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하청 노동자에게 무죄 판결을
[손광모의 노동일기] 하청 노동자에게 무죄 판결을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7.08 07:53
  • 수정 2020.07.08 0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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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날씨가 그래도 선선했던 지난주 금요일 오후 국회 앞을 찾아갔다. 성암산업노조 조합원 145명이 단식과 노숙에 돌입한지 5일째였다.

취재를 목적으로 나왔건만 피켓을 들고 있을 기운도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 과연 말을 거는 게 옳은 행동인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살짝 두툼해 보이는 요가매트 위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조합원이 태반이었다. 잠을 청하고 있음에도 얼굴에 피로가 역력해 보였다.

그러던 중 가로수 아래에서 두런두런 대화하는 조합원이 보였다. 멈칫 주저하다가 그 사이에 무턱대고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선생님,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완전 거지꼴로 있지요. 이게 완전 거지꼴 아닙니까?”

단식 노숙 중인 사람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묻다니. 대화의 첫 물꼬를 잘못 텄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무심한 기자의 질문에 두 조합원은 성심성의껏 답해줬다. 대화를 마치면서는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성암산업노조 조합원들은 밤이면 여의도 지하차도 아래에서 잠을 청했다. 낮이면 투쟁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땅 위로 올라와 지낸다고 했다. 국회 앞 뿐만 아니라 포스코 본사, 더불어민주당사, 최정우 포스코 회장 자택 등에 조합원이 ‘파견’ 나가있다고도 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조합원들은 성암산업에서만 29년, 24년을 일한 베테랑 노동자였다. 이들은 합의 도장을 찍기 전에는 절대 광양으로 다시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걸 걸고 서울로 올라온 셈이다.

성암산업 노동자들이 본격적인 투쟁에 나서기까지는 엄청나게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2019년 임금 협상이 차질을 빚었다. 사실 그 이전에는 현재와 같은 ‘분사이슈’로 한바탕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뒤집어기도 했다. 성암산업의 교섭해태는 2020년 3월 어느새 성암산업의 사업 포기와 이후 하청업체 분사 계획으로 옮아갔다.

“분사해서 나가면 연봉에서 2,000만 원이 까진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살 수가 있겠냐고요.”

“우리가 모인 이유가 이거예요. 쉽게 말해서 조합이 있어도 월급을 더 챙겨주면 벌써 다 갔겠죠. 돈이 2,000만원 차이 나는데 누가 가겠어요? 남아있죠.”

이렇게 복잡한 과정보다 조합원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현실은 바로 ‘숫자’였다. 연봉 2,000만 원 삭감. 조합원들은 그 무시무시한 마이너스, 즉 ‘생존위기’ 때문에 '수치심'을 무릅쓰고, 또 ‘거지꼴’을 참으며 상경을 결심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누군가의 연봉에서 2,000만 원이 삭감될 수 있을까. 누가 과연 아무런 반발 없이 이런 불이익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성암산업노조 조합원들은 본인들이 ‘특이 케이스’라고 말했다. 포스코라는 큰 왕국에서 하청업체든 노동조합이든 포스코에 반기를 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할 게요. 쉽게 말해가지고 조합이 있든 없든 아무 것도 안하면 괜찮아요.”

“아무 것도 안하면요?”

“자기 싫은 짓거리 안하면 되는 거죠.”

“성암산업에서는 노동조합이 32년 됐지 않습니까?”

“기자님이 말하는 건 우리 조합이 32년이나 됐는데 왜 저러지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아무 말도 안하고 조합형태만 있고 그냥 있으면 40년 50년도 가죠. 갈 수 있겠죠. 어용노조처럼요. 그런데 우리는 따지고 묻고 그러니까 회사는 싫어하죠. 그러다보니 문제가 더 커지고.”

취재를 위해 다녀간 3일 자정 성암산업노조는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중재를 받아들여 포스코와 대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조합원들은 단식을 해제했다. 그러나 처음의 결의대로 광양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문성현 위원장의 중재는 일단 성암산업의 분사를 인정하되 노동조건 저하가 없고, 1년 이내로 성암산업과 같은 형태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현재 금속노련과 포스코는 합의의 세부사항을 가지고 치열하게 다투는 중이다. 일종의 교섭 아닌 교섭이 시작된 격이다. 포스코와 대화가 시작된 6일 박옥경 성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갈 길이 먼 것 같다”고 나지막이 토로했다. 진짜 사장과의 ‘교섭’에 이르기까지도 너무나 큰 어려움이 있었다는 걸 생각나게 하는 말이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노동조합에 보면 단체협약이 있어요. 그게 1~2년 만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희가 피라미드 쌓듯이 32년 쌓아서 만들어 놨어요. 그런데 포스코는 이렇게 하청업체 없애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하면 우리는 뭐가 돼요?”

성암산업노동조합은 이번 투쟁을 하면서 ‘하청 노동자로 태어난 죄’라는 문구를 들고 나왔다. 그들이 말하는 하청 노동자의 죄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죄를 지었기에 어떤 처벌을 받고 있었을까? 그들이 받고 있는 처벌이란 하청업체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당하는 현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법과 제도상으로는 하청 노동자를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말하는 이 죄는 특정될 수 없다. 정확히 말해서 성암산업노조 조합원에게 죄는 없다. 하청 노동자를 적절히 보호하지 못하는 지금의 제도 자체가 ‘불의’하다. 성암산업노조의 승리를 통해 모든 하청 노동자가 ‘무죄’ 판결 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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