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 10명 중 8명 “정부 폭염 대책은 무용지물“
건설노동자 10명 중 8명 “정부 폭염 대책은 무용지물“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8.02 18:02
  • 수정 2023.08.02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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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폭염대책 법제화 요구하는 기자회견 열어
“속도전으로 돌아가는 건설 현장에서 ‘권고‘는 무용지물“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폭염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폭염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7월 27일 건설 현장에서 폭염으로 쓰러진 ㄱ씨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는 등 간단한 치료를 마친 ㄱ씨는 귀가했다. 곧 기력을 회복하리라 여겼지만, 그 후 ㄱ씨는 집에 있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했다. 다시 병원을 찾았고, ㄱ씨는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현재 ㄱ씨는 입원 중이다. 인지능력 회복이 더뎌 앞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

더위에 의한 온열 질환은 휴식 등으로 나아지기도 하지만, ㄱ씨처럼 불가역적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여름철 일터에서 온열 질환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건설노동자 이창배 씨는 같은 현장에서 일했던 동료 ㄱ씨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건설 현장에서 온열 질환에 대한 대비책을 법제화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 같은 요구는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위원장 장옥기)가 2일 오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기후 위기가 심해지며 불볕더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건설 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은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2021년까지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사망재해자 29명 중 20명이 건설노동자였다. 이창배 씨는 “폭염에서 옥외노동을 하는 우리 건설노동자는 ㄱ씨와 같은 일이 언제, 누구한테 다시 일어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건설노동자들이 폭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은 폭염시 휴식이 법제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건설노조의 설명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가 고온 등으로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사업주가 보건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고열 작업‘을 나열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건설업은 고열 작업이 아니다. 따라서 법적으로 사업주는 건설노동자에게 휴식을 주지 않아도 된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6월 1일 발표한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에는 폭염주의보 발령 시 매시간 10~15분 휴식을 권고하고 있지만, 단지 ‘권고사항‘에 불과해 건설 현장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실제 건설노조가 건설노동자를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장에서 매시간 10~15분 정도 쉬고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25.4%로 4명 중 1명꼴이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는 오후 2시~5시 사이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일 경우, 옥외작업을 중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설문조사에 응답한 건설노동자 81.7%는 이 권고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건설 현장은 공기(공사 기간)를 단축해 공사비를 아끼려 ‘속도전‘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폭염 대책을 법제화하지 않는다면 권고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건설노조는 폭염 대책 법제화를 요구하며 자신들의 몸에 얼음물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폭염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폭염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폭염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폭염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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