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④] 사장님! 저희 작업복 30분만 입어보세요
[커버스토리④] 사장님! 저희 작업복 30분만 입어보세요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10.11 00:04
  • 수정 2021.10.11 0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업복 결정과정에 드러나는 소통방식
“이런 옷 입고 일하라고?” 일방통행 아직 많아

작업복 이야기 

작업복을 입은 누군가를 마주치면 그의 직업을 상상해볼 수 있다. 어떤 직업에 작업복이 입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들은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움직이기 더 용이하고, 존재를 구분하기 위해 작업복을 입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업복은 자기 일을 나타내는 명함임과 동시에 ‘일을 더 잘 하게 하는 옷’이다. 작업복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지 작업복을 입는 노동자들에게 물어봤다. 작업복이 지급되지 않지만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만나봤다.

커버스토리④ 노동이 말하면 작업복은 바뀌어야

“어느 날 갑자기 공문이 날아와요. 복제 개선 의견 수렴을 한다면서 디자인과 재질 시안을 보내요. 선택해라. 근데 이 자체부터가 문제인 거예요. 먼저 직원들에게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불편한지 여부를 물어야 하는데 옷을 바꿀 건데 골라봐라. 이렇게 딱 던지는 거예요.”

송현대 유성소방서 소방관은 기동복이 만들어진 과정을 뚜렷이 기억한다. 2016년 즈음 소방청은 소방관들이 잘 입는 활동복을 없애고 기동복이라는 옷을 도입하겠다고 통보했다.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주머니나 원단 하나를 개선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안전하고 편한 작업복이었으면 했지만 그 목소리는 묻히곤 한다. 회사와 노동조합이 정기적으로 작업복을 논의하는 사업장이 있는 반면, 불편한 작업복이 갑작스레 주어져 불신만 깊어진 곳도 있다.

노동자에게 작업복은 피부에 와 닿는 문제다. 당장 작업복을 입는 사람들은 어떤 옷이 내 일에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참여와혁신〉이 만난 사람들은 “일하는 사람이 원하는 작업복이 좋은 작업복”이라고 말했다. 작업복은 그 옷을 입는 사람과 함께 결정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면 작업복 만족도도 높았다.

송현대 유성소방서 소방관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작업복 논의하는
테이블 마련한 노동조합

노동조합이 있어도 작업복은 순탄하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조합에게 작업복은 투쟁의 결과물로 남는다. 작업복에 우여곡절을 겪은 서울대병원 노사는 작업복을 이야기하는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했다.

2009년부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분회와 병원은 ‘근골격계질환예방추진팀’을 꾸려 주 1회 실무회의를 열고 있다. 그 결과 중 하나로 서울대병원은 노동자들에게 정맥류를 예방하는 고탄력 스타킹을 연 2회 지급한다.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서서 일하는 병원 노동자들이 정맥류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는 병원의 친절이 아니다. 합의까지는 서울대병원분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전까지 탄력스타킹은 병원 노동자 개인이 알아서 사야 하는 것이었다. 한때 병원은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일방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업체를 병원이 선정했고, 서울대병원분회는 설명을 들었다. 그 때 최은영 서울대병원분회 총무국장은 담당자가 병원의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질문을 하면 하나도 모르는 거죠. 병원에서의 중량물은 일반 사업장과 달라요. 환자가 가장 큰 중량물이거든요. 특히 요즘은 몸무게 120kg의 무거운 환자도 많고, 중환자실의 경우 기본적으로 자세 변경을 두 시간마다 해야 해요. 그러면 8시간 근무에 최소한 4번 이상 자세 변경을 해야 하는 거죠. 병원에서 가장 큰 중량물은 환자인데, 그런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방사선사들이 9kg짜리 납가운(방사선 보호복)을 입고 일하면 온몸에 다 골병이 들어요. 제대로 된 납가운이 필요해요. 그래서 사측에 기존 납가운을 입혀봤어요. 30분만 입어봐라. 그렇게 교섭을 했어요. 입어보고 조사했는데 사실은 방사선 차폐 효과가 없는 거였어요. 제 기능을 못한 거죠.”

최은영 총무국장은 작업복을 사용자가 직접 입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충돌 끝에 서울대병원분회와 병원은 노사가 공동으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기관을 선정하기로 했다. 3년에 한 번씩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실무위원들이 회의를 가진다. 총 25명의 실무위원들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근골격계 문제들을 조사하고 개선점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 병원은 근골격계질환예방추진팀에서 노동조합의 이야기를 무시하지 못하게 됐다. 의제를 피복으로 정한 협의체가 존재하는 사업장은 작업복 결정과정을 노동자가 지켜보고 직접 개입할 수 있다. 완전히 작업복에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내 작업복은 왜 이렇지?’라는 의구심은 줄어든다.

현대차도 노사와 작업복 담당업체가 참여하는 피복개선위원회를 운영한다. 피복개선위원회는 작업복이 주어지는 동절기와 하절기에 가동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모아놓았던 의견을 취합해 전달한다. 현대차 내 다양한 업무에 맞는 작업복이 필요했다. 예컨대 용접 분야는 불똥이 튀었을 때 화상을 최소화하는 작업복이 있어야 한다. 조금씩 작업복을 바꾼 시간들이 쌓여 최근에는 소매나 지퍼 등 비교적 세부사항을 들여다보고 있다.

작업복은 사용자 맘대로?
속 터지는 노동자들

품평회, 설명회, 설문조사 등의 이름으로 작업복에 대한 의견을 묻는 사업장도 있다.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할지 말지는 회사가 결정한다.

