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부당해고 판정 MBC...복직의무 이행 관심
작가 부당해고 판정 MBC...복직의무 이행 관심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04.21 16:54
  • 수정 2021.05.13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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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위 판정서, 방송 현장 특수성 살펴
방송작가지부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에 경종 울렸다”
언론노조 “방송계 만연한 차별 바로잡는 변곡점 될 것”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MBC 보도국에서 일한 두 방송작가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를 인정한 중노위의 판정서가 20일 MBC로 전달됐다. 방송국 프리랜서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중노위 판정서가 전해지면서, 정규직과 다름없는 업무에 프리랜서·비정규직을 채용하는 방송사 관행의 변화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정규직 백화점’으로 불리는 방송사에는 두 방송작가와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판정서를 받은 MBC는 30일 이내에 두 작가를 해고 이전 업무로 복직시켜야 한다. 구제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MBC는 2년간 최대 1억 6,000만 원(건당 8,000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단, MBC가 중노위의 판정에 불복하면 판정서를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MBC 측은 20일 통화에서 “아직은 판정서를 검토하는 단계로, 분석을 다 마친 후에야 (복직 여부 등에 관한)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방송작가가 조합원으로 있는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지부장 김한별)는 “방송사의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에 경종 울렸다”며 “MBC는 행정소송 포기하고 해고 작가를 즉각 복직시켜야 한다”고 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번 중노위 판정은 MBC라는 특정사업장의 특수한 사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방송계에 만연한 부당한 차별과 비상식을 바로잡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언론노조는 방송작가지부 조합원들의 포기하지 않는 뚝심이 만들어낸 투쟁의 성과를 이어받아 차별 해소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싸움을 중단 없이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에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방송작가 A씨와 B씨는 2011년부터 9년간 MBC <뉴스투데이>의 일부 꼭지를 맡아 일하다가, 작년 6월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당했다. 계약 기간을 약 6개월 남긴 시점이었다. 두 작가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끝에 부당해고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A씨와 B씨의 노동자성 자체를 부정한 지노위의 각하 판정이 뒤집힌 것이다. 당시 지노위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두 작가가의 부당해고 자체를 따져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중노위는 “지노위의 판정은 부당하므로 취소”한다고 밝혔다.

‘방송업 특수성’ 살핀 중노위 판결

중노위는 먼저 두 작가를 MBC에 종속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고, ‘서면통지 의무’를 지키지 않은 해고가 부당하다고 봤다. ‘구두’로 계약해지를 통보한 MBC의 해고 절차를 지적한 것이다. 해당 근거로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그 효력이 있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27조를 들었다.

이번 판정서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이유들이다. 방송 노동의 실질적 특수성을 고려해서 근로종속관계를 따졌기 때문이다.

두 작가의 노동자성을 가리기 위해서 중노위가 살핀 요소는 다음과 같다. ▲업무수행 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정해졌는지 ▲근로제공이 계속적이고 전속적인지 ▲업무에 필요한 물품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지 ▲두 작가가 업무를 제3자에게 대행시켰는지 ▲두 작가가 노무제공으로 별도의 이윤 창출과 그에 따른 위험 부담을 가졌는지 ▲보수의 성격과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했는지 ▲취업규칙을 적용했는지 등이다.
 

1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앞에서 열린 ‘MBC 방송작가 부당해고 구제 및 근로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이 A씨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1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앞에서 열린 ‘MBC 방송작가 부당해고 구제 및 근로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A씨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프리랜서의 재량권, 일반 노동자 수준에 불과
추가 업무에도 별도의 위임계약서 없어

중노위는 두 작가가 사측에게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다고 판단했다. 담당 PD, 총괄 PD, 영상편집자 등과 소통해야 하는 두 작가의 업무를 독립된 사업자(프리랜서)에게 따로 떼어 위탁할만한 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총괄 PD가 방송할 아이템 선정과 순서변경 등을 지시하고, 담당 PD가 원고 수정을 지시한 것을 사례로 들었다. 방송일정 문제와 관련한 경위서를 제출받은 것도 주요 사항이었다.

‘업무 시작 단계에서 아이템을 고를 수 있는 재량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두 방송작가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MBC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노위는 “일반 근로자가 업무를 수행할 때에도 통상적으로 부여되는 재량으로서, 매우 단순한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보조원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재량도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봤다. 설령 별도의 지시가 없었더라도 두 작가에게 높은 재량권이 부여된 건 아니라고 했다. 두 작가가 수년간 동일한 업무를 담당했고 방송용 원고가 정형화돼 있기 때문에 지시가 불필요했던 것일 뿐이란 설명이다.

