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예쁜 게 다가 아닌 서비스노동자 유니폼
[커버스토리②] 예쁜 게 다가 아닌 서비스노동자 유니폼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1.10.11 00:02
  • 수정 2021.10.11 0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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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성 높은 서비스 종사자가 원하는 건 ‘편안함’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 보이면 자신감 생겨”

작업복 이야기

작업복을 입은 누군가를 마주치면 그의 직업을 상상해볼 수 있다. 어떤 직업에 작업복이 입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들은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움직이기 더 용이하고, 존재를 구분하기 위해 작업복을 입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업복은 자기 일을 나타내는 명함임과 동시에 ‘일을 더 잘 하게 하는 옷’이다. 작업복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지 작업복을 입는 노동자들에게 물어봤다. 작업복이 지급되지 않지만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만나봤다.

커버스토리② 서비스 유니폼의 미래, 편안함+단정함

바지 유니폼을 입고 있는 KTX 승무원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바지 유니폼을 입고 있는 KTX 승무원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2014년 12월부터 KTX 여성 승무원들은 치마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그간 요구해온 바지 유니폼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지를 원한 건 H라인 스커트에 대한 반발 때문만은 아니었다. 16년 차 베테랑 이혜민 승무원은 겨울철 추위의 영향이 컸다고 답했다.

당시 치마만 입었던 여성 승무원들은 겨울이면 2~3겹의 스타킹을 착용했다. 객실 안팎을 오가며 일하는 승무원들이 추위를 피하려고 만든 궁여지책이었다. 몸을 조이는 스타킹은 승무원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복부에 압박이 가해져서 멀미를 하는 승무원도 있었다. 현장에선 지속해서 불만을 제기했고, 사측은 바지 유니폼을 도입했다.

올해로 도입 8년 차인 바지 유니폼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승무원들이 애용하고 있다. 2017년부터 KTX 승무원으로 일하는 최수빈 승무원은 입사 이후 지금까지 바지만 입고 일한다. 업무상 불편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2016년 입사한 조하은 승무원도 매일 바지를 입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바쁠 때는 정말 여러 곳에서 승무원의 도움을 필요로 해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치마를 입으면 일할 때 능률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서비스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편안함’

바지와 유니화는 치마와 하이힐보다 승무 업무에 적합한 유니폼으로 꼽힌다. 정적인 느낌의 유니폼과 달리 KTX 승무원은 적잖이 활동적으로 일한다. 플랫폼에서 승객을 맞이하는 ‘영접 인사’를 시작으로, 검표와 승하차 안내, 화장실·테이블·의자·방송기기 등 객차 내 시설 전반을 관리한다.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선반 정리와 승객의 짐을 옮기는 것도 주요 업무다. 용산역 승무원들은 최소 2시간, 최대 3시간 40분 운행하는 열차 안에서 관리를 위해 20분마다 열차를 순회한다.

활동적인 업무 특성을 반영해달라는 현장 요구에 사측인 코레일관광개발은 개선된 유니폼을 도입했다. 팔을 구부리기 힘들 정도로 두꺼웠던 동복 재킷엔 지난해부터 신축성을 가미했다.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재킷을 입은 채로 손을 올려 선반을 정리할 때면 여전히 어깨 통증을 느끼는 승무원도 있다. 더 얇고 보온성이 우수한 옷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혜민 승무원은 몸에 꽉 끼는 디자인을 지적하며 암홀 등 옷에 여유를 둬야 객실 정리를 보다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반에 손을 올리거나 의자와 테이블을 정리하다 보면 블라우스가 빠져서 허리춤을 잡으면서 일해요.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거죠.”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활동성을 고려한 유니폼을 원하는 건 화장품 판매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임해연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클라랑스지부 지부장은 “활동이 적지 않은 업무 특성을 고려하면 치마보다 바지를 입는 게 좋다”고 말했다.

“상담 테이블에서 고객과 면담하는 도중에 테이블 밑에서 제품을 꺼낼 때가 많아요. 치마를 입고 앉으면 속옷이 보일까 조심하게 돼요.”

신발에서도 클라랑스노동자의 업무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수많은 종류의 제품과 샘플을 채워 넣기 위해서 수시로 창고를 드나드는 탓에 유니화는 금세 닳아버린다. 이에 따라 회사에선 3개월마다 두 켤레씩 유니화를 지급했지만, 현재는 한 켤레로 줄었다. 회사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였지만, 노동자들은 부족함을 호소한다. 클라랑스지부에선 더 많은 유니화를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하기 위해서 낡은 신발을 회사로 보낸 적도 있다.

