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노동자 입장 대변한 작업복 세탁소 만드는 게 제일 중요"
[커버스토리+] "노동자 입장 대변한 작업복 세탁소 만드는 게 제일 중요"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10.11 00:06
  • 수정 2021.10.11 0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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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복 이야기

작업복을 입은 누군가를 마주치면 그의 직업을 상상해볼 수 있다. 어떤 직업에 작업복이 입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들은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움직이기 더 용이하고, 존재를 구분하기 위해 작업복을 입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작업복은 자기 일을 나타내는 명함임과 동시에 ‘일을 더 잘 하게 하는 옷’이다. 작업복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지 작업복을 입는 노동자들에게 물어봤다. 작업복이 지급되지 않지만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만나봤다.

커버스토리⑤ [미니인터뷰]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노동자가 드나들지 않는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무의미하다. 광주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가 개소했을 때 즈음 현장에 찾아갔다. 당시 하루 30벌 수준이던 세탁물이 현재는 100벌로 늘어났다고 한다. 문길주 센터장은 세탁소에 “모든 철학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그는 노동자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역 노동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광주에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가 개소한지 4달여가 흘렀다. 현장의 반응은?

노동자들 반응은 폭발적이다. ‘왜 이제 만들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노동자의 가족들이 더 좋아한다. 가사노동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됐다고 한다. 교육이나 홍보가 적극적으로 돼야 노동자 이용률이 더 높아질 거라고 판단한다.

다른 지역에도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가 하나 둘 생기고 있다. 기획자로서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의 의미를 다시 환기한다면.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일할 때였다. 노동자들이 쇼핑백에 유해물질이 뭍은 작업복을 매주 가지고 왔다. ‘요놈의 작업복 집으로 좀 안 가져오게 해 줬으면 좋겠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조사를 해 봤는데 광주지역 대기업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작업복을 세탁해 주고 있었다. 반면 비정규 노동자와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본인이 집에 가서 작업복을 빨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공동 작업복 세탁소가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세탁비용을 가능하면 사업주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의 목표라고 알고 있다.

많은 사업자가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의 취지를 이해해주면 좋겠다.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노동자와 사업주, 지자체가 모두 상생하는 모델이다.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사업주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그 비용을 부담하고, 지자체는 지원한다. 우리는 맨날 상생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속에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이 따라야 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작업복 세탁에는 노사정이 모두 협조를 해줘야 한다.

광주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의 상황은 어떤가?

광주 하남산단의 사업주협의회에서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에 대한 설문조사를 함께 해줬다. 80%가 넘는 사업주들이 취지에 동의했다. 세탁비용을 부담하는 사업주가 적지 않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은 곳을 설득하고 있다.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서고, 사업주를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를 준비하는 다른 지역에게 조언할 부분이 있나.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의 필요성은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고 본다. 세탁소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의견을 묻지 않는 세탁소는 의미가 없다.

노동자 입장을 대변한 작업복 세탁소가 만들어지는 게 제일 중요하다. 충분히 노동자들과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 ‘다른 지역도 만들었으니 우리 지역도 만들자’는 식의 행정 위주 세탁소는 노동자와 사업주에게 외면 받는다.

지역 노동계는 노동자들에게 공론화를 시켜야 한다. 광주는 세탁소와 관련한 토론을 2년 가까이 지속했다. 조사도 해 보고, 노동자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과정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 그런 과정이 노동자들의 자조모임처럼 진행돼야 한다.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의 과제는 무엇인가?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단순하게 작업복을 빨아주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작업복 세탁소 뿐 아니라 쉼터나 노동·건강상담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또 앞으로는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세탁소가 생겨야 한다. 예를 들어 제주 같은 경우는 농업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이주노동자들도 많다. 그래서 노동자·농민 작업복 세탁소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관할하는 중앙부처가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다. 작업복 세탁소는 지자체가 중앙의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사용자와 정부의 더 적극적인 고민과 지원이 필요하다.

작업복 세탁소를 만들기는 쉽다. 만드는 과정에 노동이 존중받고, 대접받는다는 철학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를 준비할 때는 반드시 지역 노동계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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