서울시 관악구청 환경미화원들은 매년 한 번의 작업복 품평회를 연다. 관악구청 환경미화원들의 작업복에는 상·하의를 합쳐 10개 정도의 주머니가 있다. 그만큼 소지품이 많다. 환경미화원들은 휴대폰부터 재활용 수거 봉투, 물병 등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여러 번의 품평회를 거치며 환경미화원 작업복 주머니는 더 커지고, 망사 주머니가 추가되는 등 보완됐다. 안중필 환경미화원은 다음 품평회 때도 주머니 개선을 말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물을 자주 섭취하는 여름철을 위해 하복에 물병을 채울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종남·안중필 서울시 관악구청 환경미화원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주머니 말고도 고치고 싶은 점은 많다. 환경미화원들은 그간 주위 시선에 마음이 다치는 일이 잦았다. 안중필 환경미화원은 작업복 디자인 변경이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의 어떤 바람일 수 있는데. 딱 입었을 때 자긍심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느끼는 디자인의 옷이면 정말 좋지 않을까요. 지금도 사회적인 편견이 아직은 존재하거든요. 그걸 개선할 수 있는 옷이 있으면요. 물론 예산의 한계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좋은 소재로 모양을 달리 해주면 사람들이 작업복을 전보다는 덜 꺼리면서 입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이런 의견이 내년 작업복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관악구청 환경미화원의 피복 예산은 10년 넘게 고정이다. 환경미화원들은 작업복이 개선되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디자인 변형은 가능해도 예산을 뛰어넘는 요구사항은 한계가 있다. 이상문 환경미화원은 “단가를 올려서 좋은 작업복을 만들어야 하는데 자치구 예산상 안 되고 있다. 작업복에서 불편해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예산은 항상 똑같다”고 토로했다.

“갑자기 소방관 기동복을 만든다고 하면서 시안을 물어봤어요. 직원들의 표가 많이 간 게 있었을 텐데, 선택과정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몇 번에 걸쳐서 하더라고요. 기존의 시안들을 살짝 바꾸어놓고 염두에 둔 옷이 선택될 때까지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품평회를 할 때 그렇게 의견이 많이 나왔는데 결국 강행처리 됐죠. 예산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했어요. 절차의 민주성은 보인 듯 하지만 내부적으로 진짜 공정하게 하는 건가 의문도 들었어요.”

2016년 소방청에서 기동복을 만든다고 할 땐 많은 소방관들의 반대가 있었다. 기동복에는 방염성능이 가미돼 있었다. 소방관들의 방화복에 이미 방염성능이 있어 기동복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방염성능이 있는 옷은 통기가 잘 안 되고 옷감이 뻣뻣하다. 안 그래도 작업할 때 땀을 많이 흘리는데 기동복에 방화복까지 입으면 ‘옷이 몸을 감는’ 느낌이었다.

기동복은 도입됐지만 현장 소방관들이 잘 찾지 않는 옷이 됐다. 송현대 소방관은 당시 소방관들에게 기동복을 모두 입히려면 300억이 넘는 예산이 투여돼야 했다고 추측한다. 소방관들은 방화복이 넉넉하지 않아 돌려 입었던 적도 있었다. 차라리 소방관들의 노후장비를 그 돈으로 바꿔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했던 생각이다.

기동복이 만들어질 때 소방관들에게는 노동조합이 없었다. 송현대 소방관은 “삭히고, 참고, 돌아서서 혼자 잊고 말았다.” 노동조합이 가능해지고 사용자의 일방적인 결정은 부당하다는 생각은 표출되기 시작했다.

작업복을 시작으로
일터도 바뀔 수 있을까

소방관들의 방화복은 지역마다 품질이 조금씩 다르다. 방화복 디자인과 성능은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생산을 지역별로 한다. 송현대 소방관은 “봉제와 마감에서 사실 방화복은 질이 많이 떨어진다. 화재현장에 들어가면 연기가 꽉 차 있어 앞이 잘 안 보인다. 무언가에 걸려서 찢길 수도 있고, 뜯어질 수도 있는데 그런 걸 감안해도 봉제 부분이 너무 쉽게 뜯어진다”며 “작업복을 납품하는 업체들이 난립해있다고 본다. 소방청에서 일괄적으로 집중해서 작업복 업체를 선정하면 좋겠다”고 했다.

소방관들은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됐지만 인사와 예산이 소속 지자체에 매여 있다. 예산을 국가가 관할하면 작업복 업체도 소방청에서 관리할 수 있다. 모든 소방관은 같은 품질의 작업복을 받게 될 수 있다. 이는 소방노조가 주장하는 온전한 국가직 전환이라는 의제와 맞물린다.

“(작업환경과 작업복 개선은) 보통 동시에 이뤄져요. 급식 노동자의 경우 좁은 환경에서 그릇 부딪히는 세척 업무를 해서 귀마개를 지급해도 난청 환자가 많아요. 귀마개부터 시작했지만 확대해나가야죠. 사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인력충원이고 구조개선이에요. 간호사라는 직업이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우리만 행복한 게 아니라 환자와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작업복을 바꾼 서울대병원에서 작업복은 작업환경을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 서울대분회가 바라는 일터를 만드는 과정에 작업복 개선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작업복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소통방식을 비추고, 더 나은 작업환경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작업복은 노동자들의 의견이 얼마나 존중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기도 하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