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방송국은 노동을 말할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 방송국은 노동을 말할 자격이 없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11.12 18:18
  • 수정 2020.11.12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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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50주기 33차 캠페인 '상암동 방송 노동자 작은 문화제' 열려

청년 전태일의 기일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상암동 방송 노동자 작은 문화제'가 열렸다. 33번째로 열린, 그리고 전태일다리가 아닌 곳에서 열린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노동권과 인권을 전하는 방송사가 '무늬만 프리랜서'를 양산하는 이중성을 비판하며 개선을 요구했다.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부지부장이 '상암동 방송 노동자 작은 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부지부장이 '상암동 방송 노동자 작은 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유니온 부지부장은 "50년 전 한 청년이 온몸 바쳐 쏟아냈던 외침이 상암동, 여의도, 일산 등에 있는 방송국과 제작사 안에서 그대로 소리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며 "무늬만 프리랜서들을 수없이 양산해온 대한민국 모든 방송국은 모두 노동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한별 부지부장은 “MBC는 아마 내일 전태일 열사 50주기 관련된 방송을 틀림없이 내보낼 것"이라면서 "하지만 MBC가 전태일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노동 관련된 취재를 하고 방송을 내보낼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MBC는 6월에 10년간 보도국에서 일한 작가 A씨에게 전화 한 통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한 바 있다. MBC는 A씨가 '프리랜서'라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A씨 주장은 다르다. A씨는 10년간 사측의 지속적인 지휘‧감독 아래 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별 부지부장은 "방송작가도 노동자"라며 "같이 모여서 한목소리 낸다면 지금의 부당한 환경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야기를 듣고 계신 작가들은 모여 달라"고 호소했다.

대구MBC비정규직노조다온분회 조합원이자 '프리랜서'인 배주연 씨는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 확대를 요구하며 《전태일평전》 중 일부분을 낭독했다.

태일은 아버지의 얘기를 듣게 되면서 차차로 노동운동이 얼마나 험난한 일인가를 짐작하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가 옛날 파업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여 실패한 이야기를 하면서, "노동운동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하였을 때는 무척 실의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의 얘기로 용기가 꺾이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강렬한 용기와 새로운 투지를 얻게 되었는데, 특히 아버지와의 얘기 도중에 우연히 근로기준법의 존재와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의 전신에 새로운 희망과 확신과 환희가 벅차올랐다. 근로기준법의 발견은 실로 그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사건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 《전태일평전》 (조영래 저, 2020, 아름다운전태일) 중

배주연 씨는 이어서 "전태일이 분신하고 50년이 지난 지금, 근로기준법은 당시보다 좋아져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지만, 아직도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가 많다"며 방송 노동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차별받고, 외면당하다가 결국 죽어야만 노동자로 인정받는 세상이 진짜 옳은 세상인지 되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겪은 일이 50년 전 전태일 열사가 바꾸고 싶어 했던 노동자의 기본 권리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범죄에 너그러운 관행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단역배우로 일하다 성폭력을 당해 세상을 떠난 자매의 어머니인 장연록 씨는 "말로만 인권, 말로만 페미니즘이 중요하다 하지 말고 제발 현장에서 성희롱 예방 시스템을 만들라"고 방송계에 요구했다. 

장연록 씨는 "전태일은 직급이 낮다는 이유로 온갖 일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편이 돼서 끝까지 싸웠다"며 "관행이라고 쉽게 순응하고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방송 현장에서 오랜 시간 만연한 성폭력과 희롱을 함께 없애자며 맞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더라면 두 딸이 이렇게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방송현장 문제, 더 널리 알리려 노력할 것"

주최 측은 MBC 사옥 앞 거리에서 인근 노동자들에게 커피와 간식을 나누고, 전태일 50주기 기념 신문을 배포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커피와 신문을 받아든 상암동 일대 노동자들은 대체로 전태일, 혹은 방송노동자의 현실을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주최측이 배포한 <전태일50> 신문을 받아든 상암동 일대 노동자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60대 방송국 미화노동자는 "전태일 씨에 관한 얘기는 가끔 TV나 영화로만 접했다"며 "새벽에 눈떠서 출근하고, 들어가면 집안일 하느라 전태일이니 근로기준법이니 생각을 많이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송국 내 근무 환경에 대한 질문에는 "나는 말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의류업계에 종사하는 20대 노동자는 "평소 전태일이나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도 "최근 불거진 패션어시스트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방송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잘 알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한 IT노동자는 "방송국은 정규직이 아니면 힘들게 일한다는 걸 기사를 통해서 보았을 뿐"이라며 "전태일이나 노동 이슈에 대해 깊게 알지는 못하지만, 당연히 모든 노동자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재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최근 방송현장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가 노동조합도 만들고 현장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많은 행동을 하고 있다"며 "더 많은 사람과 더 큰 저항의 흐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문화제는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방송작가유니온,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 마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 CJB청주방송 故이재학PD 대책위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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