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③] ‘노조하기’의 현실적인 고민들
[커버스토리③] ‘노조하기’의 현실적인 고민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4.02 07:29
  • 수정 2021.04.02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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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구성·조직화·일상활동·교육 등 모든 게 어렵다
노동조합의 힘은 ‘조합원 참여’ … 그런데 어떻게?

커버스토리 ➌ 조합원 참여를 고민하는 노동조합

커버스토리 × 누가 어떻게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사회·경제·정치적 지위와 조건을 바꿉니다. 바꾼다는 말은 결과를 부각시킵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관심은 높아져도, 누가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은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일반적으로 결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과정에는 관심이 적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떻게 노동조합을 움직여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과정에 집중해봤습니다. 이른바 ‘노조한다’는 사람들을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봤습니다.

“회사에 대한 불만이 나 혼자만의 불만이라고 생각한다면 개선하기보다는 감수해요. 또 회사에 불만을 표시했을 때 그로 인해 내가 받는 불편을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따질 거예요. 그렇게 치면 불만이 크지 않다고 볼 수 있죠. 삼성이 주는 상징적인 이미지 때문에 감수하는 것들이 많거든요.”
- 진윤석 한국노총 금속노련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노동조합을 통해서 들어오는 현장의 고민이 예전만큼 많지 않아요. 재작년에 정규직 전환해서 들어온 사람을 제외하면요. 정말 없어서일 수도 있고 노조가 못할 거라 생각할 수도 있고요. 또 아니면 내 삶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투쟁을 통해서 바꿔야 하는 걸 모르는 세대가 있어요.”
- 윤태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 분회장

노동조합은 참여의 공간이다. 노조할 권리는 자신의 일터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노동조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노동조합의 힘은 세진다. 어떻게 참여하게 할 것인가. 노동조합의 가장 큰 고민이다.

노동조합 하실 분?

LG전자사람중심사무직노동조합(위원장 유준환, LG전자사무직노조)은 올해 2월 25일 출범했다. LG전자사무직노조는 준비 단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노조 설립이 드문 화이트칼라 직종이기도 했고, SK하이닉스발 성과급 논란이 단초가 되기도 했다. 가장 큰 요인은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노조 설립이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최대성 LG전자사무직노조 부위원장은 2년여 전 노조 설립이 무산된 적이 있다며 “2주 만에 설립신고까지 마쳤다. 디테일에서 부족함이 있지만 오히려 빨리 추진해서 설립에 성공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LG전자사무직노조는 사람들이 블라인드에서 보인 관심이 노동조합 가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저희는 지금 공개된 밴드에서는 홍보 위주로 활동하고 비공개 네이버 카페로 인원을 옮기고 있어요. 카페에서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려 해요. 키워드만 제시하고 조합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는 창구로 만들려고요.”

LG전자사람중심사무직노동조합이 2021년 2월 25일 서울시 영등포구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증을 제출했다. ⓒ LG전자사람중심사무직노동조합
LG전자사람중심사무직노동조합이 2021년 2월 25일 서울시 영등포구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증을 제출했다. ⓒ LG전자사람중심사무직노동조합

노동조합 가입했는데, 그 다음은?

하지만 노동조합 가입이 노동조합 참여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안병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노조의 연속성을 위해서라도 조합원 참여를 고심하고 있다. 2~3개월 단위로 휴지기가 있는 영화산업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했지만, 조합원들이 뭘 할 수 있는지 감이 없는 것 같아요. 노조 가입이 이뤄져도 지속적이거나 꾸준하지 못해요. 영화 스태프들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일해요. 노조가 처음인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연차가 있는 분은 노조가 아니라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죠. 이렇게 회전하다 보니까 늘 새로 조직해야 하고요. 노동조합이 꽤 오래됐음에도 현장에서는 늘 새롭게 인식하는 것 같아요. 전략적인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같은 고민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에서도 이어진다. 한국노총 금속노련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위원장 진윤석)은 7년여의 준비 끝에 2019년 11월 13일 설립을 알렸다. 노조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삼성전자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진윤석 위원장은 지난해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근골격계 질환 투쟁을 노동조합의 성과라고 봤다. 실태조사에서 언론 보도, 국정감사, 근로감독 시 참관까지 노동조합 집행부의 ‘계획’ 속에서 진행됐다. 회사의 사과와 함께 문제 개선을 위한 별도의 조직이 꾸려졌다. 하지만 투쟁의 ‘성공’이 조합원 참여로 직결되지 않았다. 진윤석 위원장은 현실적인 이유로 홍보사업이 뒷전으로 밀려난 배경을 설명했다.

“다른 사업장에 홍보가 잘 안됐어요. 광주 못지않게 구미, 천안, 온양, 기흥, 아산, 평택도 다 폐해가 많거든요? 광주사업장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업장에서도 용기 있는 사람이 나올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할 일은 많은데 집행부 숫자가 적으니 홍보 부분에 힘을 덜 실었던 측면이 있어요. 그게 좀 아쉬워요. 할 일은 많은데 집행부가 적은 거죠.”

