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동자인 죄’ 성암산업 노동자 145명 국회 앞 동조 단식 시작
‘하청노동자인 죄’ 성암산업 노동자 145명 국회 앞 동조 단식 시작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6.29 16:12
  • 수정 2020.06.29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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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6일 차 김만재 위원장 따라 성암산업 노동자 145명 국회 앞 동조 단식
원하청 구조 속 하청 노동자 ‘노조할 권리’는 ‘모래성’
“성암산업 투쟁이 하청노동자 보호 계기 돼야” … 제도적 보완 절실
국회 앞에서 6일째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원청업체가 갑(甲)이고, 하청업체가 을(乙)이라면, 하청업체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정(丁)이다. 불공정한 원하청 구조 속에서 하청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 사내하청업체 성암산업 노동자 145명이 단식 6일 차를 맞은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과 함께 국회 앞 단식 노숙 농성을 진행하는 이유다. 6월 30일부로 해고 위기에 처한 성암산업 노동자들이 원청 포스코의 직접 해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위원장 김만재)은 29일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포스코 사내하청 성암산업노조 145명, 국회 앞 무기한 집단 단식 노숙 투쟁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15일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은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고 24일에는 단식에 들어갔다. 성암산업노조를 향한 부당노동행위 금지와 ‘분사매각’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하청노동자인 ‘죄’로
일상이 된 고용불안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성암산업노동조합 조합원.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새벽 5시 버스를 타고 광양에서부터 서울로 올라온 조합원 A씨(42)는 성암산업 3년 차 노동자다. 성암산업에서 근무하기 이전에도 2년 동안 포스코 광양제철소 내 다른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한 적 있는 A씨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앞에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이쪽 업계에서는 빈번한 일”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복직을 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됐던 이유도 고용 불안 때문이다. 마음이 착잡하긴 한데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단식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노조할 권리’는 하청노동자에게 없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조합원 B씨(52)는 성암산업에서 23년간 일한 베테랑 노동자다. B씨는 “포스코에서 하청업체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서 분사를 시키고 매각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게 포스코의 현실”이라면서, “현재 성암산업노조 조합원은 노조 조끼를 벗으면 광양제철소에 출입이 되고 조끼를 입으면 출입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암산업노조는 지난 3월 8일 2019년 임협이 해를 넘기며 지지부진해지자 4시간 부분 파업을 벌였다. 이후 부분 파업이 끝나는 시점인 3월 8일 7시부터 성암산업노조 조합원들은 광양제철소 출입이 통제됐다. ‘노조 조끼’를 표적으로 삼아 조합원의 현장 출입을 막은 것이다.

사용자가 맘만 먹으면
하청업체노조는 없어질 수 있다

덧붙여 B씨는 “포스코는 분사 이후의 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 복지 등에 대해 신경을 안 쓴다. 분사 이후 단체협약이 승계되지 않는 것”이라면서, “처음부터 다시 임단협을 시작해야 하는 거다. 그것 때문에 이렇게 조합원들이 다 뭉쳐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옥경 성암산업노조 위원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암산업이 분사되면 임금 복지가 저하되고 단체협약도 무용지물이 된다. 포스코 하청업체들이 분사돼 노동조합이 무력화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고 지적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박옥경 위원장과 조합원 B씨가 지적하는 ‘분사’는 포스코가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을 때 작업권을 쪼개서 계약하는 것을 말한다.

성암산업은 포스코와 광양제철소 내 5개 작업권 도급계약을 맺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3월 성암산업은 포스코에 작업권 반납의사를 밝혔다. 작업권을 반납받은 포스코는 5개 작업권을 1개 회사와 도급계약을 맺지 않고 쪼개서 맺으려 한다. 실제로 3월 31일 성암산업은 2개의 작업권을 포스코에 반납했는데, 포스코는 2개 작업권을 각각 다른 사내하청업체에 넘겼다.

이러한 작업권 반납과 재계약 과정은 고용불안, 임금복지 저하 우려, 단체협약 무효 등 분사 장면과 유사한 효과로 노동자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하청노동자에게 적절한 보호 수단은 없다. 성암산업노조가 ‘분사 없는 매각’ 즉, 작업권 통 이양을 주장하는 이유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박옥경 성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박영일 성암산업 팀장은 “내일 회사는 폐업신고를 하고 없어진다. 자산 매각 관련 절차는 끝났다”면서, “이미 작업권은 성암산업 손에서 신설사와 기존회사로 다 떠났다. 작업권을 인수한 회사에서 인원에 대해 고용승계를 해준다고 했지만 조합원들은 단일 사업장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옥경 위원장은 “포스코와 몇 번 만났는데 단체협약 승계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임금 저하 우려가 있는데도 되는대로 가라고 한다. 투쟁해서, 단결해서 쟁취한 임금과 단체협약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입장을 들으려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못했다.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제도적 보호 필요

발언중인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발언중인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김만재 위원장은 하청업체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많은 장소 중 국회 앞을 농성장으로 택한 이유다.

김만재 위원장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위기는 보통 위기가 아니다. 하청업체에서 사업권을 반납하더라도 원청업체에서 고용을 책임지는 등 입법적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하청 원청 사업주들이 얼마든지 짜고 사업권 포기하고 반납받고 또 새로 설립할 수 있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부천에 있는 OB맥주경인직매장 노동자들도 노동조합 만들었다고 계약해지를 당해 노동자들 30명이 길거리로 내몰렸다”면서 “원청이 계약을 해지하고 하청이 사업권을 반납한다고 하면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설 자리가 없다. 이번 싸움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내하청노동자들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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