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⑤] ‘잘 굴러가는’ 노동조합을 고민한다
[커버스토리⑤] ‘잘 굴러가는’ 노동조합을 고민한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04.02 07:29
  • 수정 2021.04.05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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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간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커버스토리 ➎ 노동조합 간부들의 말말말

커버스토리 × 누가 어떻게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사회·경제·정치적 지위와 조건을 바꿉니다. 바꾼다는 말은 결과를 부각시킵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관심은 높아져도, 누가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은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일반적으로 결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과정에는 관심이 적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떻게 노동조합을 움직여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과정에 집중해봤습니다. 이른바 ‘노조한다’는 사람들을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봤습니다.

이강호 한국노총 식품노련 페르노리카코리아노동조합 위원장
“노동조합이 노동조합다우려면 끊임없이 도전에 직면해야겠죠. 안주하기 딱 좋은 데가 노동조합인 것 같아요.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 대로 흘러가고, 아무 일도 만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 듯 흘러가겠죠. 간부들이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해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유기적으로 질문하고 또 하고. 저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위원장이라면 간부를 계속 독려해야겠죠.”

IT업계 노동조합 위원장 B씨
“간부가 조합의 이익이 아닌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순간, 경영진을 상대로 뭔가를 말하기가 굉장히 어렵게 돼요. 철저하게 자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경영진이 잘못된 인사를 하면 비토를 행사하고, 조합원들의 불만을 여과 없이 사측에 얘기할 수 있는 거고요. 못하는 곳은 이유가 있는 거죠. 노조가 권력화되지 않아야 신뢰가 쌓인다고 봐요.”

안병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법리로 따지자면 풀기 어려운 조합원 문제도 있어요. 그럼에도 단호히 끊을 수 없는 건 집행부가 현장의 사정을 이해하기 때문이에요. 한 번은 어떤 조합원이 노조에서 알려준 대로 회사에 대응했더니 ‘더 이상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대화상대로 인식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더듬더듬 갈지라도 못하고 있지 않구나, 나아가고 있구나 생각했죠. 귀 기울이고 자세히 안내하려고 굉장히 애를 씁니다.”

정민정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노조가 힘이 세지고 노동조건 따내다 보면 더 이상 할 게 없어요. 안주하게 되고, 안주하는 순간 자본의 공격이 들어와요. 느슨해진 사람들은 투쟁을 안 해요. ‘줄 거 주지 뭐’ 이러거든요. 우리 매장만 보면 시야가 아주 좁아지는 거예요. 그러면 할 게 없어. 노조에 그냥 조합비 내는 거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노조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뭐 있어?’ 이렇게 되잖아요. 우리가 잘 싸워온 건 근본적인 마트노동자들의 처지, 가령 저임금이나 건강 등 다 우리 매장만의 싸움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마트노동자가 다 단결해서 싸워야 하는 거고. 노조가 자기 현장에만 갇히면 필패한다고 보거든요.”

윤태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 분회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가능했던 건 기본적으로 집행부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인 듯해요. 자만일 수도 있지만 ‘그래, 저들이 생각하는 게 맞겠지’라는 인식이 서울대병원분회 안에는 되게 많아요. ‘전권을 줘도 배신하지 않았고, 우리를 위해 지난하게, 힘들게 싸워왔다’는 걸 10년 동안 조합원들이 확인한 거예요. 불만도 있었지만 설득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동의했던 거죠. 집행부가 한 번도 조합원들에 대한 원칙을 훼손해본 적도 없고.”

김준희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 지회장
“사측의 부조리에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면 노조를 경험해본 제가 해야겠다 싶은 거죠. 노동조건이, 생산성이 좋아진다는 게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일이에요. 그냥저냥 일했을 때랑, 자기가 주체적으로 의식과 의지를 가지고 일할 때랑 얼마나 다른지 아시잖아요. 이번 투쟁을 확실히 하려는 이유예요.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고.”

김형선 한국노총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
“매일은 못하지만 가능한 날은 생일인 조합원들과 통화를 해요. 집중하면 하루에 20~30명 조합원과 통화가 가능하거든요? 대부분의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지만, 요즘 근황이나 현장의 실태를 듣고자 해요. 그날그날 영업현장의 고충을 체크할 수 있으니까 저에게는 가장 큰 정보원이죠. 위원장이 제일 먼저 현황을 체크하니까 집행부의 업무속도가 느려질 수 없어요. 조합원들은 집행부에 대해서 ‘대응이 빠르고 현장을 잘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완성차노동조합 위원장 A씨
“제 경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이런 거예요. 현재 회사가 성장궤도인데요. 조합원들은 주가가 언제까지 오를 것 같으냐고 물어요. 수익 얘기를 하는 건데, 간부라면 그 말을 듣고 사측에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을지, 회사는 어떤 경영 전략을 펼칠지, 성장 속에서 노동자는 얼마만큼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를 전망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임금 말고도 어떤 의제를 가져갈지 정할 수 있죠,”

박태용 민주노총 화섬연맹 네이버지회 부지회장
“뇌관을 누르는 게 간부의 역할인 것 같아요. 조합원들이 불만인 지점을 잘 찾아내야죠. 잘 찾아내서 상황을 만들면 참여가 활발해지죠.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일이라도, 계기가 있어야 행동으로 표출되잖아요. 경영진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결국엔 간부의 말발이 아니라 사안에 공감하는 조합원 수에 있고요. 그 규모가 확연히 보일 때면 문제 대부분이 해결됐던 거 같아요.”

전나영 한국노총 공공노련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교육문화부장
“비상근이니까 제가 직접 협상하는 건 없어요. 다만, 조합원의 의견을 상근한테 잘 전달하고 의제에 반영하게끔 하는 게 비상근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상근의 생각을 조합원들에게 잘 전해주는 것도요. 점심때마다 조합원들 만나서 요즘 고민이나 대두하는 이슈가 뭔지 듣고, 매주 열리는 회의에서 조합원들이 이런 생각이니까 그 아이템에 대해서 꼭 고려해 달라고 상근에게 얘기하고. 단순히 문제점만 제기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이 만족할 수준의 해결책을 생각해보는 게 제 임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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