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연대, 길게는 통합 바라봐야
짧게는 연대, 길게는 통합 바라봐야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09.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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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정’ 느낄 수 있었던 어머니
소속 달라도 노동자요 생각 달라도 노동자다
[특집 04] 노동계가 풀어야 할 과제 |인터뷰|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지난 8월 27일 금융·공공부문 양대 노총 공동결의대회에서 이용득 위원장은 “병석에 누운 이소선 어머니를 양대 노총 위원장이 함께 문병하겠다”고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다. 공교롭게도 양대 노총 위원장이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셨고 많은 이들의 바람과 달리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시지 못했다. 어머니의 소천을 지나면서 노동계가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양대 노총 위원장의 생각을 들어본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서면으로 답변했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면인터뷰를 진행했다.

▲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소선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다. 당시 느낌은? 마음속으로 했던 마지막 인사는?

기력이 다하신 상태에서 양 노총 위원장이 함께 온다니까 필사의 마지막 힘으로 연명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 저희가 함께 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는 사죄 말씀과 함께 “하늘나라에서도 저희를 돌봐주십사” 기원 드렸다. 노동운동 이전에 어머니에 대한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정(情)만 생각났다.

이소선 어머니는 양대 노총에게 어떤 분이셨는가?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지는 않을까, 어디 가서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치는 우리네 어머니처럼 이소선 어머니는 언제나 자본과 권력의 공세 속에서 힘들고 지친 노동자를 걱정해 주셨고, 함께 아파해 주셨던 노동자의 어머니셨다. 그저 살아계셔 주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든든한 버팀목이셨다.

이소선 어머니는 평소에 “양대 노총이 하나가 되어 싸워라. 노동자가 하나가 되면 못할 게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장례 기간 내내 이 말씀을 되풀이해서 들으셨을 텐데,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한없이 죄송스러웠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하나가 되어 싸워 왔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하나가 되어 싸우지 못한 책임을 통감했다.

짧게는 연대하고, 길게는 통합해야 한다. 작은 차이는 서로 인정하고, 가능한 부분에서부터 연대를 복원해 나가야 한다. 처음에는 작은 부분의 연대에 그칠 수도 있지만, 차근차근 연대해 나간다면 더 큰 연대도 금방 가능해질 것이다. 더 멀리는 통합을 봐야 한다. 조직률이 10% 남짓에 불과한 상황에서 한국노총, 민주노총 각각의 조직률은 고작 5%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노동이 탄압받고 고통스러운 것도 따지고 보면 분열로 힘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제 힘을 발휘하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합이 돼야 한다.

이소선 어머니의 영전 앞에서 양대 노총은 어머니의 당부와 뜻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어머니의 뜻은 양대 노총이 하나가 되라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서로 작은 차이는 인정하는 열린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소속이 달라도 노동자요, 생각이 달라도 노동자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배격하는 자세는 어머니의 뜻과 전혀 맞지 않다.

이소선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것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할 때, 양대 노총은 지금 무슨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대 노총은 올해 초부터 서서히 연대를 복원하고 있다. 노조법 재개정 투쟁, 최저임금 투쟁 등, 성과도 있었다. 향후에도 사안별 연대를 넘어 더 큰 연대를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나는 양대 노총이 큰 틀에서 공동협정이라도 맺으면 조직적 갈등이 해소되고 향후 나아가야 할 이정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참여와혁신> 9월호를 보셨는가? 올해만 해도 총연맹이 주관하든 산별조직이 주관하든 굵직한 집회를 자주 열었는데, 그런 집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집회가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대안을 제시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집회는 노동 현안에 대한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의견을 표출하고 협상에 힘을 배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집회 만능주의는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최근 들어 노동문제에 대해서마저도 당사자인 양대 노총을 포함한 노동계의 목소리보다 그야말로 ‘외부’의 목소리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고,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그러기 위해 양대 노총은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

노동계가 고립된 노동운동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지만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현장 투쟁보다 정치 투쟁에 치우쳤던 것도 사실이다. 노동운동이 주로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만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노동운동이 대중성을 상실하고 고립되기에 이르렀다.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이 조합원뿐만 아니라 90%의 미조직 노동자,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특히 우리사회 가장 큰 문제인 불안정고용, 즉 비정규직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조직되어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다.

복지문제도 당연히 노동운동의 영역인데도 오히려 책임 없는 정치권에서 이슈를 선점하고 당리당략적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노동’은 객체로 밀려나 있다. 비정규직, 복지문제 등은 양대 노총이 큰 틀에서 공동으로 다루어야 할 사안들이다. 또 오히려 후퇴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언론자유, 인권문제 등에서도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실천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