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산업과 문화의 변화 속 노동조합의 고민
[커버스토리②] 산업과 문화의 변화 속 노동조합의 고민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04.02 07:28
  • 수정 2021.04.16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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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경영기법고도화 속 노동조합의 고민은 깊어져
뚜렷해지는 세대 간 ‘문화’ 차이, 어려워지는 ‘소통’

커버스토리 ❷ 변화를 맞이한 노동조합의 고민

커버스토리 × 누가 어떻게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사회·경제·정치적 지위와 조건을 바꿉니다. 바꾼다는 말은 결과를 부각시킵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관심은 높아져도, 누가 어떻게 바꾸는지 관심은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일반적으로 결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과정에는 관심이 적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떻게 노동조합을 움직여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과정에 집중해봤습니다. 이른바 ‘노조한다’는 사람들을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봤습니다.

“비대면 뉴노멀. 변화가 뻔히 예상되는데 대응방안이 딱히 없어요. 수년 동안 싸워서 PC오프 제도를 도입했는데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그런 노력이 유명무실해질 위기예요. 또 한편으로 아이러니한 게 노동자 입장에선 ‘재택근무 뭐야?’ 했는데 편하니까 적응을 잘해요. 사용자는 화상회의 등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걸 테스트를 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어떤 칼날이 돼서 돌아올지 몰라요.”
- IT업계 노동조합 위원장 B

“요즘 젊은 친구들이 다 그런 거 같아요. 개개인이 자존심 세고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관이 명확해요. 그래서 조직이나 노조에서 내세우는 대의를 위해서 어떤 걸 하자고 할 때, 동의를 해야 분명히 따라와요. 방법론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자체를 거부하거나 기분 나빠서 안 나오거나 그렇진 않아요.”
- 장기호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위원장

산업이 변한다.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디지털 전환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사람도 변한다. 90년대 생, MZ세대 등은 기성세대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산업과 문화가 예측하기 어렵게 변한다. 변화는 ‘일터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공동체’인 노동조합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산업전환이 두렵다

코로나19 이후 IT산업이 급격히 성장했다. 하지만 IT업계 노동조합 위원장 B는 회사의 성장세가 염려스럽다. ‘구조조정의 위험’ 때문이다.

“전통적인 대면산업 영역도 붕괴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소매직영이라 표현하는 판매영역은 코로나19로 예전만큼 사람들이 안 오니까 절반을 재택근무 시켰어요. 여기서 회사는 판매매장을 축소하거나 전시·시험공간으로 바꾸고 있어요. 일자리가 자체가 줄어드는 거죠.”

회사가 직접적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알린 건 아니다. 하지만 “발 빠른 변화가 눈에 보이는 상황”이다. B는 코로나19발 산업재편이 노동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당장 체감하는 변화가 없다보니 조합원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노동조합에서 만들어놓은 안전망도 자동화로 일자리가 사라지면 무너지게 돼 있어요. 그런데 이게 하나도 와 닿지 않아요. 재택근무하면 편하거든요. 보기 싫은 팀장 얼굴 안 봐도 되고 늦잠자도 되고요. 노동시장에서 보이는 변화를 현장 조합원의 문제로 만들어내려고 하는데 접점이 없어요.”

정민정 민주노총 마트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이 마트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고령의 여성 노동자가 많은 마트산업에서 정년퇴직이 발생하는 만큼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마트에서 발생하는 4차 산업혁명은 셀프계산대 정도지만 위협적이에요. 셀프계산대가 들어왔다고 인위적으로 자르는 게 아니라 인원이 부족한 부서로 보내요. 이런 식으로 마트에서 인원 감소가 심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구조조정이 ‘소리 없이’ 진행되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마트노동자가 산업 재편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트산업노동조합에서는 교육을 통해 이 문제를 알리고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이 현장에서는 ‘왜 이리 힘들어졌지?’ 이런 느낌으로 다가와요. 누군가가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잘 몰라요. 그래서 조합원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구조조정의 본질이 뭔지 꾸준히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2019년 5월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가 단체교섭을 위해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앞에 농성장을 꾸렸다. 여기에 카카오지회가 연대했다. ⓒ 네이버지회
2019년 5월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가 단체교섭을 위해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앞에 농성장을 꾸렸다. 여기에 카카오지회가 연대했다. ⓒ 네이버지회

경영 대응이 더욱 어려워졌다

산업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건 노동조합뿐만이 아니다. 기업도 경영상 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산업변화에 대응한다. 회사 자체를 여러 개로 쪼개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관련한 문제는 가장 후순위로 밀려난다. 기업별 노동조합이 대다수이며,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가 미진한 한국의 노동조합 현실에서 이러한 기업의 경영 전략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한화생명은 제판 분리를 추진하고 있다. 제판 분리란 제조와 판매의 분리를 뜻한다. 한화생명은 독립법인보험대리점(General Agency, GA) 형태로 판매법인인 자회사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올해 4월 출범시킬 계획을 밝혔다. GA는 특정 보험사에 소속되지 않고 여러 보험사와 제휴를 맺는다. 한화생명의 보험뿐만 아니라 경쟁사의 보험도 판매할 수 있다. GA는 보험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한화생명의 전체 임직원 중 35%인 1,400여 명이 한화생명금융서비스로 이동한다. 특수고용형태로 일하던 2만여 명의 보험설계사(Financial Planner, FP)도 판매법인으로 적을 옮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소통은 없었다. 오히려 보험설계사의 수수료 삭감 등 문제가 불거졌다.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가 생겨난 배경이다. 2021년 1월 21일 지회 출범 후 두 달여 만에 2,500여 명의 보험설계사가 가입했다. 폭발적인 가입세를 보였지만 김준희 한화생명지회 지회장은 제판 분리 자체를 막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말했다.

