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치유119’ 전태일다리에서 출범
‘인권치유119’ 전태일다리에서 출범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10.21 17:08
  • 수정 2020.10.21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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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4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
인권치유119, 의료지원의 ‘대안적 모델’ 목표
녹색병원, “전태일이 맡긴 돌덩이 우리가 굴리겠다”
10월 21일 오전11시 23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인권치유119’가 출범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기업폭력·국가폭력 피해자 치유를 위한 전국 네트워크가 전태일다리에서 시작됐다. ▲녹색병원 ▲인권의학연구소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등이 힘을 모아 만든 ‘인권치유119’다. 이들은 10월 21일 오전 11시 전태일다리에서 진행된 23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인권치유119는 노동자·사회적 약자·소수자·인권침해 피해자·현장지원 활동가의 신체건강과 심리정신건강을 위한 현장진료, 심리상담 등의 의료지원을 할 예정이다. 전국의 농성현장과 투쟁사업장에 의료진과 심리상담사를 파견하고, 개인 심리상담과 집단 심리상담프로그램도 실시한다. 이보라 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장은 “2020년 대한민국 노동자의 처지는 전태일 열사가 산화하던 때보다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낙상·끼임·질식 등의 사고로 아직도 노동자들이 희생되고 있다”며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공감하고 치유하는 대안적인 모델이 되고자 인권치유119를 출범하게 됐다.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감히 치유하겠다고 나섰다. 우선 치유가 필요한 현장에 달려가겠다는 의미로 119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출범식에 참석한 노동자들도 축사를 통해 인권치유119를 응원하는 마음을 건넸다. 도명화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지부장은 “작년 고공농성 때 의사쌤들에게 아픔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 만남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왔다”며 “앞으로도 투쟁하는 노동자는 많을 것이고, 이들의 치유를 목적으로 함께해주시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건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 대표도 “코로나19 감염자분들은 자주 가던 단골 식당이나 이웃들로부터 냉대의 시선과 인간 바이러스 취급을 받았다. 그 때 한줄기 빛처럼 내려온 게 통통톡을 통한 심리상담이었다”며 “많은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경험하면 좋겠다”고 했다.

10월 21일 오전11시 23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인권치유119가 출범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봉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전태일 열사로부터 시작된 노동자들의 싸움과 죽음은 지금 이 시간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에 인권치유119가 있을 것이고, 민주노총도 최대한의 일을 함께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인권치유119에는 ▲군인권센터 ▲노동건강연대 ▲민주노총 ▲인권재단사람이 협력단체로 참여한다.

23차 캠페인은 인권치유119 출범선언문 낭독으로 마무리됐다. 이들은 “우리는 오늘 인권과 치유가 만나는 출발점에 있다. 이제 상처를 마주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119라는 현장성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라며 “노동자, 사회적 약자, 소수자, 인권침해 피해자, 현장지원 활동가들이 치유를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도록 지원하고, 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모든 불합리한 구조에 저항하며 함께 싸워 나가려 한다”고 밝혔다. 선언문은 인권치유119 참여단체들이 나누어 읽었다.

 

10월 21일 오전11시 24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녹색병원이 전태일병원을 선언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녹색병원은 전태일병원이 되고자 선언한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추워서 떨고 있는 아들에게 치마를 벗어 덮어주고는 의사에게로 갔다. 의사의 말로는 15,000원짜리 주사 두 대만 맞으면 우선 화기는 가시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훗날 집을 팔아서라도 갚을 터이니 그 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리자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러면 근로감독관에게 가서 보증을 받아오라고 했다. 분신 소식을 듣고 노동청에서 평화시장으로 급히 파견되었던 근로감독관 한 사람이 병원에까지 전태일을 따라와 있었다.

김지현 녹색병원 홍보팀장이 낭독한 전태일평전 개정판 337쪽 소제목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중에서.

이어진 24차 캠페인에서는 녹색병원이 전태일병원을 선언했다. 노동자의 ‘안전망병원’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여성·비정규직·영세사업장·특수고용노동자 등 이 시대 취약직종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을 위해 나서겠다는 것이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지 50년 되는 해 녹색병원은 노동자들에게 가까이 가는 전태일 병원이 되고자 선언한다. 전태일 평전에 있듯이 전태일 열사는 자신이 굴리다 못 굴린 돌덩이를 우리들에게 맡겨 놓았다. 녹색병원은 이제 그 돌덩이를 같이 굴리려 한다”며 “지금 노동자들의 삶은 50년 전과 비교해봤을 때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약한 노동자들의 아픔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이종훈 녹색병원 기획실장도 “녹색병원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함께하고자 한다. 전태일병원으로 그 책무를 다하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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