다양한 이해관계, 쉽지 않은 조율

한편으로 규모가 큰 노동조합은 직군 다양성이 조합원의 참여를 어렵게 하고 있다. ‘나의 직군’의 문제를 노동조합이 주력했으면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에 실망한다. ‘내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 노동조합’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IT업계 노동조합 위원장 B는 “화이트칼라 직종의 노동조합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아니면 정규직에서도 처우와 미래 비전체계가 상이한 직군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군 간 갈등이 주니어 계층의 이탈요인이 돼요. 익명게시판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면 이해가 돼요. 명문대 가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했더니, 왜 노조가 싸워서 직군전환제도 도입하느냐고요. 상대적으로 굉장히 기분 나쁜 거예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인정해야 하는 문제인데 노동운동 진영에서 보면 이를 인정하기가 곤란하잖아요? 이런 상황에 점점 곪아가는 거예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지회장 오세윤)도 네이버 계열사마다 상이한 노동조건 때문에 고민이 크다. 네이버에는 네이버(검색), 라인(메신저), 웹툰 등 독자적인 서비스하는 회사가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운영유지법인’도 있다. 네이버 서비스가 작동하기 위해서 운영유지법인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조건 격차는 심하다. “10년을 일해도 네이버 초봉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는 게 이수운 네이버지회 홍보국장의 설명이다.

“올해 노조는 계열사 전체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네이버가 실적이 잘 나오는 건 팔다리가 돼는 운영법인이 역할을 충분히 해주기 때문이기도 해요. 골고루 나누자는 게 노조의 생각인데, 실제로 조합원 중에서도 ‘거기 파이를 좀 뜯어주면 내 파이가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이게 정규직 비정규직 갈등이랑 비슷해요. 어떻게 같이 성장할 수 있을지 설득하는 게 노조의 역할인 것 같아요. 경영진도 잘 설득해야 하고 구성원도 설득을 잘 해야죠.”

IT업계 노동조합 위원장 B는 매해 교섭 요구안을 짤 때마다 절충안을 찾으려 노력한다. 네이버지회는 네이버 내에서도 다양한 처우를 받는 노동자가 있음을 드러내는 작업과 교섭 요구안에서 ‘공동복지’를 추진하고 있다. 박태용 네이버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노동조건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격차를 줄여나가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불만이 줄어드니 참여도 줄어든다

노동자를 괴롭히던 문제가 해결된 후 역설적으로 조합원 참여가 줄어든 곳도 있다. 임은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위원장은 노동조건의 향상이 조합 간부 지원자 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작년 11~12월에 투쟁으로 4조2교대 전환이 전반적으로 이뤄졌어요. 근로조건이 전반적으로 좋아지니까 그 이후로 노동조합 하려는 사람이 줄어든 게 사실이에요. 노동조합 하면 교대근무 할 때 나와야 하고 연대투쟁을 하려면 토요일에도 나와야 하죠. 한 마디로 자기의 생활과 노조에 투여하는 시간의 배분에 역전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민주노총 산하 공기업노동조합 간부 T도 같은 의견이다. T는 “참 역설적이라고 본다. 이미 개선할 것들은 개선을 많이 했다”면서, “주5일제 하루 8시간 근무보다 우리는 적게 일한다. 여기서 주4일제나 정년연장을 제기해야 하는데 당장 이슈화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배고픈 시절이 지난 뒤 노동조합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면서 노동조합의 일상 사업을 강화할 필요성을 말했다. 임금이나 노동시간 등 전통적인 의제 외에도 조합원의 삶에 밀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세대를 3포 세대라고 부르잖아요? 결혼도 포기하고 뭐도 포기하고. 그런데 저희는 회사를 다니니까 연애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맨날 야근하고 늦게 퇴근하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다른 노동조합이랑 컨택해서 미팅 주선도 추진하고 있어요. 물론 임금보다는 훨씬 가벼운 사안일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조합원의 니즈를 정확하게 해결해준다는 측면에서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윤태석 서울대병원분회 분회장도 “노동운동 하려고 서울대병원 들어온 게 아니다. 돈 벌러 들어왔다가 노동운동 한 것”이라면서, “서로 관계설정이 되지 않으면 노조활동에 참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윤태석 분회장은 등산회 등 소모임을 통해 노조활동의 교두보를 만들고 있다.

교육, 필요는 한데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입을 모아 조합원 참여를 위해 ‘교육’이 절실하다고 봤다. 공기업노동조합 간부 T는 “노조 교육은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노조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시스템적 지원과 재정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동조합에게 교육은 어려운 과제다. 노동조합에서 교육할 사람도 없고, 회사가 제공하는 교육 시간도 얼마 없다. ‘돈과 인력의 부족’이라는 말의 기저에는 타임오프제도(Time off, 근로시간면제제도)가 깔려 있다.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사용자의 급여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노무관리적 성격이 있는 업무에 한에서만 일정 한도의 시간 내 노동조합 간부의 임금을 사용자가 지급하는 제도다. 완성차노동조합 위원장 A는 “타임오프제도 시행 이후로 노동조합 교육이 활성화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타임오프 제도가 현장 활동의 다양성을 줄이는 기능을 하고 있어요. 신문을 하나 만들어도 예전에는 편집위원을 두고 여러 계층 위원을 데려와서 만드니까 다양성이 들어갔어요. 현장 조합원들은 자기 목소리가 나오니까 관심 있게 보고요. 노조 활동을 극적으로 높이는 방향을 위해서라도 타임오프 문제를 해소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해요. 규정이 필요한 게 아니라 과거처럼 노사 자율적으로 논의해서 현장에 도움이 되는 선으로 확대될 수 있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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