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⑤] 일은 내가 작업복은 네가
[커버스토리⑤] 일은 내가 작업복은 네가
  • 손광모 기자,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10.11 00:05
  • 수정 2021.10.11 0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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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때 필수인 작업복·안전장비도 ‘내돈내산’*
작업복 ‘세탁’도 ‘일’ … 노사정 함께 부담해야
​​​​​​​*내 돈 주고 내가 산다

작업복 이야기 

작업복을 입은 누군가를 마주치면 그의 직업을 상상해볼 수 있다. 어떤 직업에 작업복이 입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들은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움직이기 더 용이하고, 존재를 구분하기 위해 작업복을 입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업복은 자기 일을 나타내는 명함임과 동시에 ‘일을 더 잘 하게 하는 옷’이다. 작업복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지 작업복을 입는 노동자들에게 물어봤다. 작업복이 지급되지 않지만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만나봤다.

커버스토리⑤ 작업복 지급·관리, 누구의 몫인가

LG케어솔루션 매니저의 유니폼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1974년 6월에 가스명수를 만드는 회사에 입사했어요. 제약회사는 근무할 때 하얀 약사 가운을 입어야 하고, 하얀 캡이랑 장갑을 껴야 하는데, 옷 사는 거를 개인이 부담하게 하는 거예요. 당시 월급이 얼마였냐면, 9,600원인가? 그랬어요. 그런데 모자, 가운, 명찰 다 하니까 상당했어요. 3,000~4,000원 들어간 것 같아요. 하루 일을 딱 해보니까. 공장 일이 할 게 아니야. 너무 지저분하고 그랬는데 옷값은 빼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얼른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가 그냥 눌러있고.”

김은임 한국노총 화학노련 지도위원이 1974년 삼성제약에 처음 입사했을 때 이야기다. 작업복 구입한 돈이 아까워 엉겁결에 눌러앉게 됐다. 작업복은 업무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옷이다. 따라서 일을 시키는 사용자가 부담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김은임 지도위원이 겪은 일은 산업화 초기의 일이 아니다. 작업복 구입 및 관리의 부담이 여전히 노동자 개인의 몫인 경우가 있다.

작업복도 ‘내돈내산’

화려한 옷들이 전시된 의류매장. 손님에게 옷을 추천해주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해당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다. 이들에게 해당 브랜드의 옷은 작업복이다. 매장에서도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반드시 각 브랜드의 옷을 입도록 지시한다. 그러나 공짜는 아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계절마다 옷 한 벌씩을 직접 사서 입어야 한다.

신정웅 알바유니온 위원장은 “의류매장을 가보면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그 시즌 옷을 입고 있다.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며 “직원 할인가로 구입하도록 있지만 적지 않은 돈이다. 개인 부담 하도록 하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비단 아르바이트 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집집마다 방문해 LG전자 가전제품을 유지·관리하는 LG케어솔루션 매니저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입사를 하면 재킷부터 춘추복, 동·하복 상·하의 등을 지급받지만 1년 내에 그만 둘 경우 남은 개월 수 만큼의 옷값을 물어내야 한다.

또한 작업복 수량이 충분하지 않고, 추가로 필요한 작업복은 구매해야 한다. 작업복 상의에는 LG전자 상호가 들어가 있어 근무 시 반드시 입어야 한다. 2년마다 하복 상의 1개씩을 추가로 지급받지만 업무 수행에 충분하지 않다. 동복이나 춘추복은 2년을 일해도 회사는 추가로 지급하지 않는다.

