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③] “일괄적 통제 아닌 공공기관 자율성 살려야”
[커버스토리③] “일괄적 통제 아닌 공공기관 자율성 살려야”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2.05.10 12:15
  • 수정 2022.05.1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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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 기재부의 과도한 통제, 평가만을 위한 경영평가 등
​​​​​​​공공기관의 공공성 저해하는 요인... 공공기관 ‘자율‧투명성’ 보장해야

반복되는 공공기관 개혁론,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 설문조사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공공부문은 개혁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돼왔다. 공공기관은 방만한 경영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곳이 됐고, 노동자들에게도 철밥통, 귀족 노동자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새 정부 연례행사인 ‘공공기관 때리기’가 한참인 요즘, 공공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해보기로 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에는 351개 공공기관이 있다. 그 중 노동조합이 조직된 기관은 283개다. 283개 공공기관 노동조합 대표자를 대상으로 ‘공공노동자가 말하는 공공부문 ‘개혁’은?’이라는 제목의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는 4월 19일부터 4월 29일까지 진행했으며, 노동조합 전·현직 대표자·간부 140명이 응답했다. 한 기관당 하나의 응답만 취합했음을 밝힌다(공동위원장 사업장 제외).

커버스토리③ 공공기관 노동자는 이런 변화를 원한다

지금까지 어째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 개혁론이 반복되는지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생각을 알아봤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공공기관 개혁론이 공공기관 ‘본연의 역할’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교한 정책을 가지고 추진된다기보다 정권 초기 ‘정치적 지지’ 확보의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봤다. 그렇다면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변화의 방향은 무엇일까? ‘공공기관이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는 무엇이라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했다.

140건의 주관식 응답을 분석한 결과,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공공기관 자율성 확보(빈도 60) ▲공공성에 맞춘 기관 운영(빈도 42) ▲소통 증대 및 투명성 강화(빈도 23) ▲경영평가제도 개선(빈도 15) ▲전문성 강화 및 경영 개혁(빈도 13) ▲성과 인정 및 충분한 예산‧인력 충원(빈도 9)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별다른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답변은 단 3건에 불과했다.

“전문성 포장 아래,
보은인사‧알박기가 문제”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왜 공공기관이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자율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공공기관의 지배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공공기관은 정부기관과 민간기업의 중간 정도의 형태를 띤다. 정부가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공공 서비스를 공공기관에 위탁한다. 공공기관은 민간기업과는 달리 ‘수익성’이 아닌 ‘공공성’을 위해 운영되지만, 외형상의 구조는 민간기업과 유사하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르면, 공공기관 지배구조는 내‧외부로 나뉜다. 내부지배구조는 이사회, 감사 등으로 공공기관 내부에서 자체적인 견제장치를 형성토록 한다. 반면 외부지배구조는 공공기관을 소유하고 있는 정부부처가 경영평가 및 경영공시를 시행하는 것이다. 기관장의 전횡, 정부의 의도와 맞지 않는 사업 추진 등 소유와 경영의 분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통제하기 위해 이 같은 구조가 마련됐다.

하지만 법의 취지와는 달리 공공기관 운영에 소유자인 정부의 영향력이 행사될 여지가 상당히 크다. 설문 응답을 보면, ‘기획재정부’, ‘주무부처’, ‘정치권’ 등이 공공기관의 자율성을 저해한다고 밝혔다. 특히 기관장, 상임이사 등의 ‘낙하산 인사’ 문제를 응답자들은 토로했다.

“부처 서기관, 사무관급 이상 기관 상임이사로 그만 보내라. 괜찮은 인재는 부처에 남고, 승진 배제되거나 후배들을 위한 용단을 내리는 노땅 그리고 정치권 인사들이 상임이사로 온다. 우리나라 현실이다” (응답자 6)

“기관장의 혁신이 필요하다. 아무런 결정이나 책임 없이 임기 동안 국가보조금으로 개인 홍보만 하다가 성과 없이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응답자 109)

“정부부처 및 정부에서 전문성이라는 포장 아래 내려오는 보은인사, 알박기가 문제다. 경영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경영을 하고 있으니... 채용‧전보‧승진‧평가 등 회사운영을 위한 개념이 없으며 독단적으로 처리한다” (응답자 115)

주로 공공기관의 이사회를 구성하는 기관장, 상임‧비상임이사가 기관 운영의 자질과 전문성을 인정받아서 임명되는 게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임명된다는 지적이다.

공공기관 임원 선임 과정을 살펴보면, 기관장은 각 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에서 후보를 추천하고,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 주무부처장, 대통령 등의 심의‧제청‧임명 절차를 거친다. 이렇게 선임된 기관장은 감사 혹은 법령으로 추천위원회를 두도록 한 기관 이외에는 상임이사에 대한 결정권한을 가진다.

또한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인 비상임이사조차 기관장과 유사하게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과 공공기관운영위 심의, 주무부처장의 임명절차를 거친다. 정부와 기관장으로부터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선임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공공기관의 유형에 따라 구체적인 임명절차는 상이하지만, 최종적인 결정 권한은 정부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은 구조적 한계를 가진다.