클라랑스 노동자가 바지를 입는 건 국내에서 유니폼을 제작했을 때뿐이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클라랑스는 평균 2년마다 유니폼 디자인을 바꾼다. 유니폼은 주로 해외에서 제작해서 들여온다. 매장에서 20년 넘게 화장품 판매노동자로 근무한 임해연 지부장이 국내 제작 유니폼을 입은 건 지금까지 세 차례에 불과하다.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 보이고 싶다

유니폼의 기능성을 강조하는 서비스노동자들이 외향적인 부분을 소홀히 여기는 건 아니다. 고객과 직접 마주하는 만큼 시각적으로 긍정적인 인상을 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출과 홍보, 브랜드 이미지뿐 아니라 착용자의 자신감도 높여준다. 하지만 반드시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단정함’과 ‘깔끔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원단과 부자재 등의 재질이 중요한 이유다. 통기성, 위생 및 세탁, 내구성, 착용감에 용이한 재질을 사용하지 않으면 고객 앞에서 단정한 모습을 보이기 어렵다. 방문노동자인 LG케어솔루션 매니저가 대표적이다.

LG케어솔루션의 바지 유니폼은 매니저들 사이에서 품질이 좋지 못한 것으로 유명하다. 통기성이 안 좋고 내구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도우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 서울남부지회 부지회장은 별도로 바지를 구매해서 입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밝혔다.

“유니폼 바지는 주름이 잘 지고, 지퍼의 고정력이 튼튼하지 않아요. 업무 중 앉고 서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지퍼가 내려가 있기도 하죠. 고객들 앞에서 공기청정기를 점검하던 중 지퍼가 벌어져서 당황했던 적도 있어요.”

겨울 유니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김정원 LG케어솔루션지회 지회장은 “동복으로 지급되는 기모 티셔츠는 보풀이 너무 잘 일어난”다며 “보기에 초라할 정도”라서 입기가 꺼려진다고 얘기했다. 정수기, 공기청정기 건조기 등을 유지·관리하는 서비스 업무인 만큼, 회사인 하이케어솔루션은 고객만족도를 통해서 복장을 잘 갖췄는지 평가한다. 하지만 회사가 제공하는 유니폼으로는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LG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의 주장이다.

LG케어솔루션의 바지 유니폼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LG케어솔루션의 바지 유니폼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KTX 승무원들도 이염으로 인해 유니폼을 깔끔하게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최수빈 승무원도 몇 차례 세탁을 거쳐야 이염을 걱정하지 않고 옷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혜민 승무원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유니폼의 이염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매년 이염 문제가 발생해요. 지금 입는 옷도 마찬가지고요. 블라우스 옷깃에 있는 진한 색 줄무늬에서 물이 빠지거든요.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근무를 해야 하는 거죠. 신입 승무원에게는 처음 세탁할 때 꼭 드라이클리닝을 맡기거나 손빨래를 하라고 알려줘요. 승무원끼리 자체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세탁 방법을 공유하는 거죠. 유니폼으로 낭패를 보는 사람이 한 해에 무조건 한 명은 생기니까요.”

형태와 사이즈가 맞지 않는 유니폼도 외형에 부정적이다. 보다 단정한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클라랑스노동자들은 유니폼을 직접 수선해서 입기도 한다. 유니폼을 주로 해외에서 제작해서 들여오다 보니, 한국인 체형에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임해연 지부장은 유니폼 개선을 사측에 요구하지만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작 단계에서 한국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만들어진 유니폼에 이의제기를 하고 다음에 더 나은 유니폼을 공급해주길 기다려야 한다. 편리함과 깔끔함을 유니폼의 기본으로 꼽은 임해연 지부장은 계속해서 회사에 유니폼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자기 몸에 잘 맞는 유니폼을 입어야 편하고 맵시도 살잖아요. 한국인 체형에 맞는 유니폼을 지급했으면 좋겠어요. 또 66이나 77을 입는 사람도 꼭 맞게 입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이즈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을 보여줘야 고객들도 우리를 보면서 클라랑스 제품 전문가라고 느낄 것 같아요. 일할 때 자신감도 생기고요.”

