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①] 노조 6년차, 노조 간부 그만하기로 했습니다
[커버스토리①] 노조 6년차, 노조 간부 그만하기로 했습니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1.04.02 07:28
  • 수정 2021.04.05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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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정서와 노조 중앙의 괴리, 어떡하죠?
개인기로 더 이상 못 버텨…노조 교육사업 필요하다

커버스토리 ➊ 그만 둔다는 청년 노조 간부 T 이야기

커버스토리 × 누가 어떻게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사회·경제·정치적 지위와 조건을 바꿉니다. 바꾼다는 말은 결과를 부각시킵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관심은 높아져도, 누가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은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일반적으로 결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과정에는 관심이 적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떻게 노동조합을 움직여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과정에 집중해봤습니다. 이른바 ‘노조한다’는 사람들을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봤습니다.

“제 생각에 노조라는 건 개인기로 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시스템과 분위기가 생겨야 하는 건데, 제가 겪어온 우리 노조 지회장들의 활동하는 방식은 삶을 갈아 넣는 방식이에요.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는 했죠. 다른 지회에서 하지 않는 사업들도 해보고. 근데 조직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하는 지회나 안 하는 지회나 큰 차이가 없던 상황. 저도 점점 하려는 유인이 사라지죠.”

노조 간부 그만할게요,
청년 간부 T의 고민

민주노총 소속 공기업노조의 지회장 T를 알게 된 건 2020년 지방에서 열린 노동조합 행사에서였다. 전국에서 노동조합 한다는 사람들이 꽤나 모였는데, 청년은 몇 없어서 눈에 띄었다. 1박 2일 행사여서 이틀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행사 이후로도 가끔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얼굴을 다시 본 건 최근이었다. 1년 만에 만난 그가 꺼낸 이야기는 올해까지 지회장 임기를 마치고 내년부터는 간부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T는 2016년 입사해 한 달 뒤 노조에 가입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에 관심은 없었지만 일하게 되면 노조는 해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다. 막연함이 구체화된 건 3박자가 맞아떨어져서였다. 신입사원 교육에서 하종강 교수의 강의, 드라마 <송곳>, 입사 당시 지회장의 영향. 입사 8개월 후 대의원으로 선출돼 노조 간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부터는 10개 분회를 묶어내는 지회의 지회장으로 선출돼 활동했다. 임기는 2년. 2020년에 연임을 해 올해는 임기 마지막 년도이다.

T의 요즘 고민은 조직률이 떨어지는 것, 그래서 조직이 분해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 거기에 더해 지회를 이끌어갈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노조’가 가능할지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T가 말해준 노조의 현황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지회들이 모인 본부의 노조 조직률이 2016년 75% 수준이었다면 현재는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T는 그 이유를 비정규직-정규직 전환이라고 봤다. 많은 공기업노조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겪고 있는 고민이다. 전환의 목적과 사회적 의의를 떠나서 급속도로 진행된 전환 정책에 노조가 당사자로 과정을 만들어낼 준비가 부족했다. 준비 정도를 배려하지 않고 속도전으로 승부를 보려했던 당국의 정책 집행은 노조에게 뒷감당 안 되는 짐이 됐다.

이는 기존 정규직의 노조 이탈로 이어졌다. T는 “조합원 정서랑 집행부 입장의 결이 계속 맞지 않았다”며 “저는 어쨌든 집행부의 일원으로 집행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해설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괴리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T의 지회에 소속된 10개 분회 중 일부가 분회장이 선출되지 않은 채 공석 처리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노조 체계가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답은 없어 보였다. T는 “수습하려해도 아마 (노조 중앙) 집행부 입장에서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며 “사실 이렇게 저렇게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온다”고 답답해했다. 최근에는 답답함에 마음 아픈 일까지 생기기도 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한 친구와 작년에 노사분과협의회나 지회노사협의회 일도 같이 했어요. 그 후에 노조 활동에 관심을 보이고 같이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해서 대의원 제의를 했어요. 그런데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몇 번 찾아가서 같이 하자고 했는데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것까진 괜찮았어요. 안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다음 달에 노조 탈퇴서를 내더라고요. 탈퇴서를 냈다는 사실을 저한테 말도 안 했어요. 그냥 노조 중앙에 팩스로 보내고 저는 팩스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중앙에서 듣게 된 거예요. 약간 배신감이 들죠.”

T는 이 일이 정규직 전환과 관련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T는 약간 배신감이 들었다고 말한 뒤 담담하게 한 마디 더 얹었다. “그러고 나서 2노조로 넘어갔어요.”(현재 T가 다니는 공기업은 복수노조 사업장이다. T의 노조가 다수노조로 1노조이다.) 어떤 조직이든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개인의 힘은 무용하다.

T는 세대를 막론하고 이러한 분위기 형성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지적했다.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조합원들이 점점 더 이익을 챙기려는 모습들이 강해지고 있다”며 한 예를 들었다.

“노조를 오래 하신 선배들도 임금피크제로 말년 2년 남으면 노조를 탈퇴해요. 돈 줄어드니까 돈 아깝다 이거죠. 그리고 노조에 더 이상 덕 볼 일도 없다 생각하시고요. 근데 임금 줄어든 만큼 조합비도 덜 내거든요. 그래도 나가요. 솔직히 5~6만 원이 아까울 수도 있는데, 저는 그런 태도가 후배들에게 전이된다고 봐요. 자기들도 그런 행동을 했기 때문에 후배들이 자기 것 챙기는 모습을 뭐라고 할 수 없는 거죠.”

