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①] 당신에게 작업복은 어떤 의미인가요?
[커버스토리①] 당신에게 작업복은 어떤 의미인가요?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10.11 00:01
  • 수정 2021.10.11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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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맥락 안에서 변하는 작업복
노동자에게 작업복은 ‘또 다른 명함’

작업복 이야기

작업복을 입은 누군가를 마주치면 그의 직업을 상상해볼 수 있다. 어떤 직업에 작업복이 입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들은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움직이기 더 용이하고, 존재를 구분하기 위해 작업복을 입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업복은 자기 일을 나타내는 명함임과 동시에 ‘일을 더 잘 하게 하는 옷’이다. 작업복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지 작업복을 입는 노동자들에게 물어봤다. 작업복이 지급되지 않지만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만나봤다.

커버스토리① 작업복의 의미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왼쪽 위 시계방향) 송현대 대전 유성소방서 소방관, 최은영 서울대병원분회 총무국장, 바지 유니폼을 입는 KTX 승무원, 김정원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 지회장, 안중필 환경미화원, 박종남 환경미화원, 서상호 건설노동자, 복기수 건설노동자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블랙핑크와 간호복

몸에 붙는 흰 원피스, 빨간 하이힐 복장의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화면에 등장한다. 상사병(Lovesick)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를 연기한다. 지난해 10월 2일 공개 75시간 만에 1억 뷰를 달성한 블랙핑크의 ‘러브식 걸즈(Lovesick Girls)’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이다.

해당 뮤직비디오를 두고 현장 간호사들은 반발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성명을 통해 “헤어캡, 타이트하고 짧은 치마, 하이힐 등 현재 간호사 복장과는 심각하게 동떨어졌으나 ‘코스튬’이라는 변명 아래 기존의 전형적인 성적 코드를 그대로 답습한 복장과 연출”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에서도 ‘#간호사는코스튬이아니다’, ‘#Stop_Sexualizing_Nurses(간호사에 대한 성적대상화를 멈추라)’ 등의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논란 끝에 YG엔터테인먼트는 “불편을 느끼신 간호사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 전한다”며 간호사 유니폼이 나오는 장면을 삭제했다.

유니폼의 의미가 사회적 맥락에서 발현된 상징적 사례다. 유니폼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사회적 이미지다. 이른바 ‘또 하나의 명함’ 유니폼이 품은 사회적 상징은 노동자 개인의 이미지도 결정하게 된다. 간호복의 성적 대상화가 곧 간호사 개인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는 배경이다.

작업복이 뭐길래? 작업복은 유니폼의 일종이다. 유니폼은 라틴어 ‘하나의’를 뜻하는 우누스(unus)와 ‘형태’를 의미하는 포르마(forma)에서 생긴 합성어로 똑같은 양식의 제복을 말한다. 이런 유니폼을 입어서 직업의 판별이 가능한 복장을 작업복이라고 부른다. 간호복은 간호사에게 유니폼이자 작업복인 셈이다.

작업복은 직종에 따라 주요 기능이 조금씩 다르다. 주로 생산직의 작업복은 기능성, 사무직은 상징성, 서비스직은 심미성이 강조된다. 다만 박혜원 창원대학교 의류학과 교수는 <공단근로자의 작업복 디자인 실태 및 선호도 연구>(2008)에서 “어느 부문에서든지 기능성, 상징성, 심미성 중 어느 한 가지가 빠져도 능률 증진, 안정성, 노동 의욕 향상 등을 달성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작업복은 내 명함”

현장 노동자들은 작업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우선 노동자들에게 작업복은 곧 명함이다. 안중필 서울시 관악구청 환경미화원은 “우리에겐 작업복 자체가 자기의 명함, 곧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소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회사의 작업복을 입으면 자부심은 커진다. 1988년에 입사한 김승춘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후생복지실장은 “처음 입사했을 때 작업복을 입고 공장 밖을 나가면 자랑스러웠다”며 “예전에 울산에선 현대차나 현대중공업 작업복 차림으로 술집을 가면 대접받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소속 김춘심 요양보호사도 “근무복에 사회서비스원 마크가 달려 있어서 내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진다”며 “지난해 지급받은 롱패딩을 본 어르신들이 ‘선생님, 춥지 않겠네. 역시 큰 회사는 다르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전했다.

송현대 대전 유성소방서 소방관은 불을 끄다가 엉망이 된 소방복을 보며 직업에 대한 긍지를 느끼기도 한다. 송현대 소방관은 “화재 현장을 다녀오면 숯검댕이처럼 거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갖 재를 뒤집어 쓰고 나오게 되는데, 옷을 보면 더럽다는 느낌보다 내 일에 대한 긍지, 보람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작업복은 노동자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기능도 한다. 브랜드의 상징 색인 빨간 원피스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임해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노조 클라랑스지부 지부장은 “유니폼을 입었을 때 고객들이 클라랑스 직원, 전문가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김정남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우리가 그냥 막 도와주는 사람이 아닌 사회서비스원에 소속된 전문 사회서비스노동자로 보이기 위해 작업복을 입는다”고 말했다.