좋은 유니폼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조로 최상의 유니폼을 제공하는 사업장도 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을 운영하는 GKL(Grand Korea Leisure)이다. 전진수 서비스연맹 GKL노동조합 위원장은 “서비스의 시작은 노동자 스스로 돋보이고 만족하는 것”이라며 “자신에게 맞는 유니폼을 입어야 자부심이 높아지고 가장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븐럭 카지노에서 직·간접적으로 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모두 유니폼을 입는다. 전체 임직원 중 약 75%에 달하는 규모다. 많은 직원이 유니폼을 입는 만큼, GKL노동조합은 2006년 출범 이후 구성원의 편의를 반영한 유니폼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니폼 품평을 위해 회사 로비에 전시된 GKL 유니폼 ⓒ GKL노동조합
유니폼 품평을 위해 회사 로비에 전시된 GKL 유니폼 ⓒ GKL노동조합

유니폼품평위원회를 운영하는 GKL 노사는 노동자들이 직접 유니폼을 만져보고 입어본 뒤 투표로 유니폼을 결정한다. 유니폼에 사용되는 소재도 노동자들이 직접 정한다. 가능한 최상의 재질로 만든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가령 보온을 위해 입는 카디건이라면 단체세탁에 다소 용이하지 않아도 가볍고 따뜻하게 입도록 울 함유량을 높은 제품을 선택한다.

과거 GKL노동자는 카지노라고 하면 떠올릴만한 정형화된 유니폼을 입고 근무했다. 나비넥타이, 하이힐, 꽉 끼는 조끼와 치마. 몸을 구속하는 듯한 유니폼을 거부한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유니폼 개선을 요구했다. 전진수 위원장은 “지금은 어느 사업장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피복 조건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과거에 비하면 노동조합에 찾아와서 유니폼에 관한 불만을 표시하는 구성원이 크게 줄었어요. 개인적인 불만은 있지만, 공통된 문제가 나오지는 않아요. 구성원들이 100% 만족하지는 못하겠지만, 불만을 줄여가는 식으로 보완해가고 있어요.”

기능 좋은 옷이 보기도 좋다

서비스업계에선 업무에 방해되지 않도록 유니폼의 기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일부 사업장은 이를 반영해 유니폼을 개선하지만, 미(美)라는 틀 안에서 조금씩 바꿔 가는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 변화는 더디고 기능성 향상에 한계가 따른다. 이 가운데 업무 능률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심미성을 더한 디자인으로 기능성을 극대화한 유니폼을 선보인 업체도 있다.

에어로케이의 젠더리스 유니폼 ⓒ 에어로케이
에어로케이의 젠더리스 유니폼 ⓒ 에어로케이

2021년 4월 정식 취항한 신생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로케이는 지난해 젠더리스 유니폼을 선보였다. 에어로케이의 유니폼은 성별의 구분을 최소화했다. 하의는 남녀 모두 바지를 착용한다. 치마는 없다. 상의의 경우, 봄·가을엔 티셔츠에 재킷, 여름용 상의는 반팔 티셔츠에 조끼를 입는다. 재킷은 이동 중에만 입고, 기내에서는 티셔츠만 입도록 했다. 사이즈와 단추 방향 정도를 제외하면 남녀 유니폼이 동일하다. 신발은 운동화를 신는다.

젠더리스 유니폼은 활동성에 초점을 맞춘 결과물이다. 에어로케이는 유니폼 디자인을 선정하는 과정에 승무원들의 의견을 모았다. 수렴한 의견 중엔 치마와 구두는 불편하고, 기내에서 발생하는 비상 상황에서 빠르게 대처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원단 소재, 주머니 위치와 형태, 사이즈, 기장까지 승무원의 의견을 반영해 만들었다. 기내 안전을 담당하는 승무원 본연의 임무에 맞게 활동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게 에어로케이의 설명이다.

에어로케이의 유니폼은 기능뿐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좋은 평가 받았다. 공식 SNS 계정과 패션지 〈보그 코리아〉를 통해서 선보인 유니폼 사진에는 ‘깔끔하다’, ‘보기 좋다’는 반응이 많다. 국내뿐 아니라 독일 등 유럽의 매체에서도 승무원 유니폼에 관한 고정관념을 탈피한 사례로 조명했다. 편안함 등 기능성을 높이면서도 매력적이고 보기 좋은 유니폼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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