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선사 매각, 바다 위 선원의 삶 좌우한다
국적선사 매각, 바다 위 선원의 삶 좌우한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4.03.13 12:28
  • 수정 2024.03.13 12: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조합이 말하는 HMM 매각의 방향
[인터뷰] 전정근 선원노련 에이치엠엠해원연합노조 위원장
전정근 선원노련 에이치엠엠해원연합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고래를 삼키려는 새우’. 지난해 12월 ‘팬오션-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이하 하림그룹)’이 HMM(옛 현대상선)을 경영권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두고 유수의 매체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현금성 자산 1조 6.000억 원을 보유한 하림그룹이 유보금만 10조 원 이상인 HMM을 인수하려는 시도에 적잖은 우려가 나왔다.

해상 노동자로 이뤄진 선원노련 에이치엠엠해원연합노동조합과 육상 노동자로 구성된 사무금융노조 HMM지부는 △회사 존립을 보장하기 어렵고 △노동자들은 고통을 겪게 된다며 하림그룹으로의 매각을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에이치엠엠해원연합노조의 반발은 강했다. 위원장은 하림그룹이 HMM을 인수하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고, 바다 위 조합원들은 선박에서 매각 반대 피케팅을 했다. 결국 하림그룹의 HMM을 인수 시도는 지난 2월 7일 무산됐다. 노동조합은 왜 하림그룹의 HMM 매각을 그토록 반대했을까. 또 노동조합이 그리는 매각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지난 2월 15일 전정근 에이치엠엠해원연합노조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HMM 노동조합들이 하림그룹으로 매각을 반대한 이유는?

하림그룹이 HMM의 경쟁력을 키울 만큼 충분한 자본을 갖췄다면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림그룹의 자금 조달 계획을 봤을 때 자본 동원력에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유상증자를 하고 인수금융을 확보했더라도, 다음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인수금융으로 발생할 연이자만 2,640억 원에 달하지만(이자율 8% 가정), 그에 대한 명확한 상환 계획이 없었다.

직장인으로 치면 영혼까지 끌어모아 서울에 고급 아파트를 사는 격이다. 하림그룹이 HMM을 덜컥 인수해 현금이 부족해지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을 테고, 유동성 위기를 겪다 보면 결국 부채를 만들어 낸다. 그러다 보면 계속 기업의 경영이 악화할 테고, 재무 구조가 안 좋아져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도 피해가 갈 수 있다. 하림그룹은 과거 계열사인 팬오션을 통해 적자에 빠진 하림USA를 지원한 전력도 있다. 만약 회사를 인수했더라도 하림그룹은 해운업의 발전을 위한 투자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하림그룹이 이자 상환 등 무리한 인수를 만회하려면 누가 보더라도 HMM의 유보금 10조 원을 무리한 금융 상환을 위해 끌어다 쓸 수밖에 없다. 해운업을 위해 쓰여야 할 투자금이 하림그룹 유동성 위기 해결에 쓰이는 셈이다.

그런데도 하림그룹은 ‘경영권만 주면 알아서 하겠다’는 식이었다. KGB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에서 HMM의 경쟁력을 제고 할 계획을 요구했는데도,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안다. 하림그룹은 비밀 협약을 이유로 자신들의 계획을 밝히기 어렵다고 했는데, 그룹 내에 HMM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이 딱히 없었다고 노동조합은 평가한다.

해운사 어려움 처할 때,
바다 노동자의 고난도 시작됐다

- 하림그룹 인수 시, 노동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 거로 우려했나.

