대우조선해양 LNG선 탱크에서 불이 났다. 그때 공정에 쫓기다 보니 혼재 작업을 했다. 위에선 용접작업을 했고 아래에선 다른 작업을 했다. 그런데 용접작업을 하면서 불똥이 튀었고 탱크 안에 불이 붙었다. 빠져나갈 구멍은 위밖에 없었고, 아래에 있던 노동자들은 다 타죽었다. 

현장 사람들은 다 안다. 일이 몰리면 하청노동자들을 압박한다. 우린 불법이든, 위험하든 일을 쳐내야 한다. 이렇게 일하는데 시급은 최저시급 수준이다. 내 시급은 올해 40원 올라서 9,200원이다. 이런 현장에 누가 오겠나? 그러니까 사람을 뽑고 싶으면, 더 보상을 해달라고 하는 거다.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야기하는데, 외국인들도 다 안다. 전국에 네트워크가 있다. 서로 조선소에서 일하지 말라고 한다. 돈 많이 주는 반도체 공장으로 가라고 한다. 반도체 공장도 인력난이니까.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음엔 조선소로 들어와서 기술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다 육상으로 떠날 거다. 돈도 더 많이 주고, 더 안전한데 왜 안 가겠나?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좀 높여 달라는 거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17일 산업은행 앞 퇴근길 선전전을 하고 있는 단식단과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떠날 길도 있지만, “외면할 수 없다”

- 조선소를 떠날 생각은 안 해봤나? 

주변에선 많이 떠난다. 평택 반도체 공장으로 간 분들이 지금도 전화 와서 그런다. ‘미친놈 아니냐? 왜 돈 많이 주는 여기 오지 거기 아직도 있느냐’고. 그런데 가족이 다 거제에 있다. 물론 평택에서 왔다 갔다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게까진 못하겠더라. 거제를 떠나기가 쉽지 않다. 평택 반도체 공장에선 하루 일당 20만 원에, 한 달을 30일로 맞춰서 월 600만 원 정도 벌 수 있다고 들었다. 아내도 이 이야길 듣고 내가 파업하겠다는 걸 말렸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지만 정말 내 후배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길 바란다.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하는 거다. 아니면 나 몰라라 하고 가면 끝이다. 그런데 외면할 수가 없다. 2011년에 처음 조선소에 왔을 때 20살짜리 아르바이트생이 한 달간 일주일에 한 명씩 죽었다. 사망한 4명 중 1명은 아직도 사인 불명이다. 그냥 핸드폰 보다가 떨어져 죽은 사람이 됐다. 그 이후로 조선소 초짜들에게 하늘색 헬멧을 씌운다. 하늘색 헬멧을 쓰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기억이 계속 남아 있다. 그 이후 많이 나아졌지만 매년 두세 명은 옥포조선소에서 죽는다. 

노동조합 인정과
집단교섭이 필요한 이유

- 조선하청지회의 요구안 중에서는 노동조합 인정도 있다. 노동조합 인정이 현장 노동자에겐 어떤 의미인가? 

파워공들이 지난해 파업을 하고 시급을 2만 원으로 올렸다. 그리고 8시간에 한 공수를 받게 됐다. 발판은 9시간 일해야 한 공수, 하루 일당을 쳐주는데 파워공은 8시간 일해도 하루 일당을 받게 된 것이다. 그때 조선하청지회에서도 파워공들을 도와 투쟁했는데, 협상에 들어가니까 사측에서 노동조합은 빠지라고 하더라. 그때 노동조합도 처음이니까 믿고 빠졌다. 그랬더니 협상 두 달 만에 사측이 노동조건을 뒤집었다. 원상복귀된 거다. 그리고 아웃소싱을 들여오고, 폐업을 준비하는 업체도 있더라.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노동조합으로써 단체협약을 맺어야 한다. 법적 강제력이 있는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우리의 노동조건을 지킬 수 있다는 거다. 

- 집단교섭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다. 

하청업체들은 우리가 파업한다고 하면 폐업하겠다고 압박한다. 내가 다니는 하청업체도 언제 폐업할지 모른다. 개별교섭을 해봤지만, 도저히 협상이 안 된다. 최근 조선하청지회가 파업해서 폐업했다고 알려진 어느 하청업체는 이미 5월부터 폐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도장업체엔 사외업체를 만들어서 일할 사람을 모으라고 원청에서 지원해주고 있다. 그런 식으로 뒤에선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고, 앞에선 우리의 파업이 불법이라고 한다. 뒤에서 우리 목줄을 죄면서, 대화로 풀자고 한다. 대화를 해보면 하청업체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고, 원청은 개입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어디에 기대야 하나?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유최안 부지회장이 철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 임금 인상률 30% 요구가 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다 알지 않나. 우리가 30% 임금 인상을 주장하지만, 협상에 들어가면 조정이 가능한 부분이다. 임금 인상률 30%는 지난해 12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그 정도가 적당한 수준이라는 의견이 모여서 요구안으로 만든 거다. 그런데 막상 30% 임금 인상률이 좋다고 사인했던 사람들은 책임지지 않고 지금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17일 오후 7시 산업은행 앞 조선하청지회 단식농성장 옆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우리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살펴봐 달라”

- 지난 14일 정부가 조선하청지회의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했다. 또한 점거농성을 중단하면, 대화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허탈했다. 유최안 부지회장과 6명의 조합원이 1도크를 점거했기에 지금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거다. 지금도 협상을 안 해주는데, 만약 우리가 점거를 풀어버리면 누가 협상을 해줄까? 우리처럼 수자원공사 하청업체 청소노동자들이 원청을 점거하고 집단행동을 벌인 적이 있다. 2020년 대법원은 청소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원청의 도크 점거밖에 없었다. 120명이 도크 하나 막았다고 대우조선해양이 정말 망할 거라고 믿나? 그러면 대우조선해양 자체가 심각한 부실기업 아닌가? 다른 도크에선 다 일하고, 진수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우리에게 대화를 하라면서 아무런 안도 없다. 안도 없는 정부가 일단 점거를 풀고 대화하자는데, 어떻게 믿겠나.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4자 대화(원청 노-사, 하청 노-사)가 열려서 다행이다. 당연히 대화가 잘 이뤄져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원청이 아직 전향적으로 나오지 않아서 크게 기대는 안 하고 있다. 임금인상 문제가 해결되려면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절반 이상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이 나서야 한다. 또한 산업은행이 움직이려면 정부가 결단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풀릴 수 있다. 지금 노동조합을 지지해달라는 건 내 욕심일 거다. 1도크를 점거하고 있는 우리를 나쁘다고만 보지 말아달라.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어떤 상황인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한번 살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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