중노위는 근무 기간 동안 A씨와 B씨에게 여러 업무가 추가된 점을 들어 MBC가 두 작가의 업무 내용을 정한다고 봤다. MBC는 ‘사전에 자발적 동의를 얻었다’고 했지만, 중노위는 두 작가에게 업무에 대한 단가를 알려주지 않았고, 별도의 위임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추가적인 업무 지시’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별도 사업자인 프리랜서에게 업무를 위임할 경우에 마땅히 거쳐야 할 절차가 없었다는 얘기이다.

실제 두 작가의 업무 행태를 봤을 때도 자발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평일 새벽 근무를 하던 A씨의 경우, 추가된 주말 뉴스데스크 업무로 2개월간 휴일도 없이 지냈다. 번역도 추가된 업무 중 하나였는데, 기존 번역 작가가 8만 원을 받으며 했던 일을 2만 원만 받으며 일했다.

방송작가는 근무 시간·장소가 정해진 직업
겸직 허용? 실질적으로 불가능

근무시간과 관련해서, 방송작가의 업무는 생방송 프로그램(뉴스) 특성에 따라 일정한 시간대로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근무 장소도 마찬가지로 봤다. 주된 업무인 원고 작성은 외부에서 수행이 가능함에도 담당 PD 등과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방송국이란 지정된 장소로 출근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중노위는 MBC의 견해와 달리 고용의 계속성과 전속성도 인정했다. MBC 측은 방송 프로그램은 언제든지 폐지될 수 있으며, 담당 작가도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기에 고용의 계속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노위는 계속성은 미래의 가능성이 아닌, 지금까지 근로제공 관계가 계속해서 이루어졌는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9년간 MBC에서 일한 두 작가의 계속성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속성의 경우, MBC는 ‘두 작가의 겸직을 제한하지 않았다’며 부인했지만 중노위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새벽에 업무를 수행한 두 작가가 사실상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며, 실제로도 다른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두 작가가 업무수행에 필요한 좌석과 컴퓨터 등 비품을 MBC로부터 제공받은 사실을 언급했다. 업무에 필요한 용품의 소유권은 근로종속관계를 따지는 중요 요소로, 사용자에 있으면 종속성이 높다. 또 두 작가가 맡은 업무를 제3자에게 위임할 수 없었으며, 업무를 통한 별도의 이윤 창출과 손실 위험도 안고 있지 않았다고 중노위는 판정했다.

“사회보험 가입 여부는 부차적 요소에 불과”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서 두 작가를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중노위는 “(사회보험 가입 여부는)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커 근로자성 판단에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고 했다.

MBC에게 받은 보수도 임금으로 봤다. “명시적인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없었더라도, 담당한 코너가 방송되는 횟수는 매월 거의 동일하였기에 고정적인 보수를 지급받았던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 해당 보수는 방송작가 업무를 수행한 대가로 지급된 것이므로 근로제공에 대한 대가에 해당한다”고 했다.

끝으로 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 등을 적용받지 않은 사정만으로 노동자성이 부인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중노위는 “규칙을 전면적으로 적용받지 않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업무에 필요한 특정한 교육을 이수하도록 한 점, 위임계약을 해지하면서 후임자에게 필요한 업무를 인계하도록 한 점 등은 취업규칙의 일부 규정이 적용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취업규칙 등의 적용 여부는 고용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사실상 임의로 정할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두 방송작가의 법률대리인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중노위의 판정서를 두고 “그동안 사용자가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주요 근거로 내세웠던 ‘재량’, ‘창작’이라는 도식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신청인 작가들의 주장을 100% 인용하면서 명확히 재확인하고 있다”고 이번 판결을 평가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잘 쓰여진 판정문”이라며 “문화방송이 소를 제기하기에 고민이 많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방송작가지부가 배포한 방송작가 채용공고를 보면, 방송사는 지금도 ‘상근하는 프리랜서’를 채용하고 있다. 방송작가지부는 “아직도 모든 방송사에서는 방송작가를 비롯한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로부터 배제된 채 착취당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가 신속하고 과감한 특별근로감독 집행에 나서, 이와 같은 무늬만 프리랜서들의 근로자성을 세세히 따져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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