한진해운 파산 시기를 겪어봤기 때문에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위기감이다. 특히 해상 노동자들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기 때문에 하림그룹으로 매각을 필사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해운사는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운항비를 절감한다. 대표적인 게 ‘스페어 파트(spare parts)’다. 예를 들어 컵이 깨졌으면 컵을 바꿔야 하는데, 회사가 어려워졌으니 깨진 컵을 고쳐서 쓰라는 식으로 변한다. 고장 난 부품을 고치려면 항운노동자들은 안 하던 일을 해야 한다. 외부 전문가에게 맡겼던 작업도 본사 승무원들이 해야 할 것이다. 다른 예로는 계획정비제도(PMS)가 있다. 선박 부품에 이상이 생기지 않게끔 계획적으로 예방 정비하는 일인데, 그걸 바다 위에서 다 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본선이 입항했을 때 외부 작업자한테 작업을 80%정도 맡기고, 본선에선 20% 처리하는 식으로 정비를 진행한다. 그런데 회사가 어려워지면 외부 작업의 상당 부분이 승무원에게 전가될 것이다. 또 배에 슨 녹을 제거하는 일명 ‘깡깡이’ 작업도 본사 승무원들이 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인력 감축이다. 더는 새로운 인력을 안 뽑고 한정된 인력으로 해오던 일을 계속해야 하니, 기존 승무원들의 업무 부담은 급격히 가중된다.

- 인력 이탈이 가중될 수 있겠다.

당연하다. 해기사(항해사·기관사)는 배가 차질 없이 운항할 수 있게끔 하는 운항 인력으로 일해야 하는데, 그와 무관한 작업을 맡게 되면서 괴리를 느끼고 만다. 한두 명씩 그만두기 시작하면서 10명이 해야 할 일을 6명 혹은 4명이서 교대로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승선일이 기존 6개월에서 10개월까지 확 늘어나 버릴 때도 있다. 한진해운이 파산하고 현대상선에서도 인력난이 심해졌는데, 당시 세계적인 국적선사인 한진해운이 파산했으니 현대상선도 곧 파산할 거라는 생각에 많은 직원들이 이직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아예 업계를 떠나버렸다. 모두 옛 현대상선에서 근무할 당시 직접 겪었던 일들이다.

2등 항해사와 기관사가 경력을 쌓아서 1등 항해사·기관사가 돼야 숙련 인력이 많아질 텐데, 지금도 3년의 대체복무 기간을 끝내면 상당수 해기사가 그만둔다. 친구·애인·가족 등을 장시간 만나지 못하면서 회의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당시 기준 평균 연봉이 한 7,000~8,000만 원 정도였으나, 10개월~11개월간 땅 한 번 밟지 못하고 업무를 해야 하는 탓에 젊은 해기사들이 현장을 떠났다.

회사가 어려우면 급여 인상도 안 되고, 성과급도 없고, 교대 인력은 사라진다. 게다가 승선 일수는 계속 늘어나니 인력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젊은 인력 유출은 HMM뿐 아니라 해운업 전체로 봐도 심각한 문제다.

에이치엠엠해원연합노조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하림그룹의 HMM 인수를 반대하며 선박 피케팅을 진행했다. ⓒ 에이치엠엠해원연합노조

“더 어려워진 ‘블록딜’ 매각,
HMM에 맞는 지배구조 모색해야

- 다소 시간이 걸릴 듯하지만 HMM 매각은 재추진될 전망이다. 앞으로 매각의 방향은 어때야 한다고 보는가.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예정대로 2025년 4월까지 잔여 영구채의 주식을 전환하면 정부 지분율은 57.9%에서 74%로 상승한다. 현시점 9조 원대를 넘는 수준인데, 이 정도 규모를 한 번에 블록딜(block deal)*할 만한 국내 기업이 있을까. 아무래도 해양진흥공사를 제외한 산업은행만 따로 지분 매각을 할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 그렇더라도 부담스러운 규모다. 인수자금을 마련할 기업을 꼽자면 현대차그룹이나 삼성전자 정도겠지만, 이들 기업이 굳이 해운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주식 대량 매매

- 산업은행만 매각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산업은행은 결국 금융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기관이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지분 매각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해양진흥공사는 국내 해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HMM의 지분을 어느 정도 갖고 있어야 회사 경영에 대한 견제·개입을 할 수 있다. 그게 해양진흥공사 스스로도 설립 취지·목적에 맞게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노동조합은 일찌감치 ‘하파크로이트(Hapag-Lloyd)*’ 모델을 새로운 지배구조 모델로 제시했다.

