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노조 “산업은행, 해운업 상황 고려하지 않은 매각”
HMM 노조 “산업은행, 해운업 상황 고려하지 않은 매각”
  • 백승윤 기자,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12.20 17:13
  • 수정 2023.12.20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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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졸속 매각’ 논란···해상노동자 파업 불씨
“하림, 사외이사 불수용은 HMM 독단 운영한다는 의도”
ⓒ 에이치엠엠해원연합노동조합

“글로벌 경기 침체로 외국 선사들이 적자로 돌아섰고, 해운업에서 치킨게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HMM 매각을 투자금 회수로 접근해선 안 된 상황이다.” 산업은행이 국적 해운사 HMM의 경영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하림그룹을 선정하며 노동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하림그룹에서 무리하게 마련한 인수자금이 향후 HMM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사모펀드의 ‘먹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해운업황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전망은 노동계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 18일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HMM 경영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하림그룹 계열사인 해운기업 팬오션과 사모펀드 JKL파트너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하 하림·JKL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하림·JKL컨소시엄이 본입찰에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인수가 6조 4,000억 원으로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의 HMM 주식 3억 9,879만주(57.9%)를 사들이면 인수는 마무리된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하림·JKL컨소시엄과 세부 계약 조건에 대한 협상 등을 거쳐 2024년 상반기 중 거래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하림그룹 측에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인수 조건이다. 하림·JKL컨소시엄은 HMM 인수 조건으로 ▲HMM 자사주 매입 허용 ▲JKL파트너스 보유 지분 5년 내 매각 허용 ▲영구채 전환 3년 후로 연기 등을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에 요구했다. 아울러 산업은행 측에서 당초 매각 조건으로 내걸었던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 사외이사 지명 ▲사업 변경(합병·분사·매각)에 대한 사전협의 등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은행 측에서 이 같은 하림·JKL컨소시엄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사모펀드의 ‘먹튀’를 방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JKL파트너스가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를 올린 뒤 인수 5년 내 보유 지분을 매각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림그룹 측이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의 사외이사 지명권에 부정적인 점도 먹튀 의혹을 키운다.

육상 노동자로 구성된 사무금융노조 HMM지부의 이기호 지부장은 “하림그룹이 사외이사 지명 불수용 입장을 밝힌 것은 HMM 경영에 대한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감시·감독을 배제하고 독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도”라며 “하림그룹에서 요구한 조건들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철회·반영됐는지 공개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림그룹이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메꾸는 데 HMM 유보금을 사용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HMM이 보유한 이익잉여금은 올 9월 기준 10조 6,585억 원에 달한다.

해상 노동자로 이뤄진 선원노련 에이치엠엠해원연합노조의 전정근 위원장은 “하림그룹이 HMM 매각을 위해 강구한 인수금융은 3조 원으로 파악된다. 매년 갚아야 하는 이자만 2,400억 원이다. 결국 이자를 갚으려면 배당을 할 수밖에 없고, 배당과 인수금융을 모두 합하면 4조 5,000억 원에 달한다”며 “하림그룹에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이번 인수를 추진하는 건데, HMM이 보유한 10조 원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이토록 무리해서 인수를 추진할 수 있었겠느냐”고 주장했다. 산업은행에서 인수 조건으로 내건 3년간 배당 한도 규모는 1조 5,000억 원(연 5,000억 원)이다.

전정근 위원장은 “HMM의 유보금 10조 원은 선박·항만 인프라 확충 등 해운산업의 영속성을 위해 써야 하는데, 하림그룹이 인수하면 그 절반에 달하는 액수만 산업에 투자하게 된다”며 자본이 부족한 하림그룹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산업은행의 책임을 강조했다.

전정근 위원장은 “산업이 전반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게 산업은행 본연의 목적인데, 정작 해운업이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경기침체 등으로 세계 2위 해운업체인 덴마크 머스크마저 적자로 전환했다. 전 세계 운송선박 공급 과잉으로 치킨게임은 본격화하는 상황이다. 매각을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 지금의 다운사이클을 HMM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지, 경쟁력은 있는지 가늠하는 게 우선일 텐데, 산업은행의 이번 결정은 돈 될 때 팔아서 투자금을 회수겠다는 ‘졸속 매각’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전정근 위원장은 이제라도 산업은행이 배당 한도를 연 500억~1,000억 원으로 낮추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두 노동조합은 ‘졸속 매각 저지 투쟁’을 계속해간다는 계획이다. 이기호 지부장은 국회 기자회견이나 조합원 궐기대회 등을 통해 사회 여론 형성할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에이치엠엠해원연합노조는 휴식시간 준수 등 준법투쟁뿐 아니라 파업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사측과 진행 중인 단체협약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