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 본 공무원들···“총선 선거사무 손절”
내년 예산안 본 공무원들···“총선 선거사무 손절”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10.30 14:16
  • 수정 2023.10.30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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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무원노조·공노총, 공무원 선거사무 위촉 거부 선언 기자회견
“최저임금 못 미치는 수당 그대로면 내년 총선도 안 한다”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노총이 30일 오전 10시 30분 국회 앞에서 '선거사무 위촉 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적은 수당을 받으며 강제 동원돼야 하는 선거제도 개선을 요구해온 공무원노조들이 국회를 찾았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편성한 선거사무종사자 수당 액수를 더 늘려야 한단 목소리를 국회에 전하기 위해서다.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전호일, 이하 전국공무원노조)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석현정, 이하 공노총)은 30일 오전 10시 30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사무종사자들이 받는 수당 증액을 요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선거사무종사자 수당은 사례금 포함 투개표관리관이 19만 원, 투개표사무원이 13만 원 정도다.

일할 여건 만들기가 정부의 책임
수십 년 동안 직무유기한 것

지방선거·대통령선거 등 각종 선거 때마다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표를 돕고 투표용지를 이송해 개표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을 선거사무종사자라 부른다. 투개표관리관과 투개표사무원을 통칭한 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가 가까워지면 선거사무종사자를 모집하는데, 이들 상당수가 관행적으로 지방공무원으로 할당돼 채워져 왔다는 게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노총의 설명이다. 공무원을 선거사무종사자로 위촉하면 사람을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되기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편한 선택지다.

이렇게 위촉된 선거사무종사자는 투개표사무원 10만 원, 투개표관리관 14만 원의 수당과 사례금을 받으며 선거 업무에 투입된다. 이를 두고 양 노조는 “가장 민주적인 제도인 선거를 치르는데 정작 이면에선 가장 비민주적인 노동착취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사무종사자로 강제 동원되는데,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받는 수당이 시간당 최저임금에 못 미친단 지적이다.

기자회견에서 변영구 전국공무원노조 경기지역본부 이천시지부 지부장은 “내 배우자는 지난 대선과 지선에 읍면동 선거업무를 담당했다. 선거일이 다가오자 투표사무원 좀 모아달라고 해서 지인, 지인과 함께 일하는 분까지 참여했다”며 “나를 믿고 참여했던 지인들이 수당을 받고선 (수당이 적어) ‘너 혹시 돈 떼어먹은 거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선거사무종사자들이) 일할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 게 정부의 책임이고, 수십 년 동안 당신들은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발언했다.

‘공무원’ 선거사무종사자라 겪는 어려움도 있다. 공무원 신분인 선거사무종사자의 실수는 징계나 파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지방선거 투표사무원으로 일하던 부천시의 한 공무원은 투표용지 수량이 일치하지 않았단 이유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뒤 파면됐다.

공무원 희생으로 유지됐던
선거제도···악순환 끊자

“공무원의 희생으로 유지돼왔던 선거제도의 악순환을 끊고자” 공무원노조들은 지난 대선 때부터 선거사무종사자 위촉을 거부하겠다 선언하고 ‘선거사무종사자 위촉 거부 서명운동’을 조합원들과 진행해 왔다. 공무원노조들은 투개표관리관은 약 25만 원, 투개표사무관은 약 20만 원의 수당을 받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는 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한국정당학회에 의뢰해 진행한 연구용역에서 나온 결과기도 하다.

공무원노조들은 선거사무종사자 수당 예산이 증액되지 않으면 총선을 겨냥한 ‘선거사무종사자 위촉 거부 서명운동’을 다시 시작하겠단 계획이다. 지난 대선의 경우 11만 명의 공무원이 선거사무종사자 위촉을 거부한 바 있다.

여기에 공무원노조들은 선거사무종사자에 대한 보상을 최저임금과 연동해야 한단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조속히 논의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전호일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선거 업무는 위촉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그간은 지방공무원을 강제로 차출했고 이것은 명백한 형법상 강요죄에 해당된다”며 “선거(업무)를 하기 위해 공무원들은 오전 5시에 출근하고 기본 노동시간이 14시간~15시간인데 지급되는 수당은 10만 원이다. 지금처럼 공짜 노동을 강요한다면 내년 총선에서도 선거사무종사자 위촉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석현정 공노총 위원장은 “공무원 노동자에게도 선거는 축제의 장이어야 하고,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공무원이 받아야 한다는 우리의 말이 옳다고 했다”면서도 “그러나 정부는 그 결과를 뒤엎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또 하고 있다.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 거부할 권리가 있고, 그 결과는 정부와 국회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박민식 공노총 시군구연맹 아산시청공무원노조 위원장도 “선거는 봄에 집중돼 있다. 봄이면 전국의 자치단체에서는 3~5일간 이어지는 축제와 매주 동원되는 산불 근무로 녹초가 되기 마련”이라면서 “헌신에 헌신을 거듭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공무원이기 때문이었고, 우리의 이런 선의가 문제였다. 선의가 반복되니 권리로 아는 선관위와 정부를 상대로 이제는 (선거사무 업무를) 손절하고자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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