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동산 인질사회와 ‘국민의집’으로 가는 길
[기고] 부동산 인질사회와 ‘국민의집’으로 가는 길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5.15 00:21
  • 수정 2023.05.1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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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균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김도균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김도균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부동산은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인구감소와 함께 부동산 가격의 장기적 하락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주택가격이 재차 상승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젊은 세대들까지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면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심판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는 등 부동산은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왜 부동산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한국 사람들이 특별히 탐욕적이라서 그런 것일까? 필자는 한국 사람들이 부동산에 집착하는 이유가 단지 욕망이나 투기적 속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차적 조건으로 부동산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이 생존의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부동산에 대한 집착이 더 클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집을 가진 사람이나 가지지 못한 사람이나 부동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주택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재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주거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집 한 채 마련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경우 안정적인 삶을 장담할 수 없었다. 더욱이 한국사회에서 주택은 단지 주거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대다수 한국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집 한 채는 은퇴 후의 노후를 보장해 주는 안전망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렇게 내 집 마련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주거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부동산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안정된 노후생활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부동산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가히 부동산 인질사회라고 불릴 만하다.

하지만 부동산 인질사회가 초래하는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그동안 내 집 마련과 부동산 가격 상승은 50~60대가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다주택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서구 국가들에 비해 20~30대의 자가소유율이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것은 다주택자의 상당수가 50~60대라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이 계속 오르다 보니 젊은 세대들이 무리해서라도 집 장만에 나서게 되었다. 집값이 급격히 오르다 보니 젊은 세대들은 이러다 집 장만을 못하게 될까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집 장만에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가진 것도 없이 주택 마련에 나서다 보니 영혼까지 끌어모아서라도 내 집 마련에 나서게 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결국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 장만에 나서다 보니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누군가가 부동산을 활용해 노후대비를 하려다 보니 누군가는 결혼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부동산 인질사회가 된 이유는 복지국가의 지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국가가 복지지출을 극도로 억제했을 뿐만 아니라 주거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는 상황에서 부동산은 주거문제 해결이라는 일차적 목적과 함께 가족주의를 지탱하는 물적 토대이자 최후의 안전망으로서 작동해 온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문제가 복지국가의 저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곧 복지국가 전략이 부동산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부동산이 단순히 욕망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생존의 문제와 관련돼 있는 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 힘들고, 여기에 더해 주거불안과 노후불안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종합적인 복지국가 전략이 제시되어야 한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르 알빈 한손은 스웨덴이 지향하는 복지국가를 ‘국민의집’이라고 불렀다. 복지국가란 가족 개념을 확대한 것으로 쉽게 말해 모든 국민들을 위한 좋은 집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스웨덴 사민당이 ‘국민의집’ 이념을 표방한 이후 장기집권에 성공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한국사회는 여전히 각자 알아서 내 집 마련에 몰두하는 상황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모두를 위한 국민의집을 건설하는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를 자산기반복지(asset-based welfare)라는 관점에서 다뤄 보고자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부동산이 어떻게 복지국가를 대신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추적해 볼 것이다.

우선 산업화 시기 국가의 저축동원전략과 중화학공업화 전략이 결합하여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경로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유신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의 소득세 제도가 형성되는 과정과 복지지출이 극도로 억제되는 상황에서 복지국가를 대신해서 가계저축이 중시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1970년대 저축장려정책의 일환으로 ‘근로자재산형성저축제도’가 도입되는 등 중산층 자산형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민주화 시기에 한국은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지만, 중산층의 보수화와 기업 중심의 노동운동이 결과적으로 유신 시대에 도입되었던 소득세 제도와 저축제도의 역할을 오히려 더욱 강화시키고 말았음을 살펴볼 것이다. 특히 주택 200만호 건설로 자가소유자 사회가 펼쳐지면서 본격적으로 부동산이 복지국가를 대체하기 시작했음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금융화와 노동시장 유연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복지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지만 기존의 자산기반복지 규범은 약화되지 않고 세대를 거쳐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을 짚어본다. 가계저축률은 급격히 하락하고, 가계부채는 급격히 증가하는 등 커다란 변화가 있었지만 자산의존적인 생존전략에는 변함이 없음을 살펴보고, 우리 앞에는 ‘국민의집’으로 가는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기고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