“상급기관의 전문성 없는 간섭,
‘복지부동’ 공공기관 만든다”

공공기관 노동조합은 공공기관 외부지배구조의 문제점도 토로했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업무 중 일부를 위탁받는 해당 업무에 대한 자율성과 책임을 가진다. 여기서 공공기관이 위탁받는 업무를 잘 처리했는지 점검하는 것이 평가‧감사다. 하지만 실상 공공기관 운영에 자율성은 없고, 정부 정책의 기조에 따라 공공기관 운영이 좌우된다는 것이 공공기관 노동조합들의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 당시 경영평가를 이유로 해외투자를 늘렸다. 당시 경영평가는 잘 받았을지 몰라도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부실을 초래했다” (응답자 3)

“공공기관이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데 집중돼야 하는데,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엉뚱하게 희생됐다” (응답자 46)

“정책 방향이 일관성 없고 좌고우면한다.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하여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 기재부 공무원 앞에 머리 조아리는 순으로 경영평가 결과가 나온다” (응답자 26)

예컨대, 이명박 정부의 해외투자 장려나,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지방균형발전 등 정부 기조가 공공기관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은 운영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영평가제도는 공공기관이 정부의 지침을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으로 지목된다. 공운법상 경영평가제도는 ‘공공기관의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경영실적을 평가하고 이 결과를 성과급과 인사 등에 반영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의 전제는 정부의 지침대로 공공기관을 운영하는 것이 ‘공공기관의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에 가깝다는 것인데, 대다수 공공기관 노동조합들은 공공기관이 추구해야 하는 공공성과 정부의 지침이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주무부처, 감사원, 국회 등 수많은 상급기관의 전문성 없는 간섭과 감사를 위한 감사가 공공기관의 창의성을 위축시키고 복지부동의 조직을 만든다” (응답자 8)

“공공기관 본연의 업무와 상관없는 업무(봉사활동, 과도한 홍보)와 경영평가 등 각종 평가 업무에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 출마 준비 중인 기관장의 기관 홍보를 포장한 지나친 개인 홍보, 경영평가 준비를 위한 전담팀 구성하고 심지어는 외부 컨설팅을 의뢰하기도 한다. 부가적인 업무를 줄이면 본연의 업무를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응답자 49)

더불어 총액인건비제도에 대해서도 공공기관 노동조합의 불만이 높다. 총액인건비제도는 중앙행정부처‧책임운영기관‧국립대학‧공공기관 등에 인건비 총액을 설정하고 각 기관은 그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도록 한다. 중앙행정부처 산하에 있는 공공기관도 총액인건비제도 적용 대상이다.

다만 정권이 교체되고 새로운 정책이 펼쳐질 때마다 공공기관의 업무량도 늘어난다. 그러나 그에 맞춰서 공공기관의 인력이나 예산이 바로 증원되지는 않는 구조다. ‘공공기관 조직과 정원에 관한 지침’에 따라 공공기관의 증원은 기재부가 정한 한도 내에서 이뤄진다. 또한 ‘공공기관 증원심사(정원관리)제도’를 통해 매년 정부 예산안 결정 시기에 인력 증원을 두고 기획재정부와 공공기관이 줄다리기를 진행하고 있으나, 기관의 고유 특성과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공공기관 노동조합은 바라봤다.

“공공부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관계 법령은 나날이 강화되고, 새로운 법이 입법됨에 따라 지속적으로 업무가 증가함에도 이에 따른 인력이 증원되지 않아 오히려 본연의 역할을 소홀히 하는 경향까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각 기관과 연관된 법이 제정되면 경영평가에 반영하여 준수를 강행하고 감시하지만, 이를 수행할 여력이 있는지, 수행하기 위해 기관이 갖춰야 할 것들이 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기관에 책임을 전가할 뿐이다” (응답자 54)

“총액인건비가 폐지돼야 한다. 총액인건비 규정으로 인해 공공기관이 더 발전할 수도 있는 여지를 없앤다” (응답자 76)

“공운법, 인사혁신처, 권익위원회 등으로 공공기관 직원을 공무원 수준으로 옥죄면서 우수한 인재의 유출을 조장하는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 최종 의사 결정을 비전문가인 공무원이 하게 되면서 정책의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수행 과정을 왜곡하는 현상도 줄여나가야 한다. 정부의 경직된 예산 구조를 고수하기보다는 유연한 예산 집행과 정책 수행의 자율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응답자 81)

정부‧정치권 입김 빼고
노동조합‧시민 참여 더해야

요컨대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공공성 증진을 위해 공공기관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 현재 정부가 공공기관에 과도하게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공공기관 이사회 임원 선임 방식이나 경영평가, 총액임금제도 등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기획재정부 산하 공운위의 기능 변화다. 현재 공운위는 공공기관 이사회 임원 임면, 경영평가, 경영공시 등 공공기관에 관한 주요 사항을 모두 심의하고 있다.

그런데 공운법상 공운위 구성은 ▲당연직 정부위원 9명 이내로 구성(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원장, 기재부 차관, 행정안전부 차관, 국민권익위원회 추천 차관급 공무원, 인사혁신처장 등)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하는 민간위원 11명 이내에서 구성하도록 돼 있다. 사실상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의 소유권과 관리‧감독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공기관 노동조합들은 공공기관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영향력이 줄이고, 그 자리에 노동조합, 시민 등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공기관이 시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만큼, 운영에서도 시민과 구성원의 참여가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기획재정부 산하가 아니라 국무총리실로 이관돼야 한다. 더불어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위원들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추천으로 구성돼야 한다. 공공기관이 본연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시선이 아닌 보통 시민들의 시선으로 공공기관이 운영되고 통제돼야 한다” (응답자 26)

“공공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지만,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자긍심이나 자부심을 느끼기 힘들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 때문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기관 내에서 상호견제와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즉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변화와 더불어 노동조합이 견제의 주체로 참여하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공공부문의 노동자들은 이를 위한 충분한 전문성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다” (응답자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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