물론 임금피크제로 인해 빚어진 초상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T의 말에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T가 다니는 공기업에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지 5~6년이 지난 지금 선배가 후배에게 노조 가입을 열성적으로 권유하는 모습은 옛날 일이 됐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T는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 할까?

그렇다면 노조는 무엇을 해야 할까? T는 우선 조합원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폭넓게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에 직면했다. 임금 수준, 노동조건, 조합원의 생활 측면에서 개선해야 할 것은 이미 개선을 많이 했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회사 생활에 큰 불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금 수준도 타 산업에 비해 나쁘지 않았고, 임금 인상도 총액임금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제한적임을 받아들였다는 게 T의 해석이다. 고용도 안정적이다. 노동시간도 더 개선하려면 주4일제 의제를 선도적으로 내세워야 하는데, 사회적인 눈높이가 있다 보니 섣부르고 현실적인 목소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도 조합원들이 회사 생활에서 말하는 불만과 고민은 개인적인 승진·전보 문제, 직종에 따라 발생하는 근무조건 문제 등이다. T는 “노조가 미래지향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비전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당장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정권이 바뀌어서 공기업 효율성을 강조하면 구조조정이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T는 무엇을 해야 할까? T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의견을 구하기 위해 선배 혹은 비슷한 나이대의 간부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선배들과 고민을 나누긴 하는데, 별 답이나 위로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 비슷한 나이대의 간부들에게는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T는 “결론적으로는 거의 다 떠나고 저랑 한두 명 정도 남은 상황이다. 또래 간부들이 좀 있었는데, 개인 사정을 빌미로 간부 활동을 그만 뒀다. 물론 조합 탈퇴는 하지 않았지만. 조합 활동에서 제가 굉장히 외로웠다”고 말했다. 그래도 T는 지회장 역할을 위해 여러 방안들을 모색해봤다. 소통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다른 지회에서는 하지 않는 지회소식지도 만들었다. 요즘은 디자인의 시대라는 생각으로 지회 모임 포스터 하나를 만들어도 재밌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고민했다. 비록 노력한 만큼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T에게 입사 당시의 지회와 비교해보면 어떤 것 같냐는 잔인한 질문도 던졌다. “활성화된 조직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지회 안에 소속 조합원들이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소모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T는 입사 당시를 떠올리며 덧붙였다.

“(당시) 지회장님 주도로 저를 포함한 또래 청년조합원들과 족구모임이 있었어요. 족구하고 끝나고 술 한 잔 하고 한동안 잘 됐죠. 거기에서 친한 관계도 형성되고, 거기서는 우선 노조 이야기는 안 하고요. 공 차는 이야기하고 사는 이야기하고 하는 건데, 계속 사람들이 모이고 움직이는 조직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청년들이 더 중요하고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하면 좋지만 그런 분위기가 안 만들어지면 선배들이 주도해 주는 것도 괜찮다고 봐요.”

T도 소모임을 활성화해보려 했지만 코로나19가 걸림돌이 됐다. 또한 지금은 조합원들 사이에 노조가 하는 일에는 엮이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어서 난감하다고도 설명했다.

T의 당부, 그래도 이걸 생각해보자

그럼에도 T는 노동조합이 노동자에게 필요한 공간이라고 봤다. 필요한 공간을 위해서 노조 간부들의 활동이 지속가능해야 한다고 봤다. 이왕이면 단위노조가 상급단체에 가입해 노조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지쳐서 내년부터 노조 간부 활동을 놓는다고 하는 사람치고는 상당히 객관적인 자기 고민들이었다. 물론 희망을 본 구석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말 뭐 망하라는 법은 없는지, 송곳이라는 것도 결국에 못 참고 뚫고 나온다는 거잖아요. 그런 사람이 있기는 있는 것 같아요. 청년 간부들이 한두 명씩 나오거든요. 다만 제 주위에서 못 찾을 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노력을 꾸준히 하면 성과는 있을 것 같고요. 다만 어떤 사람들을 찾고 만든다는 것 자체가, 그것도 제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하는 시간이고 무조건 하면 되는 건 아니니 쉽지는 않죠.”

갈아 넣는 식의 개인 희생으로 생명력을 간헐적으로 이어나가는 노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조의 교육사업이 중요하다는 게 T의 생각이다. 교육사업이 조합원과 젊은 간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꼰대 아니면 노조 전문가가 되는 건데, 전문가가 되려면 전문가 양성 과정이 필요해요. 개별 기업 차원의 교육사업도 해야 하고, 다만 노조 전문가를 양성하기에는 개별 기업이 가진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개별 기업에 갇힌 시각을 넓히기 위해 상급단체를 통한 교육도 필요하고요. 물론 노조 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적 분위기도 뒷받침해줘야 해요.”

노동조합의 교육사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후 T는 조합원이든 간부든 주체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넌지시 꺼냈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나의 조건이든 우리의 조건이든 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활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시간과 노력이 온전히 나 혹은 우리의 삶을 갈아 넣어 만든다는 것을 느끼지 않게 할 노조 중앙의 적절한 역할이 필요하고요.”

T의 고민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일까. 고민의 내용은 달라도 노동조합 하는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는 고민이라고 봤다. T는 많은 이야기 뒤에 다른 노동조합은 어떠하냐고 물었다. 다른 노동조합의 요즘 모양새에 대한 궁금증, 비교를 해보며 별반 다른 것 없다는 안도감, 힌트를 얻고 싶은 답답함이 섞인 질문이었다. 다른 노동조합의 고민은 무엇일까, 다른 노동조합은 고민의 실타래를 누구와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이곳저곳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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