이런 작업복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노동자들은 사명감을 느끼고 긴장하기도 한다. 박종남 서울시 관악구청 환경미화원은 “새벽에 일하다 보면 시민들이 격려도 많이 해주신다. 그래서 작업복을 입는 순간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사명감도 갖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작업복 덕분에 안전하지만,
작업복 때문에 위험하기도

무엇보다 작업복은 노동자를 보호한다. 송현대 소방관은 “소방복이 있고 없고에 따라 내가 죽고 살고가 갈릴 수 있기에 작업복은 우리에게 생명”이라고 했다. 안중필 환경미화원은 “환경미화원은 주로 새벽에 일하고 도로 위에 있다. 어떻게 보면 촌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작업복이 우리한텐 보호색”이라며 “작업복에 달린 반사판 덕분에 우리의 안전이 조금이나마 보장되는 것”이라고 했다.

카지노에선 유니폼이 노동자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전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GKL노조 위원장은 “유니폼을 입고 밖에서 돌아다니면 돈을 잃은 고객에게 해코지당할 수도 있는 위험에 노출된다. 이런 우려 때문에 과거엔 나가지 않고 내부에 잘 갖춰진 양호실, 슈퍼마켓 등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다만 이는 직원에 대한 과도한 통제라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시간이 나면 직원들이 어디로 가는지 명시만 하고 외부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작업복에 대한 관심이 일에 방해되는 순간도 있다. 송현대 소방관은 “급박한 현장에서 집중해야 할 때 사람들이 소방복을 보고 가까이 다가온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거나 요새는 동영상 촬영도 하다 보니 현장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럴 땐 작업복이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고 전했다.

사회적 편견과 작업복

작업복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노동자들은 위축된다. 복기수 건설노동자는 “아직까진 사회적으로 못 배우고 가진 거 없는 사람들이 건설현장에서 일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서울 시내엔 함바식당이 없으니 작업복 차림으로 일반식당에 가면 안 받아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이런 “따가운 시선을 받으니까 건설노동자 스스로도 ‘노가다맨’이라고 생각하고 위축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배달의민족 라이더 김영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배달서비스지부 지부장은 “라이더들이 헬멧을 쓰고 바람을 막기 위한 넥 워머, 장갑 등을 착용하고 일해서 잠재적 범죄자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건물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지엠 부평 공장에선 정규직만 회사 마크가 달린 작업복을 입는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한국지엠 부평 공장에선 정규직만 회사 마크가 달린 작업복을 입는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작업복이 사회적 차별이 드러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임권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특히 예전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작업복의 모양이나 형태는 똑같더라도 질에서 많이 차이 난다는 것에서 차별을 느꼈다”며 “예를 들어 정규직 작업복에 안전을 위해 빛을 반사하는 판이 붙어 있는데 비정규직 작업복 안전판은 비 맞으면 색이 흘러내렸다. 안전화의 질도 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공장 바깥에서 비정규직은 작업복을 벗게 된다. 임권수 지회장은 “정규직은 작업복에 흰 명찰이 달려 있으니까 아무래도 그 명찰 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크게 거리낌이 없다. 반면 우리는 남색 명찰이라서 작업복을 입고 나가면 당연히 비정규직으로 볼 거라는 인식 때문에 가급적이면 밖에 나갈 때 작업복을 벗는다”고 이야기했다.

이용채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은 “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작업복 하나로 신분이 구별되거나 차별을 받는 부분은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참여와혁신>은 25명의 노동자들에게 더 구체적인 작업복에 관한 경험을 들어봤다.
 

변화하는 작업복

작업의 역사도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따라 변화해왔다. 오랫동안 군대와 학교에서 구성원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온 유니폼은 1960년대부터 일터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1960년대 경제 성장과 더불어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유니폼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책 《유니폼의 이해》(2014) 저자 이경화는 “이 시기는 대체적으로 근무복으로써 기능적이고 편리하며 대·내외적으로 일체감과 통일감만을 강조한 유니폼이었다”고 했다.

1969년 4월 8일 경향신문사는 신문팔이 배달원 4,000여 명에게 엹은 하늘색 바탕에 노란띠를 두른 잠바와 모자를 유니폼으로 선물했다. 이날 경향신문은 3면에 관련 소식을 싣고 “신문팔이 소년과 배달원들이 유니폼과 모자 등 푸짐한 선물을 받고 웃음꽃을 피웠다”고 전했다. 이는 대중에게 유니폼의 이미지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진 계기가 됐다.

1970년대에는 작업복 개념이 본격 등장했다. 이경화는 “1970년대엔 발전된 업무복의 새로운 유형, 작업복이라는 것이 대두되면서 유니폼 산업의 발전기를 맞이했다”며 작업복이 기존 일체감, 통일성에서 기능성과 편리성을 추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에 들어 각 기업은 고객 유치 경쟁, 서비스 강화 등 전략과 더불어 기업이미지 통합 작업, C.I.P(Corporate Identity Program)가 도입돼 유니폼은 활발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작업복이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써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노동자 입장에서 작업복은 “생산 능률 및 신체 보호의 역할을 담당하는 동시에 근로자의 소속감 및 회사의 이미지가 부여돼 직업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정서적 만족을 높이고, 산업시설 현장의 안전까지 담당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박혜원 교수는 설명했다.

작업복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최근엔 작업복의 선택지 넓혀 노동자의 개성 보장, 젠더리스 작업복 등장, 금융권 중심으로 유니폼 없애기 등 사회적 맥락 안에서 작업복의 변화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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