김도우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 서울서부 부지회장은 “하복 상의를 4개 가지고 있다. 2개는 입사하면서, 1개는 2년이 넘어서 올해 받았다. 1개는 너무 불편해서 구입했다”며 “4개가 있는데도 부족하다. 여름철에 땀을 많이 흘리니까 점심시간에 간단한 물 샤워하고 갈아입을 정도다. 빨리 마르라고 건조기를 렌털하기도 했다. 세탁기 돌리고 실내에 말리는 사람은 정말 불편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정원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 지회장은 “유상 지급을 하는 게 문제다. 일할 때 필요한 유니폼이나 장비들은 무상으로 지급하는 게 당연한데, 그걸 매니저에게 장사하려고 하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작업복 지급과 관련해서 현장에선 불만이 높다”고 전했다.

(좌)하이솔루션에서 매니저에게 판매한 안전화. 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했지만 매니저들은 유상 지급 자체가 문제라고 말한다.
(우)매니저들이 자주 사용하는 점검도구. 소형 드릴과 ‘지그’라고 불리는 장비다. 잃어버릴 경우 매니저들이 구입해야 한다.
ⓒ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

안전장비도 ‘내돈내산’

시속 70km로 벨로드롬 경기장을 질주하는 경륜선수들은 국민체육공단이 주관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선발될 수 있다. 또한 일정 기간마다 기량을 검증받아야 선수직을 유지한다. 경륜선수들은 경기 출전비와 상금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공단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경륜선수의 경주복은 일할 때 필요한 ‘작업복’이다. 경주 유니폼, 장갑, 헬멧, 무릎·팔꿈치 보호구, 선수전용 신발 등을 모두 마련하려면 100만 원은 너끈히 잡아야 한다. 특히 보호구의 상태는 낙차 사고 시 생명과 직결된다. 헬멧의 경우 외관상 부서지지 않았어도 충격이 가해졌으면 내부가 손상됐을 우려가 있어 교체를 해줘야 한다. 25만 원 정도로 대개 6개월에 한 번씩 바꾸는 편이다. 여기서 국민체육공단이 지급하는 것은 경주 유니폼 상의뿐이다.

김유승 공공연맹 한국경륜선수노동조합 위원장은 “사측과 교섭에서 헬멧부터 시작해 유니폼과 보호구에 대해 수당을 요구했지만 ‘상금에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상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다. 작업복은 일하기 위해서 당연히 구비 돼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플랫폼 노동의 대표 격인 배달노동자도 배달조끼, 안전장비 등을 자부담해야 한다. 배민라이더로 4년째 일하고 있는 김영수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배달서비스지부 지부장은 “배민에서 2020년 후반까지 무릎보호대와 팔꿈치 보호대를 지급했다. 2021년부터는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배민 커넥터라는 아르바이트 개념의 직원들이 생기고 비용 부담 문제 때문에 지급 중단을 해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확실하게 담보하기 위해서는 하키선수들이 입는 것 같은 고정식 보호장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저렴하면 20만 원대 비싸면 100만 원대를 호가한다. 김영수 지부장은 “라이더 90% 이상이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는다. 팔꿈치나 무릎에 대는 식의 거치용은 흘러내리는 등 불편하다. 몸에 딱 붙는 고정식은 금액이 비싸다”면서 “라이더 하루 일당이 10만 원이 안 된다. 고가의 보호장비를 착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퀵서비스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김종태 서비스연맹 퀵서비스노조 비대위원장도 “안전장비는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챙겨 입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조합원들에게 안전장비를 구비하라고 당부하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을 알기에 현실적으로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퀵서비스 기사들은 코로나19로 일이 많이 줄었다. 여행사 쪽에서 오고가는 서류가 굉장히 많았는데 거의 궤멸하다시피 해버렸다. 국제무역사들도 어마어마했는데 삼성을 비롯한 대형회사를 제외하고 중소기업 수준의 물동량은 다 줄었다. 기사들도 다들 안전장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보험도 비싸서 출퇴근용으로 가입한다. 배달하다가 사고 나면 보상도 못 받고 어려움에 어려움을 더하는 꼴이지 않나. 그런데 워낙 고가라 구매할 상황이 못 된다.”