답을 내리긴 쉽지 않다. 어떤 지배구조가 적합할지는 계속 고민해야 한다. 다만, 노동조합뿐 아니라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도 이번처럼 하나의 기업에 지분을 주는 방법으로는 HMM을 매각하기 어려울 거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사실상 누가 인수 주체로 나설지도 불투명하지만, 하림그룹처럼 의지가 있더라도 자본력이 약하고 인수자금 조달 계획이 불명확한 기업이 들어오면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 다시 반발할 수밖에 없다.

집단의 지성을 모아 함부르크시를 포함해 여러 공공·민간 투자자가 견제와 시너지를 발휘하는 하파크로이트 모델로 갈지, 포스코처럼 대주주가 없는 소유분산기업으로 갈지에 대해 찾아가야 한다.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게 쉽지 않겠지만, 주주 다양화는 무분별한 이익 추구 견제와 공공성 강화 측면에서 장점일 수 있다고 본다.
* 선복량 기준 세계 5위 해운사이자 독일 최대 컨테이너 선사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위기마다 빛난 국전선사 역할,
“해운사 단순히 사기업 치부하면 안 돼”

- 노동조합은 HMM이 대표적인 국적선사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해운업에 대한 국가의 관리·감독·지원을 피력했다.

한진해운이 파산할 당시 외국 선사들은 운임 인상을 시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해운산업이 위기에 몰릴듯했지만, 소비 활성화에 따른 물동량 증가로 국적 선사가 없으면 무역에 큰 차질을 빚을 뻔했다.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으로 전 세계적 물류 차질을 빚은 ‘홍해 사태’도 국적선사의 중요성을 알게 했다. 주요 해외 선사들이 홍해해협 운항 중단을 발표하자 HMM은 정부와 협의를 거쳐 한국발 물량을 최우선으로 배정해 유럽·지중해 노선에 선박을 긴급 투입했다.

해운 회사를 단순히 사기업으로 치부하면 안 될 이유는 너무도 많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자체가 고립될 수 있다. 특히 컨테이너 선박은 개별 화물들을 단위별로 포장해서 운송하는 택배와 같다. 대체로 이해관계자가 한 명밖에 뿐인 탱크로리나 벌크선과 달리, 컨테이너선은 컨테이너의 개수만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다. 워낙 다양한 산업군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노동조합으로선 섣불리 파업을 하기도 어렵다. 대한민국 영토가 사실상 섬과 다르지 않은 지리적 특성만 봐도 해운업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노동조합이 HMM 지배구조와 관련해서 공공성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 정부에 바라는 정책이 있다면?

HMM이 종합 물류 선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투자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HMM 매출에서 컨테이너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90%를 넘나든다. 시황에 민감한 컨테이너 사업이 불안정해지면 회사 전체가 위기를 겪는 구조기 때문에 HMM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줘야 한다.

한계는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선복량(船腹量) 자체가 너무 미미한 수준이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해운업이 위축된 한국이 덩치를 키운 머스크와 MSC 같은 공룡들과 경쟁에 나서긴 무리다. 다만 HMM이 앞으로도 국적 선사로서 역할을 다하며, 대형 선사들이 놓치는 시장에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나서 주길 바란다.

- ‘해운 동맹(얼라이언스)’ 재편도 고민할 지점이다. 하파크로이트는 HMM이 속한 해운 동맹 ‘디 얼라이언스’를 탈퇴하고 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새로운 해운 동맹인 ‘제미니(Gemini)’를 만들었다. 또 다른 거대 해운 동맹 ‘2M’은 해체됐다.

HMM이 빨리 새로운 동맹에 가입하지 못하면 큰 문제에 직면한다. HMM은 독자 노선을 운영할 정도로 물량이나 배가 충분하지 않다. 세계 1위 업체인 스위스 MSC 등과 새로운 동맹을 구축하든, 다른 동맹에 들어가든 함께 선복을 채우고 배를 운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거 한진해운하과 현대상선이 다른 동맹에 속해 있었는데도, 한진해운 파산으로 현대상선도 해운 동맹에 들지 못할 뻔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운사가 파산하는데도 한국 정부가 뒷짐 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해운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며 현대상선도 덩달아 피해를 입었다. 해운 동맹에 가입하지 못하다 겨우 디 얼라이언스라는 동맹을 구축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도 다소 늦었으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도 그때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