“문제는 4월 1일이면 한화생명금융서비스로 넘겨버릴 거라는 거죠. 한화생명과는 3월 31일로 일단 끝이 나요. 이후에도 계속 이야기를 하겠지만 한화생명은 계속 핑계를 댈 거잖아요. 원래는 GA로 안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요구안만 들어주면 그래도 괜찮은 노동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네이버 계열사 노동조합을 지향하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도 네이버 계열사의 잦은 인수·합병·양도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수운 네이버지회 홍보국장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비엔엑스(BeNX)로 양도되는 네이버 브이라이브 사업부 사례를 들었다.

“회사의 경영상 결정이 노동자 개인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어요. 네이버로 입사해서 브이라이브 사업부에서 일을 해왔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다른 회사로 넘어가야 해요. 특히 개발자들은 본인이 만든 서비스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높아요. 내 새끼가 팔려가는 것도 서러운데 나도 같이 팔려가는 상황인 거죠.”

네이버는 1월 27일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글로벌 K팝 동맹’을 발표하고 양사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인 ‘브이라이브’와 ‘위버스’를 올해 12월까지 통합한다고 밝혔다. 브이라이브 사업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네이버 퇴사 후 비엔엑스에 입사해야 한다. 네이버는 “미리 직원들과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직원들이 걱정하지 않을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지회는 계열사의 분리 매각에 따른 노동조건 저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계열사 이동 현황, 조합원 수 추이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통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박태용 네이버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노동조합이 이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는 분위기는 아직까지 아닌 것 같다. 다만 문제를 말할 수 있는 창구로 인식하긴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강승욱 한국노총 화학노련 비아트리스노동조합 위원장도 최근 기업 분할을 겪었다. 화이자제약의 특허만료약사업부가 분할돼 비아트리스로 합병됐다. 화이자제약노동조합도 분사에 대응하기 위해서 화이자제약노동조합과 비아트리스노동조합으로 분리했다.

강승욱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제약산업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분사문제를 단위사업장 노동조합의 힘으로 대응하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조합원에게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다.

“조합원에게 산별노조를 통해 현재 제약산업의 고용불안을 사용자단체와 협의할 수 있고 정부와 국회까지 손을 뻗칠 수 있다는 점을 전달하지만 탁 꽂히기는 아직까지 힘들어요. 한 대의원이 ‘그 부분도 중요하지만 당장 비아트리스가 되고 나서 생긴 고용불안이 더 중요하니 여기부터 신경 써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문화가 바뀌었다

‘90년대 생이 온다’는 말은 세대 간 문화 차이를 표현한다. 회사보다 노동조합에서 문화 차이는 극명하다. ‘희생’을 강조했던 기존 노동조합의 문화가 신규 입사자의 생각과 자주 부딪힌다. 임은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위원장은 “세대교체가 단위노조별 숙제”라고 말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나가는데 그 중에 노조 간부들도 있어요. 여기서 청년 간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한데, 쉽지 않아요. 개인시간을 중시하는 시대이다 보니 ‘휴일에 나와서 회의하자, 투쟁하자’ 이야기하는 것도 부담이에요. 근로조건이 좋아져도 교섭이 없어지거나 해야 할 업무가 없어지는 건 아닌데, 예전처럼 희생을 요구할지 아니면 회의구조나 활동방식을 바꿔야 할지, 이런 부분이 숙제죠. 정답을 얘기하는 것도 섣부르고요.”

완성차노동조합 위원장 A는 “요즘에는 애사심이라는 표현이 없어졌다”면서, 기존의 공동체 문화를 노사가 유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공정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컨베이어벨트식 노동과정상 ‘한 팀’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중요한데, 이를 보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낚시 대회나 체육대회를 하면 노조 간부나 회사 간부나 힘들지만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문화가 형성돼요. 이러한 문화를 비용이나 노사 대립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고민했으면 어땠을까 싶죠. 예전에는 애사심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애사심 속에서 품질 문제를 고민하게 돼 있어요. 요즘에는 회사에서 8시간 채우고 돈 받아 가면 돼요. 불량은 두 번째 문제인 거죠.”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집행부의 평균 연령은 30대다. 장기호 위원장은 “자기가 하고 싶고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때 집행부가 적극성을 보인다고 말했다. 장기호 위원장은 ‘인국공 사태’를 떠올렸다.

“집행부는 정규직 전환은 이해해요. 그런데 합의한다고 해놓고 정부가 밀어붙이니까 배신감이 드는 거예요. 젊은 조합원들은 정치적인 게 아니라, 맞냐 아니냐 단순한 거예요. 그런데 관심이 덜한 주제는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집행부를 모아놓고 계속 이야기하면서 토론하는 거예요. 그게 안 먹히면 두세 명씩 따로 이야기하고요.”

산업과 문화의 거대한 변화에 맞서 노동조합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다. 기껏해야 버틸 수 있을 뿐 해결은 불가능해 보인다. 인력도 돈도 부족하다. 하지만 해답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보다 답을 구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조합원들이 참여하느냐가 실질적인 노동조합의 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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