작업복 관리도 노동자 몫

앞서 서비스 노동자들이 작업복을 스스로 관리해야 했듯이(커버스토리② 참고) 제조업 하청업체 노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공장 안에서 일한다고 하더라도 정규직이 아니라면 더러워진 작업복을 알아서 관리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들은 일을 마친 뒤 작업복을 화장실에서 바로 손빨래하거나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이용채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은 회사에 세탁기가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2차 하청업체 노동자다. 이용채 부지회장의 일터에서 세탁기는 정규직만 사용할 수 있다. 1차 하청업체에서는 세탁기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 드물지만, 2차, 3차 하청업체로 갈수록 세탁기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건설 노동자들의 작업복도 그렇다. 여름마다 버려지는 작업복이 한 가득이다. 일터에 세탁기가 없으니 지친 몸으로 ‘대충’ 빨고 집으로 향한다. 복기수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타설팀장은 “결국 비용 문제”라고 말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씻으면서 공구리(콘트리트) 묻은 걸 대충 빨고 봉다리에 담아서 집에 가서 또 빨아요. 안 그러면 대야에 다 발로 밟아서 하거나. 세탁기에 공구리 묻은 걸 빨면 안 돼요. 세탁기 망가져서 손빨래해야 한단 말이에요. 타설공은. 일주일에 한 번 입고 버리는 사람들은 버려요. 빠는 사람들은 계속 빨고, 버리는 사람들은 버리고요.”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노동자의 작업복을 세탁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계약에서도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위생시설(휴게, 세면·목욕, 세탁, 탈의, 수면)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등 ‘적절한’ 협조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강제규정이 아니기에 현장에서 무시되기 일쑤다.

일은 내가 작업복은 네가

작업복을 왜 집에서 빨아야 할까? 언제까지 작업복을 가정집 세탁기에만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회사도 정부도 노동자 작업복에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이에 지자체라도 작업복 세탁에 도움을 보태달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 센터장이 기획한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다.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그간 노동자에게만 전가돼 왔던 작업복 세탁을 사용자, 지자체도 함께하자는 취지다. 애초에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 작업복을 세탁할 책임이 있다. 다만 이전까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꾸짖기보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해보자는 취지다.

문길주 센터장이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를 처음 기획했을 때 작업복은 ‘작은 문제’로 취급받았다. 노동계도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아 실망도 컸다. 지난한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2019년 김해에서 처음으로 가동했다. 현재 광주, 구미 등에서 세탁소가 운영되고 있고, 인천, 울산 등에서는 개소를 준비중이다. 문길주 센터장은 작업복처럼 ‘작은 문제’부터 노동조건을 개선해 보자고 말한다.

“중요한 게 뭐겠어요?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진짜 아프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거예요. 노동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피로감은 당장 입고 있는 내 작업복에 대한 거예요. 우리가 일터에서 당면하는 것부터 해결을 해나가야 해요.”

문길주 센터장은 “추후 작업복 지급에 대한 것도 이야기하고 싶다. 작업복 지급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차이를 보인다. 불평등하다”고 말했다. 특수고용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일할 때 마땅히 필요한 작업복을 지급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사업주나 지자체의 지원을 간절히 바랐다. 김영수 지부장은 배민라이더스와 교섭 자리에서 안전장비를 포함해 여름철 수분 보충, 겨울철 핫팩 등 당장 배달노동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급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수 지부장은 “항상 사측에 라이더들의 안전과 건강을 조금 더 챙겨줘야 한다고 요구한다”며 “추운 겨울에 노동자지원센터나 노동조합에서 핫팩을 무료로 제공한다. 엄밀히 따지면 사측에서 해야 하는 일을 노동조합이나 기타 관련 단체에서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 혹은 정부에서도 지원을 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할 때 입는 옷에서 일하는 사람의 노동환경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작업복과 관련한 문제를 풀어 가다보면 ‘큰 문제’도 해결할 단초를 마련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의 작업복에서 무엇이 들리는가. 노동자들이 아프고 가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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